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56화 (835/877)

새벽.

운화병원 응급센터 의사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당직 의사를 제외한 의사들이 백 명 가까이 흰 가운을 입고 앉아 있으니 사문(邪門) 의식 같았다.

물론 서양에서 들어온 전통 기술이라는 걸 생각하면 사문 의식이라는 말도 딱히 폄훼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시체를 훔쳐 해부했을 때, 그 기술도 백일하에 드러낼 수 없는 금기된 기술이었으니까.

응급센터 의사들도 태양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특히 토 나올 때까지 당직을 선 의사들은 불을 끄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그대로 쓰러져서 죽은 듯이 자길 바라니까. 그 바람에 관장 검사를 당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커튼을 내리고 어두컴컴하게 앉아 있는데 곽종군이 들어왔다.

“블라인드 좀 걷지. 이 좋은 날씨에 볕 좀 쫴야지.”

곽종군은 태양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의사들이 불평하기도 전에 아부쟁이 몇몇이 앞다투듯 블라인드를 걷었다. 희미한 햇빛이 꽉 막힌 관상동맥을 뚫고 들어오듯이 힘겹게 실내에 비쳤다.

“햇볕 자주 쬐면 몸에도 좋다고.”

곽종군은 막 밤새우고 온 의사들을 껄껄 웃으며 교육했다. 레지던트들은 같잖아하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됐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일 이야기하지.”

곽종군은 몸을 흔들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 분기에 다빈치 로봇을 구매하고 복합 수술실도 오픈하고 또 병실도 20여 개 리모델링, 확장하느라 돈을 좀 썼지. 하지만 병원에서 그만큼 다시 보태줬어. 이 다빈치 로봇은 갑(甲)급 설비고, 허가 떨어지면 보조 설비 자금도 떨어질 거고, 성립에서도 상응하는 보너스가 나올 거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준비한 상반기 자금은 오히려 남지…….”

구석에 앉은 기록 담당 실습생은 지금 이 순간 저도 모르게 다년간 배워온 문구를 적었다.

‘곽종군 주임의 말은 마성이 있는 것처럼, 기운 없이 빌빌거리던 의사들을 한순간에 기운 넘치게 만든다.’

“결과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이 이야기부터 설명해야겠구먼. 이번 분기만 해도, 능연 팀 수술량이 1,000건을 넘었네. 우리 진료과에서뿐만 아니라, 병원 전체로 따져도 탑이야. 그래서 남은 자금으로 모두에게 보너스를 주려고 하네…….”

곽종군이 계속해서 하는 말을 들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박수치는 소리가 실내에 울렸다.

주임과 부주임의 수입 루트는 비교적 다양하지만, 그 아래 주치의와 레지던트는 기본적으로 월급만으로 생활한다. 그런데 보너스 이야기가 나오자 막 밤을 새우고 온 의사는 곽 주임이 조금 더 볕을 균일하게 쬘 수 있도록 아예 벽을 부숴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웠다.

구석에 앉은 실습생은 그 장면을 진지하게 기록했다.

‘돈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굶주린 새끼강아지처럼 흥분했다.’

“1팀부터 시작하지.”

곽 주임은 군소리 없이 두어 마디 만에 중점을 이야기하고는 찻잔을 들고 차를 마셨다. 1팀은 원래 곽종군이 이끌던 팀이었고 나중에 병에 걸렸을 때는 대부분 도 주임에게 넘겨 관리하게 했었다. 1팀 인원들은 서로 눈치 보다가 곧바로 주 선생에게 눈짓했다.

주 선생은 헛기침하며 거절하지도 않고 마우스를 조작하고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최근에 들어온 흉통 환자인데, 흉부에 물이 고여 있고 이유 없는 잔기침이 잦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주 선생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전체 의사들이 참여하는 이런 협진은 의사들에게 학습 기회와 시련이 된다. 팀마다 보통 가장 복잡한 한 케이스만 들고나온다. 협진에 참여할 마음이 있는 의사들은 각자 의견을 내고, 이유를 제시한 다음 마지막에 결과를 추론하거나 치료 진행을 시도한다.

내과 쪽 의사일수록, 이런 기회는 자신을 드러내기 쉬우면서도 욕먹기 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심오한 환자의 증상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야 당연히 모든 이가 달리 볼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이치로, 초보적인 실수를 하거나, 혹은 큰 문제가 진단되면 모두가 돋보기를 들고 들여다봐도 어쩔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인 진료과는 학창 시절 갑작스러운 쪽지 시험을 보는 교실과 같다. 누가 공부를 잘했는지, 누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쉽게 드러난다. 물론 그럭저럭 중간만 하고 갈수록 둥글둥글해지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주 선생이라든가.

그의 리포트는 아무런 파란도 일으키지 않았다. 맛이 없지도 않지만, 식감은 그저 그렇고, 먹을 수는 있지만, 안 먹어도 그만인 푹 익은 통조림 고기처럼.

“흉통과 이유 없는 기침 때문에 흉강에 물이 찬 것 같은데, 감염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 보면 그럴 가능성이 확실히 크네. 환자가 젊긴 하지만, 폐암 전이도 고려해야 해. 종양내과에서 진단했나?”

“지금 치료 잘 되고 있으면, 흉부 드레인하고 감염 제어하고 나면 큰 문제 없을 것 같은데?”

저마다 치중점이 있고, 수준들도 다 다른 의사들은 발언하고 싶으면 발언했고, 기록을 마친 주 선생은 곽 주임 쪽을 바라봤다.

“별다른 문제 없으면 다음 팀 가지.”

곽종군은 결론을 억지로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결론이 아예 없는 질환도 있다. 특히 응급센터로 들어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병증이 발전하는 단계고, 심각한 사람도 많다. 전문적인 내과 의사라고 해도 최종 결론을 꼭 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응급센터의 협진은 언제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이는 자리이지 해결할 수 없는 환자를 어느 진료과로 보내야 할지 의논하는 자리가 아니다.

진료팀 팀장들이 각자 신중히 해야 할 것을 고려하며 저마다 발언했다. 회의실 분위기도 쪽지 시험 교실 분위기를 적당히 유지했다.

능연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렸다.

“환자의 오른쪽 하지 부종은 림프 쪽 상황으로 보아 림프 부종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게 아니라면 다리 쪽 부종이 명확한 방사선 분포로 드러났을 테니까요.”

능연의 목소리가 들리는 찰나, 안 그래도 조용하던 회의실이 즉시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곽종군은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웃었다. 그가 느끼기에 능연은 지나치게 냉정했다. 진료과 의사들을 혼내고 가르친 적이 없을 정도로 냉정했다. 그래도 다행히 의학적 전문성과 고집이 있어서 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곽종군이 보기에 그런 위력은 전면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능연의 얼굴값이 그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으니 의외의 서프라이즈인 셈이었다.

물론 진료과 내부 의사들은 그런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조금 전에 발언한 주치의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환자의 림프 모양이 원형이고, 테두리가 명확해서, 만성 염증성 림프라고 생각했습니다…….”

능연은 상대가 말을 마치길 기다려주고는 대답했다.

“잘못된 걸 알았으면 됐죠.”

“예.”

젊지만 패기를 부릴 용기가 없는 젊은 주치의가 서둘러 대답했다. 능연도 추궁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간담췌랑 협진해서 자세히 검사해 보세요.”

“그러겠습니다. 예.”

“오케이. 제가 보겠습니다.”

주치의는 바로 대답했고, 저 멀리 앉아 있는 간담췌 장안민 부주임도 가볍게 대답했다. 장안민은 이번에 응급센터 대회의실 협진에 처음 참가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은근히 들떠 있었다.

“능연, 앞으로 복합 수술실을 어떻게 쓸지, 자네가 모두에게 설명 좀 해주지.”

곽종군이 더 흡족해하며 말하자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두 가지 방향으로 복합 수술실을 사용할 겁니다. 하나는 복합 수술 진행, 또 하나는 일체화 ER, 즉, 여러 진료과 협력하에 진료 규범을 통일하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제 시간을 줄이고 환자의 구명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곽종군의 눈빛이 갈수록 빛났다. 일체화 ER이 그가 꿈꾸어왔던 대형 응급의 모델은 아니지만, 일체화 ER을 통해서 대형 응급의 초기 레이아웃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이어서, 중점 케이스를 의논해 보지. 며칠 전에 ICU에 들어온 환자, 다들 봤지?”

곽종군은 능연의 이야기가 끝나자 PPT를 불러오게 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높은 곳에서 추락한 다발성 손상 환자. 경추에서 꼬리뼈까지 여러 군데 골절, 장기도 여러 곳 손상되었고, 호흡 기능 손상되어서 구조 중에 쇼크 발생, 대량 출혈, 기흉. 적절한 응급 치료는 다 마쳤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다들 의견 내 봐. 음, 나부터 이야기할 테니, 나중에 원내 협진할 때 꺼내서 이야기해보지.”

이런 환자는 응급의학과 한 진료과에서 처리할 수 없는 환자고, 정형외과 혹은 ICU에서도 해결할 수 없다. 신경외과, 일반외과, 마취과 그리고 간호과 등등 모두 연합해서 같이 대책을 상의해야만 대응할 수 있는 전형적인 다진료과 연합 진료 케이스다.

곽종군은 요즘 이런 케이스로 협진을 여는 걸 매우 좋아한다. 수하에 무술 고수가 있으면 격투기를 열고 싶어 하고, 유능한 외교사절이 있으면 국제 협력을 하고 싶어 하고, 손오공이 있으면 사람 털 헤아리고 싶고, 시미켄이 있으면 사람 털 헤아리고 싶고, 아인슈타인이 있으면 사람 털 헤아리고 싶은 것처럼.

온 병원을 통틀어서 외과 쪽과 조금만 관련되어 있으면, 다진료과 협진이 구성되기만 하면, 곽종군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임상 의학은 순수히 이론만 따지는 법이 없다. 이론은 실천과 관련되어 있고, 실천 비중이 더 큰 것이야말로 정상적인 흐름이다.

마찬가지로, 다 진료과 협진에서 방안을 제안한 사람은 우선 그 방안을 실행할 수 있어야만 한다. 심장 비정지 심장 수술은 누구나 알고, 박동 정지 수술보다 더 많은 우세가 있다는 건 알지만, 본인이 못 하면, 심지어 본원 의사 아무도 못 하면, 거기에 출장 수술로 불러올 사람마저 없으면, 그런 방안을 제안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이건 메이요 의학원에서도 그렇고, 팔채향 병원에서도 똑같다.

곽종군도 능연의 판단을 완전히 확신하는 건 아니라서 살짝 애매하게 말을 이었다.

“이런 심각한 관절 외상은, 보통은 아무래도 보존치료를 권하지. 수술 리스크가 큰 편이니까. 하지만 보존치료로 골절 부위를 충분히 고정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치료 후에도 활동성 출혈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최근엔 임상 연구도 발전해서 학자들까지 조기 회복을 통해 병세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후로는 수술 치료 쪽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지. 우리 병원은 이런 환자는 보통 증상마다 별도 진료과에서 치료를 진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니, 다들 너무 부담 가질 것 없어. 생각하는 게 있으면 다 같이 이야기해보자고. 그게 오늘 목적이니까.”

그러자 주 선생이 물었다.

“환자는 깨어났습니까? 보호자 생각은요?”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 보호자는, 흠, 환자 부인이 적극 치료를 원하고 있어.”

곽종군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보존치료로는 장애가 남을 수 있고, 코마 리스크도 있으니까. 보호자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지.”

마지막 말에 그 자리에 있는 의사들 모두 똑똑히 상황을 파악했다. 주 선생과 동기인 주치의 조낙의가 생각이 많은 듯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럼 수술로 가게 되겠네요? 이래서 평소에 와이프한테 잘해야 한다니까. 응급실에 들어가게 되면 수술할지 말지, 다 와이프가 결정하잖아요. 다들 오늘 집에 가면 와이프한테 백 선물하세요.”

“백 안 사주면, 큰일 나는겨?”

도 주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옆에 있는 이 주임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내 와이프한테 백 두 개 사주는 사람이 따로 있으면?”

“어이, 위기감을 너무 느끼는 거 아니야?”

도 주임이 혀를 끌끌 차며 말하자, 곽종군이 헛기침하며 화제를 다시 끌어왔다.

“보호자 의견은 의견이고, 우리도 대책을 생각해야지. 또 하나, 보호자는 전원도 고려하고 있어. 확실한 자신이 없으면 전원도 괜찮아.”

운화병원 응급의학과는 이미 응급센터가 되었는데 곽종군이 전원도 고려하는 걸 보면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고, 다들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엔, 능연은 다른 사람의 발언이 끝나길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수술 치료가 낫습니다. 이 환자 우리 팀에서 해도 됩니다.”

의욕을 끌어올리며 발언 기회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한순간에 김이 빠졌다. 복잡한 케이스는 보존치료로 할지 적극적 치료로 할지, 논점이 많다. 경험 많은 의사는 심지어 자기 사진과 싸우면서 여러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능연이 어떤 의견을 내든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기 팀에서 하겠다는 말이 나온 이상, 반대할 사람은 0에 가까워진다.

‘네가 할 수 있으면 네가 하렴’, 이건 외과 업계에 매일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외과 영역에서 가장 허탈한 부분이, ‘네가 못 하니까 내가 할게’하고 나타나는 사람이 항상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상 병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높다. 대부분 주임, 부주임, 주치의들은 남을 욕하기 전에, 링에 올라서 수하 의사들이 할 수 없는 일부터 해낸 다음에야 남도 욕한다.

“그렇게 못 박진 말고.”

오히려 곽종군이 나서서 설득하더니 웃으며 물었다.

“OS 생각은 어때?”

정형외과 주치의가 얼떨떨해졌다. 이 정도 케이스를, 저에게 물으시는 겁니까?

“이런 수술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정형외과 주치의는 바로 치료를 포기했다. 어차피 응급의학과 회의실이라서 그렇게 격렬하게 창피한 것도 아니고.

예상했던 곽종군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쪽에서 방안 세우고 OS랑도 구체적으로 의논하도록 하지. 그냥 시원하게 이야기하겠네. 우리 방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뭐가 있을까?”

어떤 방안을 부정하는 건 찬성하는 것보다 쉬웠고, 정형외과 주치의도 그렇게 쫄지 않고 대답했다.

“이런 정도의 OS 수술은 대량 출혈이 예상됩니다.”

“대량 출혈은 해결할 수 있어요.”

진지하게 MRI를 판독했던 능연은 침착하게 대답을 내놓았다.

“음……. 블리딩 컨트롤 가능하면 수술해도 괜찮습니다.”

정형외과 주치의는 눈곱만큼의 의심도 할 생각도 없었다. 능연이 장담한다면, 기본적으로 문제없는 것이다.

곽종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지. 상대가 피할 때 때려야 재미있지. 아니면 말뚝 때리는 거랑 뭐가 달라.

“NS는?”

곽종군이 다시 묻자 신경외과에서 온 주치의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잠재 손상을 판단하기 어렵네요. 하지만 의미는 있을 겁니다.”

“GS?”

“의견 없습니다.”

“간담췌?”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장안민은 야광봉을 흔들 기세였다. 곽종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 같이 수술을 추진하지. 다들 돌아가서 소통하고 이야기해봐. 능연, 수술 언제 할 생각인가?”

“최대한 빨리요.”

능연의 얼굴엔 전혀 거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일은 그로서는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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