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57화 (836/877)

대빵들이 회의할 때, 여원은 재빨리 개인 물품을 정리했다. 그 일을 마친 후, 온도계와 음식을 챙겨서 향만원을 보러 갔다.

아이, 아이의 부모, 그리고 더 어린아이의 공동 협력하에, 향만원의 무게는 나날이 늘어갔고, 어림잡아도 거위 간의 무게가 적어도 2kg을 웃돌아 보였다. 이렇게 살찌고 거대한 흰 거위는 여원의 손에 지금 들린, 비둘기에게나 먹일 법한 사료를 당연히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보통 여원을 보면 바로 돌아서서 달아났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보자마자 덥석 달려들었다. 여원은 민첩한 작은 손으로 대뜸 놈을 잡고 깔깔 웃었다.

“뭐야. 날 공격하려고?”

항먄원은 힘껏 고개를 저었고, 뒤에서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의지할 곳을 찾아서 살려달라고 하는 걸걸요.”

여원이 의아한 듯 돌아보자,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진민과 그녀의 경찰견이 분수대 그림자 밑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진 경관님. 돌아오셨어요? 전에 뭐더라 무슨 보안 행사 갔던 거로 기억하는데. 몸은 괜찮으세요?”

여원이 조금 주저하며 물었다. 의사는 옛친구, 옛 동창이 갑자기 나타나는 게 가장 두려웠다. 다행히 그게 아닌지, 사복 차림인 진민은 소리 내어 웃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몸은 멀쩡해요. 밤톨이도 건강하고요. 건강 검진하러 왔어요. 다른 임무 준비하려고요. 참, 능 선생은요?”

여원은 무심결에 ‘하’ 소리를 내고 대답했다.

“능 선생도 잘 있어요. 내내 일만 하고요.”

진민은 하하 소리 내서 웃고는 여원의 손에 들린 향만원을 쿡쿡 찔렀다.

“이 녀석, 우리 밤톨이가 무서워서 그러는 걸 거예요. 내려놓으세요.”

“날 공격하려는 건 줄 알았네.”

“아니에요. 사람도 안 무서워하고 착하게 있었어요. 밤톨이가 너무 커서 놀랐나 봐요. 밤톨아!”

이름을 불린 밤톨이는 한 걸음 나와서 훈장 수여하듯 여원을 마주했다. 여원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다가, 경찰견인 상대의 신분을 떠올리고는 다시 거뒀다.

“만져도 돼요.”

진민이 웃으며 하는 말에 여원이 다시 손을 들었다. 그 순간, 경찰견 밤톨이가 명령을 받은 듯이 털이 보송보송한 앞발을 내밀어서 여원의 정수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분수대 근처의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너 왜 사람을 물어!”

여원이 거위를 치켜들고 때리기 시작했다.

“능 선생님!”

“멍!”

“능 선생님, 능 선생님!”

“멍멍!”

경찰복으로 갈아입은 진민이 경찰견 밤톨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모습은 늠름한데 목소리에 콧소리가 조금 느껴졌다.

은근히 끼 부리는 건가? 여원이 진민 뒤에 서서 살며시 여우 꼬리표를 붙였다. 경찰견 밤톨이가 힐끔 돌아보며 진정하라는 눈빛을 보였다. 막 경찰견이 된 작은 강아지를 대하듯이, 조금 엄하면서도 조금 다정하게.

여원은 눈을 부릅떴다. 막 경찰견이 된 작은 강아지처럼, 조금 짜증 내면서도 조금 고분고분하게.

진민을 본 능연이 방향을 틀어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능연을 따르던 의사들이 즉시 우르르 방향을 틀고는 야생마 같은 기세를 내뿜으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진민은 자신의 사진을 찍는 카메라 렌즈들을 느꼈다. 사실 종종 사진 찍히고, 심지어 도촬도 당한 사람이라 대수롭지 않았다. 경찰의 꽃미녀 자리에 오래 있기도 했고. 그나저나, 고프로까지 들고 있다니, 준비성이 너무나 철저한 거 아닌가?

“몸은 어때요?”

진민을 만난 능연 역시 제일 처음 그 질문을 했다. 동시에 그의 시선이 경찰견 밤톨이에게 향했다.

밤톨이 수술을 직접 했고, 사람 수술보다 훨씬 당황했었으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취과 모 마취의가 지금도 종일 ‘개마취’, ‘개마취’라고 불리고 있었다. 마취사라는 말보다 더 모욕적인 말인데, 대체 그가 무엇을 잘못해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밤톨이 마취를 했을 뿐이니, 그쪽으로 생각해 보면 적어도 좋은 사람이라서 개 마취를 해준 것이다. 그러니 ‘개짱맨’이라고 부르는 게 더 났다.

“나랑 밤톨이 모두 건강해요. 최근엔 범인 잡고 상도 받았어요.”

병원에 몇 시간 머무르면서 몸이 어쩐지 묻는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은 진민은 이미 익숙해졌다. 생각해 보면 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능연은 그제야 미소를 드러냈다.

“그럼 다행입니다.”

“음……. 능 선생님, 바쁜가 봐요. 언제 퇴근하세요?”

진민은 주저하며 묻고는 능연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공붓벌레들이 그녀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없이 두 눈이 퀭해서 진민을 바라봤다. 얼렁뚱땅 섞여서 들어온 의사들은 못 들은 척하면서 사진 찍을 사람은 사진 찍고, 셀카 찍을 사람은 셀카 찍고, 뽀샵할 사람은 뽀샵하고, 어찌 됐든 바쁘게 움직여댔다.

능연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 퇴근 안 할 거예요.”

“그렇게 바빠요? 퇴근할 시간도 없어요?”

“퇴근할 필요가 없어서요.”

“그럴 리가요. 집에 가서 부모님 얼굴 봐도 되고, 여자친구랑 시간을 보내도 되는데…….”

진민은 떠보듯 물으며 목줄에 힘을 주었다. 밤톨이의 감정도 따라 술렁였다. 녀석은 제 목줄 한 번, 능연 한 번 쳐다보고는 속으로 ‘이놈, 적어도 마약 총 판매상쯤은 되나? 물어 버리면 소고기 주나?’하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자기 생활이 있고요.”

집 주차장에 있는 새 차를 떠올린 능연이 어이없는 듯 말하고는 계속 말했다.

“전칠은 회의하러 가서 오늘 국내에 없어요.”

“아…….”

진민은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고, 능연은 예의상 한 마디 물었다.

“진민 씨는 퇴근했나요?”

“일하러 온 거예요.”

그 이야기가 나오자 진민도 진지해져서 나지막이 물었다.

“능 선생님, 의료 이송해 본 적 있어요?”

“두 번 해 봤어요.”

능연은 진민의 입에서 ‘의료 이송’이라는 말이 나오자 바로 흥미를 느꼈다.

“그게……. 우리 윗선에서 의료 이송 관련 응급 의사를 몇 명 소개받았는데, 그 리스트에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래서 온 거예요.”

몇 마디로 간단한 설명한 진민은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능연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의사들에게 일보라고 하고는 아무 면담실에 들어갔다. 벽과 문 모두 투명 유리였지만, 문을 닫으면 불투명해져서 어느 정도는 가려주었다.

“일하기 싫을 때 숨어 있기 좋겠네요.”

진민 씨가 감탄하듯 하는 말에 능연은 이해할 수 없는 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곁에 있는 밤톨이를 바라봤다.

“개랑 같이 있어도 일하기 싫을 때가 있나요?”

밤톨이가 동의하는 듯 ‘우우’ 소리를 냈다.

요즘은 개도 얼굴 따진다고 속으로 꿍얼거린 진민은 다시 능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누구나 그런 때 있죠. 능 선생님은 그런 때 없어요?”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짜증스러울 땐 바로 해결 방안을 찾는다. 아니면 말, 또는 행동으로 표현하고. 보통 말로 표현하는 단계에서 대부분 문제를 해결해주려 애쓴다.

얼굴이 잘생기면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야? 나도 꽤 예쁘게 생겼는데……. 진민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직권을 이용해서 능연을 휘둘러 볼 생각이었는데, 두어 마디 만에 능연에게 휘둘릴 줄은 몰랐다.

“아까 의료 이송 이야기하셨죠?”

진민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넋이 나간 걸 깨달은 능연은 의아해하지도 않고 조심스레 대화 주제를 상기시켰다. 진민은 서둘러 ‘아아’ 하며 주제로 돌아왔다.

“다른 생각을 좀 하다가. 음, 사실 제가 다른 곳으로 옮겼어요. 의료 이송이 필요한 새로운 임무가 생겼고, 윗선에서도 지금 고려 중이라서…….”

“그래서 나한테 바라는 게 뭡니까?”

능연은 곧장 본론에 돌입했다.

“의료 이송 과정 중에 환자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해주길 바라요.”

“환자가 어떤 상황인데요? 증상은요?”

“환자는……. 환자 상황이 어떤지는 아직 말 못 해요. 증상은 외상 위주인 것 같고요.”

전칠이 잠시 주저하다가 말하는 사이, 능연 앞에 시스템 제시어가 튀어나왔다.

- 퀘스트: 의료 이송

- 퀘스트 내용: 의료 이송 기술은 노련한 응급센터 의사가 반드시 갖춰야 하는 항목. 의료 이송에 한 번 참여하고 완성할 것.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상자

“외상 처리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의료 이송은 별 경험이 없네요.”

능연은 퀘스트를 수락했지만, 진민의 말을 바로 승낙하진 않았다.

응급 과학의 중요 갈림길에서 의료 이송과 일반 응급은 큰 차이가 하나 있다. 의료 이송은 진행 과정에서 매우 독립성을 띤다. 특히 공간적 독립성 때문에 운행을 책임지는 과정에서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도 적어진다.

일반 응급 과정에서는 한 의사가 처리할 수 없는 증상이 생기면 다른 의사를 불러 도움받거나 심지어 대체해도 된다. 그러나 의료 이송 과정에서는 이런 도움을 받기는 매우 어렵다.

응급센터 의사는 전체 진료과를 아우르는 능력이 필요하지만, 생각만 해도 알 수 있듯이, 설령 전체 진료과의 요구에 부합하는 의사라도 해도 능력 차이가 있고, 치중점도 있다. 그런 점이 바로 의료 이송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통제할 수 없게 하는 점이다.

그런 걸 잘 알지 못하는 진민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하기 싫으면, 나중에 우리 윗선에서 물을 때 잘 모른다고 하면 돼요. 거절하면 강제로 하라고 하진 못해요. 하지만 참여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예요. 지금 제 상사, 꽤 리소스가 많거든요. 꽤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알아들었습니다.”

능연은 한다, 안 한다, 말하지 않았다. 진민이 준 정보가 너무 적어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진민과 그녀의 경찰견이 아쉬움이 남은 듯 능연을 보내주자, 능연은 곧 다 잊어버리고 수술실로 돌아갔다.

복합 수술실은 그의 예상보다 더 재미있었다. 일반 수술이 트램펄린, 미끄럼틀, 범퍼카라면 복합 수술실은 놀이 공원이었다. 무시무시하게 비싼 가격 말고 흠잡을 곳이 없었다.

의사에게 일반 수술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건 트램펄린에서 종일 뛰어논 것, 혹은 미끄럼을 종일 타고 논 것과 같아서 아무래도 지치고 피곤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복합 수술실에서 하루를 보낸 건 놀이 공원에서 하루를 보낸 것과 같다.

능연조차도 복합 수술실에서 바삐 움직일 때는 순수한 시기, 질투, 미움을 느낄 수 있었다. 놀이 공원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를 놀이 공원 밖에서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이가 있는 것처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