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58화 (837/877)

“양 주임님, 여기입니다, 여기!”

응급센터 레지던트 용보과가 운화 공항 픽업 게이트 앞에서 팻말을 들고 열심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능연이 막 응급센터에 들어갔을 때, 용보과는 아직 훈련의였다. 몇 년 노력한 끝에 드디어 레지던트가 되는 데 성공해서 자기 차를 몰 자격이 생겼고, 수술 시간 사이에 공항으로 귀빈을 마중하러 갈 짬도 되었다.

얼핏 들으면 조금 비참하지만, 그 많은 훈련의 동기가 병원에 남지 못하고 사라진 걸 생각하면, 수술 사이에 자기 차를 몰고 나와 손님 맞이할 자격도 없는 다른 레지던트를 생각하면, 용보과는 이 정도도 만족했다.

운화병원 응급의학과가 응급센터로 승급하면서, 의사 초빙 조건도 더 까다로워졌다. 간단히 말하면 용보과 같은 본과 의사는 원래 별 기회가 없다. 용보과는 요즘은 심지어 함께 공부하는 동기가 졸업할 때가 되면 자기 후배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눈곱만큼밖에 없지만, 그래도 기뻐하기엔 충분했다.

막 비행기에서 내린 양학은 한참이나 눈살을 찌푸리고 본 후에 자기가 키워낸 의사 장천공을 발견했다. 인파에 섞여서 ‘양 선생’ 팻말을 들고 있는 용보과는 그 다음에야 발견했고.

“아깐 못 봤습니다…….”

양학은 용보과가 들고 있는 팻말에 쓰인 ‘양 선생’ 호칭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것에 대해 언급하진 않고 장천공에게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운화병원에서 잘 지내지?”

요즘 여원에게 끌려다니며 일하는 게 일상인 장천공은 조금 아련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럭저럭 잘 지냅니다. 운화병원이랑 우리 병원이 조금 다르지만요.”

“병원은 다 조금씩 다르지.”

양학은 하하 웃으면서 장천공의 어깨를 두드렸다.

“태무에 있을 때보다 활발해 보이네. 됐어. 음, 몸도 탄탄해졌는데?”

“연문빈 선생이랑 헬스합니다.”

장천공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원에게 끌려다니지 않을 때는 보통 연문빈에게 끌려다닌다. 그리고 연문빈이 틈을 내서 크런치, 풀업할 때 멍하니 보고 있기에는 그래서 조금씩 따라 하다 보니, 연문빈에게 이끌려 기묘한 길에 오르게 되었다.

“일단 차에 타서 말씀하시죠.”

용보과가 먼저 나서서 그렇게 말하고는 양학과 동행한 초짜 의사를 웃으며 바라봤다.

“주 선생님이시죠? 우리 전화 통화했었는데.”

용보과와 나이가 비슷한 주 선생은 레지던트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금세 시종으로 따라온 모양이었다.

“아아. 아까는 못 봤습니다.”

주 선생의 말에 용보과는 익숙한 듯이 웃어 보였다.

“제가 존재감이 좀 희미하거든요. 그래서 팻말을 다른 사람보다 크게 만들죠.”

그 말에 양학이 눈을 찌푸리고 유심히 바라봤다. 그 말대로 용보과가 들고 있는 팻말은 역시나 다른 사람보다 훨씬 컸다. 그래도 별 효과는 없었고, 설명하기엔 어렵지만,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

양학은 저도 모르게 운화병원 의사는 참 특이하다고 말했다.

“우스운 꼴 보였네요. 저기……. 차는 주차장에 있습니다. 케리어는 제가 들겠습니다. 병원부터 갈까요, 호텔부터 갈까요?”

“병원부터 갑시다.”

“예.”

용보과는 양학, 그리고 동행한 주 선생을 차에 태운 후에야 살며시 안도했다. 장천공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는데 그의 주임 양학은 예상과 달리 뭘 더 묻지 않았다.

양학이 알고 싶어 하는 건 사전에 전화로 미리 물어봤었고, 지금 이 운화병원 초짜 의사 앞에서 할 일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채 내내 자면 그만이었다. 병원 일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라서, 양학은 자기가 자세히 물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중고 폭스바겐 마고탄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재빨리 운화병원으로 돌아갔다. 용보과는 그래도 시간을 절약해서 돌아가서 수술 몇 건 더 벌고 싶었다.

운화병원에 가까워지자, 양학은 그제야 눈을 뜨고 대수롭지 않은 듯 구체적인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내일 회의가 가장 중요한 일정이겠죠. 좌자전 선생이 초청장을 잔뜩 보냈습니다. 회의가 열리는 곳에 거처도 잡았습니다.”

“바로 회의한다고요?”

용보과가 운전하며 하는 말에 양학이 물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전에 이야기한 그 브리핑인가?”

양 주임이 쳐다보며 묻자, 장천공이 서둘러 대답했다.

“그건 끝났습니다.”

장천공은 대답하고서야 조금 켕기는 마음이 들었다. 이번 주에 간 문맥 수술 세 건 하고 들뜨고 바쁜 바람에 제때 상황 보고를 하지 못했다. 별로 중요한 회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지만, 무엇이든 상세히 보고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결과는요?”

초짜 주 의사가 곁에서 주임 대신 물었다.

“별문제 없었어. 운화병원 쪽에서 간단하게 열었습니다. 능연 선생도 참여하지 않고 좌자전 선생을 보내서 회의 의제 같은 것만 논의했을 겁니다.”

“운화병원이 창서성에서 그 정도 위세가 있다고?”

양학은 조금 믿을 수 없어 했다. 창서성 지위를 따지자면 태무 센트럴 병원이 운화병원보다 조금 높았다. 하루 이틀에 형성된 것이 아닌 만큼, 하루 이틀 사이에 변할 수도 없다.

아무래도 젊은 나이인 장천공은 자기가 빼놓고 보고하지 않은 것이 더 있나 생각하면서 다시 덧붙였다.

“운화병원은 당연히 아니지만, 운화병원의 응급센터는 다릅니다. 곽 주임이 원래 강세인 데다가 지금은 능연 같은 의사가 있으니까, 창서성 다른 병원들도 조심할 수밖에요.”

양학은 그 말속에 느껴지는 짙은 탄복을 알아챘다. 조금 언짢기도 하고, 조금 무시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자동차 양쪽으로 쉴 새 없이 뒤로 사라지는 경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기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을, 능연과 좌자전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응할 수 있는 걸까. 전문가 컨센서스 같은 그 좋은 것을 왜 돈도 안 받고 출장 수술로 바꾸려는 걸까. 따지고 보면 결국 전문가 컨센서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그러는 것 아니냔 말이다.

양학은 자기 앞에 나타난 그 많은 함정, 상대하기 어려운 녀석들, 설득하기 어려운 놈들, 거만하게 의견을 내는 것들을 떠올리고는 머릿속으로 저도 모르게 한 마디를 떠올렸다.

‘사악한 자들이여 썩 비켜라!’

정말로 그럴 만한 지위에 이르렀다면, 주변 사람, 성 내의 파리 떼, 개떼가 접근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라면, 일은 또 얼마나 끝내주게 해낼까.

양학은 이 문제를 정말로 진지하게 능연, 혹은 곽종군과 제대로 논의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야기 나누는 사이, 중고 마고탄이 빠른 속도로 운화병원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양학은 차에서 내린 다음 캐리어 같은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로 물었다.

“능 선생은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

“수술하고 있을 겁니다.”

용보과는 80%는 확실한 대답을 내놓았고, 양학은 헛웃음 쳤다.

“그럼 바로 수술실로 갑시다.”

“그게……. 예, 알겠습니다.”

좌자전의 명령과 달랐지만, 용보과는 거절하지 않았다. 능연을 찾으러 수술실에 가는 건 원래 대부분 인간의 정상적인 선택이었다.

좌자전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빠른 걸음으로 응급센터 주요 구역을 오가고 있었다.

“이곳이 우리 병원 중상 수술실입니다. EIUC엔 현재 베드 8개 있고요. 여기가 복합 수술실입니다. 능 선생이 지금 수술 중입니다.”

좌자전은 손님에게 설명해 주면서 상대를 관찰했다. 위생국 사람과 함께 왔지만, 반듯반듯한 태도로 보아 군인의 느낌이 강하게 났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탐색 중인 프로젝트와 범위에 좌자전은 근심이 가득했다.

모두가 관찰실을 통해 능연의 수술을 보는 틈을 타서, 좌자전은 낯익은 윗선의 팔을 끌어당겼다.

“이 국장님. 구체적으로 무슨 상황입니까?”

“명령대로 하면 되네. 손해 볼 거 없을 테니까.”

이 국장은 체면 차리지도 않고 좌자전을 향해 정색하고 ‘착하지’하고 외친 셈이었고, 좌자전은 고분고분 착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 좌 선생!”

마침 안으로 들어오다가 좌자전을 본 양학이 바로 외쳤다. 거리낄 것도 없었고, 앞으로 이어질 대화에서 우세를 쟁취하려고 일부러 대범하게 군 것도 있었다.

“아이고, 양 주임님!”

좌자전도 잠시 멈칫하다가 바로 열정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 국장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쪽을 바라봤다.

“좌 선생, 기운 좋아 보이는군요.”

양학은 좌자전과 힘주어 악수하면서 쌍방의 혁명 우의를 큰 소리로 표출했다. 좌자전은 칭찬할 만한 구석이 별로 없긴 해도 기운은 넘치는 편이었고, 그건 가까스로 꼽을 수 있는 장점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양학이 제대로 칭찬했고, 지식인의 체면도 잘 드러낸 셈이었다.

그러나 좌자전을 칭찬하는 것 말고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은 전혀 고려할 생각이 없었다. 운화병원 의사도 아니고, 심지어 창서성 의사도 아니라서 운화병원 수술 참관실에서 양학의 사교 활동 필요성은 더할 나위 없이 낮았다.

그는 좌자전 옆에 있는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좌자전의 손을 흔들며 오랜만에 만난 기쁨을 발산했다. 옆에 있는 군인으로 보이는 높은 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짢은지 아닌지, 솔직히 양학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태무 센트럴 병원에서도 양학은 다른 사람 체면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될 위치인데, 하물며 낯선 도시에서는 당연했다. 이론적으로 태무 시에서 가장 막강한 일반외과 의사인 양학은 수많은 군인과 군인 가족의 수술을 했었다. 그래서 이미 챙겨야 할 체면은 충분히 챙겼다고 생각했다.

나라를 위해 중책을 맡고 떠나야 할 사람이 있다 치면, 그들이 설사에 걸리면 약 처방해주고, 충수염이면 잘라내고, 치질이면 베어내고, 그게 다다.

좌자전 역시 팽팽해진 분위기를 느꼈고, 이런 분위기로 능연 선생에게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아서 웃으며 맞장구쳤다.

“양 주임님, 주임님이야말로 아주 건강해 보이십니다. 발표하신 논문, 며칠 전에 봤습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잠시 쉬지 않으시고.”

“일부터 해야지요.”

“예, 좋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좌자전이 주저하는 모습에 양학은 혹시라도 그가 핑계를 댈까 봐 그를 빤히 바라보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여기서 이야기해도 됩니다. 상관없어요. 여러분, 잠시 좌 선생 좀 빌리겠습니다.”

그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자중하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음……. 예, 그러지요.”

좌자전도 그 틈에 군인들의 압박에서 벗어났다.

“사실 브리핑은 이미 끝났습니다. 정식 학회는 금요일에 시작하고요. 창서성 의사 위주로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북경 동황구 병원 허금억 주임님, 부속 2 병원 일반외과 주임님도 다 오실 겁니다.”

주임 한 무더기, 혹은 무슨 무슨 위원이라고 불리는 사람, 거기에 북경의 중상급 이상 주임 의사 몇 더 부르고, 양학 같은 다른 성의 조금 이름난 전문가까지 모으면 전문가 컨센서스 발표 학회를 열기엔 충분했다. 충분하기만 할까, 상당히 완벽했다.

양학은 절로 안도하며 웃었다.

“동황구 병원 허금억 주임도 일반외과 주임이지요. 만난 적 있는 것 같은데. 그분을 어떻게 모신 겁니까.”

“전에 암에 걸렸을 때, 특별히 우리 능 선생한테 수술받고 싶다고 요청하셨어요.”

좌자전은 양학이 몹시 놀랄 만한 답변을 담담하게 내놓았다.

“대단한 녀석…….”

양학은 정말로 몹시 놀랐다. 출장 수술은 출장 수술이고, 다른 성으로 출장 수술 가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북경까지 가는 건 더더욱 다른 문제고. 게다가 북경의 일반외과 의사 간 절제 수술이라니, 능연을 선택했다는 이 사실엔 너무나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왜 못 들었지.”

양학은 실로 의외라고 여겼다. 일반인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소식이겠지만, 의사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보통 소식이 아니었다.

좌자전은 순박한 척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능 선생이 소문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사실은 적이 생길까 봐 크게 소문내지 않았다. 능연의 상승 속도가 실로 너무 빨랐고, 그의 기술은 더더욱 확실하게 막강했다. 그래서 곽종군과 좌자전은 능연의 케이스를 대대적으로 홍보할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의사와 일반적인 기술자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프로젝트성 기술 작업은 자신을 증명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모든 기회를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건축사, 엔지니어가 전형적인 그런 직업이었다. 그들은 기술 이외의 부분도 포함해서 긴 시간 공을 들여야 자기를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의 수술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열몇 시간이면 끝이다. 게다가 수술 전 토론과 수술 후 예후가 아무리 복잡해도, 수술 과정은 매우 단순하고 직접적이다. 수술을 끝낼 수 있는지, 못 끝내는지, 잘하는지 못하는지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편이다.

이런 상황이라 능연의 수술 실력이 일정 수준에 이른 지금, 곽종군과 좌자전은 손발이 잘 맞았고, 딱히 홍보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능연의 성적을 감출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양학이 물었을 때 숨기지 않고 이야기한 것이고.

조금 언짢아하며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북경 의사 수술을? 그렇다면 능 선생은 업계에서도 인정받은 게 맞군요.”

나이 들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나이 들어 보이는데 또 남다르게 늙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뒷짐 진 채 입을 열었다.

“하지만 수술 능력이랑, 응급 대처 실력이 완전히 같다고 볼 순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서로 충돌하는 건 아니죠.”

나이 들어 보이면서 숙성도가 다른 또 다른 중년 남자도 손을 비비며 낮게 평가했다.

“이건 충돌하느냐 마느냐 문제가 아닙니다.”

양학은 중년 남자들이 나이 든 척하는 걸 도저히 못 봐주겠다는 생각에 대화에 끼어들었다. 곧 은퇴를 앞뒀지만, 능연에게 호되게 두들겨 맞았지만, 이들이 능연을 함부로 평가하는 건 들어줄 수가 없었다.

“아, 그럼 말씀 좀 해주시죠.”

위생국에서 나온 중년 남자는 양학 같은 부류의 의사를 잘 알고 있었고, 빙긋이 웃으며 오히려 그를 이용하며 물었다. 양학은 좌자전을 힐끔 바라보고는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능 선생은 나이가 조금 어려서 그렇지, 수술 능력은, 사실 이 수술실에 서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복합 수술실은 수술실의 항공모함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이런 곳을 지휘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면, 그게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군인 배경이 있는 중년 사내들은 순간 얼떨떨해졌다.

“흠. 일리 있군요.”

나이 들어 보이면서 숙성도가 다른 중년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창서성에 하나뿐인 복합 수술실 아닙니까.”

양학은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

“아까 그쪽이 말한 응급 대처 능력? 응급에 필요한 대처 능력이 뭐겠습니까. 전체 진료과 시스템을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임상적 사고도 남달라야 하고요. 가장 중요한 건 생명을 유지시키는 임상 기술이죠……. 내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간 절제도 저렇게 뛰어난 능 선생인데, 응급 대처 능력이 어떻겠습니까? 안 그래요? 내가 능연보다 강하다고 나올 수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있긴 합니까? 적어도 창서성 내에는 없을걸요.”

양학의 말에 다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구석에 숨어 있는 장천공은 묘한 눈빛으로 자기 주임을 바라봤다.

역시, 사람은 익숙한 곳을 벗어나면 태도가 현실적이 되는군.

수술실에선 지금 한창 고층 추락 다발성 환자 수술이 진행 중이었다.

대량 출혈을 잡을 수 있다는 능연의 확답을 받은 후, 정형외과에서 겨우 환자를 ICU에서 수술실로 내보냈다. 그것도 능연이 주도하는 복합 수술실로.

매우 미묘한 상황이었다. 이론적으로 다발성 환자는 정형외과 수술실, 혹은 일반외과 수술실, 또 혹은 신경외과 수술실 어디든 수술 진행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수술하는 동안 여러 수술실을 로테이션하는 일도 있지만, 최종적으로 응급센터 복합 수술실에서 수술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능연이었다.

단순히 누가 중요하냐는 건 초등학생의 사고방식이다. 다발성 창상은 정형외과에서 처리해야 하고, 더 심각하고 복잡한 증상은 신경외과의 몫, 외상은 일반외과의 범위라서 능연이 나서야 할 부분은 사실 매우 적다. 게다가 확률 문제라서, 운만 좋으면 능연이 아예 나설 필요 없이 수술을 끝낼 수도 있다.

그러니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누구냐는 걸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한 방향이다. 이런 환자는 운화병원 정형외과나, 성립 정형외과나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신경외과에서 맡을 건지 일반외과에서 맡을 건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수술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진정으로 결정할 수 있는 건 결국 능연의 능력이다.

능연이 환자의 생명 바이탈을 유지해 줄 수 있다고 하니, 정형외과 등 다른 진료과 의사들도 수술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대량 출혈로 곧 죽을 환자, 언제든 대량 출혈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는 의사들이 확률만으로 덤벼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법정에 설 용기가 있는지 생각해야 할 문제다.

어찌 됐든 이런 상태이다 보니, 능연이 수술실에 있긴 해도 할 일은 별로 없었다. 물론 본인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게다가 다른 대빵들처럼 직급이 높다고 아랫사람이 하는 일을 하찮아하지도 않았다. 능연은 여전히 일은 직접 하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어시하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집도의가 유난히 긴장해서 그렇지.

“됐습니다.”

또 한 번 지혈을 마친 능연이 다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고마워.”

정형외과 호 주임은 능연과 잘 아는 편이라서 수술 중에 출혈이 발생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능연이 해결하자 자연스럽게 집도의 자리로 돌아갔다.

능연이 좌자전의 어깨관절 수술을 지도하느라 호 주임의 영역을 침범했고, 해당 영역에서 호 주임을 묵사발을 만들었기에 호 주임은 몇 개월 전엔 능연과 참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졌다고 꼭 사람에게 완패한 건 아니듯이, 호 주임은 적어도 이 큰 전쟁을 거친 후 능연과의 관계가 어나더 레벨에 진입했다고 여겼다.

꼭 영어로 해야만 했다. 중국어로 했다가는 다른 관계로 여겨질 수 있으니까.

어찌 됐든, 호 주임은 요즘 능연과 협력하려는 경향과 의지가 생겼다. 병원을 드넓은 초원에 비유해 본다면, 어깨관절 하나만 사자에게 넘기기만 하면 느긋하게 풀을 뜯을 수 있는 영양이 있다고 쳐보자. 그 영양이 어깨를 기꺼이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사지 멀쩡한 영양이라면 조금은 고려하겠지만, 이미 어깨를 잃은 영양은 거리낄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호 주임은 대략 그런 상태였다. 그는 지금 운화병원 어깨관절 영역에서 이미 탑이 아니다. 그렇다면 응급센터 능 치료팀과 협력해서 새로운 영역을 여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 호 주임이 유일하게 걱정해야 할 것은 오히려 자신의 기술이 부족해서 능연이 받아주지 않을까였다.

본인 전문인 어깨관절 수술만 해야 하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형외과 부분은 다 거기서 거기였고, 어깨관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의사는 척추도 자신 있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능연이 함께 있으니 오히려 지금 이 기회가 소중하기까지 했다.

자고로 명의는 미인과 같이 박명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이가 들었는데도 누군가 새로운 자세를 알려 주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그것도 명의와 미인만이 깨달을 수 있는 이치다.

“잠시 멈추고 신경을 보호해 주세요.”

능연이 내린 명령에 모든 이가 동작을 멈췄다. 호 주임 역시 곧바로 손을 들고는 뒤이어 맞은편 일반외과 부주임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 모두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웃어 보이고는 곧바로 얼굴을 돌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뭘 하는 건지도 모를 작업을 하며 손을 움직여댔다. 익숙한 두 사내 사이에 낯선 이가 끼어들어 3P할 때처럼.

창문 너머 중년 남자들도 모두 고개를 끄떡끄떡했다.

“관리 능력이 뛰어나군.”

“명령도 깔끔하고, 적게 말하고 효율적이네요.”

“응급의학과답네요.”

중년 남자들은 누가 있는데도 안에 있는 능연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평가했고, 양학은 저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왔다.

“하실 말씀 있으면 그냥 하십시오.”

나이 들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양학을 되돌아봤다. 곧 퇴직하거나 이미 퇴직한 이런 노인네를 강경하게 대할 수 없음을 이 남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양학의 평가를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적어도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줄 수 있으니까.

“당신들, 모두 의료인 아니죠?”

양학이 바로 결론을 냈다. 중년 남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자 양학은 더 마음 편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아까 내린 평가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이 항공모함 꽤 안정적이군, 항공모함 정리를 참 잘했군, 이런 말과 비슷한 겁니다.”

“하하하.”

중년 남자들은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이 국장이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그쪽은…….”

“태무 센트럴 병원 GS 주임 양학입니다.”

양학은 감출 것도 없이 신분을 밝혔고, 사람들은 다소 의외라는 듯 ‘아’ 소리를 냈다. 의사라는 직위는, 특히 유명 병원 상급 의사일수록 일정 수준의 사회적 인정을 받는 법이었다.

“양 주임님, 학회 때문에 오셨습니까?”

이 국장이 다시 물었다.

“그런 셈이지요.”

양학은 대답하고는 다시 헛기침하고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능 선생하고 협력할 일이 있어서 왔지요. 좀 배워 가려고.”

“하하하. 능 선생과 협력하다니, 좋군요.”

이 국장이 가리키는 바가 있는 듯 말했다.

“그냥 협력하면 되지, 뭐가 성에 차지 않아서 그리 고르십니까.”

양학은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뭘 그렇게 고르는지 모르겠지만, 당신들이 고른다고, 상대가 응하긴 할 건지는 확인했습니까?”

중년 남자들이 모두 이 국장을 바라봤다.

“어……. 그게…….”

원래 꽤 자신 있던 이 국장도 갑자기 뜨끔해졌다. 양학은 껄껄 웃으며 수술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은 우르르 관찰실을 나가서 각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