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기에서 헬기로 갈아타고 다시 병실로 가기까지, 능연은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봤다.
“4시간 37분. 너무 느려요.”
손뼉 치고 격려하며 수술 준비하던 의사들이 심각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빡빡하게 잡을 거 있어? 상황 보면서 수술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마연린이 나지막이 꿍얼거렸다. 여원은 껄껄 웃으며 받침대를 옮겼다. 오늘 수술에 참여할 자격은 없고, 조금 더 높은 곳에서 현장 수술을 보기 위해서 옮기는 거라 마음이 홀가분했다.
“멀리서 이송한 환자인데, 능 선생이 느슨하게 갈 리가 있냐?”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곽종군이 앞장서서 들어왔다.
“능 선생은 말수가 적으니까 자네들이 적극적으로 해야지. 수많은 인원, 수많은 노력과 공을 들여서 멀리서 이송된 환자다. 그렇게 벌어온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팔채향으로 보내 버릴 거다. 알아들었나?”
곽종군 말은 매우 가차 없었고, 눈빛은 더더욱 형형하게 그들을 압박했다.
“알아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고분고분 대답했다. 곽종군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능 팀의 작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구석으로 가서 섰다.
능연은 평소대로 구급치료를 했다. 비행기에서 이미 한 작업이지만, 병원에 도착했으니 요구하는 목표치가 당연히 달랐다.
“MEWS(조기 판단 평가표) 수치는 2, 비교적 안정적이야.”
도 주임도 현장에 도착했고, 능동적으로 능연에게 보고했다. 뜻밖의 장면이긴 해도 어찌 생각하면 자연스러웠다. 주임 의사인 도 주임은 응급의학과에서 권위가 높지 않았다. 특히 은퇴 시침이 카운트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도 주임은 보살계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도 주임은 응급의학과에서 가장 경력 있고 가장 나이가 많은 의사였다. 보살계인 건 보살계이고, 자유로운 일 처리도 함께 보장되었다. 곽 주임 밑에서 일 처리해주는 것 말고는 허리를 숙이고 어시할 일이 없었다. 특히 응급실에서 남 어시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따로 팀을 이끌든, 바닥에 누워서 쉬든, 아무도 터치하지 않았다.
오늘 이 상황도 리허설을 끝낸 것처럼 자연스럽게 도 주임이 참여했다. 정상적으로 들어온 응급환자 대하는 것과 별 차이 없었는데, 다만 능연에게 보고하는 모습만이 조금 이상할 뿐이었다.
“OS도 들어오라고 하세요.”
능연은 예정된 계획대로 오더했고, 사람들도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운송기가 도착하기 전에 모두 환자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미리 회의도 했고, 다른 진료과 의사도 콜했다. 그러나 도착한 후, 검사 전에 환자의 상황이 변할 가능성도 있다. 변화가 필연적이라도 해도 좋았다. 문제의 관건은 증상 변화에 어떤 대처를 하느냐, 이미 협의한 결과를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으냐였다.
대폭 수정할 필요가 없는 것만 해도 의학적 각도에선 이미 순조로운 시작이었다.
능연은 곧이어 수술 가운을 입고 환자 개복 검사를 시작했다. X-ray, CT 혹은 MRI 같은 영상 검사는 이미 여러 번 진행했다. 그러나 그런 정보는 외과 의사가 배를 열고 직접 들여다보며 얻는 정보만큼 정확하고 완벽하진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이미 수술을 진행한 환자였고, 지금 이송된 환자들은 모두 수술 효과가 그다지 좋지 않은 환자였다. 좋지 않을뿐더러, 수술 후 심각한 후유증도 예상되었다.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병원에서 하는 수술도 재수술, 3차 수술이 흔하다. 복잡한 수술은 시작부터 재수술을 여러 번 준비한다. 그러나 수술 후 심각한 후유증은 재수술, 3차 수술과 비슷한 정도로 완치가 힘들고, 사망할 확률도 매우 높다.
“복수가 차 있고, 감염 문제도 완전히 통제되지 않았습니다. 관절 복위는 그대로 괜찮은 편이고, 장 쪽은……. 음, 기본적으로 장경색이네요. 도 주임님, 절개하시겠어요?”
능연은 첫 번째 환자의 검사를 마친 후 직접 수술하지 않고 물었다. 장 수술은 그의 전공이 아니었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임무는 환자 한 사람 처리하는 게 아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판단에 따라 환자의 증상에 필요한 진단을 우선 내리면 그만이었다.
장경색 환자를 도 주임 팀에게 넘긴 능연은 두개골 파손 환자를 불러 검사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신경과에 넘기세요.”
진작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경과 의사가 신이 나서 들어왔다. 2번 환자를 고칠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은 없지만, 내과에서 사람 죽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임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자극이 매우 강렬하다는 점이었다.
의료 이송으로 들어온 환자를 펼쳐놓고 약 쓰고 치료한다는 것은 그 뒤에 따라올 기회와 명예는 일단 접어두고, 치료 방식 자체만 따져도 의사들이 가장 좋아했다.
세 번째 외상 환자를 일반외과에 넘겨준 능연은 네 번째 환자를 직접 처리했다. 참관실 밖에서도 이때 목소리가 들렸다.
“능 선생, 이 환자는 반드시 정신 차리게 해야 합니다.”
능연은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앞의 환자를 바라봤다. 그로서는 별로 복잡한 환자가 아니었지만, 반드시 정신 차리게 하는 건 장담할 수 없었다.
참관실 밖엔 온갖 사람이 오고 갔다. 수술 보러 온 사람, 구경하러 온 사람, 사람 보러 온 사람. 예전과 달리 오늘은 외과 의사들이 많이 와 있었다.
곽종군은 껄껄 웃으며 수술실에서 나와서 참관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다른 진료과 의사들이 오고 가는 걸 지켜봤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전에는 능연의 수술을 보러 오는 사람이 참으로 다양했다. 외부 병원 의료진이 별 중요한 일이 아닌데도 오는 때도 있었고, 심지어 외과 의사가 아닌데도 능연을 보러 왔었다. 곽종군이 나서서 몇 번 정리해야만 참관실이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수적으로 봐도 외부에서 온 의료진이 본원 의사보다 많았고, 운화병원 내부에서도 재미있는 화두였다.
그런데 오늘은 본원 외과 의사 위주였다. 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들어올 수 있는 외부 사람의 수가 줄어들었다. 곽종군이 설립한 참관실 규칙에 따르면 그들은 긴 시간 참관할 수 있었고, 참관자의 비율에 지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외과 의사들이 이렇게 많이 참여한 이유는, 당연히 제 이득을 위해 세상이 떠들썩하게 찾아온 것이다.
예전에는 능연이 아무리 유명세가 크고 출장 수술로 호화롭게 날아다닌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다른 진료과 의사들은 지나치게 관심도 주지 않았고, 질투만 하지 않아도 다행이었다. 작은 진료과 의사나 조금 걱정할까, 그나마도 작은 진료과의 평범한 의사는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료 이송은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외부 환자를 본원으로 끌어들인다. 게다가 어느 특정 진료과 환자를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다수 진료과에서 처리해야 할 종합적인 환자인 때가 대부분이다.
신경내과 같은 내과에서 예전에 어디 감히 능연의 손에서 이렇게 중요한 환자를 얻을 꿈이라도 꿨을까. 그런데 이런 일이 정말로 발생하고 말았다.
“의료 이송의 위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막강하구나.”
곽종군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안정됐습니다. 마취 풀리면 서서히 깨어날 겁니다.”
능연이 ICU 앞에 서서 진 주임 일행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ICU 주임이 즉시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랑했다.
“우리 병원의 생명 유지 시스템은 매우 막강합니다. 우리 과 기술 수준도 일찍이 전국 일류가 되었고요.”
ICU 앞에 몰려 있는 많은 사람은 초조하긴 했지만, ICU 주임이 허풍 떠는 걸 느긋하게 듣고 있었다. 환자의 상황이 정말로 좋았다. 그게 가장 중요하고, 그런 바탕이 있으니 다들 싱글벙글했다. 주식시장에서 공매도 없이 주가가 상승하는 때에 주주들의 기분이 괜찮은 것과 같은 이치였다. 평화롭고 낙관적으로 세계와 인류를 바라볼 수 있고, 주변 사람이 실수 혹은 잘못을 해도 쉽게 용서할 수 있다.
현재 응급센터엔 응급센터 소유의 EICU가 있지만,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의료 이송으로 들어온 환자는 수술 후에 ICU로 보냈다.
곽종군 역시 동의했다. EICU에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환자의 증상이 심각해서이기도 하고, 책임 문제도 있어서였다. 사망 토론에서 발언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진료과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의료 이송 환자 치료에 참여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어느 면으로 봐도, 곽종군도 응급의학과도 모두가 노력한 결과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적어도 책임과 부담을 균일하게 짊어져야 했다.
ICU도 적절하게 대처하기도 했다. 최강 전력을 아낌없이 내보냈고, 환자마다 주임이 직접 팔로우하며 지켜봤고, 각 수치가 차츰 좋아지는 걸 볼 수 있었다.
ICU의 동료들도 의료 이송의 장점과 힘을 확실히 느꼈고, 그래서 ICU 주임들은 아무리 응급센터에서 자기 소유 EICU를 세운 것이 못마땅해도 참아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느니. 손해 보는 것이 이득 보는 것이다. 남자는 져주는 게 이기는 거다……. 옛사람들도 고개를 숙이는 장점을 구구절절 명언으로 읊었다.
진 주임을 비롯한 사람들도 명백히 안도한 모습으로 농담하듯 입을 열었다.
“능 선생의 방안, 정말로 뛰어나군. 조금 비싸서 그렇지만, 그래도 막 중요한 전쟁을 마친 셈인데, 이제 총탄 좀 절약하고 잠시 쉬어도 되는 거 아닐까.”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한 능연은 자연스럽게 좌자전을 바라봤다. 그러자 좌자전은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 주임님, 그 말씀은, 지출을 줄이고 자금을 축소하고 싶다는 겁니까? 지금 우리가 진행 중인 의료 이송 자금은 사실 그리 큰 것도 아닌데요.”
“축소까지는 아니고요…….”
진 주임이 머쓱한 듯 웃으며 인제 와서 딴소리하는 게 아님을 재빨리 어필하며 말을 이었다.
“아낄 수 있는 건 아끼자는 말입니다. 기본적인 프레임은 당연히 변하지 않습니다. 변해서도 안 되고요. 안 그렇습니까?”
“부분 임무를 떼어내서 지방으로 보내면 됩니다.”
능연이 의외의 대답을 놓자, 진 주임이 멈칫했다.
“임무를 떼어내요? 그래도 됩니까?”
“됩니다. 헬기 수송력을 증가하고, 민간 헬기 구조를 늘리면 비행기 코스트를 줄일 수 있어요. 아니면 아예 비행기를 외주로 돌려서 수송력을 보장하는 것으로 코스트를 낮추거나요. 의사도 적절하게 줄이고, 기초 훈련된 구조 요원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방 병원 규모도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최대한 내지로 후송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전방 병원에 중장비는 필요 없습니다. 하이 스텐다드 수술실 같은 건 필수품이 아니라는 말이죠.”
진 주임은 혀를 차며 머쓱하게 웃었다. 큰 인물 밑에서 오래 생활한 만큼 독식에 익숙해진 그가 이제 막 세워진 의료 이송 시스템이 갈기갈기 찢기는 걸 바랄 리가 없었다.
“헬기 문제는……. 전방에서 쓰는 거라 민간 헬기는 절대로 안 됩니다.”
진 주임이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좌자전이 나섰다.
“민간 헬기를 몇 대 추가해서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사용해도 코스트가 꽤 절감될 겁니다.”
좌자전은 능연 밑에서 한동안 배운 데다가 원래 원가 문제에 예민했고, 관련 문제는 이미 능연에게 확인한 후라 머릿속으로 생각해둔 계획을 바로 꺼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진 주임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코스트가 더 증가할 뿐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지방 외딴곳에 자주 가는 것이라서, 헬기를 사도 별 소용 없습니다”
“운송 후반에 쓰면 됩니다. 예를 들어 운화 쪽 헬기 수송력을 끌어올리고, 조종사를 같이 쓰고 부품 관리, 보수, 지상 근무 같은 것도 같이 쓰면 됩니다. 게다가 운화 헬기는 돈도 벌어 올 수 있습니다.”
좌자전이 솔직하게 건의하는 말에도 진 주임은 크게 고개를 저었다.
“혼란스럽습니다. 안 돼요, 안 돼. 게다가 전방엔 군용 헬기를 써야 해서 후방과 같이 쓸 수도 없어요.”
“비행기가 차지하는 부분이 가장 크니까, 그쪽을 줄일 수 있으면……. 그래도 꽤 크게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좌자전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단어를 골랐다.
“비행기 운송은 운송기도 조종사도 다 구했으니 바꿀 필요 없습니다.”
“그럼 국가 기업을 참여시키는 건?”
“안 됩니다. 군부 정책이 따로 있어요.”
“야전 병원…….”
“안 됩니다…….”
“의료진…….”
“안 됩니다!”
좌자전은 이야기하다 하다 드디어 알 것 같아서 목소리를 줄이며 물었다.
“그러니까, 지출은 줄여야 하는데,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줄이면 좋겠다는 말씀인가요?”
진 주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코스트를 낮추고 효과를 끌어올리자는 말이죠.”
진 주임 뒤에 서 있던 중년이 헛기침하며 하는 말에 좌자전은 크게 깨달은 척하며 화제를 바꿨다.
“그러고 보니, 환자가 깨어나면 이번 임무도 끝난 셈이네요.”
“그렇죠, 그렇죠. 감사합니다.”
진 주임은 모두와 악수하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이번 임무는 다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이제 뉴스가 발표될 겁니다. 다들 뉴스 보세요.”
“네네, 뉴스. 뉴스 봐야죠.”
다들 유난히 기쁜 모습이었다. 인간은 명예롭다는 느낌을 매우 좋아하는 부류였다.
그와 동시에, 현장에 섞여 있던 제약회사 직원들이 의료 이송 스토리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요즘 자본가들은 이렇게 큰 규모의 프로젝트에 큰 관심이 없다.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이런 돈은 벌 생각도 없어서였다. 제약회사 직원들도 자기 회사는 이런 일에 참여하지 않을 거라 여기고 그저 수다거리로 여겼다.
소식이 업계에서 돌고 돌고, 곧 널리 퍼져 나갔다. 자기 회사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과 비교하면 이렇게 큰 자금이 들어가고 또 실제 응용도 되는 것 같은 이야기는 종종 은밀한 방식으로 퍼지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이야기를 퍼트릴 뿐이었고, 그냥 지켜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러나 마음에 담아두는 사람도 어딘가엔 있기 마련이었다.
주말.
좌자전은 힘겹게 하루를 비워서 이제 막 연인관계로 확정된 여자친구와 함께 쇼핑하러 갔다. 핸드폰이 하나도 갑작스럽지 않게 울리자, 좌자전은 액정을 힐끔 보고는 뮤트했다. 핸드폰이 다시 울려도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핸드폰이 세 번째 울리자, 좌자전은 고개를 저었다.
“받아야겠네요.”
“괜찮아요. 받아요.”
막 관계가 확정된 여자친구는 수간호사의 절친이라 좌자전의 업무 상태를 잘 알고 있어서 표정도 평온한 편이었다.
“박 원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능 선생 요즘 출장 수술이 꽉 차서 시간 없습니다.”
군안 진료소 박 원장의 전화를 받은 좌자전은 대뜸 그것부터 말했다.
- 출장 수술 때문이 아니라, 좌 선생에게 볼일이 있습니다.
박 원장의 평온한 목소리에 좌자전이 얼떨떨해졌다.
“절 왜요?”
- 의료 이송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투자자가 있어요. 그러니 좌 선생과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어요?
박 원장은 껄껄 웃고는 바로 덧붙였다.
- 자문비 드립니다.
“돈은 됐으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좌자전은 맘에 없는 말을 하고는 곁에 있는 여자친구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중저가 브랜드로 치장한 여자친구는 온화하게 웃으면서 앵두를 입에 넣어 주고는 대화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주변을 둘러봤다.
물론 좌자전의 경제 상황에 매우 관심 많은 아가씨는 귀를 쫑긋 세운 상태였다.
전화 저편에서 박 원장이 껄껄 웃었다.
- 푼돈은 눈에 차지 않는 모양이네요. 그래도 꼭 좀 도와주십시오.
좌자전은 넘어가지 않고 대답했다.
“단순히 이야기야 뭐, 괜찮습니다. 시간 날 때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 돈 가지고 노는 사람이 그냥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까.
박 원장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 모두에게 다 좋은 일입니다. 능 선생에게도 꽤 좋은 일이에요.
“음, 어떻게요?”
좌자전도 조금 흥미가 생겼다. 롤렉스 서브마리너 그린을 얻은 후, 좌자전은 돈에 관한 관심이 크게 줄었다. 금전 개념이 크게 달라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 사업에 대한 욕심은 갈수록 커졌다. 그리고 그의 사업은 당연히 능연과 관련된 일이었다.
박 원장 역시 이번에 좌자전에 대한 인식이 다시 업데이트되었고, 내심 혀를 내두르며 말을 이었다.
- 금융권 자금으로 의료 이송에 필요한 자산을 조달하는 거죠. 비행기, 헬기, 그리고 의료 설비, 다 큰돈 드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큰 의료기관이라도 해도 금융권 없이 자기 자금만으로 이런 사업하긴 힘들죠. 그런데 능 선생은 의료 이송 서비스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데, 구석에만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좌자전은 동의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다.
“능 선생이 관심이 생긴 건 맞죠. 하지만 프로젝트는 이미 끝났습니다.”
- 제 이야기 들어보세요. 중국 의료 최강 도시가 왜 결국은 북경, 상해인지 아십니까? 미국은 클리브랜드, 독일은 함부르크인데 말입니다.
박 원장은 미리 준비했던 대사를 날카로운 말투로 슬쩍 드러냈다. 그런 문제를 생각도 한 적 없었던 좌자전은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그래도 일본 의료 중심은 결국 도쿄잖습니까.”
- 그렇죠. 같은 이치인 겁니다.
박 원장은 슬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중국과 일본, 모두 의료 이송이 약해서입니다. 크게 발전하지 못해서예요. 그래서 우리 의료 플로우는 환자가 이동하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수도, 대도시로 흐릅니다. 미국, 독일 같은 나라는 의료 이송이 매우 발달해서 환자는 대도시에서 작은 도시로도 갑니다. 병원도 그로 인해 비용을 많이 절감할 수 있죠.”
좌자전은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화제가 너무 방대한데요.”
- 제 말은, 국내 의료 이송이 발전하지 않는 한, 능 선생 같은 의사는 언젠간, 결국, 불가피하게 북경이나 상해로 갈 거란 말입니다. 그래야 가장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테니까요.
박 원장은 매우 진지하게 말하면서 마지막엔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 능 선생이 북경에 가면, 운화에서처럼 모든 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아요.
마음대로 되지 않기만 할까. 좌자전은 순간 무수한 불리한 조건을 떠올렸다. 박사 학위를 받은 의사, 예쁘게 생긴 여자, 말도 잘하고 실력도 있는 남자, 무수한 인생 경험을 축적한 중년…….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에도 자기보다 더 비참하고 열심히 하는 남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강렬한 부담이 훅 느껴졌다.
게다가 북경 병원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가. 응급센터 레이아웃도 운화병원 응급센터만큼 좋으리란 법도 없다. 2천만 인구의 도시인 운화의 운화병원 응급센터의 라이벌은 오로지 성립 병원뿐이었다. 육군병원도 어느 정도는 라이벌이라고 쳐도 북경 삼갑병원의 라이벌은 얼마나 많은가.
북경의 커버 범위가 조금 더 넓다고 해도, 북경 병원의 환자 리소스는 너무 흩어져 있었다. 능연이 지금처럼 다른 진료과를 압박하는 건 더더욱 불…… 아니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지만, 난도가 높을 것이다.
“원장님이 소개해주시려는 친구분들은 의료 이송 사업을 할 생각인 겁니까?”
좌자전이 나지막이 물었다.
- 그건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 의지는 있어요. 그러니까 날 찾아왔고, 좌 선생님을 찾은 거죠. 어때요? 한 번 만날까요?
“의료 이송에 얽힌 자금은 꽤 막대합니다.”
- 그러니까요. 하지만 투자자 중에 금융리스업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기만 하면 몇백억도 문제가 아닙니다.
박 원장은 살짝 소식을 털어놓는 김에 허풍도 조금 떨었다. 좌자전은 일단 믿기로 하고 ‘아’ 하고 대답했다.
병원과 금융리스는 빈번히 교류하는 사이고, 비행기는 더더욱 금융리스업의 전통적인 영역이었다. 보통은 필요한 측에서 니즈를 제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비행기가 필요하다거나, 모모 의료 설비가 필요하다고 하면 금융리스업에서 구매한 후에 적정한 가격으로 상대에게 리스해준다.
사용자 측의 자금 압박을 줄이고 빠른 확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항공사는 거의 금융리스업에 기대고 있고, 비행기를 새로 구매할 때도 거의 금융리스업의 자금으로 산다.
병원에서 금융리스업의 자금을 쓰는 일도 점점 빈번해진다. 현재 MRI 기계가 2천, 3천만이고, CT는 32bit에서 64, 128까지, 성능 가격이 컴퓨터 부품값만큼 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자금 흐름이 좋은 병원이라도 막상 설비를 사려고 몇천만이 필요할 때는 이런저런 문제로 골치를 썩는다. 게다가 설비는 감가상각 문제도 있으니 차라리 리스하는 게 낫다. 특히 정상급 삼갑병원 입장에서는 금융리스를 통해서 더 최고의 설비를 사용할 수 있고,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시대에서 도태되는 설비 원가로 속 쓰릴 일도 없다.
의료 이송을 정말로 도입하려면 자금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클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좌자전은 별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별일 없죠?”
여자친구는 달달하게 웃으며 다시 앵두를 입에 넣어줬다.
“응응. 별일 아니에요. 소식이 얼마나 밝은지, 운화 구석에 일어난 일도 다 알고 있네요. 아, 미안해요. 일이 너무 많아서 쉬는 날에도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네요.”
“괜찮아요. 이해해요.”
여자친구는 이해심 많은 모습을 보이고는 다시 말했다.
“그런데 아까 들으니까 금융 이야기하던데, 금융 쪽도 잘 알아요?”
“잘 아는 건 아니고요. 무슨 일을 하는지 정도만 알죠. 의료 이송이라는 건 아무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거든요. 기술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정책도 지지해줘야 하죠. 막 프로젝트를 끝냈는데, 바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니, 대단하네요.”
“복잡한 것 같네요…….”
여자친구의 말에 좌자전은 뿌듯한 듯 가슴을 두드렸다.
“복잡할 것 없어요. 남자잖아요. 일이 없을까 봐 걱정이지, 일이 어려울까 걱정은 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