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64화 (843/877)

“왕 주임님.”

“유 선생님…….”

“나 간호사, 오랜만!”

운화병원 응급센터에 나타난 박 원장은 자기 집 뒤뜰에 있는 듯이 익숙하게 여기저기 인사했다. 사실 운화병원에 온 횟수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그러나 다른 병원에 갈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병원에 가든 최대한 존재감을 뽐내려 노력했다.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최대한 의사와 간호사와 안면을 많이 터서 앞으로 이어질 일에 서로 상부상조한다.

꽤 훤칠하게 생겼고 또 성공한 중년 남자처럼 꾸미는 박 원장은 꽤 호감을 사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알은척하며 걸어가다가 곧 좌자전을 발견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박 원장과 비교하면 좌자전은 조금 추레해 보였다. 하얀 가운도 더럽혀져 있었고, 옷자락엔 핏자국인지 똥인지 오줌인지 모를 얼룩이 누렇게 떠 있었다. 밤을 새우고 수술이라도 한 듯이 얼굴엔 지쳤다고 쓰여 있었고, 늙고 쭈글쭈글한 피부는 더 늙고 거칠어진 것이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나이 든 환자보다 더 엉망인 모습이었다.

“좌 선생님, 오랜만에 만났더니, 예술가 느낌이 나는걸요.”

박 원장은 웃음을 참으며 다가가서 인사했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역시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수월했다.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이 예술가는 무슨요.”

좌자전은 쓴웃음 짓고는 박 원장을 바라봤다.

“며칠 뒤에나 올 줄 알았더니, 이렇게 급해요?”

“금융 쪽 사람은 시간 개념이 다르잖아요. 어디 가서 간단하게 밥이라도 먹을까요?”

박 원장이 투덜거리고는 묻는 말에 좌자전이 어깨를 으쓱였다.

“시간 없어요. 오늘 엉망진창으로 바쁘네요. 정말로 나갈 시간 없어요.”

“그럼 응급실에서 이야기하죠.”

“정말로 그렇게 급해요?”

박 원장이 단호하게 하는 말에 좌자전이 물었다. 사람 꼴로 안 보일 정도로 지쳐 있어도 머리는 바로 굴러갔다.

“선생님이야 돈에 연연하지 않겠지만, 나 같은 자본가의 개는 물주를 잘 모셔야죠. 자본가가 없으면 개도 소용없으니까요.”

자기보다 키가 크고, 자기보다 잘생기고, 자기보다 돈도 많이 벌고, 자기보다 자유롭고, 자기보다 가정도 화목하고, 어쩌면 나이도 자기보다 더 어린 박 원장이 개라고 자칭하는 모습에 좌전은 기분이 훨씬 좋아져서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돈줄도 인권은 지켜줘야죠. 그럽시다. 가서 데리고 오세요. 그 김에 저도 뭐 좀 먹죠.”

박 원장은 껄껄 웃고는 금세 세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다. 맨 앞에 마흔 후반 쉰 초반으로 보이는 스마트한 느낌의 잘생긴 축에 드는 남자, 그 뒤로 평범한 느끼한 중년, 그리고 옅은 금발 아메리칸 스타일 미녀가 서 있었다.

좌자전은 순간 멈칫하고는 아메리칸 스타일 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박 원장을 향해 작고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인계 쓸 생각은 하지 말아요.”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몰라서요? 좌 선생님은 공사가 확실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제가 어찌 감히 미인계를…….”

“능 선생은 더 안 됩니다!”

좌자전이 진지하게 하는 말에 박 원장도 진지해졌다.

“그런 거 아닙니다. 농담은 이쯤하고. 한나 씨는 스탠다드 차터 은행에서 오래 일한 분으로 유명한 투자자입니다. 이번 프로젝트 중요 파트너이기도 하니까, 밉보이면 안 됩니다.”

“그렇게 대단해요?”

좌자전은 상대의 나이가 가늠되지 않았다. 젊진 않을 텐데,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박 원장도 군소리 없이 두어 마디 만에 서로를 소개하고는 입을 열었다.

“좌 선생님, 두 분은 중국 의료 이송 현재 상황을 알고 싶어 합니다. 말씀해주실 수 있는 건 최대한 말씀해주시고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고요.”

“사실 제가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좌자전은 그제야 세 사람 중에 평범 느끼남은 통역이고, 나머지 둘이야말로 자본가의 개를 부리는 물주임을 깨달았다.

“듣자 하니, 능 선생님이 영미 방식으로 진행 중이라고요?”

한나가 웃으며 영어로 질문하자, 평범 느끼남이 통역했다. 이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 좌자전이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중요합니까?”

“물론이죠. 의사를 현장으로 보내는 유럽 방식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능 선생이 채용한 방식이 우리가 보기에도 시장 니즈에 부합합니다.”

엘리트 남이 웃으며 하는 말에 좌자전이 눈살을 찌푸렸다.

“능 선생이 채택한 방식을 알고 계십니까?”

“어느 정도는요.”

한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디테일한 부분을 묻기 시작했다. 좌자전은 최대한 신중하게 대답할 수 있는 건 가볍게 대답해주고 안 되는 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도 몇 분쯤 지나자 좌자전은 박 원장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이만하면 됐죠?”

“이제 막 시작한걸요.”

“내가 어떻게 됐지. 됐습니다, 그만합시다. 이런 이야기를 뭐 하러.”

박 원장이 머쓱한 듯 웃으며 하는 말에 좌자전은 고개를 저으며 바로 자리를 뜨려 했다.

“상황에 따라 전용기를 운화에 배치할 수도 있어요.”

한나의 한마디에 좌자전이 걸음을 멈췄다.

“무슨 뜻입니까?”

“전문 의료팀, 조종사를 둔 전용기를 준비해서 임무가 생기면 지정 장소에 날아가서 지정 인물, 물건을 실어 오는 거죠. 이론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오는 환자가 이런 시스템으로 운화병원으로 들어오게 될 겁니다.”

한나는 금발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이게 통한다면, 운화병원이 매우 떠들썩해지겠군요.”

“그래서, 그쪽이 얻는 건 뭡니까?”

좌자전이 마음이 동해서 묻는 말에 한나가 크게 웃었다.

“일단 그건 신경 쓰지 마시고요. 운화 항로가 순조롭게 운행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도 됩니다.”

“우리를 시험하겠다는 겁니까?”

“물론이죠. 능 선생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좌자전이 웃으며 묻는 말에 한나는 매우 솔직하게 대답했다. 좌자전이 대답하기 전에 박 원장이 곁에서 헛기침하며 말했다.

“좌 선생님, 태국 일, 기억나죠?”

“음? 그게 왜요?”

서브마리너 그린을 차지 않은 손목을 힐끔 본 좌자전은 크게 용기가 났다.

“그때, 환자를 외국에서 이송해 왔었잖아요.”

박 원장은 상기시켜주고는 말을 이었다.

“단순히 환자를 살리는 일이 아닙니다. 이걸로 유명해지기만 하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놀게 된다고요.”

좌자전은 상상해 봤지만, 조금 주저되기도 했다.

“비행기 한 대를 여기에 두겠다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어요.”

박 원장이 못 말린다듯이 말했다.

“돈도 필요 없고요?”

“비용은 비용이고. 의료 전용기가 있다는 것부터 생각하세요. 중국을 통틀어도 전용기 있는 도시는 서너 군데뿐입니다.”

박 원장이 다시 강조했다.

“능 선생이 국제적으로 발전할 생각이 없지 않은 이상, 이게 지름길이라고요.”

“알겠습니다. 능 선생한테 이야기해 보죠.”

좌자전은 그렇게 대답하고 돌아서서 나갔다가 곽종군에게 가려고 방향을 틀었다. 좌자전이 아는 곽종군은 절대로 ‘공짜’로 생긴 비행기를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곽종군은 손해 보는 법이 없는 걸로도 유명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시면 능 선생 곧 나올 겁니다.”

좌자전이 짓는 비굴한 미소는 1/8 자본가에게, 나머지 7/8이 곽 주임을 향한 것이었다.

프라다를 걸친 한나는 주변을 오가는 의사와 환자를 살짝 눈살을 찌푸린 채 바라보며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회의실에 앉아서 모두가 관심 가지는 문제들을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그 자리에 있는 모두 ‘비행기를 가지고 왔는데도 대우가 고작 이거냐’는 그녀의 속뜻을 알아들었다. 좌자전은 이해한다는 듯 웃어 보였다.

“능 선생 성격이 좀 남다릅니다. 게다가 시간도 타이트하고요.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곽종군 역시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수술이 꽉 찼습니다. 여러분의 제안이 아니라면 능 선생은 나와서 여러분을 만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돈을 주겠다는 물주 앞에서는 곽종군도 기꺼이 성질을 죽였다. 특히 상대가 아직 다 내놓은 것이 아닐 때는. 한나 일행 역시 어쩔 수가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성질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지루하게 한참 기다린 끝에 저 앞에서 ‘능 선생.’ ‘능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눈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나의 눈빛엔 도발까지 느껴졌다. 오랜 세월 투자자로 살아온 그녀는 자기가 이미 투자받은 듯 구는 사람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어떻게 자본의 힘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더더욱 잘 알았다.

한나와 함께 온 동료들은 더더욱 거만한 눈빛이었고, 불구경 제대로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온 능연은 곽종군 일행을 발견하고는 예의 바르게 마스크를 벗어서 폐기물 통에 넣었다. 그러고는 다가가서 좌자전과 한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20분 정도 시간 됩니다.”

“고생하셨어요.”

한나는 질식 직전에 물을 마신 물고기, 발정 나서 방방 뛰다가 다리가 부러진 사슴, 소란 피우다 목을 다친 마을 과부처럼 갑자기 긴 한숨을 내쉬고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숙련되지 않은 중국어를 입에 올렸다.

“선생님이, 능 선생님, 입니까?”

“예. 접니다.”

“저는……. 저는…….”

“영어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한나가 침을 삼키며 하는 말에 능연이 느긋하게 말했다. 유학생 등 중국에 온 외국 여자아이를 많이 만났었고, 억지로 중국말을 쓰느라 힘들어할 뿐만 아니라 실수하는 걸 많이 봐왔었다. 그럴 때마다 능연은 상대가 영어를 사용하는 걸 허락해 주었다. 그래야 상대를 거절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능연은 언어 쪽도 어느 정도는 노련하게 컨트롤하고 있었다.

한나는 저절로 안도하며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미소를 쥐어짜며 영어로 입을 열었다.

“증명사진은 봤는데, 정말이지, 정말이지, 이렇게나 분위기가 다를 줄은 몰랐어요. 물론, 증명사진도 매우 멋졌답니다. 다만 실제로 보는 것과 역시 느낌이 다르군요. 평범한 연예인 스타일 남자일 줄 알았는데, 그랬는데, 선생님의 외모, 선생님의 내면 모두 매우…… 매우…… 고저스합니다!”

능연은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나의 표현, 심지어 언어 내용, 모두 능연에게 익숙했다. 그뿐만 아니라, 바로 거절할 필요는 없다는 노련한 대응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었다. 바로 거절하면 상대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끝내지 못한 느낌이 들고, 심지어 ‘내가 XXX라고 말하기만 했다면’, ‘조금 더 잘했다면 분명 날 받아줬을 텐데’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수술 과정에서 시간 절약하려고 더 직접적이고 더 폭력적인 수단을 채택하면 오히려 수술 시간이 더 길어지고 안 좋은 예후를 초래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능연은 한나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그러나 한나는 십 대, 이십 대 어린 소녀가 아니었고, 몇 마디 이야기하고는 곧 일 이야기를 떠올렸다.

물론 이제 중요한 건 일 이야기가 아니지만, 한나는 그래도 강인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능연에게 물었다.

“능 선생님, 우리가 제안한 의료 전용기에 대해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요?”

“네. 설비가 부족하고, 임무 집행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그 밖에도 기내에 있을 의료팀은 더 배우고 트레이닝 해야 합니다. 아니면 교체하거나.”

“그 요구는…….”

한나는 미소를 쥐어짜며 말을 골랐다.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비용 문제를 고려한 것이라서, 일부 설비는 점차 늘려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비 갱신은, 비행기 전체를 건드려야 할 가능성이 크고 유지보수 시간이 매우 길어집니다. 또, 비행기 임무 집행 시간과 조종사 근무 시간, 비행 크루 근무 시간, 의료팀 근무 시간은 연동되어 있어요. 적어도 초기 단계에서는 비행기 운항 시간을 늘리는 건 비용 문제도 있어서 아마도 어려울 것…….”

“설비 리스트를 드리겠습니다. 그 리스트에 있는 설비를 업그레이드해준다면, 다른 설비는 차차 바꿔도 됩니다. 비행기 운항 시간도 나중에 조율하면 되고요. 의료팀은요?”

“그건…….”

한나가 주저하자 뒤에 서 있는 투자자들이 입을 열었다.

“능 선생, 비행기는 한 회사에서 단독 관리합니다. 우리는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길 바라요. 물론 앞으로 필요한 트레이닝, 학습은 계속 시킬 예정입니다.”

“어떻게 트레이닝할 건가요?”

능연은 더 전문적인 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건…….”

대충 얼버무리려던 중년 투자자는 순간 언짢아져서 잠시 멈칫했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능 선생, 의료 비행기는 한 회사에서 단독 관리합니다. 비행기 안에 탑승할 의료팀도 상대적으로 독립성과 전문성을 유지해야지요. 트레이닝은 우리가 알아서 준비할 겁니다.”

능연은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전문성이 부족하던데…….”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다니…….”

중년 투자자가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도 전문 업체가 그런 방면을 매니징 해주고 있습니다. 능 선생 말 한마디에 팀 전체를 다 바꿀 수는 없어요. 비용 문제도 크고.”

“그럼 그 팀 구성원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본인 의견을 들어보자고요. 충분히 프로라고 생각하는지, 이송 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능연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제 전공이 심장외과 수술, 간담췌외과 수술, 단지 이식, 파열 아킬레스건 재건, 그리고 슬관절, 어깨 관절경 등등이라고 알려주세요. 환자가 의료 전용기에 오르게 되면, 그분들이 환자의 목숨을 안정시키고 증상을 안정시킬 수 있는지 말입니다.”

의료 이송의 목적은 치료고, 운화 의료기관으로 넘어온 환자는 모두 능연이 맡을 것이니 당연히 그가 가장 자신 있는 증상의 환자를 받을 것이다.

투자자들은 의료계는 잘 몰라도 심장 수술, 간 수술 같은 단어만 들어도 자신감이 조금 줄었다.

“하지만, 하지만……. 의료팀을 바꾸는 건…….”

중년 투자자는 미간을 단단히 찌푸리고 잠시 있다가 정말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 능연이 우리 팀의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요?

전화 속 의료팀 책임자 엽명지의 목소리가 확연히 커졌다. 중년 투자자는 일이 커지는 게 두렵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다니까. 내가 봐도 이건 너무 심하지. 하지만 능연은 자기가 심장외과, 간담췌 그리고 단지 어쩌고 전공이라면서, 엽 선생 팀이 트레이닝이랑 연수하지 않으면 의료 이송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대.”

- 너무 심하잖아요!

엽명지가 화가 난 듯 고함쳤다.

“그렇지? 이건 우리 모두의 체면을 짓밟는 일이라니까. 이야기 들어보니까, 아예 팀을 바꿀 생각도 있는 거 같다니까. 그래서 내가 격렬하게 반대했지.”

- 어떻게 그런 말을!

핸드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엽명지의 목소리가 8옥타브 높아졌다. 중년 투자자는 미소 지은 채 계속 부추겼다.

“우리도 능연 같은 스타일이 별로야. 너무 거만하고 건방지잖아. 어찌 됐든 의료 쪽은 엽 선생이 전문가니까, 할 말 있으면 바로 해요. 내가 모두에게 전해줄게.”

- 모두요?

“우리 투자자 몇, 그리고 관련 기관 책임자가 지금 운화에 있어. 지금 능연하고 이야기 중이거든.”

- 어……. 나도 투자자 눈 밖에 날 생각은 없는데.

“엽 선생이 눈 밖에 날 일이 뭐가 있어.”

중년 투자자는 무시하듯 웃고는 곧바로 평범한 미소로 바꾸면서 전화 받는 자세를 고쳤다.

“생각하는 대로 다 이야기해요. 내가 전해줄 테니까. 능연은 바꿀 생각까지 하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어서?”

- 너무……. 너무해.

엽명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중년 투자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말이지.”

- 너무하다고!

“알아, 알아. 엽 선생, 솔직한 생각 이야기해요. 아니면 내가 대신 나서기도 그렇잖아.”

중년 투자자가 차근차근 타이르자 엽명지는 ‘네네’하고 대답하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 그럼 능연……. 능 선생이 우릴 어떻게 트레이닝할 생각인지 좀 물어봐주세요.

“알았어. 응? 그걸 물어보라고?”

중년 투자자는 온몸이 다 뒤틀릴 것 같았다.

- 심장, 간 쪽은……. 그게 우리가 경험이 별로 없는 게 맞습니다. 특히 간 쪽은 능 선생이 그 방면으로 확실히 유명하거든요. 우리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엽명지는 이제 오히려 능연의 말에 수긍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해서, 처음에 잠시 화가 났을 뿐, 갈수록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엽명지는 외과 천재가 아니었다. 평범한 삼갑병원에서 한동안 있다가 기회가 되어서 이 회사로 스카우트 되어 비행기 이송 일을 하게 되었지만,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길고 실제로 임무 수행하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그런데도 엽명지는 실력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다.

다른 업계라면 엽명지처럼 초조해하고 걱정할 것까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료계, 특히 의료 이송 영역에서 그와 그의 팀은 진정한 생사에 맞서서 힘겨루기한다. 환자가 살아난다고 환자와 보호자가 꼭 감사하리란 법은 없지만, 죽으면 십중팔구는 그들에게 왜냐고 따질 것이다.

엽명지는 자신에게 실력 혹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지금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일해온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운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저 작업량이 적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공립 병원, 대형 병원과 일하기 시작하면 상황이 급속도로 변화할 것이다.

그들이 전에 맡았던 환자는 사실 대부분 상태가 안정적인 부자들 위주였다. 어느 지역 의료기관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북경 혹은 외국으로 이동하길 바라는 그런 부자들. 그렇다고 해도 엽명지는 보통 현지 병원의 의사와 동행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와 다른 병원 상급 의사의 실력 차이를 똑똑히 느꼈다.

단기간에 채울 수 없는 차이였다. 실력이 충분하고 능력이 충분하면, 공립 병원 의사 자리를 놓고 개인 기업에서 일하지도 않았다. 설사 회사에서 주는 월급이 꽤 높다고 해도, 그의 나이까지 버티면 공립 병원 수입도 만만치 않고, 미래와 비전을 생각하면 공립 병원 쪽이 훨씬 더 나았다.

그래서 단순히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엽명지는 굳이 버틸 이유가 없다. 본인도 응급 쪽 의사고, 능연의 명성은 진작 들었다. 하물며 학회에서 능연의 동영상을 본 적 있고, 그의 수술 빈도는 더 잘 안다. 능연 손에 잘리는 한이 있어도 줄줄이 소송은 절대 사양이었다. 특히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은 이상, 엽명지의 머릿속엔 이미 경고등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의료 이송 비용을 치를 수 있는 집안은 절대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고, 엽명지는 그런 거대한 리스크를 안고 보통보다 조금 더 높은 월급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전화 건 중년 투자자는 몇 마디 더 묻고 비슷한 대답을 들은 후로 완전히 넋이 나가서 얼떨떨하게 물었다.

“이렇게 잘려도 분하지도 않다고?”

이쯤 이야기한 만큼 엽명지는 벌써 다 내려놓았다.

- 무슨 그런 말씀을. 운화병원 응급센터는 전국 5대 응급센터 중 하나입니다. 그런 운화병원 응급센터 대장이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꺼리라고 하면, 제가 무슨 수가 있습니까. 게다가 트레이닝하면 된다고 말했다면서요. 그러겠다니까요. 우리 팀 모두 기꺼이 합니다.

“우리……. 체면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돼?”

- 저런 능력자 앞에서 제가 무슨 체면이 있다고요. 제 스승님도 운화병원 응급센터에 연수할 기회가 있어서 피 터지도록 욕먹고 돌아오면 3년은 그거로 거들먹댈 겁니다.

중년 투자자는 할 말이 없어져서 겨우 한 마디 쥐어짰다.

“스승님한테 한 가지는 배웠구먼.”

그러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엽명지는 끊긴 전화를 들고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젓고는 아래 누워 있는 제약회사 직원을 끌어안으며 계속해서 기운을 보충했다.

세수 한 번 하고 침착해진 중년 투자자는 다시 옆 방으로 돌아갔다.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바라봤다.

“의료팀에서 가까스로 트레이닝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 비용, 시간 투자는 양측에서 분담해야 합니다.”

한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조금 의아한 듯 중년 투자자를 바라봤다. 그러나 아무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 조금 전에 투자자가 통화한 ‘동료’가 이 상황을 더 잘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능연은 무슨 비용이냐고 물었다.

“트레이닝 기간에 지급할 임금, 트레이닝할 인원 비용, 각종 교통비, 숙박비…….”

중년 투자자는 속속들이 잘 아는 듯 줄줄이 읊었다. 그 역시 어릴 때는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회사를 확장해 왔다.

능연이 대답하기 전에 곽종군이 먼저 대답했다.

“우린 비용 부담 안 합니다.”

“안 한다고요? 왜죠? 그건 안 됩니다!”

곽종군은 어깨를 으쓱하며 능연을 가리켰다.

“우리는 비용 부담 안 해요.”

투자자들은 아무런 말 없이 눈살을 찌푸렸고, 박 원장이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

“일단 시험적으로 운행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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