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65화 (844/877)

팰컨 2000이 활주로 끝에 스르르 내려앉았다.

빠른 속도로 비행기에서 내려진 스트레처 카들은 곧바로 헬기 두 대에 태워졌다. 한나 등 투자자의 금융리스 회사는 비행기를 구매했을 뿐, 헬기는 다시 아웃소싱 방식으로 운영해서 최대한 자금 리스크를 줄이려 했다.

엽명지는 전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직원이야 사장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만이었고, 그가 보기에도 매우 정확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전문성을 논하는 그 전화를 받은 후, ‘금융리스’라고 적힌 헬기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꼭 자기 소유 비행기를 써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똑같은 의료 이송 임무라도 아웃소싱 방식을 채택하면 빈도와 작업 부담이 당연히 낮다. 능연이 했던 말을 빌려서 하자면, 이것 역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방증이었다.

환자와 함께 두 번째 헬기에 오른 엽명지는 내내 미간을 찌푸린 채 운화병원으로 향했다. 곧 능연을 만난다는 사실에 어쩐지 마음이 복잡하고 걱정스러웠다.

대가를 만난다는 건, 언제나 기회와 위험이 공존한다. 능연이 싫어하면 어쩌지. 능연이 언짢아하면 어쩌지. 능연이 나를 없애 버리면 어쩌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면 어쩌지.

엽명지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안색이 다 변했다. 그저 허해서 그러는 것으로 여긴 부하는 곧 하강할 때가 되자 누가 보고해야 하냐고 엽명지 귓가에 속삭이며 물었다.

어찌 됐든 응급처치 방식이라, 병원에 도착하면 현지 병원 의사에게 환자 상황, 환자에게 행한 처치 같은 걸 보고해야 한다. 보통 엽명지가 보고하는데, 자주 게으름 피우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이 준비하곤 했다.

“내가 하지.”

엽명지도 이번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른 의사들은 구체적 상황을 모르는데 혹시라도 팀원이 잘못해서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었다.

설사 팀 전체를 망하게 하더라도 내가 해야지.

엽명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면접 준비하는 모습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스트레처 카에 누운 환자는 의사들이 긴장하는 모습에 저절로 긴장했다.

“그냥 전원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일 생겼나요?”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일반적인 플로우 이야기입니다.”

부팀장이 서둘러 환자를 위로했다. 그들은 요즘 이런 부자 위주로 환자 이송 중이었고, 티비에서 자주 보는 그런 응급상황, 초를 다투는 증상이 아니었다. 환자 이송 목적은 대부분 전원이고, 병원을 바꿔서 치료받거나 다른 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일 뿐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돈 많고 말 많은 환자들.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고, 환자 모두 간 절제 환자였다. 출장 수술을 고려했는데, 현지 의사들과 상의한 끝에 출장 수술 비용을 의료 이송 비용에 쓰리고 하고 아예 새치기해서 끼어들었다.

물론 환자들의 상태는 저마다 조금씩 달랐다. 특히 이 헬리콥터에 탄 두 어르신은 온몸에 튜브도 꽂고 있고, 평범한 의료 이송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능 선생은?”

다른 환자가 눈을 감은 채 능 선생을 찾았다.

“곧 병원에 도착합니다. 병원에 도착하면 능 선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엽명지가 허탈하게 환자를 달랬다. 염려증이 있는 환자로, 툭하면 능 선생을 찾아댔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비슷한 환자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중증 환자들은 병을 앓은 시간이 길어지면 해당 영역의 의사를 속속들이 꿰게 된다. 주식 투자를 오래 하다 보면 워렌 버핏 같은 사람의 이름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펀드 매니저, 특히 금융 전문가 이름까지 잘 아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병이 위중한 사람들은 그중 한 의사 혹은 여러 의사를 목숨줄처럼 생각하곤 한다. 정말로 목숨을 살려 줄 수 있을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그들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능연의 간 절제 기술은 현재, 환자 목숨을 천까지는 아니더라도 8백은 구한 수준이었다. 미디어에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았지만, 간 영역에선 이미 독보적인 존재였다. 능연의 성공률과 환자 예후 상태는 국내 대다수의 의사를 훌쩍 넘어섰고, 생명이 위중한 환자 눈엔 그냥 목숨줄이 아니라 잘생긴 목숨줄로 보인다.

“난 능 선생에게 수술받을 걸세.”

‘능 선생’이라고 부를 때는 환자의 목소리가 꽤 기운찼다. 엽명지가 다시 대답했다.

“압니다. 저희도 능 선생 때문에 여기로 온 겁니다.”

“능 선생이 직접.”

“예.”

“반드시 능 선생이 해야 하네!”

“예.”

엽명지는 연신 대답하고는 환자의 약 양을 늘린 다음에 부팀장을 향해 허탈한 듯 웃었다.

“구급차가 그립네.”

“보호자가 함께 있으니까요?”

“골치가 많이 줄지.”

엽명지는 초조함을 감추려고 말이 많아졌다. 운화병원 옥상 헬기 착륙 표식이 보이자, 작은 심장이 못나게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하얀 가운 차림의 의사들이 벌써 옥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에 서 있는 의사가 가장 눈에 띄었다. 굵고 둥근 허리,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카락, 안에 천금이라도 숨겨 둔 듯 폭 넓은 바지 안 굵고 두꺼운 두 다리.

“복합 수술실로 가.”

헬리콥터가 하강하자, 소처럼 건장한 의사가 앞장서서 달려왔다. 엽명지는 서둘러 협조하며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리는 동시에 연 선생이냐고 물었다.

“예, 연문빈입니다. 우리 만난 적 있나요?”

연문빈은 엽명지를 힐끔 쳐다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초면입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자주 뵐 겁니다. 이쪽 팀 책임자, 엽명지입니다.”

엽명지는 바쁘게 손을 놀리며 연문빈을 향해 자기소개했다. 연문빈은 ‘아’하고 대답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스트레처 카를 밀고 재빨리 사라졌다.

살짝 뒤떨어진 엽명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깨달은 듯이 뒤쫓아갔다.

“왜 그러세요?”

부팀장 역시 상황을 주시하며 물었다. 엽명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우리, 도태될 것 같다.”

“설마요. 아까 그 의사가 그래요? 뭐가 그렇게 건방져.”

“아니야. 차라리 말했으면 이렇게 걱정 안 되지.”

“그럼 괜한 생각하신 거네요. 팀장님. 아무런 말도 없었으면 괜히 지레짐작하지 말아요, 우리.”

엽명지는 고개를 저으며 부팀장을 힐끔 바라봤다.

“내가 아까, 앞으로 자주 볼 거라고 했거든. 그랬더니 웃더라고. 근데 그 웃음이…….”

엽명지는 입꼬리만 조금 올려서 겉웃음 짓는 연문빈을 표정을 따라 했다.

“이건……. 이건 심상치 않군요.”

“그렇지? 어서 가자.”

부팀장이 숨을 들이켜며 하는 말에 엽명지의 기대감도 더 떨어져서 스트레처 카를 따라 울적하게 뛰기 시작했다.

연문빈은 이송 환자들을 모두 수술실로 보낸 후에야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고는 목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어제 목 운동했는데 왜 오늘 입도 벌리기 힘들 정도로 뺨 쪽이 아프지. 이상하네.”

“좀 봐줄까?”

정형외과 기초가 쌓였다고 자신하는 좌자전이 나서서 동료를 살폈다. 연문빈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좌자전을 향해 웃어 보였다.

“하악골 문제네.”

장갑을 끼고 얼굴을 만지작거린 좌자전이 곧 결론을 냈다.

“어제 뭐 딱딱한 음식 먹었어?”

“그러고 보니, 뼈를 좀 씹었네요……. 그럼 그 문제인가 봐요. 뼈가 많이 남아서 그래요. 개를 키우는 것도 아니라서…….”

연문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좌자전이 입을 삐죽였다.

“그럼 나눠주지 그랬어.”

“살은 거의 발라낸 부분이라서요. 누구 주기는 그런걸요.”

연문빈은 크게 웃고는 이 화제를 마무리하고는 속으로 공짜 뼈를 다 나눠줬다가 내 몸에서 발라낸 고기는 누구에게 파냐고 생각했다.

그때 능연이 에어타이트 도어를 밟고 안으로 들어왔다.

“준비 끝났습니까?”

능연은 하얀 가운을 걸치고 수술대를 돌며 검사했다. 연문빈이 서둘러 다가가 보고했다.

“전형적인 간내 담관 결석이야.”

“네.”

능연은 영상 판독을 시작했다. 그에게는 가장 익숙하고 지극히 많이 해온 수술이었다. 좌자전이 헛기침하며 물었다.

“이송 팀 책임자, 한번 안 만나 볼래?”

“필요한가요?”

영상 판독을 마친 능연이 조금 의아한 듯 좌자전을 바라봤다. 능연이 묻는 의미를 아는 좌자전이 못 말린다는 듯 대답했다.

“의료적으로는 불필요하지.”

“음. 그럼 수술 시작해요.”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술 모드에 돌입했다.

“엽 팀장님, 마지막 환자도 들어갔습니다. 좀 쉬시죠.”

부팀장은 안절부절못하는 엽명지의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졌다.

엽명지는 원래 참 침착한 사람이었다. 이송 중인 환자가 피를 토할 때, 엽명지는 그저 플로우대로 침착하게 심폐 소생할 뿐,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환자가 밥을 뿜었을 때도 엽명지는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고 플로우대로 심폐 소생할 뿐이었다. 환자가 변을 뿜었을 때도 엽명지는 마찬가지로 미간에 튄 그것을 닦지도 않고 플로우대로 심폐 소생할 뿐이었다.

심지어 파트너가 가짜로 임신했다고 소란을 피우러 왔을 때도 엽명지는 변함없이 담담했다. 심지어 전전 파트너가 진짜로 임신해서 소란을 피우러 왔을 때도 엽명지는 변함없이 담담했다. 심지어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가 거절당한 전전전 파트너가 찾아와서 소란을 피웠을 때도, 엽명지는 변함없이 담담했다.

부팀장은 특히 마지막 부분에 감탄했다. 그날 엽명지의 평판이 안 좋아질까 봐 걱정하긴 했지만, 어찌 됐든 엽명지는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냈다. 부팀장은 본인이라면 분명 그러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엽명지가 침착하지 못한 모습에 지켜보고 있는 부팀장이 다 초조해졌다. 파트너가 임신한 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이 뭐가 있을까.

“수술 다 꽤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엽명지는 한참 만에야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능 선생은, 기분 좋겠지?”

“당연하죠. 수술 세 건을 단숨에 하고, 다 한 시간 내에 끝냈는데 누구라도 좋아서 붕 뜰 일이죠.”

부팀장은 거짓말은 아닌 말로 맞장구쳤다. 큰 수술이 아니고 작은 수술이라도 단숨에 수술 세 건을 아무런 실수 없이 해내면 집도의는 매우 기분 좋아한다.

평범한 직장인이 일주일 업무량을 반나절 만에, 그것도 순조롭고 수월한 방식으로 해내면 기분이 째질 듯이 좋은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런데 엽명지는 고개를 젓더니 목을 빼고 모니터 중계를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능 선생 얼굴 좀 봐. 네가 보기엔 기분이 어떤 거 같냐?”

부팀장이 모니터를 바라봤더니, 능연의 잘생기고 쿨한 얼굴에 굳은 눈빛, 심각한 표정이 가득했다.

“그게……. 능 선생은 몇 시간 동안 표정이 그다지 변하지 않아서요.”

부팀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아예 안 변한 건 아니지만요. 아까 블리딩 있을 때, 능 선생이 연문빈을 바라보는 눈빛이 뭐랄까…….”

“연문빈은 바람피우다가 걸린 것처럼 얼굴이 구렸지.”

엽명지는 유리창 너머로 관찰하며 말을 이었다.

“연문빈 눈빛도 기쁜 것 같지 않고.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어. 저런 것만 봐도 능 선생이 기분이 안 좋을 가능성이 큰 거야.”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건 아냐. 세 건이긴 해도, 다 해서 세 시간 남짓이고, 다른 의사들은 한 시간 정도 한 정도야. 게다가 집도의도 아니고 퍼스트였잖아. 그러니까 그 정도로 힘들 정도는 아니야.”

엽명지는 느끼는 바가 많은 듯 말을 이었다.

“게다가. 수술이 이렇게 순조로운 데다가 단숨에 여러 건 한 건데, 흥분해야 하는 거 아니냐? 왜 저렇게 죽상이지. 아, 네 말도 일리가 있다. 집에 무슨 일이 생겼거나, 일하는데 문제가 생겼거나. 마누라가 바람 난 거면 좋겠네.”

“네?”

“마누라가 바람 난 거거나,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라면, 그건 개인사잖아. 그런데 이 일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예를 들면 자기가 우리 일을 대신하게 된 거, 그럼 기분이 좋을 수 없겠지.”

“우리 대신 이 자리를 차지한 게 기분 안 좋을 일이라고요? 우리를 대신하게 된 게, 일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부팀장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하는 말에 엽명지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진 부팀장, 우리는 우리의 지위를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어.”

“알겠습니다. 엽 팀장님. 명확하게 인식해서 이러고 있지, 아니면 진작 한잔하러 갔을걸요.”

“음, 그래. 저녁에 다 끝나고 한가해지면 한잔하러 가자.”

부팀장이 나른하게 하는 말에 엽명지가 대답하자, 부팀장이 알았다고 답하고는 농담하듯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 응급센터에 있습니다. ‘한가해지면’이라고 하지 마세요.”

“그런 말 하면 바빠지니까?”

“그럼요. 응급센터에서 한가하다고 하던 사람, 다 힘들어서 죽거든요.”

“음……. 근데 지금 우리 한가하단 소리, 여러 번 하지 않았냐?”

엽 팀장의 말에 부팀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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