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 선생, 보시다시피, 우리는 무제한으로 선생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해요.”
한나가 매니저들을 데리고 와서 능연을 향해 한껏 과장해서 이야기했다.
능연은 팰컨 2000 기내의 응급 설비를 꼼꼼히 살펴본 후에 되돌아봤다.
“세팅은 그럭저럭 괜찮네요. 하지만 수정해야 할 부분은 있습니다.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하신다니, 제가 리스트를 뽑아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한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고, 이런 상황에 단련된 좌자전이 노련하게 끼어들었다.
“능 선생 대화 스타일이 이렇습니다. 사실 세팅 괜찮다고 능 선생이 인정한 것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저기요, 이 기기 시연 좀 해주시겠어요?”
저기라고 불린 사람은 엽명지였다. 의료 이송하느라 하루 보내고, 연수의 생활하며 이틀 보내느라 잠도 얼마 못 자고 지쳐 있었지만, 배운 대로 몸이 조건반사로 움직였다. 좌자전에게 ‘저기요’라고 불린 사실에 저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운화병원에 있었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라서 거의 한순간에 바로 정신 차리고는 미소 지었다.
“예. 제가 시연해 보이겠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나서서 모니터링 기계를 켜서 시연해 보였다. 그렇게 열심히는 아니었고, 심지어 얼렁뚱땅하는 감도 있었지만, 투자자들의 눈빛은 밝아졌다.
“능 선생의 관리 능력, 꽤 괜찮네요.”
한나가 프랑스어로 나직하게 하는 말에 중년 엘리트 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평가했다.
“맞아요. 이렇게 엄숙하고 전통적인 관리 방식일 줄은 몰랐군요. 수준 높은 실력이 있으니 권위적이 되기 쉽고, 직원들 앞에서 드러나는 거죠.”
“서프라이즈네요. 프로젝트 완성에 큰 도움이 되겠어요.”
“맞습니다.”
좌자전은 투자자들이 각종 언어로 소통하며 대화하는 걸 어색해하지도, 지루해하지도 않고 미소 지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좌자전은 여러 언어를 터득하는 것 같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 없는 것들에 진작 흥미를 잃었고 관심조차 줄어들었다.
수술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어느 나라 환자를 수술해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사실이 이미 증명되었다. 통역을 고용할 능력만 된다면 아부도 떨어가며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고, 어떤 때는 언어 장벽이 오히려 좋은 효과를 낼 때도 있다.
시연이 끝난 후, 한나도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사기를 장전했다.
“능 선생, 우리는 최대한 환자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겁니다. 현재 영인 컴퍼니는 최고 수준의 의료 이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미 여러 은행, 증권사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비행기와 의료 설비는, 앞으로 차차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해 나갈 겁니다. 그 점은 안심하세요. 우리 비행기와 의료 설비는 앞으로 언제나 최고의 수준을 유지할 겁니다.”
능연은 상대의 이야기, 그리고 통역된 이야기를 유심히 들은 후에 의아한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앞으로 언제나 최고 수준을 유지할 거라고요? 어째서 지금 바로 최고 수준을 유지하면 안 됩니까?”
“네?”
한나는 잠시 얼떨떨해하다가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허탈한 듯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의 의료 항공기와 설비 수준 모두 최고입니다.”
“음……. 표준이 그렇게 낮은가요?”
능연이 의외라는 듯이 묻는 말에 한나는 할 말을 잊고 저도 모르게 되돌아봤다. 고급 양복을 입은 잘생긴 남자가 바로 눈치채고 앞으로 나섰다.
“능 선생. 팰컨 2000은 중대형 공무 항공기입니다. 게다가 엔진 두 대로 속도도 지극히 빨라서 장거리 운항도 가능합니다. 오일탱크를 풀로 채운 상태로 하강도 가능합니다. 기름을 보충하지 않고도 단거리 운항을 여러 번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의료 이송에 매우 적합한 비행기입니다. 게다가 우리 비행기는 아직 새것이고, 의료 설비 역시…….”
“그러니까, 기준이 공무 항공기의 성능과 시간이라는 건가요?”
능연은 깨달은 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중대형이라 건, 운송기, 여객기의 중대형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렇죠?”
키 크고 잘생긴 남자는 조금 머쓱해하다가 다시 대답했다.
“그건……. 운송기와 민간 여객기는 대형에 속합니다. 그런 대형 항공기를 의료 용으로 쓰는 회사는 얼마 없습니다. 비용이 너무 높아요. 운송 적재량을 따져도 낭비고요. 게다가 이륙, 착륙도 제한적입니다. 미국만 봐도 통근 비행장은 대부분 중소형 비행기만 이착륙할 수 있어요. 큰 비행기 쪽이 오히려 낭비입니다.”
“대형 항공기 말고 다른 선택도 많아요.”
전문적인 방면에서 그저 자료를 훑어본 투자자들에게 뒤질 리가 없는 능연은 두어 마디 이야기하고는 바로 덧붙였다.
“팰컨 2000은 현재로는 꽤 만족스럽습니다.”
투자자들의 얼굴이 슬슬 흐려지는 걸 본 좌자전도 순간 분위기 풀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능연의 뜻을 왜곡할 수는 없어서 이렇게 말했다.
“능 선생은 그러니까……. 있는 대로 이야기하는 거지, 일부러 트집 잡는 게 아닙니다.”
“괜찮아요. 능 선생 성격이 어떤지 우리도 알고 있어요.”
한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미소 지어 보였다.
“이제 능 선생을 시험할 때가 되었군요. 앞으로 이틀 동안 수술 4건을 준비했습니다. 능 선생이 고객을 만족시킨다면, 정식으로 계약 체결하겠습니다.”
“4건이요?”
능연의 안색이 조금 변했다.
“강제는 아닙니다. 무슨 문제 있으면 우리랑 상의해요. 의료 문제는 아무래도 복잡하니까요.”
한나는 능연의 얼굴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조건을 낮춰 주었다. 그러나 능연은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 이송 때 한 번에 환자 넷을 이송했는데, 앞으로 이틀 동안 겨우 4건뿐입니까?”
한나는 멈칫하고는 우선 돌아서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는 다시 대답했다.
“수술량을 늘려도 되는 거라면, 수술을 더 준비할 수 있습니다.”
능연은 조금 흡족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에 매니저들이 저도 모르게 가슴을 활짝 폈다.
“수술은 최대한 많이 준비해주세요. 이틀에 겨우 수술 4건이라니, 비행기 낭비죠.”
좌자전이 곁에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키 크고 잘생긴 남자가 대답하면서 한나를 힐끔 보고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능 선생, 좌 선생, 그럼 한나 씨가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일이 좀 남아서…….”
“괜찮습니다. 저희도 수술하러 다른 도시에 가야 합니다. 지금 가면 딱 됩니다.”
좌자전은 작별 인사하며 손을 저어 보이고는 저쪽에서 기다리는 자동차에 올라탔다. 소박한 소형 버스는 슬금슬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보잉 737 옆으로 가서 섰고, 뒤이어 비행기에서 누군가 나와서 공손하게 능연 일행을 맞이해서 올라갔다.
탑승 인원 200 이하인 보잉 737은 민항 여객기 중에선 보통 크기지만, 19명을 태울 수 있는 팰컨 2000은 그 앞에선 경량급이었다.
“다음부턴 함부로 나서지 마.”
한나는 매서운 눈으로 키 큰 훈남을 노려보고는 팰컨 2000에 타고 창문을 통해서 묵묵히 관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