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비행기 창문에 햇살이 비추자 저 멀리 길 떠나갔다가 돌아온 탕아처럼 물결무늬가 번졌다.
엽명지는 객실에서 나오는 조종사를 하품하면서 바라봤다.
“피곤하죠?”
엽명지가 먼저 인사하자, 조종사는 자동 비행 모드로 조정했다고 대답하며 대충 앉아서는 텅 빈 객실을 둘러봤다.
“나야 피곤하긴 해도 해남에 가면 교대하지만, 선생님들은 어쩝니까.”
“우리요? 우리는 견뎌야죠, 뭐.”
엽명지는 무덤덤한 얼굴을 힘껏 비비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는 파일럿처럼 근무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지쳐서 쓰러져도 자기 위치에 쓰러져야 하니까요.”
“그래도 구급 비행기 안에서 쓰러지면 안전하긴 하겠네요.”
조종사가 웃으며 한 농담에 엽명지도 껄껄 웃었다. 그의 부팀장은 곁에서 물을 마시면서 암울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한가하단 말을 하는 게 아니었어…….”
“쉿!”
엽명지를 비롯한 사람들이 바로 같은 동작을 했다.
“알아요, 알아요.”
부팀장은 허탈한 듯 고개를 젓고는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관짝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고, 끝장을 봐야 깨달을 수 있죠.”
“관도 이미 봤다고.”
“전 이미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어요.”
“그때 팀장님 입을 찢어 버릴 걸 그랬어요.”
간호사 둘도 대화에 끼어들었고, 엽명지는 씁쓸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회사가 상업화되면, 적어도 운화병원에 목매지 않아도 되니까, 그것도 좋은 거겠지.”
“당연히 좋은 일이죠. 만날 택일 수술 환자만 이송하면, 이거야 뭐 비행기 셔틀이죠.”
부팀장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활짝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젠 좀 더 넓은 하늘에서 훨훨 날 수 있는 거잖아요.”
“말 잘했다. 다들 열심히 하자고. 전문성을 보여야 해. 내 힘으로 돈 벌 수 있으면 운화병원, 혹은 능연에게 메여 있지 않아도 된다고.”
엽명지는 제가 생각해도 불가능한 말을 하고는 곧이어 껄껄 씁쓸하게 웃었다.
“적어도 기분 전환하러 나올 순 있겠지.”
한나 일행은 끝끝내 능연과 심층적인 계약을 맺지 않았고, 엽명지가 탑승한 팰컨 2000은 운화를 벗어나서 오히려 그때부터 진정한 의료 이송 임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로는 투자자들이 능연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엽명지는 알 바 아니었고, 적어도 지금은 며칠 전처럼 바쁘게 보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30분 후, 팰컨 2000이 서서히 공항에 착륙했다. 엽명지 일행은 매무새를 가다듬고 전화를 걸어서 확인했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헬기 도착했나요?”
전화 너머에서 박 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10분쯤 전에 도착했습니다. 환자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잠시만요, 응급의학과 의사 바꿔 드릴게요.”
“네.”
엽명지는 노련하게 질문하면서 상대가 무슨 처치를 했는지 기록했다. 의사 세 팀이 협력하는 건 매우 복잡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엽명지는 객실 문이 열릴 때까지 통화하다가 문이 열리자 다 같이 비행기에서 내렸다. 헬리콥터까지 거리가 있어서 중간에 버스로 이동했고, 박 원장은 양측이 만나 비행기에 올라탄 후에 땀을 훔치고는 보호자를 향해 미안한 듯 해명했다.
“중국은 아직 의료 이송이 발달하지 않아서 조금 복잡합니다.”
엽명지는 그저 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로서야 환자가 누군지 알 바 아니었다. 어차피 환자와 보호자가 병원에 도착한 후엔 그의 존재를 완전히 잊을 테니까.
“어디로 갈까요?”
엽명지는 관례대로 질문했다. 돈도 있고 줄도 있는 의료 이송 환자와 보호자는 홍콩, 싱가폴 혹은 도쿄 병원으로 갈 여력이 충분하다. 그중 싱가폴과 도쿄는 세계적으로도 정상급 의료 시스템이 잡혔고, 어떤 면에서는 미국에 버금가고, 초월한 부분도 있었다.
이번의 그들의 임무는 일반인에게 익숙한 구급차 이송과 비슷한 진정한 응급 이송 임무였고, 그런 만큼 환자와 보호자의 의견을 반드시 물어야만 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서, 도쿄를 좋아하는 환자, 싱가폴을 좋아하는 환자, 심지어 유럽, 미국으로 가길 원하는 환자도 있었다. 사실 꼭 취향 문제는 아니었고, 신분과 의료보험 문제가 더 컸다. 매우 부유한 집안이라고 해도, 움직일 때마다 수백만 위안, 많게는 천만 위안을 쓰는 소비를 할 때는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엽명지야 상대의 요구가 너무 터무니없지 않은 이상 모두 승낙한다. 그래서 묻는 동시에 상대의 심장과 두개골 상황을 매우 적극적으로 검사했다.
응급에서 가장 두려운 상황이 흉통과 뇌졸중이었다. 응급 중의 응급, 정말로 사람 잡는 응급이었다. 각 병원의 응급의학과 의사도 뇌졸중과 흉통으로 쓰러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초 위험 상황 이외엔 이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물론 대부분은 비교적 가까운 병원과 의사를 고려한다.
“운화로 가요.”
보호자들은 그리 오래 상의하지 않고 그저 재확인만 하고는 대표자가 나서서 대답했다.
“네. 네? 운화요?”
엽명지는 환청을 들은 것만 같았다. 이제 막 호랑이 소굴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돌아가라고?
그는 환자를 힐끔 보고는 박 원장을 빤히 바라봤다. 후자가 무슨 수작을 부린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박 원장은 엽명지의 주시를 당당하게 마주하며 대답했다.
“운화병원 능연 선생은 세계적 간 절제 권위자입니다. 그러니 가장 가깝고, 가장 좋은 선택이죠.”
엽명지는 박 원장 혹은 박 원장의 군안 클리닉이 중간에서 뭔가 꾸민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박 원장의 말을 반박할 만한 전문적인 실력이 없었다.
능연은 분명 세계적 간 절제 권위자였고, 정말로 가장 가깝고,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주변에 대단한 전문가가 있는 나라도 당장 떠올랐지만, 그들이 능연보다 더 대단하고 유명하냐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의료 이송 영역 자체가 권위를 따라 움직이는 영역이 아니었다. 어떤 의미로는 의료 이송 의사는 본인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전문적인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그 정보엔, 가까운 곳에 있고 증상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의사의 정보도 포함되어 있다.
그 점에서, 국제 의료를 장기간 해온 군안 클리닉의 행동은 잘못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훌륭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운화병원으로 가겠습니다.”
엽명지는 내심 한숨을 내쉬며 사람을 보내 조종사에게 통지했다. 조종실에 앉아 있던 조종사도 매우 놀라서 바로 문을 열고 나오더니 운화병원으로 돌아가냐고 확인했다.
“네. 환자와 보호자 요구입니다. 운화병원으로 갑시다.”
엽명지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하는 말에 조종사는 알아듣고는 상서로운 눈빛으로 엽명지를 바라봤다.
“정말 그 입, 좀 조심해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