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종군은 허리에 손을 댄 채 운화병원 분숫가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멀리서 날아오는 헬리콥터는 비둘기보다 작은 크기인데도 벌써 비둘기 떼보다 더 크게 두두두두 대고 있었다.
두두두두…….
곽종군은 지나가던 향만원을 대뜸 낚아채서 부드럽게 목을 쓰다듬으며 목을 아무렇게나 저쪽으로 돌려버리고는 녀석의 날개를 토닥였다.
“또 헬기가 오는구나. 우리 운화병원 응급센터 간판이 더 번쩍번쩍해지겠어.”
‘꽥’하고 대답하던 향만원은 다시 운명의 모가지를 움켜 쥐였다. 곽종군은 한참 느긋하게 향만원을 데리고 놀다가 내려놓았다. 향만원은 응급환자를 맞이하러 달려가는 의사들처럼 줄행랑쳤다.
곽종군은 흐뭇하게 뒷짐 지고 응급실로 돌아가서 바삐 움직이는 의료진들을 지켜봤다.
헬리콥터로 환자가 이송되어 오면 예전에는 분명 주임 혹은 부주임급 의사가 맞이했다. 절대적으로 매우 긴급한 상황이니까. 그러나 지금 응급센터 의료진들에게는 이 상황이 익숙해졌을 뿐만 아니라, 인력도 충분해서 곽 주임을 비롯한 주임들이 열심히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
후하후하, 도 주임이 잰걸음으로 곽종군 곁을 지나쳐서 뛰어가면서 놀란 듯이 물었다.
“곽, 자네가 왜 왔나?”
“응? 그냥 와본 건데?”
곽종군은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자기 앞에서 뛰는 도 주임을 바라봤다.
“할 일 없으면 와서 좀 도와. 바빠 죽겠다고.”
은퇴를 앞둔 도 주임은 가장 거리낄 게 없는 부류고, 뇌를 거치지 않고 말을 내뱉으며 진료과 큰 주임조차 말 안 듣는 애인 휘두르듯 휘둘렀다. 말을 듣든 말든 일단 불러보는 것이었다.
곽종군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바빠? 왜?”
“장난하나. 우린 응급이야. 응급이 왜 바쁘냐니.”
도 주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곽종군을 바라봤다. 곽종군은 서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보다 3배 이상 규모를 늘렸는데, 그래도 바쁘다고?”
응급의학과에서 응급센터로 승급하며 늘린 정규 의사 자리도 지금은 모두 다 찬 상태였다. 연수의와 훈련의 그리고 실습생 숫자도 대대적으로 늘었다. 현재 운화병원 응급센터는 의사 2백 명은 아무렇지 않게 불러낼 수 있는 상황이고, 이는 전국 어느 병원에서라도 혀를 내두를 무서운 인원이었다.
사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있는 진료과는 분원을 세워도 될 정도였다. 분원을 세우지 않거나 세우지 못하는 진료과는 대부분 과를 나누게 된다.
곽종군은 1/3초쯤 긴장하다가 순식간에 안도하며 중얼거렸다.
“당황하긴. 능연이 있는데.”
“능 선생이 아니라면 우리가 이렇게 힘들 일도 없지.”
도 주임이 헉헉대며 숨을 고르며 하는 말에 곽종군은 멈칫하다가 이내 깨달았다.
“의료 이송 때문인가? 그렇게 많아?”
“응. 전부 다 빌어먹을 중증, 초중증이야. 게다가 영인 컴퍼니에서 헬기를 쓰기 시작했어. 지금 헬기 4대가 돌아가며 환자를 싣고 와. 유지보수 기간을 제외하고 2대는 항상 하늘에 있던 셈이지. 이윤을 좇아서 움직이는 회사가, 비행기 사업만 하겠어? 구급차로 하던 일까지 다 가로채서 하고 있다고.”
곽종군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는 좋아하는 게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불벼락, 담배, 술, 차, 불벼락, 환자 진료, 수술, 불벼락, 항일 드라마, 병실 회진, 국제 학회 참여 그리고 불벼락을 제외하면 자기 응급센터가 커나가는 걸 보는 걸 말고 좋아하는 게 별로 없었다.
시골 아저씨가 채소 같은 걸 심을 때 은근히 옆집 땅도 조금 침범해서 구역을 늘리는 것과 조금 비슷했다. 물론 능연처럼 아예 옆집 땅을 다 사들여서 농사짓는 그런 스타일은 더더욱 좋아했다.
“나도 좀 돕지.”
곽종군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자, 도 주임이 짐직 말리는 척했다.
“주임님은 직접 나설 것 없고, 그냥 앉아서 지휘나 하시지요.”
“의사가 앉아서 지휘하면 무슨 재미야. 게다가 지휘는 능연이 하면 되지. 걘 이런 일에 노련하다고.”
곽종군은 느긋하게 도 주임을 따라 처치실로 들어갔다. 도 주임은 껄껄 웃으며 동의했다.
“그건 그래. 능연이 아침에 비행기로 실려 온 환자들 단숨에 봉합했어. 캄보디아에서 날아온 영국사람도 있었어.”
“캄보디아에서 온 영국사람? 무슨 상황인데?”
곽종군은 처치실로 들어가 봐야 직접 할 일은 없어서 중앙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쁠 일 없는 도 주임 역시 담담하게 설명했다.
“여자랑 놀다가 쇼크가 와서 현지 병원에서 심장 우회술을 진행했대. 그런데 실패해서 우리 쪽으로 보냈다더라고.”
“환자가 골랐대?”
“의사가.”
“의사? 캄보디아 의사?”
“음. 능연의 교육 영상을 봤다던데. 그리고 케이스 리포트도 봤나 봐.”
도 주임은 그렇게 말해놓고 생각 많은 듯이 탄식했다.
“현지 의사들도 다 능연 리포트를 읽는대. 수술 동영상도. 왜게?”
처치실에서 3선 의사 역할을 하며 농땡이 치던 주 선생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웃는 사람이 없는 건, 다들 구급 처지에 집중했기 때문이고, 주 선생이 웃는다는 건, 주 선생이 구급처치에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곽종군의 미소가 곧 사라지더니 뒤이어 얼굴이 굳어서는 돌아봤다.
“주 선생, 이유를 자네가 말해 봐.”
주 선생은 캐릭터를 바꾸지도 않고 정색하고 대답했다.
“지식 획득하는 동시에 기분이 즐거워지는 걸 보려고 그러는 거겠죠. 물론, 능 선생 실력이 너무 뛰어난 게 가장 중요하지 않겠어요? 외국 업계까지 주시하고 기꺼이 배울 정도로요.”
“음. 그렇군. 그거 하다가 심근경색 일어난 그……. 아, 심근경색은 맞지?”
능연이 두개골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곽종군은 심장 문제라고 추측했고, 도 주임은 고개를 숙인 채 맞다고 대답했다. 곽종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분은 어디 계시나? 내가 좀 봐야겠군.”
“주 선생, 곽 주임 모시고 가봐.”
“옙!”
도 주임이 지목하자 주 선생은 장갑을 벗어 던지고는 조금 신이 난 듯 나서서 안내하며 설명했다.
“꽤 흥미롭습니다. 가슴이 두툼하고 뼈도 단단한데 심장이 조금 작아요. 선천적 기형인 것 같은데 한 번에 둘이나 불러서는…….”
“주 선생.”
곽 주임이 흥분한 주 선생의 말을 자르자, 주 선생은 예민하게 위기를 감지했다.
“네?”
“도 주임이 왜 자네를 보낸 줄 아나?”
“모…… 모릅니다.”
“현장에서 노는 사람이 자네뿐이라서야.”
“에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주 선생은 짐짓 언짢은 듯 애교를 부렸다.
“그 환자도 누워서 자다가…….”
곽 주임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 주 선생을 바라봤다. 주 선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 병이라는 게 사라진다면야 약장의 백약을 다 버린대도 아까울 게 무어냐고.”
“자넬 약방의 약장에 걸어 버려야 하는데.”
주 선생의 너스레에 곽 주임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고, 주 선생은 영리한 머리로 현명하게 또 하루를 견뎠다고, 의사로 사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하며 내심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