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74화 (853/877)

“아들이 전칠 부모를 만나러 간다고?”

능결죽은 표정이 조각조각 굳은 얼굴로 좌자전의 말을 반복했다. 차를 내리던 도평도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자사호를 내려놓고 주둥이를 문지르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렇게 빨리?”

좌자전은 진지한 얼굴로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의 표정이 안 좋은 걸 본 능결죽이 서둘러 거들었다.

“짐작한 일이긴 하지. 우리 아들이……. 여자 쪽에서야 단번에 낚아채고 싶은 남자 아니야…….”

“뭘 단번에 낚아챈다는 거예요. 애가 물건이에요? 앞으로 허튼소리 하지 말아요. 앞으로는 말조심 또 조심하라고요.”

도평이 눈을 부릅뜨며 하는 말에 능결죽은 좌자전을 힐끔 보고는 진중한 말투로 말했다.

“나야 마나님 말씀은 다 듣는 사람 아니오.”

좌자전은 보스의 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못 본 체, 무표정한 얼굴로 있었다. 흡족한 듯 ‘음’하고 대답하던 도평은 금세 표정이 변해서 다시 눈을 부릅떴다.

“연이도 아내 말만 들으면 어쩌라고요!”

능결죽은 사색이 되어서 속으로 아내 달래기 난도가 왜 갑자기 이리 높아졌는지 꿍얼거렸다. 좌자전이 나지막이 거들었다.

“능 선생은 항상 자기 생각이 있고 다른 사람 때문에 생각을 잘 바꾸지 않잖아요.”

“전칠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도평은 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꺼내올게요.”

“어떤 거로 꺼내면 되나? 내가 가지고 오겠소.”

능결죽이 서둘러 말했다.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노반장 보이차 있잖아요. 몇 개 꺼내서 아들에게 들려 보내야겠어요. 그때도 노차(老茶)였으니, 지금 가지고 가도 체면은 지킬 정도는 될 거예요. 다실 깊숙이 있어요. 같이 가요.”

“알겠소…….”

능결죽은 대답부터 하고는 또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

“그런데 그건 당신이 예전에 다 마시고 없지 않나?”

“나중에 새로 사뒀어요. 내가 마신 건 나중에 산 거고, 지금 있는 건 내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노차예요.”

도평이 바로 강조하며 덧붙이는 말에 능결죽은 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알겠소.”

전씨 집안에서 긴 세월 일한 나이 든 집사 파장이 본인 애스턴마틴을 직접 운전해서 집안 목장과 별장들을 돌았다.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 도시처럼 주목받는 곳이 아니고 역사 유적 문제와 위생 사각지대도 많은 곳이었다. 능연이 여기까지 올지는 모르겠지만, 새 사위의 성격과 그가 받는 대우를 생각하면 집안 자산 관리 위원회와 업무 관리 위원회에서 마음 놓고 있을 리가 없다. 사무 회사를 여러 곳 임시로 고용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 중 젊은 구성원들을 적극 참여시켰다.

도착했더니, 다행히도 목장과 농장마다 젊은 구성원들이 말 목욕, 세차, 와인셀러 정리, 사냥터를 정돈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나이 든 구성원들은 자기 팀 서버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족 목장, 농장에서 며칠 동안 감독하며 지켜보다가 파장이 다시 본가 저택으로 돌아갔을 때 저택은 완전히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택지 안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도로는 다시 포장했고, 십여 년 동안 보수하지 않았던 둘레길과 인공산, 조각상, 등탑 같은 대형 조경물을 새로 검사하고 수리했다. 오랜 세월 맑은 적 없던 큰 호수와 호수 근처의 작은 호수, 연못 그리고 택지 내 수로 모두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정리하느라 끌어올렸던 수천 톤에 달하는 자라 중 일부는 다시 호수로 돌려보내고 일부는 식사 개선에 쓰였다.

파장은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고무된 얼굴로 안주인 곁으로 다가갔다. 목소리를 낮췄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반 옥타브 높았다.

“사모님, 다녀왔습니다. 별장 관리는 잘 되고 있습니다. 작은 문제들은 다 해결했고요. 계속 확인하겠습니다.”

“좋아요. 혹시 모르니까 만반의 준비를 해요. 준비가 완벽할수록 나중에 마음이 편해요.”

전 사모는 한숨을 폭 쉬고는 미소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처음에 골드미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얼마나 걱정했는지. 우리 애가 너무 까다로워서, 어릴 땐 밥 먹다가도 쪼개진 쌀알이 있으면 다 골라냈잖아요. 갈수록 예뻐지고, 공부도 많이 하고, 회사까지 잘 키워나가니 난 갈수록 걱정되고…….”

“전칠 아가씨가 얼마나 훌륭한데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사모님.”

파장의 적절한 아부에 전 사모는 흡족한 듯 콧소리를 내고는 또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되어서 어떻게 딸 걱정을 안 해요. 솔직히, 애가 평범하게 캠브리지, 옥스퍼드 같은 데나 나와서 시집가는 그런 애였으면 까다로워도 별걱정 안 하지. 하지만 애가 얼마나 잘났어요. 그런데도 그냥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가야 한다고 생각해 봐요, 애는 둘째치고 내가 그 꼴은 절대로 못 보지.”

“능 선생님이 특별하긴 하죠.”

“특별하기만 해. 대단히 잘생기기까지 했지.”

전 사모가 생긋 웃으며 하는 말에 파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로서는 뭐라고 받아칠 말이 없었다. 다행히 전 사모의 격앙된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녀가 흡족해하고 있을 때 전 회장이 느긋한 걸음으로 나타났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전 사모와 달리 전 회장은 캐주얼한 복장이었고 티셔츠는 탄탄하고 실한 팔 근육을 드러낸 반팔이었다.

“운동했어요?”

전 사모는 익숙한 듯 남편을 바라봤다.

“음. 유 트레이너하고 복싱 스파링 좀 했지. 스트레스 해소.”

“심장도 안 좋은 사람이 무슨 스파링이에요.”

전 사모는 바가지를 긁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능연이 온다는데, 어서 회사 일이나 정리하고 푹 쉴 것이지. 그래야 이따 건강하게 만나죠.”

“기분이 안 좋은걸, 어째.”

전 회장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딸이 망할 놈을 데리고 온다는 걸 생각하기만 해도 패고 싶은걸. 심장이 쿡쿡 쑤셔서 살 수가 있어야지요. 지금처럼……. 음…….”

“그런 생각하지 말아요. 설사 애가 시집간다고 해도…….”

이야기를 늘어놓던 전 사모는 남편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는 걸 발견했다.

“의사…….”

전 회장이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이미 흠뻑 젖은 티셔츠 가슴 안쪽으로 지극히 훌륭한 근육이 드러났다.

전칠은 능연에게 기댄 채 객실 안에 있는 캐리어를 하나씩 소개하며 때때로 슬쩍 능연을 쓰다듬었다.

“이건 턱시도, 이건 트레이닝복, 슈트, 전통 의상, 사파리 슈트. 다 당신 거예요. 입고 싶은 거 골라요. 엄격하게 따질 것도 없고, 입기 싫은 건 안 입어도 돼요.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능연은 대수롭지 않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옷 같은 건 어차피 좋고 싫고 할 것도 없어서 전칠이 하라는 대로 할 생각이었다.

전칠은 느긋하고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능연하고 여행 나온 즐거움을 즐기면서 나중에는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구름까지 화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기내 전화기가 갑작스럽게 울렸다.

“아빠가…….”

수화기를 들고 저쪽에서 하는 말을 듣던 전칠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상해로 옮기라고 해요. 우리도 상해로 가요.”

전화 너머 목소리를 들은 능연이 바로 결정을 내렸다.

“헬기도 공항에 대기시켜요. 난 바로 병원에 연락할게요.”

속으로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 본 전칠은 마음이 살짝 진정되어서 능연을 살며시 안았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러 곳에 지시한 후에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고 능연을 바라봤다.

“준비할 기계는 없어요? 의사들은 다 자기가 익숙한 기구가 있던데.”

“가지고 왔어요.”

능연이 객실 뒤쪽 큰 검은 상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전칠은 눈에 띄지 않는 검은 상자가 자기 루이비통 캐리어 사이에 있는 걸 보고 멍하니 바라봤다.

동시에, 능연 앞에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튀어나왔다.

- 퀘스트: 몸을 날려 사람을 구해라.

- 퀘스트 내용: 환자가 사망하기 전에 병원 수술실에 도착할 것

- 퀘스트 보상: 고급 보물 상자

- 시스템, 고급 보물 상자 내용이 뭐지?

때가 때인 만큼, 능연의 물음은 매우 적극적이고 직접적이었다. 시스템은 대답 없이 침묵했다.

- 보물 상자 내용을 알아야 다음 판단을 할 수 있어.

능연은 시스템 화면을 매우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시스템이 부르르 떨리더니 화려한 서적이 서서히 드러났다. 서적이 허공에서 스스로 열리더니 안의 글씨가 드러났다.

- 100% 성공하는 수술: 아무리 어려운 수술도, 이론적 성공률이 있다면 100% 성공함

능연은 그 글귀를 두 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사인 그는 일반인보다 그 말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알았다.

단순히 100% 성공하는 수술이 아니었다. 이 책으로 이론 수술을 검증할 수 있다면 더더욱 대단한 일이었다. 한때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뇌 이식’의 문제는 단순히 이론 문제가 아니었다. 실현할 실력 장벽이 문제였고, 수십 명이 모여서 초특급 수술을 진행한다고 해도 마지막에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야말로 운에 달린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검증 기회는 너무나 희박했다. 이런 류의 실험적인 수술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너무나 희박했다. 신청해서 진행하기까지 막대한 시간이 들고, 한 번 실패하면 두 번째 기회가 생길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 그래서 이론적 성공률만 있으면 100% 성공한다는 수술은 시험 수술, 혹은 선봉 수술에서 크나큰 의미를 지닌다.

“능연, 아빠 아무 일도 없겠죠?”

해야 할 일을 마친 전칠은 비행기가 방향을 튼 후에 오히려 갈수록 걱정되기 시작해서 긴장한 얼굴로 능연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손을 흔들어 시스템을 끈 능연은 전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100% 문제없어요.”

장인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하는 건 분명 비이성적인 일이다. 그러나 전칠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자 능연의 이성도 여지없이 흔들렸다.

“상황이 어떤지, 계속 팔로우해요. 의사와 계속 연락하면서 실시간 확인하는 게 좋아요. 또, 혹시 수술이 필요하면 반드시 내가 할 수 있게 해줘요.”

능연은 진지하게 전칠에게 요구했다. 의사 생활을 해오면서 보호자들이 마음 변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서 그가 만나온 부유한 가정 혹은 엘리트 집안 사람들은 생사와 관련된 상황이 닥치면 항상 냉정을 유지하며 환자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전칠은 즉시 수화기를 들고 다시 연락하기 시작했다. 곧 수화기 너머에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전칠은 눈살을 찌푸린 채 잠시 듣고 있다가, 객실에 사람들을 내보내고 스피커로 전환했다.

남자 하나 여자 하나가 중국어와 영어로 토론하고 있었고, 중간에 쉴 새 없이 다른 사람도 끼어들었다. 사람들은 전 회장을 어디에서, 누가 치료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점으로 싸웠다.

능연이 처음 제안한 방안에 대해서, 사람들은 각각 더 가까운 도시, 홍콩, 서울, 도쿄 같은 제안을 했다. 선택지로 나온 의료팀은 더 많았고, 모두가 합당한 근거가 있었다.

전씨 가문 홈닥터는 전 회장이 쓰러진 주요 원인을 대동맥 파열로 판단했고, 대동맥 파열은 한 시간 지연될 때마다 사망률이 상승하는 매우 위험한 질환이지만, 전 회장의 제트기는 최대 속도로 시속 1,200㎞로 날아갈 수 있으니 상해에서 도쿄까지 날아가는 거리와 딱 맞아떨어진다. 즉시 항로를 조절하면 오히려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에 거리는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의료팀이 맡을지는, 의료진이든 의료진이 아니든 저마다 타당한 근거로 자신의 판단을 이야기했고, 지금 거론된 모든 이름은 하나같이 명성이 자자한 대가로, 수 시간 비행거리 안에서는 혈관 외과에서 찾을 수 있는 최적의 후보라고 할 수 있었다.

잠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능연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능연입니다. 의견 하나 내겠습니다.”

진행되던 전화 회의가 뚝 끊기더니,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전칠, 능 선생이 듣고 있다는 이야기는 안 했잖아……. 능 선생, 능 선생 생각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심장외과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 중 하나인 것, 저희도 압니다. 리스트에 선생님 이름도 많았고요. 하지만, 선생님과 전칠의 관계가 선생님의 의학적 판단에 영향을 줄까 걱정입니다.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가장 적합한 의사를 찾고 싶은 거라서…….

“다른 의사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상해로 가시길 바랍니다.”

능연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저는 50분만 있으면 상해 시내 병원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전 회장님이 도착하면 수술 전 준비를 마치고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이죠. 장담하는데, 회장님이 제가 있는 수술실에 들어오기만 하면 살릴 수 있습니다.”

조금 술렁이던 수화기 너머가 전화가 끊어진 듯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능연이야 알 바 아니고 잠시 기다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의사가 도착한 후에, 상황을 보고 수술을 이어서 할지 말지 정하셔도 됩니다. 제 생각엔, 이 방법이 현재로서는 전 회장님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안입니다.”

- 알겠어요. 능연의 말대로 하죠.

능연의 지극히 자신감 넘치는 말을 들은 전 사모는 더는 주저하지 않고 결정 내렸다. 그녀의 사고 회로는 매우 명확하게 돌아갔다. 실력으로도 능연은 지금 기내에 있는 홈닥터보다 월등했다. 신뢰도로 따져도 능연은 전화 회의에 참여한 가족 구성원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능연이 두 번이나 정중하게 제안하자 전 사모도 더는 주저하지 않았다.

전칠이야 더더욱 능연을 신뢰하니 바로 입을 열었다.

“이쪽으로는 능 선생의 건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각 부서 모두 다 함께 협력해서 상해 병원과 수술실을 확보해 주길 바라요.”

전화 너머에서 전 사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문제가 생기면 바로 나, 혹은 황 집사한테 연락해요. 전칠한테 연락해도 괜찮아요. 20분 후에 다시 모여 확인합시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었던 의사, 능 선생 말대로 그분들도 상해에서 백 서포트할 수 있도록 계속 연락해봐요. 유비무환이라잖아요. 능 선생, 다른 건 준비할 것 없나요?

“상해 병원에 어시할 의사, 스크럽 간호사를 요청해 주세요. 반드시 경험 많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재도 다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교체할 인공혈관은 많이 준비해 두셔야 합니다. 우리 팀도 출발했습니다. 의료 이송 전용기로 움직일 겁니다.”

능연이 그렇게 말하며 전칠을 바라보자 전칠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해 볼게요.”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긴말 없이 전칠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고는 패드를 꺼내서 금세 집중하며 읽어내려갔다.

전화 회의를 끝낸 전칠은 또 전화를 걸어서 세부 내용을 확인했다. 전화 한 통으로 지시하고 결과만 기다리면 되는 평소와 다른 상황이었고, 그 누구의 작은 실수, 지체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바탕 상황을 확인하고 능연을 되돌아본 전칠은 순간 마음 놓이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지친 듯이 능연 곁으로 다시 돌아가서 기댈 곳을 찾으려는 듯이 어깨에 기댔다. 그녀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능연의 패드로 향했다. 이런 때 뭘 읽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패드 액정은 매우 밝았고, 능연도 감추려는 생각이 없어서 힐끔 바라본 전칠은 왼쪽 상단에 적힌 PDF 문서의 제목을 쉽게 발견했다.

<급성 대동맥 파열 개선 수술 스텝>

“강 주임님, 출발하시죠.”

오렌지색 제복을 입은 이송 요원이 수술실 복도까지 나타나서 이제 막 옷을 차려입은 운화병원 심장외과 강 주임 일행을 맞이했다.

“시간 충분합니다, 충분해.”

강 주임은 헐떡거리면서 조금 뿌듯한 마음으로 따라갔다. 이렇게 눈에 띄는 제복을 입은 이송원에게 끌려가는 방식이라니, 매우 필요한 의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하원정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부럽고 시기 질투하고 미워할지까지 상상이 되었다. 무시하고, 마뜩잖고, 또 불만 가득한 표정이.

물론 능 선생의 콜이라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당당한 심장외과 주임이 아무에게나 불려 다닌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헬기에서 내려 공무 항공기로 갈아탄 강 주임은 슬슬 긴장됐다.

“환자 상황은?”

강 주임은 아래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초기 판단은 대동맥 파열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30분 일찍 병원에 도착할 겁니다.”

비행기엔 연문빈과 마연린도 함께였다. 그들은 최대한 모든 방면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었다. 수술에 참여할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한 건 알지만, 보조 작업은 뼈에 새겨질 정도로 익숙했다.

운화병원 심장외과 일인자인 강 주임은 국내 순위에는 들지 못하지만, 그건 집도의 순위고 어시일 때는 이론적으로 어느 팀에서도 모시지 못하는 절대 강자이다.

환자가 대동맥 파열이라는 말을 들은 강 주임은 조금 침착해졌다.

“위험하긴 해도 병원에 일찍 도착했으니 생존율이 7, 80은 되겠군. 능 선생이 수술한다면……. 음? 환자가 우리보다 30분 일찍 병원에 도착한다고? 그럼 누가 어시하는데?”

“상해 현지 의사요. 동광병원 심장외과입니다.”

연문빈이 고개를 들고 일부러 강 주임의 표정을 살피고는 싱긋 웃어 보였다.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

“동광 심장외과……는 그저 그런데. 최선은 아니야.”

“능 선생은 수술실만 필요했을 테니까요.”

강 주임이 입을 삐죽이며 하는 말에 연문빈이 대답하자 마연린도 덧붙였다.

“그리고 어시도요.”

“나랑 능 선생이랑 손발 맞는 것만큼 동광이 맞을 수 있나. 그런 건 동광의 실력으로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강 주임은 마음을 가다듬고 가슴을 활짝 폈다. 연문빈과 마연린은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곧 착륙합니다.”

체격이 건장한 스튜어드가 통지하고는 연문빈에게 음료를 가져다주며 나직이 말을 꺼냈다.

“아까 푸시업 하는 거 봤습니다. 그래서 단백질 쉐이크 좀 가지고 왔어요.”

“음, 고마워요.”

연문빈은 싱긋 웃어 보이며 굵직한 팔뚝을 내밀고는 단백질 쉐이크를 단숨에 비웠다. 마연린은 전혀 부럽지 않은 표정으로 직접 일어나서 바로 향했다. 아름다운 스튜어디스에게 음료를 받아서 단숨에 비우고는 근처 좌석에 앉아서 벨트를 맸다.

공무 항공기는 중대형 여객기의 속도를 훌쩍 넘는 속도로 착륙했다. 강 주임과 사람들은 재빨리 비행기에서 내렸다. 헬리콥터로 갈아타려는데 다른 공무기가 착륙했다가 즉시 역추진 장치를 가동해 짧은 거리를 이동하자 활주로 옆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달려가는 게 보였다.

“같이 가는 거 같은데?”

자주 출장 수술 가는 연문빈은 비행기만 보고도 그런 것 같아서 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의료 이송 회사 책임자에게 연락했다. 잠시 후 전화가 들어오자 연문빈은 ‘음음’ 대답하고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조금 묘한 표정으로 강 주임과 마연린을 바라봤다.

“누군지 절대로 못 맞출걸요.”

“너무 대단해서, 아니면 너무 아니라서요?”

마연린은 매우 침착한 상태였다. 연문빈은 그래도 매우 매우 낮은 확률로 서드 어시 정도는 할 수 있다면 마연린은 매우 매우 낮은 확률에서 매우 매우 낮은 확률뿐이었다. 그러니 침착할 수밖에 없었다.

연문빈이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굳이 말하자면 대단하긴 하지.”

“응?”

“위가우, 기억나지? 그 왜, 겁나 잘난 척하고, 뭔가 음침해 보이는 키 엄청 큰 심장외과 의사. 나중엔 능 선생이랑 한 번 해보겠다는 듯이 간 절제도 했잖아. 위가우가 적 원사님 팀이랑 같이 왔대.”

연문빈이 혀를 쯧쯧 차며 핸드폰을 빙빙 돌렸다.

“적 원사님 팀이라는 게, 적 원사님도 오셨단 말인가?”

강 주임이 바로 묻는 말에 연문빈이 입을 삐죽였다.

“당연히 계시죠.”

“헉.”

강 주임은 고층 빌딩을 처음 본 시골쥐처럼 다리에 힘이 풀려서 놀라 숨을 들이켰다.

원사 자리까지 오르는 의사는 어느 진료과 의사든 월등히 뛰어난 사람이고, 강 주임은 그런 서열에 있는 의사 앞에서 당연히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전칠 씨 집안에서 모셔온 거겠죠.”

“그 정도 집안이나 되니까 움직인 거지. 그럼 능 선생이 수술할지, 그 팀에서 수술할지 모르겠군.”

마연린이 대충 짐작해서 하는 말에 강 주임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대답했다.

“우리보다 늦게 도착했으니까, 병원까지 가는 데 40분 더 걸리겠네요. 씻고 옷 갈아입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체외 순환 딱 끝냈을 때지.”

강 주임이 연문빈의 말을 잘랐다. 그러나 연문빈은 매우 자신 넘치는 모습이었다.

“생각 있으면 능 선생에게 맡기겠죠.”

“왜?”

바로 되물은 강 주임은 짜증스러운 듯이 말을 이었다.

“적 원사도 동원했는데, 외국 대가들은 못 움직이겠어? 홍콩 이화영 선생도 있고. 적 원사보다 더 유명하고 훨씬 젊은데. 게다가 돈이라면 얼마든지 내놓을 텐데.”

“벌써 오고 있답니다.”

연문빈의 말에 강 주임은 ‘아’ 소리를 내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는 눈빛으로 연문빈을 바라봤다.

“그래도 다 필요 없어요. 우리 능 선생이 최고니까요. 제가 심장외과 수술을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봐 온 수술 중에 능 선생 기술은 절대로 탑 오브 탑입니다. 이화영 선생님, 적 원사님…… 정말로 두 분 수술을 능 선생 수술이랑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화영 선생님이 훨씬 젊다고 해도, 곧 예순이에요. 다른 건 둘째치고, 집중력만 해도 같은 수준이 아니라고요!”

연문빈이 자신 있게 하는 말에 강 주임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심장외과에 너무 오래 있었다.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젊은 시절에 적 원사는 이미 업계 내 대가였고, 이화영은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다년간 능동적, 수동적으로 들어오는 소식은 모두 그들의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는 소식뿐이었다. 그리고 적 원사와 이화영 중에 누가 더 강한지 같은 건 외부에서나 떠드는 문제이지, 업계 의사들은 아는 게 많을수록 고려할 측면이 더 많아서 오히려 확실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

지금 능연을 이런 두 사람과 나란히 놓고는 갑자기 삼자 택일하라니. 누군가 자문해왔다면 강 주임은 분명 누구를 고르든 다 훌륭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씨 가문을 생각하면 갑자기 망설여졌다.

“집도의로 딱 한 사람밖에 못 골라요. 주임님 수술을 맡긴다면 누구한테 맡기실 거예요?”

연문빈의 목소리가 바벨처럼 딱딱하게 휙 날아와 꽂혔다. 강 주임은 멈칫하고는 진짜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실력이 비슷하다면 젊은 사람이 낫겠죠.”

상해 현지 의료 이송 회사 의사가 같은 헬리콥터에 타고 있다가,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느냐 하는 이런 문제로 자주 갈등하는 상황을 떠올리고는 불쑥 한마디 했다.

강 주임은 순간 매우 일리 있다고 생각하다가 이내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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