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화병원.
응급의학과는 명절 분위기였다.
오늘 여원은 놀랍게도 치마를 입었다. 하얀 가운 안에 입었지만, 치맛자락은 보였다. 연분홍 치마로 발랄하고 깜찍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게다가 몸에서 은근한 인삼 향이 느껴졌다.
마연린은 오늘도 슈트와 구두 차림이었다. 아내가 사준 옷, 명품이었다. 비뇨기과는 돈을 잘 버니까. 따지고 보면 운화병원에서 꽤 부러움을 사는 의사였다. 다른 사람들은 또 마누라 가방 사줘야 한다고 고민할 때, 아내의 보답을 받는 건 마연린뿐이었다. 뭐, 몸을 써야 하는 게 좀 그렇지만.
주 선생은 구기자차를 타고 있었다. 그의 머그컵엔 구기자 외에도 녹용, 당귀, 인삼이 들어 있었다. 양약 의사가 한약을 즐겨 먹었다.
연문빈은 하얀 가운 안에 하얀 쫄 민소매를 즐겨 입었다. 새로 들어온 간호사가 있으면 가운을 걷어서 근육 잡힌 팔뚝을 과시했다. 그러나 개뿔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진료과에 솔로는 연문빈 하나였다.
병원에 경사가 생기면 제약회사 직원이 바로 달려와 알랑거렸다. 황무사는 성공한 큰 태감처럼 기름기 가득한 머리카락에 반질반질한 얼굴로 달려와 능연을 불렀다.
“능 선생님, 승진 축하합니다. 아이고, 이제 능 주임님이라고 불러야죠.”
사실 황무사는 이미 능 주임이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오늘은 일부러 더 크게 외친 것이었다.
능연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저 아래 눈에 띄지 않는 여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능 교수라고 불러도 돼요.”
연문빈과 마연린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고 여원을 바라봤다. 암튼 아부 하나 끝내주게 하는 녀석이었다.
“운화대에 초빙되셨어요? 축하합니다. 겹경사네요.”
황무사는 바로 알아들었다. 요즘 부속 병원은 다 대학 아래 있었고, 그 타이틀을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의사는 교수 호칭을 주임 호칭보다 더 고급스럽게 여겼다.
“그렇죠. 우리 능 주임님은 원래 진작부터 파격적으로 교수가 될 자격이 있었는걸요.”
연문빈이 냉큼 하는 말에 마연린도 뒤질세라 덧붙였다.
“무 원장님이 예전부터 승낙한 일이에요. 이번에 드디어 못 박았죠. 이제 명실상부 능 교수입니다.”
이 정도 칭찬은 진작에 했었던 좌자전은 착실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온몸의 털이 다 주뼛 설 정도로 뿌듯해진 곽종군은 자애로운 얼굴로 능연을 바라봤다. 진료과 수간호사는 대견스러운 표정이었고, 간호사들도 미소가 가득했다.
오로지 당사자인 능연만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일에 별 관심 없는 능연은 황무사와 요즘 필요한 자재와 약품을 확인한 후에 수술하러 가버렸다.
단숨에 수술 세 건을 마친 후에야 오늘도 충실했다고 생각하며 수술실에서 나왔더니, 기다리는 제약회사 직원과 의사가 더 많아졌다.
“능 교수, 축하해.”
“능 주임님, 축하드려요.”
여기저기서 찾아온 사람들이 앞다퉈 존재감을 드러내며 인사했다.
요즘 병원 상황에서 주임 자리에 오르면 과거 급제한 서생과 마찬가지로, 일부러 제 무덤 파지 않는 한 보통은 은퇴까지 안정적으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능연의 나이로, 운화병원을 떠나지 않는다면 지금 주임과 부주임을 모두 배웅할 수 있다. 아무런 공적인 요인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임으로 승진한 능연의 시간은 매우 길고, 긴 세월 동료로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제약회사 직원들은 더욱더 격렬히 반응했다. 근육 있는 사람은 근육으로, 목소리 큰 사람은 목소리로, 다리가 긴 사람은 긴 다리로 표시했다.
몰려온 사람이 너무 많아지자 좌자전은 큰 휴게실을 꾸며서 간단한 다과회를 열었다. 간식 조금,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음료를 준비해서 인사말을 많이 한 사람을 위한 휴식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능연은 미소를 유지한 채 휴게실 중간에 서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멋진 표정으로 화답했다. 이런 자리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자리가 많이 생기는 능연은 엄마가 참정해서 알려준 포즈를 취해 보였다.
창밖에 저 멀리서 다가오는 비행기가 보였다. 능연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전칠이었다.
쿵.
쿵쿵.
쿵쿵쿵.
창밖에서 소리가 들리자, 근처에 있던 의사가 뒤돌아보고는 바로 고함쳤다.
“아이고, 의료 분쟁이 아니고 환자가 깃발을 보냈네!”
의사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 순위에 깃발은 3등 안에 들었고, 사람들은 우르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몰려들었다.
아래층에 놀랍게도 보디가드 20명이 깃발을 들고 나타났다. 붉은 바탕에 금테, 금빛 글자가 적힌 커다란 깃발이었다.
그리고 금 막대기. 순금, 999였다.
깃발은 두 사람이 들어야 할 크기였다.
이런 구경엔 사람이 빠지지 않았고, 병원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는 곳이었다. 다리가 부러진 환자도 깁스를 치켜들고 아래로 내려와 구경했다.
“엄청난 깃발이네.”
“그거 들었어? 어떤 의사가 부자 목숨을 살려냈대. 그 부자가 딸을 그 의사한테 시집보낸다던데?”
“맞아. 사실이야. 그 부자의 딸이 만날 헬기 타고 날아온다고.”
“능 선생 이야기잖아요. 능 선생, 오늘 주임으로 승진했대요.”
모든 이가 떠들어댈 때, 전칠도 능연 곁으로 다가갔다.
“축하해요. 아빠가 감사 인사한다고 오셨어요.”
전칠은 방글방글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능연 일행을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곽 주임 역시 신이 나서 뒤따라갔다. 홍보과에서도 나서서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들고 찍고, 삼각대를 세우고 찍고, 리모콘으로 찍고……. 깃발 받는 일은 매우 중요하니까.
가까이 다가간 능연은 한눈에 전국립을 발견했다. 옷을 갖춰 입고 서 있는 모습은 처음이라 순간 몰라볼 뻔했다. 매우 기세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금빛 찬란한 깃발에 글귀 두 줄이 적혀 있었다.
의자인심(醫者仁心: 의원의 자비로운 마음).
대의능연.
깃발 옆에는 작은 글씨로 ‘전국립 드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깃발은 아빠 선물이고, 나도 선물 준비했어요.”
전칠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5번 버튼을 길게 눌렀다. 응급센터 건물 옆 큰 광장에 있던 검은 천이 걷어졌다. 그리고 햇살 아래, 오색찬란한 트럭이 나타났다.
트럭 정면은 매우 힘 있게 느껴졌다.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크고 네모반듯한 것이 트럭에 코가 크게 달린 것 같았다. 지붕은 맨 앞쪽에 있었고, 앞부분에 크롬 도금된 장식이 세 줄 그려져 있었다. 불타는 듯한 붉은 칠과 어우러져서 매우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연통같이 생긴 배기파이프 3개가 차 지붕에 쭉 뻗어 있어서 몹시 강인해 보였다.
능연은 전칠이 설명할 것도 없이 트럭의 원 모델을 알아봤다.
“옵티머스.”
“피터 빌트 389예요. 꽤 유명한 모델이죠. 원하는 차량을 뭐든 견인할 수 있어요. 당신이 좋아하는 의료용 트럭을 끌어도 되고, 놀이용 트럭을 끌어도 되고. 트랜스포머 옵티머스가 바로 이 차를 모델로…….”
전칠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능연에게 갑자기 끌어안겨서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능연에게 살포시 기댔다.
트랜스포머 앞에 젊은 남녀가 꼭 끌어안고 있었다.
곽 주임은 내 아들이 드디어 시집가는구나, 하고 눈가를 문질렀다.
“젠장, 미치겠네.”
마연린이 중얼거렸다.
“능 선생도 짝이 있는데 이렇게 잘생긴 내가 아직 솔로라니.”
연문빈은 투덜댔고, 이어 여원이 한마디했다.
“나 차 바퀴 뒤에 있어. 밀지 마…….”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