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11화 (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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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별

[K.C. 4231년 6월 27일]

사실 셀리온 평원의 미아가 되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뱀파이어라면 굶어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강력한 몬스터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스탐과 루시리아. 이 두 뱀파이어는 성공적으로 구출되는데 이어 전화위복으로 트윈 헤드 오우거의 피까지 획득했다. 그래서 77섹터는 물론이고 소년단 전체에서 아예 영웅이 되어 있었다.

트윈 헤드 오우거. 그 이름만으로도 산천초목이 떨 정도로 강력한 괴물이다. 그런데 놈의 피를 채혈기에 가득 채워놨으니 우승은 이미 바렛의 77섹터가 따논 당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몬스터사냥이 끝난 지 일주일후, 77섹터의 모두들은 뱀파이어 로드의 호출에 의해 캄에덴의 심장부인 혈왕성에 초청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휴우, 이제 다 왔군. 저기가 바로 혈왕성(Castle of the Blood Lord)이란다. 캄에덴의 심장부지. 정말 대단하지 않냐?”

굳이 바렛의 설명이 있지 않더라도 그를 따라온 77섹터의 뱀파이어들은 충분히 흥분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바로 캄에덴에서 손꼽히는 최강의 전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으니까.

“대, 대단하네.”

“하아…….”

혈왕성의 전경을 바라보던 스탐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말로만 들었지, 혈왕성이 이토록 대단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거대하고 새까만 바탕의 성. 그 꼭대기에는 붉은 탑(Red Tower)은 오벨리스크(Obelisk)였다.

오벨리스크는 원래 암흑신 벨리우드을 숭배하는 의미로 세워진 기념비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축성기술과 흑마술의 발달에 따라 의미가 변했다.

캄에덴의 전략적 요충지에 세워진 성에는 모두 오벨리스크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런 성이 바로 난공불락의 철옹성이라는, 다크 포트리스(Dark Fortress)였다. 다크 포트리스는 축성 이래로 단 한번도 점령당한 전례가 없었다.

스탐은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아, 캄에덴의 모든 실력자들이 한데 모여 있다는 혈왕성이라! 정말 기대가 되는군.’

스탐을 비롯한 77섹터의 소년들이 성문을 통과했다. 잠시 후, 깔끔하게 정돈된 혈왕성의 바닥이 그들을 맞이했다.

“아니, 저들은….”

하지만 이내 그 군악대들의 뒤편에 있는 무수히 많은 뱀파이어들을 본 소년 뱀파이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놀랐다.

그들은 눈앞에는 수많은 뱀파이어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다. 얼마나 위압감이 강했는지 바렛이 고개를 축 늘어뜨릴 정도였다.

그들은 평범한 뱀파이어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입은 갑옷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들은 두 개의 무리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갑옷에 각각 1과 3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1전단과, 3전단이로군.’

스탐은 묵묵히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가 알기론 그 두전단은 캄에덴군의 최정예전단이었다. 특히 제1전단은 캄에덴 최고의 전투 집단으로 구성원 반수가 서열1만 위안이다. 말이 만 위권 안이지, 캄에덴은 정규군만 10만이다. 엄청난 엘리트들만 모인 것이다.

저벅저벅.

얼마나 걸었을까. 많은 뱀파이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플로센77섹터뱀파이어들의 걸음은 멈추었다.

“미천한 뱀파이어, 바렛 스트라이드가 뱀파이어 로드를 뵙습니다.!”

걸음을 멈춘 바렛이 캄에덴의 왕좌에 앉아있는 존재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그의 뒤를 따르고 있던 77섹터의 뱀파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렛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앞에는 검붉은 머리를 가진 사내가 있었다.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지는 그는 바로 캄에덴의 54대 뱀파이어 로드 게르모네츠 헬크로스였다. 무기계 흑마술, 다크 웨폰의 창시자며 전신이라 불리우는 캄에덴의 제왕.

그는 강대한 위압감을 뿜어내며 자신을 향해 부복한 바렛을 응시했다. 그리곤 잔잔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하하. 자네는 그 유명한 스트라이드 가의 자제로군. 실력으로만 따지면 1전단에도 무난히 든다던데…….”

“아, 아닙니다. 저 같은 약자가 어찌 1전단 같은 위대한 곳에 들 수 있겠습니까. 가당치도 않습니다.”

바렛은 상대가 뱀파이어 로드라서 그런지 최대한의 겸손을 떨었다. 게르모네츠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너무 자신을 과소평가할 필요 없다네. 뭐, 교관 직이 괜찮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어서 피의 파티를 시작해야겠군. 바크, 준비는 되었겠지?”

게르모네츠가 기쁜 얼굴로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검은 장발의 뱀파이어에게 물었다.

“예 로드. 뱀파이어 소년단이 채워온 채혈기의 대부분을 시중에 풀어놓았습니다. 나머지는 오늘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게르모네츠의 입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천하의 뱀파이어 로드가 평정을 잃다니.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인가보다.

“자, 그럼 오래간만에 파티를 시작하겠다. 모두 연회장안으로 들어오도록! 오늘은 한껏 미쳐보는 거다!”

말을 마친 게르모네츠는 태양이 져가는 것을 보며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그렇게 섬뜩해 보일 수 없었다.

“멋진 밤을 위해서 말이야…큭큭크.”

“이야아~!”

“이렇게 대단할 수가…….”

“저, 정말이지 환상적이야. 이거 꿈 아니지?”

스탐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혈왕성의 연회장에 들어온 그들은 너나할 것 없이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호화란 호화는 이곳에 다 모인 것 같군.”

스탐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각종 각기 다른 보석들이 깔린 연회장 바닥은 캄에덴의 국기, 피위의 검은손(Blood Under Dark hand)의 형상을 그리고 있었다. 벽에는 캄에덴을 이끈 역대 뱀파이어 로드 오십 여명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초대왕 캄 크리스토퍼의 초상화는 다른 것보다 몇 배나 크게 그려져 있었다.

“호화로운 것은 비단 바닥이나 벽뿐이 아니야.”

스탐은 또 다른 진풍경에 넋이 나가 있었다. 연회장의 중앙에는 원형의 분수대가 있었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새빨간 피는 보는 것만으로도 피에 대한 갈증을 가중시켰다.

또 분수대의 중앙에는 동상이 있었다. 암흑신 벨리우드가 빛의신 아르티시앙의 동상이었다. 벨리우드가 아르티시앙의 잘린 머리의 머리카락을 한손에 움켜쥔 채 몸뚱아리를 짓밟고 있었다. 벨리우드는 아나만디움, 아르티시앙은 미스릴로 각각 만들어져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금속이 각각 뱀파이어와 엘프들이 신봉하고 있는 두 신들이 창조했다고 전해 내려지는 금속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스탐은 문득 고개를 올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은 비교적 평범했다. 샹들리에 몇 개가 다였다. 다만, 천장전체에 걸쳐서 수많은 구멍이 뚫려져 있다는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될 뿐이었다. 스탐은 그 구멍의 정체를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스탐 뭐해?”

스탐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루시리아를 보고선 웃으며 말했다.

“아, 그냥 이 연회장에 대해 나름대로의 평가를 하고 있었지.”

“그래애~?”

스탐은 루시리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저것 봐. 모두들 춤을 추고 있어.”

“춤…?”

스탐이 눈을 동그랗게 뜬채 루시리아가 가리키고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그곳에는  각각의 뱀파이어 남녀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률에 맞추어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스탐은 금세 흥분한 얼굴로 계속 뱀파이어들이 춤추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일단 그들의 춤은 약간은 단조로워 보였다.

척, 척, 척, 다다다~

“하아…….”

문득, 스탐은 자신도 그들처럼 춤을 추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왠지 모를 남녀 한쌍의 춤사위가 그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었다.

“스탐. 그럼 우리도 춤을 춰 보는 게 어떨까? 호호홋.”

그런 스탐의 내심을 짐작이라도 했을까? 루시리아가 스탐에게 다가오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스탐은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얼굴이 붉게 물든 그녀는 분명 도수 높은 블러디 와인을 마신 상태였다.

“이, 이거 왜 이래. 이 아가씨야…….”

스탐은 말을 더듬었다.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자신을 유혹하는 루시리아의 모습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솔직히 스탐은 그 모습이 별로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든 뱀파이어든간에 미녀(?)의 유혹을 뿌리치는 남자는 없었다. 계속해서 엄습해오는 루시리아를 못 배겨낸 스탐은 마지못해 그녀와 춤을 추게 되었다.

“후웃, 우리 귀여운 자기야. 춤추는게 부끄러운거야? 순진하긴 호호호…. 내가 가르쳐줄께 단순하니까 별로 어렵진 않을거야. 자, 이렇게…. 옳지, 계속 그렇게 해.”

말을 마친 루시리아는 능숙한 몸놀림으로 스탐을 리드해나갔다. 조종당한다는 느낌이 들자 스탐은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그리 나쁘진 않았다. 이전과는 다른 루시리아의 모습에 당황하긴 했지만,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 않던가.

“뚜리리~뚜르르라~!!”

연회장의 배경음악은 평온했던 처음과는 달리 음률이 점점 열정적으로 변해갔다. 춤을 추고 있던 뱀파이어들도 그 변화를 따라 점점 빠르게 움직이며 땀을 흘리며 시작했다. 머지 않아 연회장의 춤사위는 절정에 치달았다.

스르르~

갑자기 연회장의 천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곳곳이 검은색으로 도색되어있어 엄숙하기만 했던 연회장안의 분위기는 피로 물들었다.

쏴아아아~!!

피가 천장의 구멍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춤을 추고 있던 뱀파이어들이 순식간에 피분수를 뒤집어썼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 피에 흥겨워 소리쳤다. 뿜어지기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그 피 분수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끝없이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크하하하!!”

춤을 추던 뱀파이어들이 광소를 터뜨리며 자신의 파트너들에게 붙어 묻은 피를 서로 핥아주고 있었다. 그들은 피에 대한 욕구과 성적인 욕구가 한데 어우러져 쾌락의 극치를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명은 그렇지 않았다.

‘으아…. 이, 이건 도대체 뭐야?!’

말로만 들어봤지 피의 파티를 처음 겪는 스탐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인간의 기억과 정서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그였기에 그로서는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차라리 블러디 와인을 마시고 취했다면 모를까.

“스탐, 피가 달콤해.  흐응…….”

“루, 루시리아!”

루시리아가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마구 핥으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피로 목욕한 그녀의 전신은 다른 뱀파이어가 볼땐 무척이나 아름다웠겠으나 지금의 스탐에게는 한 마리의 무서운 악녀처럼 보일 뿐이었다.

“할짝, 할짝. 흐으응.”

루시리아도 제정신이 아닌 듯 연신 신음성을 흘리며 피를 핥았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의 모든 뱀파이어는 이성을 잃었다. 성(性)과 피(血)라는 두 쾌락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래, 나도 이젠 뱀파이어잖아? 그렇게 따진다고 달라질건 하나도 없단 말이다!’

이렇게 다짐하듯 속으로 외친 스탐은 끈질기게 잡고 있던 이성이라는 끈을 집어졌다. 그리곤 루시리아의 피부에 묻은 피를 게걸스럽게 핥아대기 시작했다. 극도의 쾌락이 스탐을 엄습해왔다.

연회장안은 말 그대로 피의 파티(Bloody Party)였다.

게르모네츠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지금 연회장안에서는 한참 핏빛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한참 전에 그곳을 나왔다. 뱀파이어 로드인 그도 피의 파티를 벌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일국의 군주가 쾌락에 몸을 맡길 수는 없는 법이지. 안 그런가, 바라크만?”

“크큭, 그렇습니다.”

바라크만이라 불린 그는 뱀파이어들 중에서도 비정상적으로 큰 52킷(=270cm)의 장신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걸맞은 육중한 갑옷. 두 손에 들려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할버드, 게일 그레네이더. 그것은 바라크만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는 캄에덴의 5대 특수부대중에서 뱀파이어 로드의 호위를 담당하고 있는 다크나이트였다. 그것도 그들의 우두머리인 다크 나이트 마스터(Dark Knight Master)말이다. 항상 뱀파이어 로드의 안위를 지켜야만 하는 게 다크 나이트 마스터로서 해야 할 도리였다.

“그나저나, 아이슬로너와의 찬탈전이 얼마 남지 않았군. 어서 준비를 해야겠어.”

게르모네츠는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한 사내를 떠올렸다. 그는 야망이 큰 남자였다. 그리고 그 야망을 받쳐줄만한 실력도 충분했다. 다른 뱀파이어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자신의 뒤를 이어 55대 뱀파이어 로드의 자리에 오를 유력한 인물이었다.

“후후후, 어쩌면 이 자리를 오래 지키진 못할 것 같군.”

게르모네츠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응? 너는…….”

한 소년이 벽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분명히 뱀파이어였다. 하지만 혈왕성은 꼬맹이가 기웃거릴만한 곳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77섹터의 일원인가보군.”

말을 마친 게르모네츠는 소년의 앞에 앉아 웃으며 물었다.

“얘야, 파티는 놔두고 왜 여기 앉아 있는 거니?”

“…….”

소년은 말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게르모네츠가 물었다.

“이름이 뭐니?”

“…카이사르. 카이사르 레발트.”

“멋진 이름이구나. 그런데 여기에는 왜 앉아 있는 거니?”

“파티가 싫어서요.”

카이사르라는 소년의 말에 게르모네츠는 염두를 짚었다. 그 말이 연회장안에서 벌어지는 피의 파티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그는 대번에 알아챘다.

“큭.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피의 파티를 무섭다고 못하다니, 겁쟁이 같으니라고.”

지켜보고 있던 바라크만이 비아냥거렸다. 그래서였을까? 카이사르가 갑자기 소리쳤다.

“나는 겁쟁이가 아니에요! 단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럴 뿐이에요!”

“큭, 당돌한 꼬맹이로군.”

카이사르가 패기 있게 소리치자 바라크만이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게르모네츠는 보았다. 소년의 얼굴에 맺혀있는 순수한 눈빛을. 그것은 여태껏 그 어떤 뱀파이어도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게르모네츠는 카이사르를 보며 직감했다. 저 나약한 소년이 훗날 캄에덴의 미래를 책임일 인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K.C. 4239년 2월 12일]

벌써 8년이 지났다. 그 짧고도 긴 시간동안 그가 훈련하는 H조에선 많은 것이 변했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바로 스탐과 루시리아의 관계였다. 8년전의 몬스터 사냥 이후 둘의 관계는 급진전되었다. 아예 대놓고 껴안을 정도의 연인사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른 뱀파이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아 하아…. 오늘도 힘든 하루군….”

언제나 똑같은 훈련의 연속이었다. 스탐은 훈련이 끝나고 숙소에 들어오자 곧장 몸을 큰 대자로 뻗었다. 그리고선 상념에 빠졌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뱀파이어 소년단에 들어온 지 16년이 지났다. 그는 이곳에 처음 입단했을 때보다 더욱 더 커졌다. 아마 성장이 빨라서 대충 10년만 지나면 성인에 육박할 듯했다.

“휘유~, 정말 달콤한 휴식시간이로군. 그나저나 빨리 이거나 마저 끝내야겠어.”

스탐은 어디서 구했는지 날이 선 조각칼로 조그만 나무조각을 깎고 있었다. 그가 깎고 있는 나무는 점차 반태극의 형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거라면 분명히 알아보겠지? 나도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니깐 말이야….”

그것은 바로 세현이 죽은 자신에게 선물하려 했던 목걸이였다.

루시리아가 세현의 환생이라면 이 목걸이를 기억 못할 리가 없었다. 비록 지금 그가 만든 게 섬세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조잡하지도 않았다.

나뭇조각을 다 만든 스탐은 루시리아에게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를 불렀다.

“루시리아.”

“응? 왜 부르니?”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스탐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루시리아는 그에게 있어 사랑스럽기만 했다. 루시리아도 그렇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거 말이야…. 내가 만들었는데 너 가질래?”

“이거…?”

루시리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스탐이 건네준 그 반태극모양의 나무 조각을 받아들었다. 스탐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목걸이를 만져보던 루시리아가 스탐을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스탐!”

“으, 응.”

루시리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스탐은 두 손을 부르르 떨며 감격에 젖었다. 가슴은 두근두근 거리고 얼굴은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스탐은 잠시 후, 자신이 큰 착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너 오늘이 내 생일이란 거 어떻게 알았니? 헤헤헤…, 아무튼 정말 고마워.”

“아…….”

예상했던 바와는 다른 이유로 기뻐하면서 자신의 볼에 키스하는 그녀였다. 스탐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몰라서 물어보았다.

“혹시 그 목걸이 어디서 본 적 없어?”

“어디서 본 적 없냐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루시리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스탐에게 반문할 뿐이었다. 스탐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쉴 뿐이었다.

“아, 아냐…. 내가 착각했나봐….”

“?”

루시리아는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스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겠다는 듯 이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스탐. 오늘 내 생일이니깐 말이야….”

“응?”

“나랑 같이 술 마시지 않을래?”

루시리아가 홍조를 띄우며 그렇게 제안했다. 스탐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녀는 술과는 인연이 멀었다. 하지만 8년 전 혈왕성에서 마신 블러디와인을 마시고 블러드 샤워를 즐긴 이후 엄청난 애주가가 돼 버렸다.

스탐은 딜레마에 빠졌다. 술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사실 주류는 스탐이나 루시리아같은 소년단의 뱀파이어들이 구하는기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루시리아가 피식 웃으며 해답을 제시했다.

“아까 전, 교관님께 부탁해봤는데 응해주시더라.”

“교관이?”

“응. 이왕 마실 거면 자기랑 같이 마시자는 소리도 하던데?”

“뭐, 칼자루는 교관이 쥐고 있는데 그래야겠지. 뭐, 아무튼 그렇게 되면 걸릴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겠는 걸?”

스탐이 피식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원칙적으로야 어린 뱀파이어들에게 음주는 금지되어 있다. 그렇지만 교관 주도하의 음주는 예외였다. 어떤 문제가 벌어져도 책임은 교관에게 넘어가는 거니깐.

“우리도 가면 안 될까?”

“그래 루시리아. 우리도 같이 마시자. 응?”

주위에 있던 H조원들 일부가 루시리아의 말을 듣고 있다가 그녀에게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루시리아는 어렵잖게 그들의 부탁에 응했다.

“훗. 내가 의리 없게 너희들만 빼놓고 단 둘이서만 가는 줄 아니? 다 데리고 가니깐 걱정 마.”

“저, 정말?”

“진짜 고마워 루시리아. 8년 전에 그 맛이 아직도 혀 끝에 감도는데….”

H조의 뱀파이어들은 그렇게 왁자지껄 떠들면서 조만간 술을 마시게 된다는 상상에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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