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13화 (1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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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별

달각, 달각, 저벅저벅저벅.

“저것들이 다 움직이는 것들이란 말인가….”

“하아…! 대단하군, 대단해!”

“그러게 말입니다. 과연 이들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한 교관의 감탄사에 바렛이 자신의 턱에 손을 올리며 난색을 표했다. 지금 그의 눈앞에 보이는 진풍경은 냉정한 성격의 교관인 그마저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위압적인 광경이었다.

“꽤나 똑똑한 놈들이로군. 하지만 과연 우리들보다 똑똑할까? 사격준비.”

바렛은 병사들에게 손을 치켜들었다. 금세 활을 짊어진 궁병들이 화살을 재었다.

“바렛 교관…. 우리가 과연 이들을 막을 수 있겠소?”

한 교관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어떻게든 지원군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지금은 정신을 곤두세워서 저들의 파상공세를 막는 수밖에 없습니다.”

말을 마친 바렛은 사격준비를 명했다. 병사들의 활시위가 후퇴했다.그리고 잠시 후, 바렛의 고함성이 크게 울려퍼졌다.

“발사!”

쉐쉐쉐에에엑!!

하프 뱀파이어들로 이루어진 궁수 60여명이 활을 쏘자 수십 발의 화살이 선두의 스켈레톤들에게 쇄도했다. 스켈레톤은 방패를 치켜들어 화살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했다.

파파파팍!!!

하지만 방패가 완전한 방어 막은 되지 못했다. 상당수의 스켈레톤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일어서지 못했다. 화살촉을 언데드들에게 직방이라는 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르티시앙의 금속이라 일컫어지는 은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캄에덴군에게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언데드들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는지 금세 해골궁수들이 성벽위의 하프뱀파이어궁수들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읍!”

“허억!”

일단의 병사들이 비명성과 함게 밖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해골궁수들도 은제화살에 의해 금방 처단 당했다.

“리, 리치다!”

갑자기 하프뱀파이어들이 동요했다. 그들의 육안으로 리치들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모두들 동요하지 마라! 병사들은 저 리치를 겨냥해서 다시 은 화살을 날리도록!”

바렛은 병사들에게 리치의 저격을 명했다. 지휘관의 침착함 때문이었을까. 금세 은화살이 리치들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리치들의 마법이 발동하기 시작한 때였다.

“매직실드!”

언데드들 진영에서 생성된 방어막이 하프 뱀파이어들이 쏜 은화살을 모조리 튕겨내었다. 하프 뱀파이어들이 경악했다.

“저, 저럴 수가!”

“맙소사…!”

“진정해!”

바렛은 패닉 상태가 돼 버린 하프뱀파이어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공성전에서 방어측이 공격측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비참했다.

화살공격을 가볍게 막아낸 리치들이 공격 마법을 퍼부었다.

“매직 미사일!”

“파이어 볼!”

파파파파팟!

리치들이 쏘아대는 마법의 세례란 정말 극악무도했다. 하늘을 뒤덮은 그들의 마법은 성벽위에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크아악!”

“크허억!”

“사, 살려줘!”

성벽 위는 아비규환이었다.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에 쏟아지고 있었다.

성벽 위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언데드들이 알테이 가드를 둘러싼 채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었다.

“모두들 진정해라!”

“이 상황에서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성벽 위는 리치들의 마법 때문에 엄두도 못내고 밖에선 1만에 달하는 언데드들이 성을 점령하기 위해 몰려오고 있습니다!”

바렛은 생각 같아선 건방진 하프 뱀파이어의 목을 베어 군기를 바로 잡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병사 하나 베어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바렛 자신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해결사는 이때 등장했다.

“뭐가 고민이세요, 저희가 있잖아요?”

“아…!”

바렛은 루시리아의 말에 감탄사를 토했다. 확실히 리치들의 힘은 강력하다. 하지만 루시리아의 말대로 여기엔 어리지만 강한 뱀파이어들이 있었다.

“어때요? 60명만 추려서 리치들에게 한방 먹이는 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리치들을 제압하면 궁수들로 언데드들을 공격하는 거지요.”

“좋은 생각이야.”

바렛은 루시리아의 제안을 승낙했다. 금세 그녀를 비롯한 뱀파이어 60명이 선발되었다. 루시리아를 이들의 대장으로 내세워 성벽위로 몰래 올라가도록 지시했다.

“자, 가자고!”

루시리아는 리치기습조로 선발된 뱀파이어들에게 그렇게 말하며 빠르지만 조심스럽게 성벽계단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벽위로 올라와 모두 조심스럽게 엎드렸다. 리치들은 이들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듯했다. 어느새 모두의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루시리아는 기습공격을 시작했다.

파바앙~ 펑!

“뭐냐?!”

리치가 소리쳤다. 낌새를 차린 다른 리치들이 즉시 성벽위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성벽위에는 수십 명의 뱀파이어들이 자신들에게 손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사!”

파파파파파앙!!

수십 발의 흑마탄이 리치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리치들이 황급하게 몸을 뺐다.

루시리아는 한명의 흑마술사로서 리치를 쓰러뜨려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녀는 리치들 중 가장 뒤처지고 있는 한명을 목표로 잡고 자신이 알고 있는 흑마술중 가장 강력한 것을 준비했다.

“다크 애로우의 매운 맛이나 봐라.”

루시리아는 그 리치에게 두 손을 길게 뻗었다. 그러자 두 손에서 묵빛의 화살이 빗살같이 날아가 리치의 등판에 정확히 적중했다.

팍!

“으으읍!”

다크 애로우에 제대로 적중당한 리치가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다. 그 자리에서 붉은 화염을 토해내곤 한줌의 재가 되었다. 완전히 소멸당한 것이다.

“야호! 잡았다!”

루시리아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 광경을 지켜본 다른 뱀파이어들도 덩덜아 소리쳤다.

“역시 루시리아야!”

“대단해!”

루시리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친구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한 리치가 그녀를 뚫어질 듯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쉐쉐쉐에엑! 파파팍!

리치들이 후퇴하자 궁수들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금세 언데드들이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자아, 조금만 더 분발해라 잘하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지원군이 온다! 그러니 어서 공격의 끈을 늦추지 마라!”

바렛이 소리를 지르며 열심히 싸우고 있는 뱀파이어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았다.

“후문에서 듀라한들이 성문을 부수고 있습니다!”

바렛이 한숨을 쉬었다. 언데드들은 수없이 많았다. 하루 종일 싸워도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하압!”

파파팍!

스탐의 주먹에 언데드 하나가 박살났다. 하지만 스탐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는지 곳곳을 쏘다니며 언데드들을 처치하고 있었다.

“음?”

어느새 스탐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그곳에는 성벽으로 뛰어 들어온 스켈레톤들이 리치들을 상대하고 있던 루시리아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푸악!

“꺅!”

루시리아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느새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스켈레톤들은 그녀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서 검을 들었다. 스탐이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이야앗!”

파파파팍! 퍼억!

스탐은 일단 한명의 스켈레톤을 발로 차서 쓰러뜨렸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놈들에겐 흑마기를 극도로 주입한 두 주먹을 휘둘러 뼈째로 부쉈다.

퍼퍼퍽! 퍼퍽!

“루시리아, 어디 다친데 없어?”

하지만 방금 전 똑똑히 봤는데 다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스탐은 그녀의 출혈부위를 지혈했다.

“내가 조금만 빨랐으면 다치지 않았을 텐데…미안해.”

“미안하기는…‥.”

루시리아가 옅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냉랭하게만 대해왔던 루시리아가 오랜만에 밝은 얼굴을 보여주자 스탐도 덩달아 웃었다.

“그나저나 이곳도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은데…. 리치들의 마법도 더 이상 안보이고 말이야….”

스탐의 말대로 언제부턴가 리치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나가 고갈되어서 그런 걸까? 뭐,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이 없으면 오히려 더 좋으니까.

하지만 그때, 스탐의 귀리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큰일 났습니다. 후문이 부서졌습니다!”

“뭐야?”

바렛이 놀라 소리치는 게 보였다. 그는 뱀파이어들에게 외쳤다.

“후문으로 갈 녀석 없나?”

“제가 가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저도!”

다수의 뱀파이어들이 손을 들었다. 스탐도 그들 중 하나였다. 사실 스탐이 후문으로 가고 싶은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말로만 듣던 데스나이트와 싸워보기 위해서였다.

“스탐…….”

하지만 루시리아는 당황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스탐은 그녀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며 한 마디 한 뒤 사라졌다.

“미안해, 루시리아.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잘 막고 있어.”

“잘 막고 있으라고?”

루시리아는 스탐이 한 말을 중얼거리며 후문으로 뛰어가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루시리아의 표정이 차츰 찌푸려졌다. 그녀는 어느새 시선을 성벽바깥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리치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르르르.

부서진 후문부근에서 소수의 듀라한을 위시한 언데드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궁수들은 사격 준비!”

일렬로 서있던 궁수들이 활시위를 당겼다. 날카로운 은화살촉은 점점 좁혀오고 있는 언데드들에게로 겨누어져 있었다.

“발사!”

쉐쉐에에! 파파파팍!

앞줄의 언데드들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하지만 다른 언데드들과는 달리 듀라한은 멀쩡했다.

“흑마탄 발사!”

하지만 궁수들의 뒤편에 있던 백여 명에 달하는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손을 뻗어 흑마탄을 쏘았다.

파파파팡~ 퍼퍼퍼펑!

미리 교전 전에 듀라한을 집중공격 하라는 지시를 내렸었기에 수백발의 흑마탄중 거의 반수가 듀라한에게 날아갔다.

털썩 털썩!

과연 흑마탄의 위력은 명불허전이었다. 서너 명의 듀라한들이 근거리에서 수십 발의 흑마탄에 맞고선 흉측하게 부서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돌격!”

“이야아아!”

“죽어라, 이놈들!”

뱀파이어 무리들이 동시에 언데드들에게 뛰어 들어가 그대로 육탄전을 치르기 시작했다.

파팍! 퍼퍼퍽! 투카앙!

“죽어!”

“이 언데드 놈들!”

은으로 만든 무기를 휘두르는 하프 뱀파이어든, 흑마기를 뿜으며 육탄전 벌이고 있는 뱀파이어 소년들이든 죽을 힘을 다해 싸우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조합은 조화를 이루어 수많은 언데드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전세는 누군가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팟!

“으억!”

한 병사가 비명을 질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첫 희생자였다. 그를 죽인 장본인은 바로 죽음의 기운을 흩뿌리고 있는 흑색의 기사였다.

“데, 데스나이트!”

정찰조가 보았다는 게 헛소리는 아니었나보다. 문제의 데스나이트는 듀라한의 호위를 등에 업은 채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뱀파이어들이 술렁거렸다.

“데스나이트다!”

“제길! 놈이 이곳에…….”

“으어헉!”

곳곳에 고함성과 비명이 난무했다. 그 중심에는 데스나이트가 이끄는 다수의 듀라한들이었다. 한기가 서린 데스 블레이드(Death Blade)가 번쩍일 때마다 뱀파이어들이 쓰러져 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듀라한들의 블런트헤드(Blunt Head)도 만만치 않았다.

퍼퍽!

“으악!”

한 뱀파이어가 듀라한의 블런트 헤드에 뒤통수를 정통으로 얻어맞고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듀라한의 블런트헤드는 쇳덩어리만큼 무거웠기 때문에 사실상 철퇴나 다름없었다.

“죽어라 뱀파이어들.”

데스나이트가 데스 블레이드로 마구 베어나갔다. 뱀파이어들은 거의 괴멸직전이었다. 이제 이들을 쓸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로만 보였다.

“저 녀석이 바로 데스나이트로군!”

스탐을 비롯한 뱀파이어들이 나타난 건 그때였다. 스탐은 대뜸 데스나이트를 보자마자 그에게 달려들어 발차기를 날렸다.

카앙!

데스나이트가 자신의 일격을 간단히 막아내자 스탐은 그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데스나이트, 역시 대단한 놈이군. 내 상대로 손색이 없겠어!”

“네놈은 누구냐?”

“내 이름은 스탐 베르크. 데스나이트 네놈을 처치하기 위해 온 사나이다!”

말을 마친 스탐은 곧장 공격할 준비를 했다. 데스나이트가 통성명을 한다고는 생각할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의 데스나이트는 그의 예상을 깼다.

“내이름은 칼시온이다.”

“호오, 마음에 들었다, 자식. 죽을 준비나 해라.”

칼시온의 대답에 스탐은 희열에 잠겨 승부욕을 불태웠다. 이래서 강자와의 대결이란 가슴이 설레는가보다.

“좋아, 둘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싸워보자!”

말을 마친 스탐은 곧장 칼시온에게 달려들었다. 칼시온은 묵묵히 검을 쥐어 그의 제안에 응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놀랍게도 그들의 싸움에는 양측 어느 누구도 끼어들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데스나이트와 뱀파이어 소년은 누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동시에 격돌했다.

투악~ 팍! 파파팍!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묵직한 기운들이 섬광을 가르며 서로 맞부딪혔다. 흑마기와 데스 블레이드가 말이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데스 블레이드는 배틀러의 다크 오러와 동급이다. 따라서 스탐이 데스나이트를 이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초급 데스나이트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 녀석, 역시 초급이었군.’

스탐도 데스나이트에 대한 지식이 어느정도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자 기뻐했다. 바렛에게서 j조의 뱀파이어 다섯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데스나이트가 초급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만약 데스나이트가 중상급이었다면 j조는 아예 전멸했을 것이다. 또 이렇게 무턱대고 덤벼들지도 않았을 테고.

후우욱!

흑마기를 머금은 스탐의 주먹이 사정없이 칼시온의 갑옷에 쇄도했다. 하지만 칼시온은 데스 블레이드를 세워 피해를 최소화했다. 스탐에게 칼시온의 반격이 다가왔다.

휘이익~!

순발력이 뛰어난 스탐의 몸놀림 덕분에 데스 블레이드는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파방!

스탐이 쏜 흑마탄이 한방 날아와 칼시온의 갑옷에 적중했다. 별타른 타격을 입진 않았다. 하기야 아무리 초급이라곤 하나  흑마탄 따위로 타격을 입힌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발상이다.

파파팟! 타다닷!

스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칼시온의 빈틈이 보이면 어김없이 흑마기가 서린 주먹을 꽂아 넣었다. 칼시온도 지지 않겠다는 듯  데스 블레이드를 마구 휘둘러대었다. 하지만 서로 실력이 비슷하다보니 결정타를 날리진 못하고 있었다.

파악!

하지만 승자는 존재하는 법. 스탐의 일격은 성공하고야 말았다. 한없이 단단해 보이는 갑옷이었지만 그의 주먹은 깊숙히 파고들었다. 데스나이트는 갑옷자체가 육체나 다름없기 때문에 타격이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스탐은 실수를 했다.

파앗!

“으윽!”

한방을 먹였다고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스탐은 칼시온이 휘두른 검에 팔을 깊숙이 베였다. 순식간에 피가 솟구쳤다.

“크으윽.”

엄청난 고통에 스탐이 얼굴을 찌푸렸다. 칼시온은 주저하지 않고 스탐에게 데스 블레이드를 재차 날렸다. 위기일발이었다.

타앗.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스탐은 자신에게 날아온 데스 블레이드를 타고 올라왔다.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스탐은 그 상태로 칼시온의 머리에 돌려차기를 꽂아 넣었다.

퍼어억!

“!”

털석!

스탐이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치명상을 입은 칼시온도 그에게 입은 타격에 비틀거렸다. 칼시온은 힘겹게 데스 블레이드로 그를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스탐은 몸을 굴려 가까스로 데스 블레이드를 피했다.

“하아, 하아…….”

서로 대치하면서 한동안의 신경전이 오갔다. 스탐은 흥분에 겨워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채 칼시온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놈은 정말 강했다. 물론 그보다 강한 상대는 숱하게 봐왔다. 하지만 이렇게 목숨을 걸고 일대일로 싸운 상대는 칼시온이 처음이었다.

“제법이로군. 하지만 네놈은 내 상대가 되질 못한다.”

“뭐, 뭐야?”

스탐은 잠시 흥분했지만 도발이라고 판단하자 평정을 되찾았다. 그런 스탐을 한참 바라보던 칼시온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두머리인 그의 부재로 언데드들은 뱀파이어들과의 싸움으로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이곳을 점령하기는 글렀군. 후퇴.”

말을 마친 칼시온은 자신의 검을 높이 쳐들었다. 잠시 후, 언데드들이 자신들이 들어왔었던 후문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에 만나자 스탐 베르크.”

“어, 어이…. 이봐!”

스탐은 당황한 표정으로 칼시온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칼시온은 휘하의 듀라한들과 함께 후문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마, 막아라!”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병사들이 덤벼들었다. 데스나이트를 잡으면 엄청난 포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욕심은 화를 불렀다.

푸악, 파박!

“크억!”

“으아악!”

순식간에 그들을 막은 뱀파이어들이 나가떨어졌다.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데스나이트와 듀라한들이 뭉치면 일개 뱀파이어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사라졌군….”

스탐은 저 멀리서 사라져만가는 언데드들의 무리를 바라보며 주저앉았다. 드디어 전투가 끝난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스탐은 여기가 단지 후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다, 루시리아!”

그제야 그녀를 떠올린 스탐은 반대편의 정문을 향해 급히 뛰어갔다. 그가 도착했을 무렵엔 전투가 끝난 상태였다.

“우리 섹터의 애들도 많이 죽었나보네…….”

스탐이 한숨을 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의 시체들을 보니 침울했다. 물론, 같은 조의 동료들이 한명도 죽지 않았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들 중 루시리아가 보이지 않았다.

“교관님!”

스탐은 즉시 바렛에게로 다가갔다. 바렛은 기쁜 얼굴로 스탐을 맞이하였다.

“소식 들었다. 네가 데스나이트를 붙잡아둔 덕분에 후문의 언데드들을 몰아낼 수 있었다면서? 역시 넌 대단한 녀석이야!”

“별로 한 일도 없는걸요, 뭐.”

스탐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루시리아는 어디 있죠?”

“루시리아 말이야? 저쪽에서 카이사르가 부축하고 있어.”

“부축이라뇨?”

“이번 전투에서 루시리아는 리치한명을 제거하는 공적을 세웠지. 뭐, 덕분에 놈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리치에 의해 죽을 뻔하기도 했지만.”

“죽을뻔해요?”

뜻밖의 말에 깜짝 놀란 스탐이었다. 그는 곧장 바렛이 가리킨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 곳에서 스탐은 루시리아와 그녀를 부축하고 있는 카이사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탐…….”

“루시리아!”

스탐은 고개를 저으며 루시리아를 응시했다.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루시리아의 끔찍한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상태는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에 가까울 정도였다. 치렁치렁하고 윤기있는 흑발은 오랫동안 리치들의 마법으로 부분이 망가졌다. 옷은 찢겨져 거의 반나체가 돼 있었고,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스탐이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루, 루시리아…….”

“일단 목숨에 큰 위험은 없을 거래. 하지만 이 상처가 단기간 내에 완치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혈왕성의 왕립 병원에 가서 반년정도는 요양해야 한대.”

카이사르의 말에 스탐이 고개를 푹 숙였다. 반년동안이나 그녀를 못 보게 되다니. 하지만 그녀의 상처를 치료할만한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하지만 루시리아의 상처는 육체적인 것뿐만이 아니야.”

카이사르가 묵묵히 스탐에게 그렇게 말했다. 소심한 그가 오늘따라 유난히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스탐은 카이사르가 화가 났을 때만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쉬었다.

“스탐. 너…왜 그랬어?”

“왜 그랬냐니? 루시리아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길래…….”

“무슨 소리를 듣기는.”

그때 루시리아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스탐은 그녀가 깨어나자 밝은 얼굴로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루, 루시리아! 괜찮아?”

“괜찮기는. 나는 네가 왜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지 의문인걸.”

“무, 무슨 소리야? 우린 사랑하는 사이잖아? 도대체 왜…….”

짝!

스탐은 자신의 뺨이 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볼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뒤이어 그녀가 한 말에 비하면 그 정도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네 그 잘난 변명은 전생의 연인에게나 하시지 그래? 그녀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면서? 미안하지만 난 네 첫사랑의 환생 따위가 아냐!”

“!”

스탐은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10일전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나쁜 자식.”

“…….”

스탐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루시리아가 그 자리를 뜨기 위해 일어섰다. 하지만 이내 휘청거렸다. 옆에 있던 카이사르가 그런 그녀를 부축하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조심해 루시리아.”

고개를 숙인채 카이사르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던 루시리아를 힐끗 본 스탐은 속으로 오열했다. 왜 그랬냐.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세현이를 슬프게 만든것도 모자라 루시리아까지…이 한심한 자식. 넌 정말 함부로 사랑할 자격이 없어, 제기랄!’

스탐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신의 한심함을 탓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카이사르에 부축되어 가는 루시리아의 뺨 아래로 투명한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알테이 가드 방어전은 뱀파이어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수많은 뱀파이어들이 죽었지만 시간이 이들의 죽음을 잊혀지게 만들 것이다.

소년단으로 귀환한 스탐은 왕립 병원에 입원한 루시리아가 완치되어 되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일년이 지나도 루시리아는 돌아오질 않았다. 바렛은 그녀가 몸이 완치된 후 자신에게 다른 소년단으로 옮겨달라는 요청에 하는 수없이 옮겨주었다고 한다.

바렛의 그 말에 스탐은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것이 그의 두 번째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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