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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숙적과의 만남
[K.C. 4241년 4월 5일]
“큭큭큭…, 오랜만이다 바렛.”
이곳은 바렛의 집무실. 여기엔 바렛 이외의 한 사내가 그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덩치가 무척이나 커 신장이 46킷(=230cm)은 될 것 같은 사내는 생긴 것만큼이나 흉포한 기운을 줄기차게 뿜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 흰자에는 붉은 핏줄이 줄기줄기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엔 무슨 볼일이 있어서 왔지, 지온?”
드물게 바렛의 얼굴에 냉기가 감돌았다. 그는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 우뚝 서있는 사내를 응시하였다.
지온이라고 불린 사내는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었다. 소년단 시절에도 그 악명이 자자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쩐 일에서인지 소년단을 졸업한 이후 그는 소년단의 교관 자리를 자청해서 맡았다. 사실 바렛이 교관직을 맡게 된 이유도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였다.
“크크큭! 형이 동생 하는 일이 잘 되는지 오는 것도 문제가 되는 거냐?”
지온은 특유의 괴팍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바렛에게 그렇게 대충 둘러대었다. 하지만 바렛은 그가 단순히 그런 목적으로 오지 않았다는 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바렛은 대뜸 지온에게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혹시 교관 교체법 때문에 이 자리에 온 거냐?”
“큭큭큭큭큭!”
“맞나보군. 빌어먹을 놈.”
바렛은 자신의 형이라는 작자에게 대놓고 욕설을 퍼부었다. 교관교체법이란 한 섹터에서 담당교관의 임기가 20년을 넘을 때, 다른 교관이 원한다면 강제교체가 가능한 법이다. 바렛은 77섹터를 맡은 지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강체교체를 당해도 할말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했다.
“하필이면 우리 섹터를 선택한 이유가 뭐지?”
지온은 조용히 한손을 치켜들어 바렛의 질문에 간단히 대답해주었다.
“크크큭, 그런 건 왜 묻는 거지? 나야 당연히 베르크 가의 애송이를 보고 싶어서다.”
“역시 그랬었군.”
바렛이 한숨을 쉬었다. 제아무리 스탐이라도 이 괴물같은 뱀파이어놈에겐 무척이나 고생할 것이다.
“절차가 좀 까다로우니까 기다리고 있어.”
바렛은 지온에게 그렇게 말하곤 교관 교체서라고 적힌 서류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숨을 쉬었는데, 머지않아 77섹터의 뱀파이어들과 이별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착잡했다.
“에휴, 이별인가? 정든 놈들이 많은데 말이야. 특히나 스탐 녀석은…….”
지금은 뱀파이어들이 잠을 자는 낮 시간대였다. 모든 이들이 잠을 자고 있었지만, 스탐은 여전히 눈을 뜨고 있었다.
루시리아와 헤어진지도 2년이 지났다. 뱀파이어에겐 그리 길다고 할 순 없는 세월이다. 하지만 스탐에게는 길게만 느껴졌다. 그만큼 그는 루시리아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세현의 환생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그러는 자신에 대한 한심함도 몰려와 온갖 감정으로 버무려져 혼란스러웠다.
땡 땡 땡!
그때 그의 귓가로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종은 77섹터의 뱀파이어들이 한참 수면을 취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덕분에 뱀파이어들은 단잠에서 깨어났다.
“야, 어서 일어나. 임시소집이야.”
“임시소집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지.?”
“몰라. 아무튼 간에 빨리 가자고.”
갑작스런 교관의 호출에 77섹터의 뱀파이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이지?”
스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시간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 바렛이 한참 수면시간에 자신들을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잠시 후, 집합장에 뱀파이어들이 모두 모이자 바렛은 인원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보자…다모였군.”
인원점검은 금방 끝났다. 바렛은 눈으로만 봐도 77섹터원들의 수를 다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녀석은 뭐지?”
그러던 중, 스탐은 바렛의 옆에 있는 거구의 사내를 보고 흠칫했다. 그러기는 다른 뱀파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그 사내에게만 관심을 줄 수 없었다.
“일단 이렇게 일찍 모이게 해서 미안하다. 너희들을 지금 소집한 이유는 교관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 그럴 수가!”
바렛의 날벼락 같은 한마디에 뱀파이어들이 깜짝 놀랐다. 숨을 고른 바렛은 덧붙여 말했다.
“난 이미 이 77섹터를 맡은지 20년을 넘겼고 이 사내는 너희들을 담당할 새로운 교관이다.”
“뭐라고요? 떠난다니요!”
제일 먼저 고함성을 터뜨린 건 스탐이었다. 77섹터의 뱀파이어들 중에선 스탐이 바렛과 친분이 제일 두터웠기 때문이다. 바렛은 스탐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후훗, 스탐. 넌 언제 봐도 씩씩하구나.”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지 마시죠! 당신이 떠나는 건 제가 용서 못해요!”
“후후…….”
스탐은 그렇게 소리쳤지만 바렛은 스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가 당장 이별하는 건 아니잖나. 언젠간 만날 일이 있을 거야.”
말을 마친 바렛은 제자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곤 모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홀로 걸어 77섹터를 떠났다.
“크크큭. 그 자식, 갈려면 일찍 갈 것이지 괜히 그럴듯한 헛소리만 장황하게 처늘어놓는군.”
그것을 보고 있던 신임교관이 괴팍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마디 했다. 할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법. 그의 자극적인 발언에 침울해있던 77섹터 뱀파이어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신임교관에 대한 분노로 바뀌어져 버렸다.
“크크큭. 뭘 째려보고 있는 거야, 이 새끼들아? 죽고 싶냐?”
자신보다 한참 적은 꼬맹이들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자 신임교관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날카로운 손톱으로 가득한 손을 들이댔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또 바뀌었다.
“내 이름은 지온이다. 잘 알아둬라, 크크큭.”
지온이라고 자신을 밝힌 신임교관이 굵다란 손톱을 번뜩였다. 그걸 본 스탐이 이를 악물었다.
사실 뱀파이어를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순 없었다. 캄 크리스토퍼만 해도 36킷(=180cm)의 왜소한 체구였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대부분의 뱀파이어들은 체격의 크기와 강함은 비례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저놈을 어떻게 처치하면 좋을까?’
스탐은 이미 지온을 쓰러뜨릴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쓰러뜨리는지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잔인하게 팰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본 지온은 그저 허우대만 큰 나부랭이에 불과해 보였다. 사실 교관 중에서 서열 만 위권 안에 드는 뱀파이어는 바렛밖에 없었다. 스탐은 지온이 바렛보다 윗줄일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게 바로 지온을 만만하게 보는 이유였다. 자신은 예전에 바렛과 호각으로 싸운 적이 있었다. 물론 단순한 대련에 불과했지만 그가 내린 결론적인 계산은 이거였다. 자신은 충분히 지온을 때려잡을 수 있다.
“큭크크…, 이제 내 소개는 끝났고 수면시간도 끝났으니 이제부터 훈련을 해볼까나? 모두, 전속력으로 뛰어라! 크캬캬캬!!”
지온은 이곳의 교관으로 발령되자마자 훈련을 벌이기 시작했다. 연병장을 뛰어가는 지온을 본 스탐은 고개를 저었다. 저건 완전히 미치광이였다. 하는 말도 가관이었다.
“뒤에서 처진 놈들은 병신이 될 줄 알아라!”
“제기랄!”
뱀파이어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소년단의 교관들은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참 성장기의 뱀파이어들과 친해줄 수 없다. 하지만 저 지온이라는 교관은 오로지 채찍이었다.
“큭큭크, 등신같은 놈들 어서 빨리 못 따라와?”
“으으….”
욕설이 섞인 지온의 외침에 뱀파이어들은 지쳐 헉헉대면서도 젖 먹던 힘을 다해 지온을 쫓았다. 하지만 지온은 전속력으로 뛰는 모양인지 그들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저거 미친놈 아냐? 저 따위로 뛰는데 어떻게 따라잡아? 차라리 바렛 교관이 백배는 낫겠다.”
한 뱀파이어가 그렇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지온을 의식해서인지 목소리는 무척 작았다.
“헉, 헉…….”
잠시 후, 이들은 지온이 내린 극악의 연병장 완주를 마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또 다시 지온의 지옥 같은 훈련이 시작되었다.
“크크큭! 이런 한심해 빠진 새끼들, 퍼질러 앉아 있는 꼴을 봐라.”
퍼퍽!
“크윽“
“으억.”
지온의 묵직한 발이 서너 명의 뱀파이어들을 순식간에 두들겼다. 그들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맞은 부위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 광경은 얼핏 보아도 단순한 군기잡기가 아니었다. 그저 심심해서 때리는 것 같았다.
“…….”
스탐은 그런 지온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놈은 다른 뱀파이어들은 다 심심풀이로 걷어차고 때렸지만 자신은 털끝하나 손대지 않고 있었다. 스탐은 그 이유를 자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석했다. 물론 단단한 착각이었다.
‘훗, 하긴 무리도 아니지. 내 소문을 들었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내 친구들을 괴롭힌 이상 너는 죽은 목숨이야, 자식아.’
“훈련시작!”
지온의 본격적인 첫 훈련이 시작되었다. 일단 훈련하기에 앞서 그가 첫 시범동작을 보여주었다. 지온은 77섹터의 뱀파이어들에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투술을 가르쳐 주려 했다.
“크큭, 쉬우니까 눈감고도 할 게다. 못하면 병신이지. 오늘은 첫날이니 딱 1만회만 하지.”
하지만 말이야 쉽지 난생 처음 하는 그 동작을 그렇게 바꾸라는 게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다.
처음 뱀파이어들은 동작이 무척이나 엉성했다. 그래서 스탐을 제외한 모두가 지온의 주먹찜질을 받았다. 하지만 대충 1000번째가 넘어갈 무렵엔 그 동작이 점차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5000번째가 될 무렵에 지온의 눈에 거슬리는 뱀파이어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지온은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뱀파이어들을 훑어보았다. 실수하는 놈은 무조건 죽여 버릴 듯한 눈빛이었다.
“으아앗~!“
그때 누군가가 실수로 스텝이 엉켰다. 지온은 기다렸다는 듯 실실 웃으며 소리쳤다.
“훈련중지!”
그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온의 눈밖에 난 그는 곧 지온에게 정신없이 얻어맞기 시작했다.
“크큭, 이 멍청한 새끼! 감히 내 앞에서 그따위 추태를 부려? 죽을 줄 알아라!”
퍼퍼퍼퍽~!! 파팍!
“크으~ 자, 잘못했…커어억!”
그는 미처 변명할 겨를도 없이 지온의 손에 정신없이 구타당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보는 이들이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저, 저거 누가 말려봐….”
“그러게? 큰일 났어!”
그 참혹한 폭행현장을 보고 있던 그들이 웅성거렸다. 잘못하면 멀쩡한 뱀파이어 하나가 영락없는 병신이 될 판국이었다. 그때였다.
“말릴 필요까지야 있겠어? 아예 저 교관 놈을 반쯤 죽여 버리는 게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
“스탐!”
동료들이 깜짝 놀라 소리치는 것을 본 스탐은 짙은 미소를 내리깔았다. 교관에게 대놓고 그런 소리를 했으니까 당연했다. 하지만 곧 일어날 사건에 비하면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파방~!!!
스탐이 손에서 튀어나온 흑마탄에게 날아갔다.
“큭!”
하지만 지온은 눈치가 빨랐다. 그는 고개를 돌려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를 파악했다. 그러더니 흑마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덥썩!
스탐의 흑마탄은 커다란 지온의 손아귀안에 잡히고 말았다. 흑마탄은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했지만 이내 사라졌다. 지온이 광소하며 소리쳤다.
“큭큭큭, 어떤 애송이냐, 내손에 병신이 되고 싶어 안달난 놈이?”
저벅저벅.
지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탐이 걸어왔다.
“나다, 이 허우대만 멀쩡한 정신질환자 놈아.”
스탐은 얼굴에 만연의 미소를 가득 머금고 지온에게 도발을 걸었다. 그가 이성을 잃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에게 있어 정신 나간 황소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온은 오히려 그에게 반격을 가했다.
“정신질환자가 나쁜 건 아니다. 네놈 같은 미친놈을 때려잡으려면 정신질환자가 딱이니까. 큭캬캬!”
“뭐라고? 이 빌어먹을 새끼가!”
스탐은 욕설을 퍼부었지만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그 표정을 비추지 싫어서인지 스탐은 금세 지온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지온과 전면전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정면으로 붙어 질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생각지 않고 있었던 그다.
“이거나 먹어!”
곧바로 스탐이 자리를 박차고 지온에게 덤벼들었다. 물론 그의 양팔에는 새까만 흑마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일반뱀파이어들도 손쉽게 운용할 수 있다는 흑마기. 하지만 스탐의 흑마기는 평범한 성장기의 뱀파이어가 가진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2년 전의 사건 이후 스탐은 루시리아를 잊기 위해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언제 어느 때건 미친 듯이 훈련을 거듭하던 그는 결국 엄청난 성취를 얻은 것이다.
지온은 그 맹렬한 일격을 태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놈은 두 팔에 흑마기를 둘러 양팔을 교차했다.
콰쾅~!!
이내 둘에게서 일어난 격렬한 굉음이 연병장을 울렸다. 그 울림은 단순한 흑마기끼리의 충돌이 아니었다. 흡사 한줄기 천둥이 바닥에 곤두박질 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윽!”
먼저 뒤로 물러선 쪽은 지온이었다. 아마도 흑마기의 순수한 파괴력 면에서 밀린 것 같았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교관이나 되는 작자가 성장기의 소년 뱀파이어에게 밀리다니?
“뭐야, 별거 아니잖아!”
기고만장해진 스탐은 두 손에 흑마기를 최대한으로 밀집시켜 지온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도륙술(손톱으로 베는 것)보다 권각술에 능한 스탐의 무지막지한 주먹세례에 지온은 미처 반격도 해보지 못하고 고스란히 얻어맞고 있었다. 스탐보다 지온이 한참 더 큰 덩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푸하하! 이거 웃기는 놈이군! 역시 정신질환자는 어쩔 수 없는 건가?”
파팍!
스탐은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으며 계속해서 지온을 몰아붙였다. 그가 구석에 몰리게 되자 스탐은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위해 오른팔의 주먹에 흑마기를 집중했다.
“이거한방에 나가떨어져 버려!”
지온에게 달려든 스탐은 일단 그를 병신정도로만 만들기 위해 급소를 비켜 치려고 했다.
퍼어억!!
강력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멀리 있던 새들조차도 놀라 쏜살같이 달아날 정였다.
순간, 스탐은 지온을 병신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관폭행죄는 중죄였다. 지온이 자존심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으면 모르겠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면 정든 동료들과 이별해 몇 년 정도는 감옥에서 썩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자, 그럼 슬슬 그 잘난 교관의 몰골이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볼까나?’
스탐은 고개를 들어 지온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스탐의 얼굴에는 경악이라는 단어가 그 의미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말도 안돼!”
“큭큭큭! 웃기지도 않은 재롱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애송이.”
놀랍게도 지온은 티끌 하나 없이 멀쩡했다. 하지만 스탐은 놀라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퍽!
“크윽.”
스탐의 몸이 하늘을 붕 뜨더니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그는 곧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온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촤악!
지온의 손톱이 스탐을 할퀴었다. 흑마기를 잔뜩 끌어모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크으윽, 젠장.”
스탐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는 절망했다. 지온의 힘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싸우면서 절실히 느꼈다. 그는 자신보다 한참 위의 실력자였다.
‘젠장, 이 자식, 평범한 교관이 아니잖아!’
스탐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교관의 대부분은 서열 만 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 괴물은 그 안에 들고도 남을만한 실력이다. 어째서 이런 놈이 교관이란 말인가?
그런 스탐의 내심을 이해해서였을까? 지온이 말했다.
“크큭, 궁금한가보군. 난 아직 네놈에게 지온이라는 이름만 가르쳐줬을 뿐이다.”
“뭐라고?”
“잘 들어라. 내 이름은 지온 스트라이드다. 한 달 전 나에게 밀려 떠난 바렛이라는 놈의 형이지.”
“!”
그 말에 스탐은 물론이고 다른 뱀파이어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큭큭큭, 언제까지 넋을 잃고 있을 거냐? 이거 한방은 맞아야 정신을 차릴 것 같군.”
말을 마친 지온이 오른손에다 흑마기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모두들이 다시금 경악했다.
“저것은 다크오러(Dark Aura)?”
“마, 말도 안돼!”
많은 뱀파이어들이 놀랐지만 어느 누구보다 더 놀란 건 스탐이었다.
‘맙소사, 상대가 배틀러인지도 모르고 덤벼들었다니!’
이미 스탐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났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큭크크, 먹어랏!”
스탐의 눈앞으로 다크오러가 맺힌 지온의 주먹이 보였다. 그는 일단 맞서 싸웠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맞서 싸워야만 했다. 이 악질 교관은 자신이 기권을 한다고 해도 죽기직전까지 두들겨 팰게 당연하니까 말이다.
“젠장, 덤벼라!”
쿠앙!!
둘이 충돌함과 동시에 아까와 같은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차이점은 있었다.
“크으윽!”
스탐이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무릎을 꿇었다. 출혈이 심했다. 하지만 상대가 배틀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정도면 양호한 것이다. 스탐은 눈앞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지러웠다.
‘젠장…….’
털썩.
비틀거리던 스탐은 결국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크크큭, 제법이구나.”
지온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놀랍게도 지온의 가슴에는 시퍼런 주먹자국이 패어져 있었다.
“과연 내가 상대를 잘못 보진 않았군…크크크큭!”
쓰러져 있는 스탐을 보면서 지온은 크게 웃어젖혔다. 그러고 나서 숙소로 돌아갔다. 지온이 사라지자 소년 뱀파이어들이 스탐에게로 몰려들어 웅성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스탐은 그렇게 새로운 교관, 지온에 의해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하지만 그는 지레 기가 죽어버렸을 평범한 뱀파이어들과는 달랐다. 오히려 지온에 대한 반발심을 더욱 더 키워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