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16화 (1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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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숙적과의 만남

‘베아린?!’

베아린이라면 바로 12년 전, 트윈 헤드 오우거와의 전투가 끝나고 나서 자신과 루시리아를 죽이려고 했던 성직자였다. 사제라 불리는걸 보면 그동안 출세했나보다.

스탐은 음식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사실 그가 인간 세계로 가출해온 근본적인 이유가 쥬드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대화에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귀를 기울였다.

"아무튼 배가 출출한데 일단 앉아서 식사나 하도록 하지."

"네, 그러지요."

그들은 주문을 하고 값을 치른 뒤,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비록 인간의 말을 완벽하게 소화하진 못했지만 듣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

"과연 이번 계획이 성공할까요?"

한 기사가 조심스럽게 베아린에게 물었다. 아마도 주변을 살피는 것이 뭔가 중요한 일인 듯했다. 스탐은 더욱 호기심이 동했다. 도대체 무슨 계획이기에?

"성공할 수밖에 없고, 반드시 성공해야만 돼! 우리 교단에서 쳐둔 포위망이 얼마나 넓은데? 놈이 아무리 중급의 소드 마스터라고해도 반드시 죽을 거다! 내가 정말이지 그놈만 생각하면 아주 치가 떨린단 말이야! 놈은 우리 교단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죽여야 돼. 반드시……."

베아린이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중급의 소드 마스터라는 말에 스탐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그러던중, 베아린의 입에서 또 한명의 이름이 거론되자 스탐의 눈이 커졌다.

"쥬드 반 비크바스틴! 놈을 못 죽이면 난 살기를 포기해야 된다."

'쥬드가 목적이었군! 도대체 무슨 일 이길래?'

갑자기 베아린의 입에서 쥬드를 죽이겠다는 소리가 나오자 스탐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었다. 그가 어째서 한때의 동료인 베아린이 쥬드를 죽이려고 하는 걸까?

"걱정 마십시오, 사제님. 쥬드 놈은 반드시 제 손으로 죽일 테니까 말입니다."

한 기사가 자신감이 가득 넘치는 얼굴로 베아린을 응시했다. 그는 한참 전성기의 혈기왕성한 젊은이였다. 하지만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 평범한 기사는 아니었다.

"후후, 루젠트. 흥분하지 마라. 아무리 너라도 단독으로 녀석과 싸워 이길 수는 없으니까.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내가 제일 잘 안다. 놈은 이 크로프란 왕국 최고의 실력을 갖춘 소드 마스터이자 트윈 헤드 오우거 슬레이어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제님."

루젠트라고 불린 소드 마스터는 베아린에게 그렇게 말하고선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쥬드와의 싸움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트윈 헤드 오우거를 잡으러 갔을 때가 내 인생의 전성기였지. 놈들과 쥬드를 비롯한 원정대들의 전투는 정말 치열했지. 끝에는 트윈 헤드 오우거와 나를 비롯한 소수만 살아남아 최후의 혈전을 벌이고 있었지. 뱀파이어들이 나타난 건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네."

"그, 그게 사실이었습니까? 그냥 헛소문인줄로만 알았는데……."

"당연히 헛소문으로 치부됐겠지. 뱀파이어들은 거의 있는지도 의문이니까. 아무튼 역사상 트윈 헤드 오우거를 잡은 나라는 우리 크로프란 왕국이 최초일거야. 이 소식이 퍼졌을 때 주변국에선 그저 국가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한 유언비어라고 치부할 정도였으니까 말이지. 뭐, 대부분 믿지 않지만."

"그렇군요."

그들의 대화를 한참 듣고 있던 스탐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저 남은 스프를 긁어먹고는 이내 식당 밖을 나갔다.

‘지금 쥬드는 가리오츠 마을 인근의 오두막에서 수련중이다. 그리고 베아린은 그를 죽이려 한다. 이유는 권력투쟁으로 말미암은 암살이라고 했지…….’

스탐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쥬드가 현재 어떤 상황에 빠져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하하하, 생사를 같이한 자신의 동료까지 하찮은 권력 때문에 죽이려 하다니? 정말 더러운 놈들이야."

스탐은 이제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솔직히 말해 단지 같이 싸웠을 뿐인 그를 스탐이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스탐은 12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쥬드라는 인간이 마음에 들었다. 도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좋아, 결정했어. 지금 당장 가자!"

감정이 솟구쳐 오르자마자 스탐은 결정했다. 이미 그들의 대화에서 쥬드의 위치는 확실히 파악해놓은 상태였다.

그는 마을을 빠져나와 쥬드가 있는 곳으로 직행했다. 그리고는 숨이 가빠 오를 무렵에야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금세 그의 시야에는 상의를 벗은 채 검을 열심히 휘두르고 있는 쥬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쥬드!"

"웬 놈이냐?"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난생 처음 보는 풋내기 녀석이 나에게 반말을 하다니, 배짱 하나는 두둑하군. 그 용기는 내 검술로 보상해 주겠어."

다짜고짜 매서운 검이 스탐에게 날아왔다. 스탐은 일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일단은 그의 박자에 맞춰줘야 되겠다는 생각에 팔을 들었다.

카강!

"뭐야? 제정신이 아니…. 이것은?"

눈앞의 소년이 맨몸으로 덤벼들자 깜짝 놀란 쥬드는 검을 거두려했다. 하지만 그는 눈앞의 소년이 양팔에서 피워 올리고 있는 흑색의 마나를 보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너는!?"

"모르겠어? 예전에 너랑 같이 트윈 헤드 오우거를 잡았던 뱀파이어야. 스탐이라고 해."

"뭐, 뭐라고!?"

또 다시 놀란 쥬드는 스탐을 살펴보았다. 한참 상대의 이목구비를 살펴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검의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군.”

“그럴 거야. 넌 지금 내게 묻고 싶은 게 무척 많을 테니까.”

“그럼 한 가지 물을게. 도대체 뱀파이어인 네가 여기 왜 있는 거지?"

아직 상황판단이 안 되어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던 쥬드가 그렇게 말했다. 스탐은 그의 궁금증을 차근차근 풀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럴 시간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쫓아오고 있는 놈들 때문이지!"

"놈들이라니? 그러고 보니……."

쥬드도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듯 스탐이 왔던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태연해 보여 스탐은 애가 탔다.

"젠장, 지금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도망갈 준비해! 놈들 중에는 소드 마스터도 있단 말야!"

"아, 알았어! 그럼 검만 얼른 챙길게!!"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대충 파악한 쥬드는 오두막으로 뛰어가서는 간단한 옷을 차려입고 나왔다. 하지만 그는 지금 단 한 개의 방어구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착용할 시간도 없었으니 당연했다.

"따라와! 이쪽은 샛길이 많으니까 놈들을 따돌릴 수 있을 거야!"

말을 마친 쥬드는 스탐과 함께 뛰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지금 꿈을 꾸는 건 아닌가 싶어서 볼을 꼬집고 있었다.

"앗! 저기 저놈은!?"

그때 갈림길 부분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단의 검사들이 둘을 보곤 소리쳤다. 아마 베아린이 포위망을 치기위해 길목 길목에 배치해둔 용병들일 것이다. 그들의 행태를 보아하니 소드 마스터하나를 상대로 시간을 벌기엔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상대는 소드 마스터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죽어랏!!"

"흐아앗!"

그들에게로 스탐의 손과 쥬드의 검이 쇄도했다. 그와 함께 용병들이 피떡이 되어 바닥을 뒹구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으으으!"

눈앞에 벌어진 대 학살극에 겁에 질린 듯한 검사가 검기를 주입한 채 스탐에게 달려들었다.

“소드 비기너군.”

보고 있던 쥬드가 중얼거렸다. 소드 비기너면 마나로 검을 다루는 경지의 초입이다. 상당한 실력자이지만 소드 마스터인 쥬드의 입장에선 햇병아리다. 스탐은 더 볼 것도 없이 수도로 그의 검을 후려쳤다.

쨍깡!

소드 비기너의 검은 힘없이 부러졌고, 절망에 부르르 떨던 그의 목을 스탐의 손이 꿰뚫고 지나갔다. 스탐은 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제대로 싸웠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죽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리 펼쳐진 눈앞의 참혹한 학살극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물론 스탐의 침착함도 한몫했다. 그는 지금 인간을 죽이는데 아무린 거리낌도 없는 자기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빨리 가자."

"아, 알았어."

주검이 된 소드 비기너를 마지막으로 용병들을 모조리 전멸 당했다. 둘은 눈앞에 펼쳐진 샛길을 따라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일단의 인영들이 맹렬한 속도로 뛰어오다 어느덧 일단의 시체 앞으로 오자 멈추어 섰다. 이내 그들 중 사제로 보이는 사내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놈이 벌써 눈치를 챘다니? 빌어먹을!"

그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쥬드 이놈! 반드시 죽여 버릴 테다!"

그러는 사이, 샛길을 따라 한참을 뛰어 가던 스탐과 쥬드는 어느새 걸음을 멈추었다.

"하악 하악…, 잠깐 여기서 쉬다 가자."

"그러지."

쥬드가 배를 부여잡은 채 바위에 걸터앉았다. 스탐도 따라  앉았다. 그러고 나서는 쥬드를 힐끗 쳐다보았다. 소드 마스터가 숨이 가빠서 쉬어야 된다는 소리는 아무리 되뇌어도 거짓말 같았다.

"물어볼 게……."

예상대로 쥬드는 앉자마자 스탐에게 말을 걸어왔다. 스탐은 씨익 웃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물론 있겠지. 지금 널 암살하려고 하는 자식은 베아린이야. 덧붙여 말하자면 놈은 지금 루젠트라는 소드 마스터를 동반한 열명가량의 기사들을 대동하고 있어. 널 작정하고 죽이려고 하는 거지.”

"그렇구나."

쥬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생사를 같이 한 동료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에 상심이 큰 모양이다.

"왜 그렇게 된 거지? 혹시 권력다툼 때문이냐?"

"뭐, 대충 그런 셈이지. 우리가 그 당시 그 임무를 완수했을 때, 나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엄청난 출세를 하게 되었지. 난 백작에 봉해졌고 베아린은 사제가 되었어. 이렇게 우리둘은 권력의 가장자리에 들게 되었지."

"그때쯤에 베아린이 권력의 달콤한 맛에 물들어서, 이전까지는 없었던 자기의 권위를 행사했다?"

"그래. 하지만 녀석관 달리 난 권력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다른 귀족들과 그다지 친하진 않았어. 그래도 이 나라에서 가장 강한 소드 마스터라는 명성 덕분에 많은 기사들이 날 떠받들었지. 근위기사단의 기사단장이 되라는 제의도 들어왔지만, 거절했어. 난 권력을 쥐어흔들기보단 케린과 같이 내 영지에서 오순도순 사는 게 더 행복하니깐 말이야. 아무튼 내가 베아린이랑 사이가 나빠진지는 꽤나 오래 되었어. 놈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왕국위쪽의 평원에 거주하고 있는 몬스터들을 토벌하자고 주장했는데 내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며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지. 그 뒤로부터 놈은 걸핏하면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 되었지.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짓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음."

쥬드의 장황한 설명을 다 들은 스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새삼 권력이란게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쥬드의 설명이었다. 아마도 베아린은 자신에게 정적인데다 자신이 속한 아르티시앙 교에게 있어선 눈엣가시인 쥬드에게서 복합적인 암살의 당위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져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던 중, 뭔가가 떠오른 스탐이 말했다.

"맞다, 그때 그 케린이라는 여마법사가 네 약혼녀였냐?"

“응. 지금은 부인이지.”

"그러면 둘의 러브 스토리를 잠깐 들어볼까?"

스탐의 호기심 섞인 질문에 쥬드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러브 스토리라…별게 있겠냐. 단지 원정을 가기 전에 여관방에서 케린이랑 일을 저질러 버린 것밖에는 기억이……."

"호오 그, 그래서?"

스탐이 말을 끊으면서까지 다음을 재촉했다. 쥬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붉힌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약혼식 한 뒤로 죽기 전에 딱 한번만 하자고 한 짓이었는데 원정에서 돌아오고 나서 얼마 안돼 배가 불룩해 있잖아. 그래서 애를 낳은 후에 바로 결혼했지. 약혼식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는데 출세하고 나서 성대하게 치르니까 케린이 막 껌뻑 죽는 얼굴이더라고!"

"킥킥킥!!"

쥬드가 마치 실사와 같은 표현을 하며 얘기를 해주자 스탐이 배꼽을 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쥬드를 구해주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긴? 지금은 내 영지의 저택에서 자식들과 함께 잘 살고 있지. 정말 행복해. 이게 다 네 덕분이야 스탐."

"하하! 뭐 그런 쑥스러운 말을 하고 그래."

그렇게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 쥬드가 말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고 있었네. 넌 어떻게 베아린이 날 암살하려는 걸 알았지?"

"으응? 그게 말하자면 좀 길어. 대충 요약하자면 우연한 기회에 인간세상으로 들어와서 말이야……."

스탐은 쥬드에게 최대한 설득력을 불어넣기 위해 이야기를 약간 장황하게 늘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도중에 끊기고 말았다.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인물에 의해서.

"우연한 기회? 큭큭, 그렇겠지. 쥐새끼 같은 네놈이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건 정말 벨리우드의 은총이었지."

"!?"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스탐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끝이 보일지 의심될 정도의 거구를 가진 뱀파이어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온!"

스탐은 흡사 고양이를 본 쥐 마냥 소스라치게 놀라 지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온은 예의 광기에 젖은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스탐에게 말했다.

"크크큭, 나는 재주도 좋아. 고양이품에서 도망간 쥐새끼를 하루 만에 잡게 되다니."

지온은 은근슬쩍 자신과 스탐의 관계를 그렇게 비유했다. 그는 스탐에게 점점 다가갔다. 스탐은 그의 압도적인 위압감에 눌려 뒷걸음질을 쳤다. 우악스런 손이 스탐에게로 접근했을 때였다.

스르렁!!

“나는 먹다 버린 파이로 보이시나. 스탐을 잡아가기 전에 나부터 상대하시지!”

“크흠? 네놈은…….”

스탐의 옆에 있던 인간을 무시하고 있던 지온은 그제야 쥬드가 소드 마스터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내 그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감돌았다. 쥬드는 그런 지온과는 대조적으로 그 자리에서 미동도 않고 강력한 기운을 내뿜어댔다. 지온이 말했다.

“큭큭큭, 일단은 소드 마스터의 달콤한 피부터 맛봐야겠군.”

“…….”

쥬드는 말없이 두 손에 쥔 롱소드를 오러 블레이드로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여유가 넘쳐 보이는 지온도 방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상대는 소드 마스터니까.

“쥬드. 나도 도울게. 저놈은 2:1로 싸우면 이길 순 있어.”

“말은 고맙지만 기사들의 승부는 1:1이외에는 절대 용납이 안돼.”

“아, 안돼 쥬드!!“

“그럼 간다, 이야아압!”

스탐의 걱정 어린 외침에도 불구하고 쥬드는 지온에게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지온도 그에 발맞추어 다크 오러가 맺힌 팔을 휘두르며 쥬드의 공격에 맞섰다.

챙챙챙! 카앙!

예상대로 둘의 대결은 박빙이었다. 지온은 다크 오러를 불어넣은 날카로운 손톱을 이용한 패도적인 공격으로 쥬드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에 대항하는 쥬드의 오러 블레이드도 한치의 밀림도 없었다. 지온에게 펼치는 한방 한방에서 우러나오는 정교함과 날카로움이란 과연 절정의 기사라 부를만했다. 하지만 스탐은 지금의 상황을 절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쥬드가 강하다곤 해도 저 괴물을 이길 순 없어!'

사실 소드 마스터와 배틀러가 동급이라는 경지 상에서라면 쥬드가 한수 위였다. 하지만 지온은 '데스페라도'라는 악명마저 지니고 있는 배틀러였다. 그리고 그들은 무기를 쓰는 다크 나이트들과의 실전으로 소드 마스터에 대한 가상대결을 체험해본 반면, 인간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쥬드는 갑옷을 입지 않은 맨몸이라는 사실이었다.

챙챙!

파파팍!

촤악!

그 차이는 종이한장 차이면서도 천지차이였다. 지온의 손톱이 쥬드를 살짝 베자마자 그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크으윽!”

쥬드가 신음을 흘리며 피로 물든 자신의 몸을 부여잡았다. 그나마 마나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마 맨몸이었다면 저 강력한 다크 오러의 기운에 몸이 두 동강 났을 것이다.

뱀파이어들은 싸움이 일상생활이었기 때문에 몸이 거의 갑옷이었다. 반면에 인간은 키울 수 있는 몸에 한계가 있어 갑옷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이것이 바로 지온이 쥬드를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이유였다.

“크크큭, 보기 좋군.”

지온의 웃음소리가 소름 끼쳤다. 이미 전세는 기울어졌다. 쥬드는 사력을 다해 지온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런 저항도 결국 부질없는 것이었다.

카카캉!

지온의 완강한 일격에 쥬드가 일방적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지온은 그를 곱게 죽이진 않겠다는 속셈인지 일부러 몸 군데군데에 조금씩 상처를 입혔다. 쥬드는 이미 전신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크허어억…….”

“큭큭큭, 재밌군, 재밌어!”

이미 전투의지가 꺾여 사경을 헤매고 있는 쥬드를 보며 지온이 웃어대었다.

“쥬드…….”

스탐은 두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쥬드 때문에. 그리고 그런 쥬드를 죽여가고 있는 역겨운 지온 때문에. 스탐은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 개자식아!”

“음!?”

퍼억!

갑작스런 스탐의 기습공격에 등짝을 얻어맞은 지온의 몸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스탐은 주저 없이 지온에게 뒤이은 연타공격을 감행했다.

퍼퍼벅!

“지온 이 개새끼, 쥬드의 원수를 갚겠어!”

스탐이 고함소리를 터뜨렸다. 쥬드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야 스스로의 지혈로 다 멎게 했다곤 해도 저대로 두면 얼마 안 되어 인간인 그는 죽을 것이다. 스탐은 미칠 것만 같았다.

퍽퍽퍽!!

“크크윽. 이 건방진 애송이가!”

애초에 스탐이 지온의 상대가 될리가 없었다. 금세 다크오러의 강력한 힘에 밀린 스탐의 입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래도 스탐은 끝내 포기하지 않을 요량으로 지온에게 최후의 저항을 했다.

퍼억!

“아악!”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지온의 무수한 공격에 스탐은 혼절했다. 지온은 스탐과 쥬드를 각각 한 손에 쥔 채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큭큭큭, 그럼 오랜만에 인간의 피나 먹어볼까…….”

그때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마나의 기운을 느낀 지온은 고개를 돌려 그곳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곤 다시 한번 다크 오러를 피워 올렸다.

우르르르.

“소드 마스터 쥬드! 네놈은 이제 죽은…뭐, 뭐냐!?”

“큭큭큭.”

눈앞에 거대한 존재를 본 기사들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뒤에서 오던 사제도 따라서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기사들과는 달리 그는 상대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배, 뱀파이어!”

“뱀파이어라니요?!”

“큭큭큭. 저능한 인간들아. 나 바쁘거든? 그러니 어서 꺼지려무나.”

인간들은 지온의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살기는 그들에겐 큰 공포로 다가왔다. 그래도 그 공포를 가까스로 이긴 사내가 하나 있었다. 그는 멋들어진 대사를 외치며 오러 블레이드가 만연한 검을 쥔채 지온에게 달려들었다.

“나 루젠트 폰 발시에스! 네놈 같은 악의 축 뱀파이어는 이 손으로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큭, 웬 개소리냐.”

지온은 피식 웃으며 상대가 자신에게 달려들어 검을 들이대기도 전에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잘라버렸다.

촤아악!!

솔직히 방금전의 공격은 반사 신경이 뛰어난 소드 마스터에겐 성공시키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온이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은연중에 방심한 것이 상대에겐 큰 화근이었다.

“크아아악!!”

팔이 바닥에 떨어지자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질렀다. 지온은 그런 그의 잘려진 팔을 혀로 핥으면서 포효했다.

“큭캬캬캬! 죽고 싶은 놈은 어서 덤벼라!”

사제와 나머지 기사들은 모두 공포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온의 포효는 그야말로 뱀피릭 피어(Vampiric fear)였다.

“모, 모두 도망쳐라!! 우리는 도저히 저 괴물을 상대할 길이 없다!”

“젠장, 모두 도망쳐!”

믿고 있던 소드 마스터가 무너지자 사제와 기사들은 모두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온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저들을 쫓아가 죽이는 것보다 지금 당장 눈앞에 드러누워 있는 소드 마스터의 피를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서였다.

푸확! 푸파팍!

“음?”

하지만 인간들이 도망친 쪽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온은 그것이 뱀파이어가 생명체의 살갗을 파고드는 소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금세 그가 시선을 그리로 옮겼다.

그곳에는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건장한 체구의 사내였는데, 지온은 직감적으로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사내는 지온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툭! 데구르르.

그것은 도망치던 인간들 중 하나인 사제의 머리였다.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은 부릅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죽기직전에 얼마나 공포에 젖어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크큭, 나 말고도 인간의 피에 관심있는 놈이 있는가보군?”

그렇게 중얼거린 지온은 사내의 정체가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그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지온은 금세 놀란 눈이 되었다. 그로서는 드물게 말이다.

“큭, 당신은…….”

“오랜만이다. 스트라이드 가의 장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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