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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스탐, 모험을 떠나다
‘오크쯤이야 식은 죽먹기지.’
스탐이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눈앞에 있는 오크들은 어림잡아 사십 여 마리. 평범한 인간의 파티였다면 막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였다. 하지만 스탐에겐 조무래기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소년단 시절 셀리온 평원에서 죽인 오크들만 세자릿수에 해당했으니깐 말이다. 사실 일행만 아니었다면 육체적인 힘만으로 상대해볼 생각이었다.
“파이어 볼!”
뒤편에서 불덩이가 날아와 오크들 몇 마리를 숯검댕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나머지 일행이 전투에 합류해 오크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하아압!”
푹, 푸아악!
“쿠웨에엑!”
“잔챙이 놈들!”
일단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자 상황은 일방적이었다. 마법사, 성직자의 지원에 힘입은 검사들의 공격에 오크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고 있었다.
“별거 아니잖아, 오크 놈들.”
크래튼이 그렇게 이죽거리며 오크들을 베어 나갔다. 그의 검에는 어느새 마나 소드가 형성되어 있었다. 디아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뿐만이 다는 아니었다.
“하아아압!”
프리건이 기합소리를 내며 오크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었다. 그는 검에 마나도 불어넣지 않고 있었지만 오크들을 죽이는 데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스탐이 감탄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과연 대단한 실력자야. 쥬드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보는 소드 마스터이기도 하고.’
소드 마스터는 인간 세계에서 손꼽히는 검의 절대자들이었다. 그리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많은 수도 아니었다. 3년 동안 용병으로 전전하면서도 소드 마스터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기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 임무가 얼마나 중요하면 소드 마스터가 나설 정도지?’
그가 알기론 크로프란은 보유중인 소드 마스터의 수로 보나 군사력으로 보나 인간 세계의 최대약소국이었다. 그런 나라에서 단순한 던전 발굴에 이 정도의 전력을 투입하다니? 더군다나 로드가 내린 명령까지 생각해보면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푸학!
마지막 한 마리의 오크가 스탐의 검에 머리가 떨어지면서 전투는 끝이 났다. 수많은 오크들의 시체가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지만, 그들을 상대한 인간들은 단 한명도 죽지 않았다. 엘프가 일행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투가 끝나고 나니 일행의 이목이 엘프에게 집중되었다. 오크들과 싸우는 도중이라 느낄 겨를이 없었는데, 그녀는 모든 엘프들이 그렇듯 참 아름다웠다. 프리건이 검집에 검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혼자 이곳을 지나고 있는 겁니까? 이런 인적이 드문 곳에는 몬스터들이 출몰하기 때문에 웬만한 모험가들도 혼자서 다니지는 않는데…….”
“아, 제가 빛의 숲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이번이 초행길이에요.”
“그렇군.”
스탐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들은 일정한 나이가 차면 장로들의 허락을 얻어 인간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호기심이 많은 소수에 한해서였다. 대부분의 엘프들은 빛의숲 안에서 자연과 공존해서 살아간다고 한다. 엘프는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인사가 늦었군요. 세리아라고 합니다.”
“저는 프리건이라고 합니다. 이 일행의 리더지요. 그리고 이쪽은…….”
말을 마친 프리건은 일행을 차례로 소개했다. 제일 먼저 왕립 아카데미의 수석이라는 네 명의 젊은이들은 생전 처음 보는 엘프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크래튼과 류인은 그 아름다운 외모에 넋이 나갔고, 디아나와 라시아는 질투심 어린 눈으로 세리아를 쏘아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쪽은 스탐이라고 하네.”
프리건이 스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스탐을 한참 쳐다보고 있던 세리아가 싱긋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까 전에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당연히 해야 했을 일을 한 것뿐인데…….”
그녀와 악수를 나눈 스탐은 말을 흐렸다. 세리아의 손이 왠지 모르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가슴도 괜스레 설레었다. 왜 그러는지는 그도 잘 알 수 없었다.
‘정신 차려라, 스탐! 상대는 엘프잖아?’
스탐은 고개를 흔들었다. 뱀파이어와 엘프는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앙숙관계였다. 오죽하면 엘프들이 수시로 캄에덴의 영토를 침범할 정도일까. 캄에덴이 제대로 된 국가로 발돋움한 뒤 그들은 수천 년 동안 분쟁을 거듭해 왔다. 그런데 뱀파이어인 자신이 처음 보는 엘프에게서 느끼는 이 낯선 감정은 대체 뭐란 말인가?
“왜 그러세요?”
세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뇌에 잠겨 있는 스탐을 바라보았다. 스탐은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다급히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냐. 단지 엘프를 처음 봐서…….”
“신기해서 그러시는 건가요?”
웃으며 묻는 세리아의 질문에 스탐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금세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엘프가 신기해? 흐음, 자네가 이런 면도 있었다니…….”
“우리가 더 신기하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일행들이 저마다 한 마디 했다. 아마 S급 용병인 스탐의 냉철한 이미지만 떠올리고 있다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니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젠장.’
일행의 말에 스탐은 더욱 곤혹스러워졌다. 3년 동안 유지하고 있던 자신의 이미지가 이런 일로 깨지다니. 그는 지그시 세리아를 바라보았다.
‘엘프라…….’
스탐은 뱀파이어로 살아오면서 집에서 20년을, 소년단에서 40년을 보냈다. 그리고 무한전선에서 언데드들과 50년을 보내고 나서 바로 5년 동안 다크나이트들과 생활했다. 그 덕에 엘프와의 분쟁지역에 파견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한 마디로 자신은 오늘 엘프를 처음 본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다른 뱀파이어들과는 달리 인간의 정서로 엘프를 대할 수 있다고. 전생에 인간으로서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으니 신빙성이 없진 않았다. 물론 전장에서 만났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자신은 지금 인간의 탈을 쓴 채 우호적인 상황에서 엘프를 만났다. 그래서 이런 묘한 감정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 결코 좋아한다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사랑하는 여자가 따로 있는 내가 왜 처음 보는 엘프한테 그럼 감정을 품을 수 있겠어?’
생각을 정리한 스탐은 어느덧 세리아에게 점잖은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를 가는 길이지?”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 발언은 오해를 살만한 성질의 것이었다. 스탐이 아차 싶어서 뭐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크래튼이 선수를 쳤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항은 아닌데…, 꽤나 관심이 많으신가보네?”
“그러게 말이야.”
“그, 그런 게 아니야!”
스탐의 얼굴이 또 다시 붉어졌다. 그것을 보고 있던 세리아가 또 다시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유에센 제국의 수도 륜드라로 가는 길이에요. 그곳에는 온갖 진귀한 것들이 많다고 들었거든요.”
“아, 유에센 제국.”
일행들이 모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 대로였다. 인간 세계의 삼대강국중 신흥강국으로 떠오르는 유에센 제국의 수도 륜드라는 타국의 귀족들도 자주 오가는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곳에는 엘프도 많이 지나다닌다고 들었다. 오죽하면 륜드라의 시민들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한번쯤은 엘프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류인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마침 잘 됐네요. 저희도 그쪽으로 가는 길인데,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요.”
하지만 금세 프리건이 반대하고 나섰다.
“무슨 소린가? 자네는 우리가 지금 유흥 삼아서 그곳에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아! 죄송합니다.”
그제서야 류인은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지금 일행의 목표는 정체불명의 던전을 발굴하는 일이다. 국가적인 규모의 임무니 절대 타인에게 밝혀지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엘프는 상관없지 않을까?”
잠자코 있던 스탐이 그 사실에 반론을 제기했다. 자신은 이 임무가 크로프란 왕국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모른다. 로드의 말만 따라서 이들을 따라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엘프 하나가 붙어서 문제가 될 리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엘프는 중립적인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뭘 하든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그렇긴 한데…….”
스탐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짐작한 프리건이 턱을 괴며 상념에 잠겼다. 생각해보면 정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신중한 것을 보면 그 임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스탐의 말이 맞아요. 엘프랑 동행한다고 문제될 건 없잖아요?”
“프리건, 제발 세리아랑 동행하는 걸 허락해 주세요.”
프리건에게 설득을 하고 있는 쪽은 남자들뿐만이 아니었다. 디아나와 라시아도 거들고 있었다. 세리아의 아름다운 외모가 그들에게 질투심을 유발하긴 했지만, 반대로 경외감을 느끼게도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프리건은 일행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알겠네. 대신 륜드라에 도착하면 곧바로 헤어져야 된다네.”
“그럼 세리아님. 저희랑 동행하시겠어요?”
“저야 좋죠.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함께 다니는 게 더 좋을 테니까요.”
“좋았어! 그럼, 어서 출발하죠!”
일행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렇게 소리쳤다. 엘프랑 동행한다는 것이 그렇게 기쁜가보다. 스탐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뱀파이어인 그가 엘프와 같이 있어서 좋은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하지 않은 것은 처음 보는 이종족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때문에서였다. 그는 말로만 들어온 엘프가 어떤 종족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일행들이 얼마나 걸었을까. 해는 금방 중천으로 떨어졌다. 눈앞이 깜깜해져가자 그들은 금세 노숙할 채비를 갖추었다. 프리건이 크래튼과 디아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자, 어서 나뭇가지 좀 구해와라.”
“쳇, 또 저희가 이런 일을 맡아야 하는 건가요?”
“하는 수 없지.”
둘은 그렇게 투덜거리긴 했지만 군 말없이 프리건의 명령을 따랐다. 딱히 그 일을 맡을 사람이 자신들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가고나자 프리건은 나머지 일행들에게 물었다.
“불침번은 누가 설 텐가?”
“내가 서지.”
스탐이 곧바로 나섰다. 그가 불침번을 서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밤의 종족인 뱀파이어가 밤에 잠을 잘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불침번을 서면 잠을 잘 시간이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스탐처럼 배틀러의 경지에 오른 뱀파이어는 굳이 잠을 잘 필요가 없었다. 단순한 휴식만으로도 모든 게 해결되니까.
“자네가 서려고?”
“나는 용병이다. 기사와는 달리 노숙이 생활화되어 있지.”
“훗, 나도 노숙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네.”
“나 참, 그게 자랑이라고…….”
스탐과 프리건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시아가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 말을 들은 둘은 머쓱한 듯 고개를 긁적였다. 생각해보면 그게 자랑은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크래튼과 디아나가 나뭇가지를 한 아름 들고 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프리건이 휘파람을 불었다.
“벌써 이 많은 걸 들고 오다니? 체력 하나는 튼실하군 그래.”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는군요.”
“동감이에요.”
“후후후.”
프리건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는 크래튼과 디아나가 바닥에 나뭇가지를 다 쏟아내자 나뭇가지 두개를 집어서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스탐도 할 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저런 건 원래 리더의 몫이었다.
치이익, 치익, 화르르
몇 번의 마찰 끝에 나뭇가지에 불이 붙었다. 불은 금세 나뭇가지 더미에 옮겨 붙어 마침내 일행들의 몸을 따뜻하게 해줄 만큼 커졌다. 마침 추웠던 터라 일행들은 금세 모닥불 주위로 모여들었다.
“이야~, 따뜻하네.”
모닥불에 두 손을 갖다대고 있던 세리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남자들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아야!”
“읍.”
크래튼과 류인은 금세 라시아와 디아나에게 허벅지를 꼬집혀 고통을 호소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프리건은 헛기침을 하며 먼 산을 쳐다보았다. 스탐은 멍하니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제피스트 왕국의 수도라네. 그때까지 노숙만 할 테니 불편하더라도 참게나.”
말을 마친 프리건은 배낭에서 꺼낸 모포를 덮고 그 자리에서 누웠다. 스탐과 세리아를 제외한 일행들도 그렇게 누워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세리아님은 모포가 없으신가 보네요? 추우실텐데 제 거라도…….”
크래튼이 모닥불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던 세리아에게 모포를 권했다. 그러자 그녀는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숲에서 살 때도 이런 게 없어도 잘만 잤는데요, 뭘.”
“그, 그렇군요.”
그러고 보면 엘프는 숲의 종족이었다. 당연히 마을은 있겠지만 숲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숲에서 잠을 자는 것도 익숙할 것이다.
끼익, 끼익.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귓가를 자극했다. 어느덧 자정이 되어 왔다. 스탐은 나무에 몸을 기댄 채 잠을 자고 있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휴, 그 임무라는 것만 도와주고 나면 곧바로 돌아가야 겠어. 아직 찾지도 못했지만…….”
말을 마친 스탐은 손으로 자신의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8년 전, 자신이 다크나이트들의 드워프 대장장이에게 부탁해 만든 반태극형의 목걸이었다. 그것은 스탐에게 잊혀진 추억과 동시에, 쓰라린 과거를 떠올려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것을 보고 있으면 어느 정도 잊혀진 전생에서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던 것이다. 스탐은 목걸이에 입을 맞추며 눈시울을 붉혔다.
“쓸데없는 짓을 한건가?”
그랬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정말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스탐은 3년 동안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세현의 환생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던 걸까. 하긴, 만나면 뭐해? 나 같은 놈은 또 다시 사랑할 자격도 없을 텐데.”
스탐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못난 자신 때문에 슬퍼할 세현과 그녀의 환생에 집착하고 있는 자신에게 농락당한 루시리아. 자신만 없었다면 그런 상처 따위는 입지 않았을 텐데. 자신은 천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스탐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보름달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계속 자신의 눈에는 세현의 얼굴이 투영되고 있었다. 무척 괴로웠다.
“왜 그러고 계세요?”
그때 누군가가 자신에게 한 마디 했다. 스탐은 당황한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세리아가 맑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탐이 반문했다.
“언제부터 듣고 있었지?”
“나 같은 놈은 또 다시 사랑할 자격도 없을 텐데~.”
세리아가 스탐의 억양을 흉내 내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웠기에 스탐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세리아도 따라 웃었다.
“후훗, 사연이 많으신가 보네요.”
“많다 뿐일까…….”
스탐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한 여인을 찾기 위해 110년 동안을 뱀파이어로 살아갔다. 아마 그녀를 찾는다는 목적이 없었다면 배틀러가 되기는커녕 소년단 시절에 자살했을 지도 모를 것이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힘내세요.”
“빈말이라도 고맙다.”
아이러니했다. 뱀파이어가 엘프에게 격려를 받다니. 스탐은 피식 웃으며 세리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는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왜 스탐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에게 반말을 하세요?”
“뭐, 그거야…….”
스탐은 말을 흐리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냉철한 용병이라는 이미지를 유지시키기 위해 인간 세계에 와서 어느 누구에게도 존대를 해온 적이 없었다. 물론 뱀파이어인 자신이 인간에게 존대를 할 이유가 없다는 의식도 조금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인 프리건도 언급하지 않은 걸 세리아가 언급했다. 세리아가 참 당돌한 여자라고 생각하는 스탐이었다.
“정 기분 나쁘면 너도 말 놔.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와아~, 정말 그래도 되죠?”
세리아가 환호성을 지르며 되물었다. 순간 스탐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륜드라까지 갈 때까지 만이라도 친하게 지내자, 알았지 스탐?”
“아, 알았어.”
스탐은 자신이 방금 전 한 말을 후회하고 있었다. 세리아는 지금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의 이미지와는 달리 의외로 활발한 성격의 엘프였던 것이다. 아마 륜드라로 갈 때까지 고생 좀 할 것 같았다.
“잠 안자냐?”
“잠이 안 오는 걸. 그리고 우리 엘프들은 원래 잠을 별로 안 자.”
말을 마친 세리아는 곧바로 스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스탐은 괜스레 이상한 기분이 들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불현듯 세리아가 말했다.
“너, 왠지 보통 인간들이랑은 틀려.”
“무슨 소리야?”
스탐은 태연히 말했지만 속은 무척이나 떨고 있었다. 과연 엘프와 뱀파이어가 원수지간이긴 원수지간이었나 보다. 스탐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만약 세리아가 자신이 뱀파이어인 것을 눈치 챈다면 최악의 경우 죽여야 될 수도 있었다. 스탐은 입술을 깨물며 그녀의 입에서 어떤 한 마디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몰라. 그냥 느낌이 그래.”
“휴우, 그러냐.”
스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리아는 단지 직감으로 말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쳇, 괜히 겁먹었군.’
하기야 세리아는 인간 세계도 초행길이라고 했다. 그 정도면 무척 나이가 어릴 것이고 뱀파이어는 구경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매직 파우더를 발라 인간으로 둔갑한 상태였다. 정체를 파악하려면 엘프측의 백마법사나 성력이 높은 아르티시앙교의 프리스트 정도는 있어야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세리아는 자신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왠지 불길한걸. 빨리 헤어져야 마음을 놓겠어.’
세리아같은 엘프도 느낌만으로 자신이 누군지 알아챌 정돈데 다른 엘프들은 오죽하겠는가. 스탐은 초조한 얼굴로 세리아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스탐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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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개학이군요;
아...정말 빨리 지나가는 방학 -_-;;;;
그리고 이제부터 연재시간을 아침으로 정해놓겠습니다. 내일부터 아침7시에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