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38화 (38/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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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죽음의 던전 알 카스턴의 무덤

쩌저적.

"!?"

하지만 갑자기 들려온 이상한 소리에 당황한 그는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곤 자신의 검으로 시선을 옮겼다.

“맙소사!”

놀랍게도 디스트로이어의 검신 일부분에는 균열이 가있었다. 평범한 검이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의 검은 아나만디움으로 코팅된 검이었다. 그런 검을 이 꼴로 만들다니. 도대체 용아병이 쥐고 있는 검의 파괴력이 얼마나 강하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단 말인가?

“큰일이군.”

스탐은 용아병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검은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고, 정신은 아늑했다. 죽을지도 모를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탐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이것 한방에 모든 것을 걸어야 겠군.”

말을 마친 스탐은 흑마기를 있는 힘껏 쥐어짰다. 티끌처럼 모인 흑마기는 어느새 다크 오러로 뭉쳐졌고, 그것은 다시 검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이 바로 스탐이 가진 마지막이자 최후의 일격이었다.

"간다아!"

목청껏 외친 스탐이 용아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무모한 짓이었다. 금세 새하얀 검광이 채찍처럼 날아들었다.

“크으윽.”

엄청난 고통이 전신에 엄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탐은 끝까지 놈에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용아병은 스탐의 계획을 눈치 채기라도 한건지 계속 뒤로 물러서며 그의 몸에 상흔을 남기고 있었다.

‘단 한방만 맞아라.’

벌써 그가 흘린 피가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지만 스탐의 머릿속은 냉정했다.

휘익.

기회는 결국 찾아왔다. 계속 뒷걸음질치며 스탐을 농락하던 용아병의 스텝이 엉킨 것이다. 스탐은 주저하지 않고 놈에게 다가와 자신이 모아둔 다크 오러가 집약되어 있는 검을 꽂으며 외쳤다.

"버스트 브레이크!"

퍼어엉!

뒤이어 엄청난 폭발이 이어졌다. 그것은 용아병은 물론이고, 시전자인 스탐까지도 휘감았다.

버스트 브레이크는 스탐이 다이어에게에서 배운, 가장 강력하면서도 잔혹한 기술이었다. 검날 끝에 마나나 흑마기를 집약시켜 상대의 몸속에 박아 넣은 뒤, 균열을 일으켜 상대를 산산조각 내버리니 말이다. 물론 단점이 없진 않았다. 바로 앞에서 폭발하기 때문에 시전자까지 그 여파를 뒤집어쓰게 된다는 저미었다. 또한 검신 자체가 그 힘을 못 이기고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스탐이 이 기술을 쓰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철퍼덕!

스탐의 신형이 뒤로 날아갔다. 그의 몸 곳곳에는 파편이 박혀 있었다.

“크으으윽…….”

스탐이 신음성을 흘렸다.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자신은 비교적 양호했다. 벌써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놈에 비해선 말이다.

"휴우, 이긴 건가?"

스탐이 한숨을 쉬었다. 누가 대답해주지 않아도 이 상황은 그가 승리자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비록 어마어마한 영광의 상처를 입긴 했지만 말이다.

“몸이 완전히 만신창이군. 일단 이것부터 빼야겠어.”

말을 마친 스탐은 자신의 몸에 박힌 검의 파편들을 하나하나씩 뽑기 시작했다. 파편을 뽑은 곳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인간이었다면 벌써 과다출혈로 몇 번은 죽었을 것이다.

“하아, 이제는 좀 났군.”

어느새 지혈까지 마친 스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가 부족한 탓인지 시야가 흐릿하게 보였다. 마치 술을 마시고 취한 것 같았다.

“그나저나 아깝네. 디스트로이어가 부러지다니…….”

스탐이 측은한 얼굴로 손잡이만 남은 검을 바라보았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곤 하지만 8년 동안 검술을 배우며 정들었던 검이었다. 그만큼 애착이 있었기 때문에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일단은 저 검이라도 써야겠군.”

스탐은 용아병이 썼던 검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알 카스턴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백색의 검. 그것은 용아병과 싸울때 스탐은 그렇게도 애먹였던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용아병도 처치한 상태였다. 그런 탓에 스탐은 거리낌 없이 검에 손을 가져갔다.

덥석.

“음, 손잡이의 감각은 좋은데…….”

스탐이 검을 집어 들고 몇 번 휘둘러보며 말했다. 단순히 감각뿐만은 아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검을 쥐고 난 뒤부터 축 늘어져 있던 자신의 손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었다. 천근만근 같던 몸도 왠지 모르게 가벼워졌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뭔가가 이상했지만 스탐은 대충 넘기기로 했다. 그것보다는 눈앞에 있는 궤짝이 먼저였다.

“이게 뭔지 볼까나…….”

스탐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궤짝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사실 그도 그게 무엇일지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자 형언할 수 없는 놀라움에 사로잡혔다.

“이, 이게 드래곤 하트인가?”

스탐이 손을 부르르 떨었다. 분명히 머리통만한 크기를 가진 새하얀 물건의 정체는 드래곤 하트였다. 드래곤의 마나가 집약되어 있다는 힘의 결정체. 스탐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일행들이 목적으로 하는 물건이긴 하지만, 내가 찾았으니 내가 가져야 될텐데 말이야.’

하지만 인간들을 도우라는 아이슬로너의 명령이 떠올랐다. 그는 드래곤 하트를 뺏으라는 구체적인 지시는 내리지 않았다. 융통성 없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자신이 가져야 될 물건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는 수 없지. 일단은 저들에게 넘겨줘야겠어.”

스탐은 결국 그렇게 결정했다. 만약 로드가 펄펄 뛰면서 문책을 한다면 자세하게 지시를 내리지 않은 벌이라고 대답할 생각이었다.

[후후후, 흥미로운 놈이군.]

“무슨 소리지?”

스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흘린 피가 너무 많아서였을까? 환청인가보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보물창고를 빠져나왔다. 보물을 놔두고 가는 게 약간 아쉬웠지만, 조만간 캄에덴으로 귀환할 판국에 그런 걸 챙길 겨를이 없었다.

쿠우웅!

“뭐야?”

스탐이 보물창고를 빠져나오자마자 무언가가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보물창고는 온데간데없고 벽만 존재할 뿐이었다.

“참 이상한 곳이군.”

마치 귀신에 홀린 듯했다. 하지만 드래곤 하트가 들어 있는 궤짝은 여전히 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건 분명히 현실이었다. 스탐은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바람이 불어오는 게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뛰었다. 출구가 머지않았다.

“어라?”

얼마나 뛰었을까. 스탐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의 눈앞에 일단의 인영들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횃불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몬스터는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봐!”

스탐이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그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저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탐?!”

“자네, 분명히 죽었을 텐데……!”

그 말에 스탐은 가슴을 탕탕 치며 대꾸했다.

“죽긴 누가 죽었다고 그래? 난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어.”

“휴우, 아무튼 살았으니 다행이네. 그나저나 어떻게 버닝 아머를 피해서 이곳까지 왔나?”

프리건이 물었다. 당연할 것이다. 스탐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이 많은 이니 말이다. 스탐에게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피할 충분한 물건이 있었다.

“그것보다, 드래곤 하트는 찾았나?”

“못 찾았네.”

프리건이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임무를 실패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다. 스탐은 씨익 웃으며 궤짝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

“당신들이 그토록 찾고 있던 물건.”

“물건?”

궤짝을 받은 프리건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궤짝 안에 든 물건을 확인한 프리건이 경악했다.

“드, 드래곤 하트!”

“맙소사!”

다른 일행들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스탐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그 엄청난 물건을 얻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출구를 가리켰다.

“자, 그럼 이 칙칙한 곳에서 나가는 게 어때?”

갤비스 산맥에서 벌어진 프리건 일행의 알 카스턴의 무덤 발굴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애초에 성공 가능성이 너무도 낮은 임무였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은 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희에 휩싸여 있었다. 며칠동안의 여정 끝에 곧바로 크로프란에 귀환한 일행들은 곧장 왕궁에 도착했다.

"신 프리건 발레리우스를 비롯한 5명의 원정대가 부여된 임무를 바치고 성공적으로 돌아왔습니다."

일행들과 함께 무릎을 꿇은 프리건이 고개를 숙인 채 왕에게 궤짝을 바쳤다. 그것을 받아 열어 본 왕은 감격에 겨워 두 손을 벌벌 떨었다.

“오, 정녕 이것을 가져왔단 말인가? 이 진귀한 물건을!”

말투로 보아 그도 불가능 할 것으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당연했다. 누가 일개 약소국에서 드래곤 하트를 발굴해낼 수 있단 말인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대들은 죽을 때까지 막대한 부를 누리게 되리라.”

“황송하옵니다.”

프리건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이었다. 적어도 왕이 죽기 전까지는 엄청난 부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리라. 물론, 한 가지 조건이 붙긴 했지만.

“하지만 이 사실이 외부로 유출된다면 그 날로 목이 떨어질 것이네.”

“물론입니다.”

프리건이 땀을 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워낙에 은밀하게 내려졌던 임무였기 때문에 이 사실이 흘러나가면 약소국인 크로프란은 끝장이었다. 왕은 자신의 수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번 일은 그 스탐이라는 사내의 공로가 컸겠군. 이 드래곤 하트도 그 덕분에 찾았겠지. 그렇지 않은가?”

“그, 그것을 어떻게…….”

프리건이 깜짝 놀랐다. 그 덕분도 아니었다. 스탐이 아예 찾아 가지고 왔을 정도니 말이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무례하다는 것을 알지만, 정말 확인해보고 싶었다. 프리건이 단호하게 물었다.

“황송하오나, 그 스탐이라는 자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대체 누구 길래 그를 고용해 알 카스턴의 무덤을 발굴하라는 명을 내리신 겁니까?”

“자네들은 죽을 때까지 그 사실을 모를 거야. 알아낼 수도 없고 말이네. 알아내려고 노력하지도 말게.”

왕의 말에 프리건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궁금하기 짝이 없었지만 왕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가 알아내지 말라면 말아야 했다.

"저희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스탐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지 못한 채, 일행들은 집무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왕은 드래곤 하트가 있는 궤짝으로 시선을 옮겼다. 왕은 희열이 가득한 얼굴로 두 주먹을 꾸욱 쥐었다.

"후후후, 이제 준비는 끝난 셈이로군 그래.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 크로프란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제 가봐야겠군.”

방금 전 일행들이 들어간 왕궁을 바라보던 스탐은 발길을 돌렸다. 프리건이 사례금을 줄 테니 기다리라곤 했지만, 받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차피 캄에덴으로 돌아가면 쓸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휴우~, 이제 언제 다시 이곳에 와볼 수 있을까?”

스탐은 주위를 둘러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기사에서부터 용병, 장사꾼, 거지들까지 각자 다채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보였다. 3년간의 길고도 짧은 생활이었지만 그에겐 가장 흥미로운 곳이었다.

“스탐~!”

그때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일행들은 왕궁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스탐이 고개를 돌렸다.

“세리아? 네가 여긴 웬일이야?”

상대는 놀랍게도 륜드라에서 헤어진 엘프, 세리아였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 오면 왠지 널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구나.”

스탐은 세리아를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같이 다니는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세리아는 엘프면서도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그러고 보면 여태까지 살아온 뱀파이어로서의 생애를 통틀어서도 같이 있으면서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상대는 그녀밖에 없었다. 계속 다녀서 나쁠 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작별인사를 해야 할 때였다.

“세리아. 미안하지만 난 이제 가봐야 할 데가 있어.”

스탐이 어깨를 잡은 채 말했다. 그도 다시 만나자마자 작별을 하는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세리아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언젠가라는 대목이 왠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스탐은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분 탓일 거야. 그리고 알면 어때? 이제 헤어질 텐데…….’

그렇게 생각한 스탐은 곧이어 그녀의 두 손을 잡으며 다짐했다.

"응.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그래, 그럼 잘 가.”

스탐은 그렇게 세리아와 헤어졌다. 그는 걸어가면서 세리아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다시 인간 세계로 나간다면 반드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리라.

뚜벅, 뚜벅, 뚜벅.

스탐은 금세 크로프란의 수도를 나왔다. 따갑지만 맑은 햇볕이 내리쬐었다. 스탐은 기지개를 펴면서 그 빛을 만끽했다. 아마 캄에덴에 가면 한동안 느끼지 못할 것이다.

스탐의 시선이 허리춤으로 갔다. 언제부턴가 그의 검집에는 인간 세계에 차고 나왔던 디스트로이어 대신에, 냉기를 풀풀 날리는 정체불명의 검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자, 그럼 가볼까?”

스탐이 차고 있는 검을 툭툭 치며 물었다. 분명히 스탐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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