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41화 (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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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새로운 친구와의 신고식

"감히 네까짓 놈이……."

슈슈슉―!!

스탐이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놈은 또 그레이 오러가 깃든 화살을 다발로 날려댔다. 상황은 아까와 비슷했다. 하지만 차이점은 분명히 있었다. 스탐은 눈앞의 검은 잔영을 향해 카스턴을 들었다.

"나를 이까짓 어린애장난으로……."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은 잔영은 천천히 사라졌다. 스탐은 곧바로 카스턴에게 지시를 내렸다.

'부탁한다 카스턴.'

[알겠다.]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렇게 소리친 스탐은 몸을 반대편으로 돌면서 카스턴을 대각으로 세워 프로즌 실드를 만들어냈다.

콰쾅!

무서운 속도로 날아온 화살이 새파란 냉기의 막에 막혀 바닥에 떨어졌다. 예상대로였다. 제아무리 그레이 오러라도 6클래스의 빙계 마법 프로즌 실드를 뚫을 수는 없었다.

[바로 뛰어!]

‘말 안해도 알아!’

스탐은 놈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전투를 치르면서 카스턴은 그에게 자신이 쓸 수 있는 마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강력한 마법은 바로 지금 구현한 6클래스의 빙계 마법 프로즌 실드였다. 그것은 한번 쓰면 한동안 마나가 모일 때까지 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물론 쓰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받아라!”

스탐은 카스턴을 뻗어 에너지 볼을 난사했다. 에너지 볼은 2클래스의 하급 공격 마법이라 마나의 소모가 적었다. 그래서 쏟아지는 양은 엄청 많았다.

퍼버버버벙!

에너지볼이 하프 뱀파이어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곳을 초토화시켰다. 어차피 놈은 숲이라는 엄폐물이 목숨 줄이었다. 그것들만 없애면 놈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찾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예상대로였다. 눈앞에서 잽싸게 움직이는 인영을 발견한 스탐은 곧장 추격했다. 비록 상대에게 속도에서 뒤진다고 하지만 스탐도 명색이 배틀러. 뱀파이어들 중에선 손꼽히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었다.

다다다―

뒤를 쫓아가던 스탐은 금세 놈의 지척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흑마탄을 한방 쏘아보았다.

휘리릭.

“역시!”

놈이 흑마탄을 그냥 통과시키면서 안개가 되는 것을 확인한 스탐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시 뛰었다. 놈은 아직까지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파방, 파방!

스탐은 놈을 쫓아가면서 흑마탄을 연달아 쏘았다. 배틀러가 쏘는 흑마탄의 파괴력 자체는 무시 못 할 수준이었기 때문에 한방만 맞아도 치명타일 것이다. 상대가 아무리 그레이 오러의 소유자라고 할지라도 엘프란 종족은 연약한 육체를 가졌으니까. 하프 뱀파이어가 될지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퍽!

"좋아!"

스탐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로 보아 마지막 흑마탄 한발이 놈을 맞추었나보다. 물론 한방으로는 부족했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스탐은 계속해서 흑마탄을 쏘아대며 그를 뒤쫓았다.

팟―

"!?"

스탐은 갑자기 걸음을 멈춘 채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금전만해도 잘 감지되고 있던 놈의 기척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그레이 오러의 기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탐은 금세 상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뻔한 수작을 부리는군!"

조소를 머금은 그는 뒤로 몸을 돌리며 그대로 카스턴을 세차게 휘둘렀다. 강렬한 비광을 내뿜으며 목표물을 절단했다. 기척을 숨겨 당황한 상대의 뒤통수를 노린다. 뻔한 레파토리였다. 스탐은 그런 얕은 수에 당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당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표정은 보기 좋게 일그러져 있었다. 손의 감각이 허전했기 때문이었다. 스탐은 앞을 보았다. 그곳엔 검은 안개가 흩어지고 있었다. 대번에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젠장!”

또 당했다. 스탐은 한방 먹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상대는 뒤를 노릴 거라는 자신의 심리를 역이용한 것이었다. 진실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기척과 그레이 오러만 숨긴 채 미끼만 던졌다. 그리곤 내가 미끼를 물면 낚겠다는 생각이군!’

스탐은 다시 몸을 뒤로 돌려 카스턴을 수평으로 세웠다.

카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어느새 스탐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내가 일개 하프 뱀파이어 따위에게 생명에 위협을 받다니?’

빌어먹을 노릇이었다. 아까전도 그렇고, 이번에도 조금만 늦었으면 황천 행이었을 것이다.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위기를 벗어나자 스탐은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채챙챙! 챙챙!

뒤이어 숨 막히는 난투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캄에덴에서 흔한 무기 없이 싸우는 뱀파이어들의 난투극과는 달랐다. 뛰어난 검술의 소유자가 서로 맞붙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날카로운 검광이 난무하는 이 싸움에선 한쪽이 조금만 실수해도 패배와 직결되었다.

‘이 자식, 검술도 장난이 아닌데!?’

스탐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프 뱀파이어의 검술은 너무도 강했다. 잠시만 넋 놓고 있으면 심장을 훑어버릴 정도로. 스탐도 8년밖에 검술을 배우진 않았지만 강력한 다크 오러가 그 약점을 받쳐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빈틈을 노리는 쾌검으로 자신을 위축시키고 있을 정도였다.

채앵!

상대의 검을 막아낸 스탐은 일단 먼저 물러났다. 이렇게 되면 기세싸움에서 지게 된 것이지만 그는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이 싸움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스탐은 하프 뱀파이어가 쥔 검에 시선을 옮겼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검이로군.]

과연 카스턴의 안목은 예리했다. 스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검을 바라보았다. 자줏빛 광채를 머금고 있는 얄팍한 검신은 한번 치기만 하면 바로 부러질 듯 했다. 그러나 거기에 서려 있는 예기는 그 어느 것도 베어버릴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한 마디로 명검이었다.

‘스틸레토잖아?’

한참을 훑어보던 스탐은 금세 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스틸레토는 엘프족을 상징하는 최고의 검으로 엘프족에서 손꼽히는 전사만이 그것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미스릴이 부족해서인지 검신의 길이가 무척 짧았지만 그만큼 빠르고, 날카로웠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참 특이하군.’

어느새 스탐의 시선은 하프 뱀파이어의 검이 아닌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처음 봤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그는 정말 무표정했다. 감정을 가진 존재라면 분명히 싸울 때에도 약간의 흥분이 이는 것은 당연할 텐데 말이다.

‘놈은 흡혈을 당하기전엔 엘프였을 테지. 엘프란 종족이 원래 저런 건가?’

그건 아니었다. 세리아의 경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물론 그녀는 특별 케이스라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저 엘프는 정상이 아니었다. 아마 하프 뱀파이어가 된 이후 저렇게 된 것으로 보였다.

‘참 기구한 운명을 지닌 녀석이로군.’

적이었지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스틸레토를 가질 정도면 일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녀석이었을 텐데.

“하지만 그렇다고 질 수는 없지.”

스탐은 카스턴을 고쳐 잡았다. 체내의 흑마기가 상당히 소진된 상태였다. 녀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슬슬 끝내야 할 때가 되었다.

“간닷!”

선공은 스탐이 먼저였다. 그는 카스턴에 모든 힘을 담아 그를 향해 휘둘렀다.

챙!

섬광이 번뜩였고, 불꽃이 튀겼다.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그 소리는 몇 차례이고 반복되었다.

촤악.

스틸레토가 카스턴과 몇번의 접전끝에 스탐의 피부를 베었다. 금세 피가 솟구쳤다.

'이 까짓 거!‘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지만 견딜만했다. 스탐은 이를 악물며 카스턴을 들어 대각으로 베었다.

“음.”

성과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는 스탐의 공격에 하프 뱀파이어가 옅은 신음성을 터뜨렸다. 너무도 희미해 잘 들리지도 않았지만 스탐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은 저 냉철한 하프 뱀파이어 놈도 이번 공격이 상당한 치명상이었다는 것을. 스탐은 그 기세를 몰아 또 다시 카스턴을 뻗었다.

"흐아압!"

챙! 채챙챙챙!

둘은 또다시 몇 합을 주고받았다. 서로 판이하게 다른 힘을 가졌으면서도 그들의 대결은 여전히 팽팽했다. 몇 십 년이고 몇 백 년이고 계속 싸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대결은 머지않아 종지부를 찍었다.

처억.

한참 설전을 주고받던 둘의 검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제기랄.”

스탐리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스틸레토가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목이 달아날 듯했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진 것도 아니었다. 카스턴도 마찬가지로 하프 뱀파이어의 목을 겨누고 있었으니 말이다.

‘난감하게 됐군.’

상황은 말 그대로 난감했다. 조금이라도 검을 쥔 손에 힘을 덜 들였다간 목숨이 끊어질지 몰랐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힘을 더 줘도 살아남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둘은 하는 수 없이 그 자세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짝, 짝, 짝!

그들의 오랜 침묵을 깨뜨린 것은 누군가의 박수소리였다. 난데  없이 나타난 문제의 제삼자는 그들의 모습을 흥미롭다는 얼굴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큭큭큭, 둘 다 잘 싸웠다! 평생을 싸움판에서 굴러다닌 내게도 이런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드문데 말이야. 아무튼 그 정도면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인사가 되었겠군."

“!”

스탐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하프 뱀파이어는 자신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고 천천히 스틸레토를 검집에 넣었다.

“네놈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스탐이 흥분한 어조로 소리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둘의 대결에 끼어든 제삼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지온이었으니까 말이다. 지온이 하프 뱀파이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크크큭,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건 아니지. 왜냐면 저놈이 너와 싸운 이유는 내 덕분이니까.”

“!”

스탐은 그제서야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았다. 저 하프 뱀파이어는 바로 지온의 사주를 받아서 자신에게 싸움을 건 것이다. 물론 목적이야 단순한 싸움구경이었을 것이다. 배틀러급의 실력자들이 싸우는 것은 그에게도 흥미로운 구경거리일 테니깐 말이다.

"크큭, 그러고 보니 둘의 소개가 늦었군."

"손 치워라."

하프 뱀파이어가 냉랭한 어조로 자신의 어깨 위로 올라온 지온의 손을 뿌리쳤다. 다시 들어도 그의 목소리는 정말 무감정적인 어조였다. 마치 기계적인 목소리라고나 할까? 지온이 또다시 웃었다.

“큭큭큭, 자존심 센 척하기는. 아무튼 이 놈의 이름은 카시안이라고 한다. 8년 전 엘프와의 교전 끝에 간신히 붙잡아왔지. 네놈도 싸워봐서 알겠지만 놈은 엘븐 스나이퍼(Elven Sniper)다.”

“뭐? 엘븐 스나이퍼?”

스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엘븐 스나이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빛의 숲 최강의 전사들이라 일컬어지는 그들은 하나하나가 뛰어난 검술을 지녔으면서 동시에 엄청난 저격술을 지닌 자들이다. 뱀파이어와 엘프들간의 잦은 전투에서 이들 때문에 수많은 뱀파이어들이 죽어 나갔다.

‘하긴, 스틸레토를 지니고 있을 정도면 말 다했지.’

카시안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지온은 뒤이어 그에게 스탐을 소개했다.

“그리고 카시안, 이쪽은 스탐이다. 캄에덴 최연소 배틀러지. 물론 이 몸에 비하면 형편없이 약한 놈이지만 말이야. 크크큭.”

“소개도 참 개떡같이 하는군.”

스탐이 인상을 찌푸리며 지온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저 빌어먹을 뱀파이어는 뭘 어떻게 말해도 항상 재수 없었다.

“아무튼, 카시안이라고 했냐?

스탐은 카시안을 바라보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서로 생사를 오가는 혈투를 벌였기에 여전히 앙금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벌써 끝난 일이다.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었다. 스탐이 먼저 손을 뻗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그러지."

카시안은 선뜻 악수를 받아들였다. 물론 둘 다 손에 힘을 잔뜩 주고 있어 서로간의 승부가 끝난 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카시안이라…….’

스탐은 카시안을 바라보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앞의 이 하프 뱀파이어가 언젠간 자신에게 큰 힘이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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