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42화 (4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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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새로운 친구와의 신고식

수도 레버쿠젠은 어느 시간대건 항상 북적였다. 밤에는 뱀파이어가, 낮에는 하프 뱀파이어로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다채롭게 보였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세계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만 해도 대로변에서 대놓고 폭행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퍽퍽―!

"으헉, 제발 살려만 주십쇼."

"뭐야, 이 새끼가…, 왜 백마의 피를 안 판다는 거야? 네놈은 우리가 그렇게도 우습게 보이는 거냐?"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좀 전에 어느 손님들께서 그 물건을 구입해 가셔서 없는 것뿐입니다."

"닥쳐, 이 더러운 놈, 죽을 줄 알아라!"

퍼퍼퍽.

북적이는 대로변에서 그것은 약자의 처참한 말로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행인들은 그들의 잔악한 행위에 혀를 끌끌 찼지만 구경만 했다. 왜냐면 저들은 수도 내에서 악명이 자자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도에는 그들보다 강한 자들이 넘쳐흘렀다.

툭.

"뭐야? 어떤 놈이 날 건드렸어?"

장사꾼 하나를 한참 패고 있던 뱀파이어 사내는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건들자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한방의 주먹이었다.

퍽!

"크헉."

불의의 일격을 맞은 그가 허공을 붕 뜨더니 구석에 처박혔다. 참 꼴사나워 보였다.

쿠당탕!

자신의 동료가 순식간에 그 꼴이 되자 다른 두 명이 도끼눈을 한 채 자신들을 건드린 장본인을 쳐다보았다.

"뭐야 이놈은?"

"건방진 새끼,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뱀파이어들은 거친 말투로 소리치며 자신의 동료를 때린 문제의 뱀파이어를 노려보았다. 우락부락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상대는 의외로 왜소해 보였다. 만만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뱀파이어는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퍼억―! 퍼퍽!!!

"크학."

"컥!"

상대에게 덤벼들던 두 뱀파이어들이 앞서 간 동료의 전철을 밟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금세 바닥을 뒹구는 뱀파이어들을 바라본 단구의 뱀파이어는 피식 웃으며 그들의 한심함을 비웃었다.

“멍청한 놈들, 나한테 덤비다니 간도 크구나.”

볼일을 끝낸 스탐은 지온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그가 비아냥거렸다.

"큭, 약자가 강자에게 얻어터지는 건 이 세계에서 당연한건데 왜 도와주는 거냐?"

"보고 있으면 답답해서, 도와줘야 직성이 풀리거든. 내가 원래 보통 뱀파이어들과는 사고방식이 달라."

"미친놈. 하긴 내 알바는 아니지만……."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서두르는 게 좋을 텐데."

카시안이 특유의 어조로 둘에게 한 마디 했다. 문득 궁금증이 생긴 스탐이 물었다.

"그나저나 너희들, 지금 어디로 가려는 거야?"

둘의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스탐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대답은 카시안이 아닌 지온이 했다.

“플로센.”

“거긴 왜?”

“크큭, 쉐도우 스나이퍼라고 들어봤나?”

“물론이지.”

스탐이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투로 말했다. 그가 5대 특수부대의 일원인 쉐도우 스나이퍼를 모를리 없었다.

“카시안 놈은 쉐도우 스나이퍼의 일원이 되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플로센에 전지훈련을 간 상태지.”

“그렇구나.”

대충 이해가 갔다. 사실 쉐도우 스나이퍼들은 캄에덴이 엘븐 스나이퍼에 대항하기 위해 창설한 특수부대였는데, 그들도 마찬가지로 저격수집단이었다. 저격수의 천적은 저격수밖에 없었으니까.

여기서 웃기는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그들 중 반수가 하프 뱀파이어가 된 엘프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엘프의 육체적 능력은 저격에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다.

‘하프 뱀파이어가 됬다곤 하지만, 동족끼리 싸운다니 참 웃기는군. 세상이란…….’

그러던 중, 스탐은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런데 넌 왜 쉐도우 스나이퍼가 되고 싶은 거지?”

말을 마친 스탐은 카시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복수?”

“…….”

카시안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스탐은 순간적으로 볼 수 있었다. 잠시나마 그의 얼굴에 슬픈 감정이 깃들어 있는 것을.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뭐, 사연 없이 하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 자신만 해도 그럴진대.

"그, 그나저나 잘됐네, 플로센으로 간다니? 일단 크로펫부터 타자."

자신도 모르게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괜히 그에게 미안해진 스탐이 화제를 바꿨다. 그러고 보면 자신도 플로센에 가야 했다. 가문의 식구들과 60년이 다 되어 갔으니깐 말이다.

“큭, 안그래도 그럴 려고 했다.”

지온이 괴상한 웃음으로 일관한 채 앞장섰다. 그와 동행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스탐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갔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크로펫을 타고 플로센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그들이 고른 크로펫은 하나같이 튼실했다. 한참을 달려도 힘이 빠지지 하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만연에 미소를 머금은 스탐이 소리쳤다.

"야호! 오랜만에 크로펫에 타니 기분이 날아 갈 것만 같은데?"

"크큭, 별로 타본 적도 없을 텐데."

지온이 아픈 곳에 비수를 꽂았다. 스탐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 개자식은 진짜 사람 아니, 뱀파이어 무안하게 만드는 데는 재주가 있다니깐."

"그만큼 우둔하기도 하지."

뜻밖에 튀어나온 카시안의 한 마디에 이번에는 지온이 궁지에 몰렸다. 지온은 자신에게 난데없이 도발을 걸어온 카시안을 윽박질렀다.

"갑자기 별 미친놈이 껄떡대는군."

"너만 하겠냐."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하는 카시안을 보던 지온은 할말을 잃은 듯했다. 천하의 지온이 그런 꼴을 보이는 건 처음 봤기 때문에 스탐은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으흠?"

그때였다. 크로펫들 타고 달리고 있는 일행들 앞에 두 손을 흔들고 있는 인물이 보였다.

"호오, 이놈은…."

지온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그와 안면이 있는 듯했다.

"어라, 지온님이시네요?"

지온은 그를 내려다보며 한심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큭큭크, 페리알, 네놈의 그 꼬락서니는 여전하구나."

"하하핫, 천성이니 어쩔 수 없죠. 달리 히든 브레이커가 됐겠습니까?"

페리알이라고 불린 뱀파이어는 뒤이어 능글맞은 표정을 지은 채 부탁했다.

"제가 크로펫이 없어서 이 꼴인데 행선지가 같다면 좀 얻어탈수 없을까요?"

"행선지가 어딘데?"

"플로센입니다."

"우리랑 같군. 어서 타."

스탐은 크로펫 등 위의 여유 공간을 보여주며 말했다. 금세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고맙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단박에 크로펫의 위로 타올랐다. 그 동작이 무척이나 빨랐기 때문에 스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크큭. 뭘 그렇게 놀라는 거냐. 히든 브레이커면 저 정도 속도는 기본이다."

그런 스탐이 우습다는 듯 지온이 핀잔을 줬다. 스탐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어느 정도는 수긍했다. 방랑자라 불리는 히든 브레이커는 캄에덴에서 가장 빠른 자들이다. 하지만 알려진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다른 특수부대와는 달리 구성원들이 대부분 개인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틀러로군.’

그를 보는 순간 스탐은 깨달았다. 페리알이라는 사내가 은연중에 뿜어내는 기운은 배틀러만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하긴, 지온과 친분이 있는 놈들은 대부분 배틀러일 것이다. 노는 물이라는 게 있으니까.

"이거 땡잡았군요."

페리알이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지온이 비릿한 웃음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우리는 재수 옴 붙은 거란다."

“그렇겠죠.”

그렇게 대꾸한 페리알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윽고, 그는 지온으로 인해 생긴 무안함을 해소시키기 위해서인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지온님도 정보력하나는 빠르시군요? 저도 이 사실을 안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이 사실이라니?"

뜬금없는 소리에 스탐이 가장 먼저 물었다. 페리알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재차 되물었다.

"아, 아직 모르시고 계셨나보군요?"

"크크큭! 무슨 소리냐? 플로센에 무슨 참변이라도 터진 거냐?"

"와우! 족집게시군요."

지온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은 의외로 큰 성과를 가져왔다. 확신에 가득 찬 페리알의 말에 깜짝 놀란 스탐이 소리쳤다.

"구체적으로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스탐은 잠시 후, 페리알이 전해준 충격적인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 가르쳐드리지요. 셀리온 평원의 몬스터들이 대대적으로 무리를 이루어 침공해왔지요. 당연하지만, 그들의 첫 침공지역은 플로센 지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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