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44화 (4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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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불타는 브롬바르트

끼이이이.

충차의 타격대가 오우거들의 손에 의해 또다시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루필리우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지금 성문의 상태로 볼 때 저것 한방으로 완전히 부서질 것이다.

"결단을 내려야겠군."

바크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루필리우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성벽위의 병사들에게 외쳤다.

"모두 성문 쪽으로 집결해라! 곧 성문이 부서질 것이다!"

콰아앙!

루필리우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충차가 성문을 또 다시 두들겼다. 다행히도 성문은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 적어도 한방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사격준비."

성문 앞으로 병력을 집결시킨 루필리우스가 말했다. 그러자 성문 앞에 도열한 궁수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조만간 성문이 완전히 박살날 것이다.

콰아아앙! 철퍼덕!

충차의 타격대가 성문을 강타했다. 그와 동시에 수십 년 동안 브롬바르트의 입구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성문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쿠워어어어!”

쓰러진 성문을 밟고 몬스터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루필리우스가 한껏 치켜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쏴라!"

쉐쉐쉐쉐엑!

그의 명령과 동시에 화살 쏟아졌다. 금세 몬스터들의 대열이 허물어졌다.

"전군 돌격!"

바크가 그렇게 외치며 제일 먼저 달려가 손을 뻗었다.

푹!

금세 고블린 한 마리가 피분수를 내뿜으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것이 신호였을까? 1전단 병사들을 선두로 한 뱀파이어들이 일시에 몬스터들에게 뛰어들었다.

“죽어라!”

촤악! 촤자작!

“쿠워어억!”

“쿠웨엑!”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죽어나갔다. 전투는 뱀파이어들의 일방적인 우세였다. 단순히 소형몬스터들의 숫자만으로 뱀파이어정규군 1전단이라는 최정예 전사들을 감당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루필리우스가 소리쳤다.

"몬스터들을 남김없이 해치워버려라!"

고함성, 기합성, 비명성…. 그리고 병장기 튀기는 소리와 살육의 소리가 도처에 난무했다. 과연 집단전에서 1전단의 힘이란 대단했다. 벌써 수백 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이 죽었지만, 아군 측에서는 단 한명의 사망자도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양상이 바뀌었다.

"쿠어어어어!!"

성문으로 다수의 오우거들이 일시에 들이닥쳤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서열 1위의 실력자인 바크조차도 당황한 얼굴이 역력했다.

퍼벅! 퍽!

“으아악!”

성문에 가까이 있던 하프 뱀파이어들 몇 명이 그들의 스파이크 클럽을 정통으로 맞고 하늘로 솟구쳤다.

"어서 오우거놈들을 처치해!"

루필리우스는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는 오우거들을 보면서 외쳤다. 하지만 그 자신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성안은 오우거를 주축으로 한 몬스터들과 뱀파이어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타핫!"

바크가 오우거에게 달려들어 풀 다크 오러가 가미된 공격을 가했다. 동작이 워낙에 빨랐기에 오우거는 그 일격을 피하지 못했다.

퍼어억!

결과는 1테킷의 거대한 괴물이 자신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뱀파이어에게 단 한방에 죽게 되는 것이었다.

"쿠우어억……."

바닥을 피로 물들인 오우거가 특유의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셀리온 평원 먹이사슬 최정상에 위치한 대형몬스터도 바크에게 맞서 싸우긴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병사들이 탄성이 터뜨렸다.

"와아, 역시 전단장님이시군!"

"과연 서열1위의 하이 배틀러셔."

"얼마든지 덤비라지. 우리 측에는 바크님이 있단 말이다!"

“후훗.”

바크는 병사들의 칭찬에 어깨가 으슥해졌다. 확실히 그는 아이슬로너 다음가는 실력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음?”

그때였다. 바크는 갑자기 병사들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지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시선은 자신의 위쪽으로 가있었는데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같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그림자가…….’

바크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순간적으로 온 몸이 경직되었다.

"크흐흐흐흐."

둑, 두둑.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침 몇 방울이 바크의 얼굴에 떨어졌다. 바크는 그 더러운 액체를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단지 천천히 뒷걸음질을 하면서 온 몸을 부르르 떨 뿐이었다.

"브, 블러드 오우거……."

그는 블러드 오우거가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건국초창기 캄 크리스토퍼와 호각으로 싸웠다는 전설의 몬스터. 설마 했는데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긴, 놈이 없다면 브롬바르트에 쳐들어온 몬스터 대군에 대해서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젠장. 말로만 듣던 블러드 오우거라니…….'

바크는 탄식했다. 상대가 블러드 오우거라면 서열1위의 자신이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놈은 단순한 외형만으로도 주눅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기에 바크는 곧장 주먹을 쥐었다.

"이거나 먹어라!"

휘아아악!

블러드 오우거에게 달려든 바크는 풀 다크 오러가 깃든 주먹을 휘둘렀다. 혼신의 힘을 다 짜낸 그 일격은 설사 뱀파이어 로드라도 함부로 볼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놈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퍼어억!

"크윽?!"

하지만 막상 일격이 끝나자 인상을 찌푸리는 쪽은 바크였다. 아나만디움으로 코팅된 벽도 뚫는다는 풀 다크 오러는 블러드 오우거에게 너무도 손쉽게 막혔다. 오히려 공격을 한 바크의 주먹이 얼얼했다.

"재롱이 제법이구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바크의 귓가로 블러드 오우거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말을 마친 놈은 곧장 매서운 반격을 가해 왔다.

휘아아앙~!

"헉."

바크가 신음을 삼켰다. 블러드 오우거의 두 손에 들려있는 두개의 스파이크 클럽들 중 하나가 날아왔다. 오우거들의 전유물인 스파이크 클럽은 저 붉은 괴물의 완력과 더불어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콰앙!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블러드 오우거의 스파이크 클럽이 바닥을 두들겼다. 간발의 차이로 그 무시무시한 쇳덩어리를 피해낸 바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군.’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블러드 오우거는 반대편에 쥐고 있던 스파이크 클럽을 휘둘렀다. 잠시나마 방심하고 있던 바크는 미처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퍼어억!

"크윽!"

털썩

스파이크 클럽에 제대로 얻어맞은 바크는 하늘을 붕 뜨다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바크님!"

"이런…."

정신적인 지주나 다름없던 바크가 무참히 쓰러지자 병사들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캄에덴 서열1위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젠장, 아직 안 끝났어."

엄청난 파괴력의 스파이크 클럽을 정통으로 맞았음에도 바크는 금세 일어났다. 물론 온몸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바크는 그 고통을 참으며 블러드 오우거에게로 시선을 다시 고정시켰다.

"역시 강하군, 블러드 오우거! 네놈의 힘을 이 세치 혀로는 감히 표현을 못하겠단 말이야."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의 스파이크 클럽에 맞은 건 느려서가 아니라 블러드 오우거가 몸집에 맞지 않을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서열1위의 바크 라시온이다! 네놈들 따위에게 절대 이곳을 내줄 순 없다!!"

팟!

말을 마친 바크가 블러드오우거에게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놈도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두 자루의 스파이크 클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물론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휘하의 병사들도 오우거들을 위시한 몬스터들을 상대로 일대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싸워라, 캄에덴의 자랑스러운 뱀파이어들이여! 어서 저 가증스러운 몬스터들을 찢어발겨라!"

루필리우스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몬스터들을 찢어 발겼다. 어느새 브롬바르트의 입구에는 몬스터들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루필리우스는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 아직 아군은 최강의 1전단을 위시한 하프 뱀파이어 병사들이 포진한 상태. 바크만 블러드 오우거를 붙잡고만 있는다면 해볼만한 싸움이었다.

"하아앗!"

바크가 블러드 오우거의 더블 스파이크 클럽을 피하면서 그의 품으로 파고들어가 주먹을 날렸다. 분명히 뱀파이어의 팔은 두개임에도 불구하고 수십 줄기의 주먹이 풀 다크 오러를 머금고 블러드 오우거의 전신을 골고루 가격했다.

퍼버버버벅!

“크윽.”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천하의 블러드 오우거도 한 발짝 물러섰다. 바크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 펼친 웹 스트레이트(Web Strate)는 바크의 장기였다. 그것은 풀 다크 오러의 막강한 힘으로 팔의 속도를 순간적으로 증폭, 수십 발의 주먹세례를 만들어 내버린다. 가히 총알 탄과 같은 이 기술은 민첩한 상대에게든 덩치 큰 상대에게든 쓸만했다.

"제법이군, 크크크!"

바크의 표정이 굳었다. 이 160킷의 괴물은 그가 펼친 회심의 일격에도 비교적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 번 더 사용한다면 이길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바크는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흑마기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체력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선전한 것도 기적일 것이다.

"하악 하악…."

바크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블러드 오우거를 바라보았다. 놈의 피부는 마치 아나만디움 같았다. 아무리 캄 크리스토퍼와 호각으로 싸웠다는 전설의 괴물이라곤 하지만 너무 강력했다.

'어떻게 저 거대한 몸으로 나와 싸우면서도 지친 기색도 없단 말인가?'

믿기지가 않았다. 대형몬스터는 큰 몸집만큼이나 움직이는 데 엄청난 체력이 소모된다. 그런데 블러드 오우거는 아직도 멀쩡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놈이었다.

휘각!

"읏!"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어느새 육중한 더블 스파이크 클럽이 자신에게 날아왔기 때문이다.

"어림없다!"

바크는 그것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그리곤 스파이크 클럽위로 올라간뒤 단숨에 블러드 오우거의 얼굴을 향해 뛰어들어 킥을 날렸다. 이제는 다크 오러만 가동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타핫!"

퍼억!

"크으윽"

무리해서 감행한 그의 공격이 효과를 보았을까? 블러드 오우거는 바크의 킥에 턱을 맞았다.

쿵, 쿵.

놈이 발을 뒷걸음질하며 휘청거렸다. 잠깐 공중에 떠있던 바크가 희미하게나마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퍼버벅!

"으어헉!"

철퍼덕.

블러드 오우거의 이마를 얻어맞은 바크가 비명과 함께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우우욱."

바크가 금세 입에서 피를 쏟아내었다. 그리곤 부들거리는 눈빛으로 블러드 오우거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힘이 센 놈이라고 해도 무거운 스파이크 클럽을 두개나 휘두르는 이상 빠르진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일격을 먹인 뒤, 잠깐 방심했었다. 설마 박치기를 날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바크님!"

루필리우스가 깜짝 놀라 그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크윽, 난 괜찮아…….”

“그렇게 괜찮아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루필리우스의 목소리는 왠지 침울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크가 블러드 오우거만 붙잡아두면 쉽게 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그가 이런 꼴을 보이고 있었다. 아군은 이미 지쳤지만, 적들은 무한대의 숫자로 덤비고 있었다. 거기에 바크를 쓰러뜨린 블러드 오우거가 가세한다면 결과는 끔찍했다.

"으으으으."

바크는 싸우기는커녕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때 블러드 오우거가 소리쳤다.

“크아하하하! 뱀파이어 놈들을 모조리 찢어 발겨라!”

바크의 패배는 일방적인 학살로 직결됐다. 미친 듯이 날뛰는 블러드 오우거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루필리우스는 눈물을 머금고 후퇴명령을 내렸다.

“후퇴하라, 후퇴!”

그러자 브롬바르트의 잔존병력들이 일제히 내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 교전 중에 후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한 뱀파이어가 루필리우스에게 다가왔다. 겉모습으로 보아 그는 1전단의 천귀장으로 보였다. 그는 이렇게 제안했다.

“성주, 나를 비롯한 다섯의 천귀장이 놈들을 막고 있을 테니 어서 전단장님을 데리고 내성으로 퇴각하시오!”

“고, 고맙소!”

루필리우스는 감격에 겨운 어조였다. 천귀장 다섯이면 1전단의 병사들 5000명이라는 소리였다. 그들은 목숨을 바쳐 아군을 구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1전단의 결사대가 몬스터들을 막는 사이,  루필리우스를 비롯한 나머지는 내성문안까지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성문을 닫아라!”

아군이 다 들어오자 그렇게 소리친 루필리우스는 성벽위로 올라갔다.

“하아…….”

루필리우스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몬스터들이 내성벽 앞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1전단의 결사대는 벌써 전멸했단 말인가.

쉐쉐쉑!

성벽위의 궁수들이 열심히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덕분에 상당수의 몬스터들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티도 나지 않았다.

"전군사격! 단 한 마리라도 더 잡아야한다!"

루필리우스는 그렇게 외쳤다. 이제 함락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는 마음을 굳혔다. 자신도 명예란 게 있었기에, 병사들과 함께 여기서 뼈를 묻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1전단은 캄에덴에서 가장 귀중한 전력이었다. 그들을 이곳에서 잃는다면 국가적으로 막대한 전력의 손실을 입을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이 있어.”

루필리우스는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급히 성벽 밑으로 내려와 병사들에게 명했다.

"어서 사육장에 있는 크로펫들을 모조리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성주님!"

루필리우스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일사분란하게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뼈를 깎는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라 그런지 그들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쿠르르르."

"끼이이이!"

캄에덴에서 가장 친숙한 짐승, 크로펫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범상치 않은 기세를 물씬 풍기는 크로펫들의 수효는 물경 5000마리에 달했다. 숫자가 딱 맞았다. 루필리우스는 바로 살아남은 1전단의 병사들을 태운 뒤, 몬스터들의 수가 비교적 적은 뒷문을 통해서 이곳을 탈출시킬 생각이었다.

"휴우, 돈이 남아돌아서 훈련시켜둔 크로펫들이 이렇게 중요해질줄은 정말 몰랐군."

루필리우스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이들은 그가 브롬바르트의 남는 재정을 이용해 양성한 크로펫으로, 본래는 기병대로 운영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된 마당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냥 방치해 뒀다가 몬스터들의 먹이로 줄 바에야 1전단을 탈출 시키는 데에 쓰는 것이 가장 좋았다.

“바크님.”

“으으으…….”

바크는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기에 누군가가 태워줘야만 했다. 따라서 루필리우스는 한 병사에게 바크를 태우도록 지시했다.

"바크님은 자네가 맡아주어야겠네."

"제가 과연 전단장님을 모시고 무사히 도망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루필리우스가 미소 지었다. 그는 이제 겨우 100살을 넘겼을 것으로 보이는 젊은 병사였는데, 기절한 바크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장본인이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평범한 뱀파이어로는 보이지 않았기에 루필리우스는 바쁜 와중이지만 짧은 통성명을 요구했다. 병사는 담담하면서도 총기가 넘치는 얼굴로 대답했다.

"크로뎀 베르크입니다."

"후훗, 역시 내 안목은 정확한가보군. 설마 했는데 5대 명가중 하나인 베르크 가의 일원이라. 그러고 보니 베르크 가문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여기가 점령당하면 무사할지 모르겠어."

"……."

루필리우스의 말에 크로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당연할 것이다. 브롬바르트는 셀리온과 플로센 사이를 봉쇄하고 있는 일종의 문이었다. 그 문이 활짝 열린다면 몬스터들은 비옥한 플로센으로 추악한 손길을 뻗을 것이다. 베르크 가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쓸데없는 소릴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아니라면 다행이군. 아무튼 어서 후문으로 가도록 하지."

루필리우스는 1전단 병사들을 이끌고 브롬바르트의 후문으로 움직였다. 이곳의 성밖에는 많은 몬스터들이 포진해 있었지만 크로펫을 탄 1전단의 병사들이라면 충분히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성문을 열어라!"

드르르륵.

루필리우스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성문이 천천히 내려갔다. 금세 몬스터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열려고 해도 안 열리는 문이 저절로 열리자 놈들은 당황스럽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 표정이 사라지기도전에 크로펫을 탄 1전단의 병사들이 질풍처럼 튀어나갔다.

"크워어어엉!"

다다닥, 다다닥.

촤아악!

푸어억!

크로펫들의 날카로운 일갈과 함께 1전단의 전사들이 몬스터들을 손이 닿는 족족 베어대고 있었다. 후문 쪽의 몬스터들은 대부분이 소형몬스터라 그런지 수효가 수백만에 이르렀지만 크로펫들의 대열로 뚫어대는게 어렵진 않았다.

"성문을 닫아라!"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지막 크로펫까지 모두 다 성문 밖으로 빠져 나가자 성문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루필리우스는 멀어져만 가는 1전단의 병사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바크님. 부디 무사하시길 빕니다."

말을 마친 루필리우스의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맴돌았다. 이제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발걸음을 옮겨 내성문쪽으로 간 그는 예상했던 상황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퍼억, 퍼억, 퍼억!

성문으로 수없이 많은 충격음이 들려왔다. 내성문이 워낙 내구력이 약했던 탓에 충차가 온다면 한방에 터질지도 모르겠다. 물론 충차를 데려올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우거들의 스파이크 클럽만 해도 어떻게 보면 공성병기였으니까.

"모두 무기를 뽑아라."

성벽위의 궁수들을 제외하고, 대기중인 휘하의 하프 뱀파이어 병사들을 모조리 소집시킨 루필리우스는 눈을 질끈 감으며 병사들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병사들이여. 나같은 못난 주인을 두어 너희들의 아까운 목숨을 버리게 되었구나.

우리는 졌다. 하지만 비록 패하더라도 우린 끝까지 싸워야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캄에덴의 자랑스러운 전사들이기 때문이다!"

"와아아아아!"

루필리우스는 자신의 말에 무기를 쳐들고 함성을 지르는 병사들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조만간 성주로서의 책임을 지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따르던 이 수만의 병사들과 땅에 뼈를 묻는다는 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쾅! 콰쾅!

내성문의 나무판자가 일부분 날아가 버렸다. 루필리우스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조금 있으면 성문으로 수많은 몬스터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올 것이다.

쾅쾅쾅! 퍼어엉!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성문이 날아갔다.

"쿠워어어어!"

그와 동시에 트윈헤드오우거가 들어와 스파이크 클럽을 높게 쳐들며 포효했다. 그것을 본 루필리우스는 주저 없이 고함성과 함께 뛰어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브롬바르트 최후의 병사들도 그를 뒤따랐다.

"가자!"

"조국 캄에덴을 위하여!"

"와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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