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48화 (48/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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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재회

넓은 플로센 땅에서 두 뱀파이어 집단이 우연찮게 만나게 되었다. 1전단과 쉐도우 스나이퍼, 다크 매지션이 바로 그들이었다. 제일 먼저 바크가 다가와 환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참 반갑습니다.”

“껄껄껄, 나도 반갑네.”

바르자드가 그의 손을 흔들어주며 말했다. 바크는 소싯적에 잠깐이나마 그의 밑에서 흑마술을 배웠었다. 그래서 둘의 사이는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바크님의 1전단은 아직까지 건재하군요. 브롬바르트가 함락되었다던데…….”

“휴, 말도 마시오. 그때의 악몽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리오.”

바크가 브롬바르트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그를 유심히 바라보던 바르자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네, 혹시 블러드 오우거와 싸운 건가?”

“어떻게 아신 겁니까?”

바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블러드 오우거를 보지도 못했을 텐데? 바르자드는 웃으며 말했다.

“설마 했는데 예상대로였구먼. 수백만의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캄에덴에 쳐들어왔다. 이런 일은 블러드 오우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지.”

“잘 아시는군요.”

“껄껄껄! 조금만 머리를 굴려 본다면 누구나 알 수 있다네. 그건 그렇고, 친구들을 소개해주지.”

말을 마친 바르자드는 스탐 일행을 바크에게 소개해 주었다. 바크는 제일 먼저 지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네를 여기서 만나다니, 참 뜻밖이네.”

“크크큭,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1전단의 전단장 나리.”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싸움에 굶주린 지온이 서열 1위의 바크를 모를 리 없었고, 바크도 지온의 위명을 귀가 아프도록 들은 터였다.

그렇게 일행을 한명씩 둘러보던 바크의 시선이 스탐에게 머물렀다.

“자네는 이름이 뭔가?”

“스탐입니다.”

“아, 스탐 베르크! 예전에 본적이 있지.”

바크의 말에 스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소년단 시절에 게르모네츠의 바로 옆에 서있던 바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나저나 참, 유감이구나. 네 가문이 쑥대밭이 돼 버리다니…….”

바크가 스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스탐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잠시 동안 잊고 있던 사실이 되살아나자 감정이 북받쳐왔다.

“휴우…….”

스탐은 바위에 걸터앉아 상념에 잠겼다. 죄책감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베르크 가의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의 명예와 터전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웠을 테니깐.

툭.

그때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건드렸다. 스탐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용건이지?”

아마 바크나 바르자드가 자신을 부르기 위해 보낸 심부름꾼쯤이라고 판단한 스탐이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금세 상대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당신이 스탐 베르크인가?”

처음 보는 1전단의 병사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물어오자 스탐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의 말투는 무척 개인적인 이유로 보였다.

“그런데?”

스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문제의 뱀파이어는 역시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했다.

“내 이름은 크로뎀. 1전단의 백귀장이다.”

“그러냐?"

스탐은 처음에는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잠시 후, 크로뎀이 한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가신 스웬 베르크의 둘째 아들이지.”

“뭐, 뭐라고?!”

놀라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눈앞의 이 뱀파이어는 자신의 동생이란 말인가? 스탐은 크로뎀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확실히 닮았다. 그의 생김새는 베르크 가문의 색깔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었다. 스탐은 문득 아리아가 죽기 직전에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 가문의 뱀파이어들 일부가 도망쳤었다고 했지…….’

생존자는 크로뎀 하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스탐이 물었다.

“혹시 너 말고 다른 녀석들도 살아있냐?”

크로뎀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데 모여 있는 일단의 뱀파이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수십 명의 뱀파이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한 눈에 보아도 그들은 베르크 가의 일원들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스탐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불행 중 다행이구나. 동생들이 내 얼굴도 못 보고 죽으면 어쩌나 했는데…….”

“동생? 흥, 너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을 텐데?”

환하고 웃고 있던 스탐의 얼굴이 크로뎀의 냉랭한 한마디에 금세 찌푸려졌다. 초면부터 반말을 한 거야 형제지간이니 그냥 넘어간다고 치자. 하지만 그의 말투는 노골적으로 시비를 건다는 느낌이 분명했다. 배틀러씩이나 되는 스탐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만 자격이라는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자격이라니, 무슨 뜻이지?”

“스탐 베르크. 베르크 가문의 장손으로 차기 가주 후보이자, 나의 형이지. 하지만 넌 여태껏 뭘 한거지? 가문을 돌보기는커녕, 강해진다는 핑계로 식구들에게 눈길한번 줘본적이 없잖아? 아, 8년 전에 딱 한번 들렀다고 듣긴 했다.”

“그, 그건…….”

“뭐, 덕분에 최연소 배틀러가 되어 가문을 빛냈으니 넘어가자. 그런데 가문이 쑥밭이 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시체가 될 때까지 뭘 한거지? 도대체 뭘 한거냐고!”

“…….”

스탐은 할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은 크로뎀에게 화를 낼 자격조차도 없었다. 크로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1전단에서 제대해 베르크 가의 재건을 위해서 힘쓰겠다. 하지만 넌 우리 베르크 가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어. 네 녀석은 도대체 여태까지 뭘 한거냐? 고작해야 두 분의 무덤을 만들기밖에 더 했어?”

“그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급히 달려 와보니 베르크 가는 이미 황폐화되었으니까. 휴우, 우리가 하루만 더 일찍 왔더라면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퍼억!

스탐이 채 말을 끝내기도전에 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보고 있던 뱀파이어들이 모두 경악했다. 아무리 1전단의 백귀장이고, 혈연지간이라곤 하지만 배틀러를 때리다니? 하지만 스탐은 자신에게 모욕을 준 크로뎀에게 그 어떤 보복도 가하지 않았다.

“그 따위 변명은 듣고 싶지 않아! 베르크 가는 이미 폐허가 돼 버렸는데 그 따위 소리를 해봐야 죽은 분들이 다시 되돌아 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

“만약 내가 너보다 강했더라면 보자마자 널 죽였을 거야. 꺼져버려, 개자식아. 다시는 베르크라는 성을 부르고 돌아다니지 마!”

말을 마친 크로뎀은 식식거리며 어디 론가로 걸어갔다. 발걸음이 무척이나 거친 것이 그의 감정이 어떠한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스탐은 그런 크로뎀을 측은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아마도 그는 가문을 지켜내지 못한 스스로에게 대해 화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화풀이를 자신에게 한 것일 테지. 물론 최연소 배틀러 스탐에 대한 개인적인 질투심역시 없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스탐은 크로뎀이 충분히 자신에게 화를 낼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죽어가는 베르크 가의 뱀파이어들을 단 한명도 살리지 못했으니까…….’

어느새 스탐의 시선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베르크 가의 뱀파이어들에로 갔다. 그들은 방금 전에 일어난 엄청난 사건 때문에 그들은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탐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들이 베르크 가의 생존자들이니?”

“예.”

“참 감회가 새롭구나. 베르크 가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0년이 넘었다니 말이야.”

스탐은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가문의 뱀파이어들을 둘러보았다.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스탐보다 나이가 적어 보였다.

그러던 중, 스탐은 크로뎀 말고도 동생이 두명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렌과 네리앙이라고 했던가? 스탐이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이중에 내 동생 없니? 비렌과 네리앙이라고 하는데…….”

“제가 비렌이에요.”

“네리앙이 저에요.”

두 명의 남녀가 앞으로 다가왔다. 스탐은 그들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비렌은 스탐과 비슷한 체구를 가졌는데 아마도 그와 비슷한 체형의 소유자로 보였다. 그리고 네리앙은 긴 청발이 생전의 아리아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무튼 스탐은 둘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각각 얹으며 환하게 웃었다.

“참 훌륭하게 컸구나. 비렌. 너는 나랑 체형이 비슷해서 같이 다니면 누군지 몰라보겠어.”

“하하하, 그러게요.”

“네리앙. 그리고 너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았네.”

네리앙이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예…….”

“후우…. 미안하다. 내가 우리 가문에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스탐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만 일찍 왔다면 이라는 생각이 끝내 머리에서 떠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동생들이 위로해주었다.

“아니에요. 형이 왔더라도 우리 베르크 가는 이꼴이 되었을 거에요.”

“맞아요. 우리 가문의 사람들은 명예에 대한 고집이 무척이나 강하니깐 말이에요.”

“훗, 고맙다.”

스탐은 그들의 위로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 애들은 크로뎀과는 달리 성격이 온순해 보였다.

“그런데 형. 괜찮아요? 아까 전에…….”

비렌이 크로뎀에게 맞은 것을 언급하면서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끝을 흐렸다. 스탐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배틀러가 그 정도의 공격에 쓰러져서야 되겠냐. 하나도 안 아파.”

단지 마음이 아플 뿐이다. 사실 크로뎀에게 맞은 것은 참을 수 있었다. 그에게서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가 더욱 더 가슴 아팠다. 스탐의 이런 심정을 눈치 챘는지, 비렌와 아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크로뎀 형의 말을 귀담아 듣지 마세요. 형은 원래 자존심이 세고 거친 성격이니까 말이에요.”

“아마 크로뎀 오빠도 스탐 오빠한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좋겠지만…….”

하지만 둘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스탐은 힘없이 중얼거리며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크로뎀을 바라보았다. 처음 만난 동생에게서 들은 것이 독설이라니. 자신의 운명도 어지간히 더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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