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52화 (5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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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블러드 오우거의 역습

“부탁한다, 카스턴!”

어느새 카스턴을 꺼낸 스탐이 소리쳤다. 카스턴이 감탄사를 토했다.

[호오, 블러드 오우거라, 오랜만이군.]

‘전에도 본적이 있냐?’

[물론. 예전에 캄과 놈이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참으로 대혈전이었지. 물론 전투는 놈의 죽음으로 끝났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때 죽은 놈이 왜 지금 살아난 거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블러드 오우거가 출현한 건 캄 크리스토퍼가 나라를 세울 때의 4000여 년 전과, 지금으로 단 두 번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개 몬스터가 4000년 이상을 살수는 없는 법인데, 설마 트윈 헤드 오우거처럼 일정 확률로 태어나는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이상했다.

“크쿠쿠쿠, 이놈은 또 뭐야?”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그늘이 드리워지자 스탐은 시선을 위로 올렸다. 어느새 블러드 오우거가 스파이크 클럽을 한껏 치켜들고 있었다.

“죽는 게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주마!”

휘이익!

스탐은 자신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스파이크 클럽을 어렵지 않게 피했다. 오히려 그의 안위가 걱정되어 다가온 페리알이 그것을 얻어맞았다.

팅―!

"크헉!"

"페, 페리알!"

스탐은 눈을 동그랗게 뜬채 페리알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몸을 꿈틀거리는 것을 보면 스쳐 맞은 것으로 보였다. 과연 히든 브레이커는 히든 브레이커인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전투를 치르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이 잔챙이 놈들, 크크크!"

블러드 오우거는 흥미가 생긴 건지 다른 뱀파이어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로지 스탐만을 노리고 스파이크 클럽을 휘둘러 왔다.

‘흥, 어림없다!’

스탐이 코웃음을 쳤다. 피하는 거라면 자신이 있었다. 그는 뒤로 몸을 젖히더니 덤블링을 하면서 자신을 찍어 내려오는 육중한 쇳덩이를 피해냈다. 그리곤 블러드 오우거가 무방비 상태에 빠진 틈을 타 놈의 품안으로 달려 들어가 카스턴을 박아 넣었다.

푸우욱!

‘베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감각에 스탐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아무리 천하의 블러드 오우거라도 에인션트급 화이트 드래곤의 송곳니로 이루어진 카스턴에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탐은 한 가지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지금 벤 면적이 치명타일 정도로 블러드 오우거의 몸뚱이가 작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헉!”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서는 블러드 오우거를 보고선 뒤늦게 몸을 뒤로 빨려고 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그는 금세 놈의 발에 걷어차여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크으으, 이런 바보 같은 자식…….”

가까스로 그 자리에서 일어선 스탐이 욕설을 터뜨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에 대한 질책이었다. 상대가 거물임에도 불구하고 한번 찔렀다고 방심해 하다니, 정말 한심했다. 하지만 스탐에겐 그런 반성을 할 여유조차도 없었다.

쿵, 쿵, 쿵!

블러드 오우거가 천천히 자신에게 걸어왔다. 스탐은 이를 악물며 카스턴을 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아마도 흥미를 느꼈나보다. 여태까지 자신의 몸에 생체기를 낸 뱀파이어는 바크 이외에 단 한명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크쿠쿠! 재미있는 놈이군! 적당히 가지고 놀다 죽이기엔 쓸만하겠어.”

블러드 오우거는 뱀파이어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에 스탐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니 단순히 알아듣는 정도가 아니었다. 너무도 생생하고 또렷하게 들리고 있었다.

“흥! 내가 감히 너 따위에게 당할 소냐!”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몸집만 자신의 몇 배에 해당하는 셀리온의 붉은 괴물이 한 말에 당차게 대꾸했다. 블러드 오우거가 광소했다.

“크하하하하! 정말 재미있는 놈이군. 그럼 어디 이거나 막아봐라!”

말을 마친 블러드 오우거가 또다시 거대한 쇳덩어리를 스탐에게 휘둘렀다. 스탐은 그것을 받아내려고 했다. 너무 빨라서 피할 틈조차 없는 건 아니었다. 오기가 생겼을 뿐이었다.

카아앙!

“크으윽!”

스탐이 신음성을 흘리면서도 끝내는 카스턴으로 블러드 오우거의 스파이크 클럽을 막아냈다. 하지만 블러드 오우거의 스파이크 클럽은 한 개가 아니었다.

카앙!

또 다시 느껴지는 얼얼함에 스탐이 안색을 굳혔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캉, 카앙, 캉!

놈은 계속 스탐을 내려쳤다. 그렇게 되자 튼튼한 그의 팔도 점점 한계에 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다. 카스턴의 검신은 한차례 공격을 받을 때마다 균열이 갔다. 물론 카스턴의 특성상 검신이 깨질 리는 없겠지만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었다. 사실 그 일격을 정면으로 받아내고도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타앙―!

그때였다. 구원의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카시안의 라이플 건이 불을 뿜은 것이다.

“카시안!”

스탐이 카시안에게 소리쳤다. 상당히 늦긴 했지만 어쨌든 목숨은 빚진 셈이다. 그는 다시 블러드 오우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타격이 없진 않았는지 놈의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몸에 박힌 총알을 빼내었다.

"크흐흐, 이따위 장난감으로 뭘 어쩌겠다는 소리지?"

"잔말 말고 이거나 먹어!"

그렇게 소리친 스탐이 블러드 오우거에게 카스턴을 뻗었다.

파파파팡―!!

금세 수십 발의 에너지볼이 블러드 오우거에게 날아가 전신을 가격했다. 물론 그 정도의 공격으로는 놈에게 간의 기별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스탐은 후속타를 준비했다. 그것은 바로 6클래스의 냉기계 공격마법 아이스 블래스터였다.

쏴아아아―

카스턴의 검신에서 한줄기의 굵다란 냉기덩어리가 쏟아져 나갔다.

“크으, 이건 또 뭐야?”

블러드 오우거가 욕지기를 내뱉으며 소리쳤다. 아마도 아이스 블래스터에 의해 시야가 차단되고 있을 것이다.

“좋았어!”

회심의 미소를 지은 스탐이 곧장 달려들어 일격을 먹였다. 아이스 블래스터로 시야가 가려진 놈이었기에 피하는 건 고사하고 반격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파앗―

"큭."

하지만 스탐은 재수도 없었다. 그는 블러드 오우거가 마주잡이로 휘둘러대는 손에 얻어맞고는 그대로 튕겨나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스탐의 입에서 대번에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하지만 욕을 할 틈도 없었다. 스탐은 어느새 자신에게 달려드는 블러드 오우거를 보고선 곧장 프로즌 실드를 펼쳤다.

째쨍!

그러나 놀랍게도 이 6클래스의 방어마법은 블러드 오우거의 스파이크 클럽 한방에 깨지고 말았다.

‘젠장, 어떻게 된 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 나는 6클래스의 마법을 한번 쓸 정도의 마나밖에 없단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깜빡했다. 너무 바쁜 와중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퍼벅!

“큭!”

결국 스탐은 프로즌 실드를 뚫고 들어온 스파이크 클럽을 얻어맞고 뒤로 튕겨나갔다.

"하아, 하아……."

바닥에 주저앉은 스탐이 숨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숨을 가누었다. 문제의 블러드 오우거는 또다시 자신에게 다시 달려들고 있었다. 카시안이 계속해서 지원사격을 해주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젠장, 역시 놈을 쓰러뜨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나?’

스탐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문의 원수를 보고도 복수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더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죽기에는 너무 분한데…….’

스탐이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블러드 오우거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저 따위 빌어먹을 몬스터 나부랭이에게 죽으려고 백여 년을 살아온 게 아니었다. 지금 죽는 다면 정말 한이 맺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억.

그때였다. 블러드 오우거가 스탐의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마도 끝장을 낼 모양이었나 보다. 조만간 엄습할 고통에 스탐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상황의 그의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크으으으, 낭패로군.”

블러드 오우거가 주위을 둘러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여유가 생긴 스탐도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장은 바크가 이끄는 1전단의 압승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벌써 태반이 넘는 오우거가 시체가 되어 있었는데, 남은 오우거들도 덧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난다면 놈들이 모조리 전멸할 것으로 보였다. 블러드 오우거가 소리쳤다.

“모두 후퇴! 후퇴하라!”

“쿠어어.”

“쿠우우!”

난폭하고 용맹한 오우거들이었지만 퇴각하는 것은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었다. 놈들은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더니 자기들의 우두머리를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후후후! 놈, 그래도 머리는 돌아가는구먼.”

어느새 바크가 다가와 그렇게 말했다. 스탐은 바크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블러드 오우거를 상대하고 있는 틈을 타 오우거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것이다.

“왜 그러고 있나? 어서 일어나게.”

이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스탐에게 바크의 손이 건네어졌다. 스탐은 천천히 그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크가 웃으며 그를 칭찬했다.

“역시 내 예상은 맞았어. 오늘의 전투는 자네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네. 만약 자네가 놈의 독주를 막지 못했다면 시체가 되는 쪽은 우리였겠지.”

“그렇군요.”

스탐이 오우거들의 시체를 둘러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블러드 오우거를 막은 자신도 대단했지만 단시간만에 오우거들을 이토록 많이 처치한 바크의 능력은 더욱 더 대단했다.

“그럼 이제 한 시름 덜었군요.”

스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바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해. 진정한 싸움은 이제부터야.”

“네.”

스탐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수백만의 몬스터들은 건재했고, 블러드 오우거도 살아 있었다. 아마 시라미아에서 모든 것이 결판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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