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57화 (57/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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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캄에덴의 반격

콰아앙! 콰콰쾅!

하늘에서 검은 빛무리를 띄우며 내려온 다크 스피어들이 지면과 충돌했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이리저리 찢어발겨진 몬스터들의 살점들이 하늘로 비산했다.

우연히도 충차가 시라미아의 성문을 완파한 시각과 다크 스피어가 곡선을 그리며 지면에 충돌한 시각은 정확히 일치했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바르자드가 이끄는 흑마술사들의 선제공격이 끝나자 그들의 뒤로 거대한 인영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덩치 큰 레버쿠젠산 크로펫을 타고 있는 그들은 하나같이 거한들이었으며 손에 달려 있는 장검과도 같은 길고 굵은 손톱은 무엇이든 벨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그것과도 같은 광기어린 눈빛은 그들이 절대 평범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제 자네들의 차례일세.”

“크크큭. 수고하셨습니다. 바르자드님. 이제 저희 차례입니다.”

“끌끌끌. 자네도 수고하게 라윈.”

호쾌하게 웃는 바르자드 앞에 선 버서커 마스터. 라윈은 짙은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레버쿠젠에서 몬스터들의 침공소식을 들은 이래 라윈과 그를 따르는 버서커들은 몬스터들과 싸울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비록 적들의 숫자가 수백만이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였지만 지친다는 것을 모르는 버서커들에게 있어 머릿수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했다. 아니, 손톱으로 육질을 베어낼 때의 쾌감과 그로 인해 사방에 뿜어지는 혈향을 즐기는 이 광전사들에게 있어선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후후후. 선물로 블러드 러스트를 걸어주겠네.”

“호오! 정말 눈물이 나도록 고맙습니다.”

바르자드가 꺼낸 뜻밖의 제안에 라윈의 귀에 입이 걸렸다.

사실 환영계 흑마술이란 것 자체가 상대의 정신을 현혹시켜 대부분은 상대에게 해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3서클의 흑마술, 블러드 러스트는 조금 달랐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하지 말아야 될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제하는 성질이 있다. 이것을 이성이라고 한다. 광기에 굶주린 버서커들도 최소한의 이성은 가지고 있다. 블러드 러스트는 바로 이성의 끈을 끊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성을 잃어 본능에 의지한 채 난동을 부리면 오히려 정교한 공격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버서커는 예외였다. 그들의 컨셉은 광전사다. 광전사가 이성을 잃을 때 발휘하는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더군다나 적은 머릿수만 바글바글한 몬스터들이 아닌가?

“자, 모두 이 친구들에게 블러드 러스트를 걸어주게!”

바르자드가 휘하의 흑마술사에게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흑마술사들이 자신의 근처에 있는 버서커들에게 블러드 러스트를 걸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블러드 러스트를 구사할 줄 알았고 숫자도 버서커와 동일했다. 문제될 건 없었다.

“라 브라칸, 벨리우드의 자욱한 미소가 드리오니…….”

흑마술사들이 손을 뻗은 채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 같아 보였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어느새 버서커들이 몸을 뒤틀며 쾌락에 흥겨워하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우오오오오.”

버서커들은 하나같이 아까전과는 다른 빛을 띄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뱀파이어들을 덮치거나 하진 않았다. 처음엔 단순히 전투에만 집착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전투가 고조될 때 블러드 러스트를 동반한 그들의 광기는 폭발하는 것이다.

“크캬캬! 기분 한번 죽이는구나.”

어느새 블러드 러스트를 받은 라윈이 나른함에 광소를 해댔다. 그가 이것을 원하는 이유는 단순히 강해지기 때문에서가 아니었다. 이성을 완전히 잃기 전에 접하는 강렬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 상태에서 적을 베면 상상을 초월하는 쾌락이 몰려온다고 한다. 오죽하면 버서커들이 한결같이 ‘뱀파이어로 살아오면서 느껴본 생애 최고의 쾌락’이라고 단언하겠는가!

“뭣들 하느냐! 어서 저 추악한 몬스터 놈들을 찢어발기러 가자!”

“크크크크,”

“알겠습니다 마스터. 크흐흐흐….”

다닥 다닥.

라윈의 추상같은 호령에 버서커들이 크로펫을 탄 채 급경사의 언덕을 내려오며 몬스터들에게 돌격해갔다.

“쿠웨에에?”

“쿠워어어억!”

몬스터들은 갑자기 떨어진 날벼락 때문에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언덕위에서 소수의 뱀파이어들이 흉흉한 살기를 머금고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버서커들은 공포에 질린 몬스터들을 요리하기 위해 손을 점점 치켜들었다.

“크하하하!”

선두의 버서커 하나가 두려움에 젖은 채 창을 들이대고 있는 오크에게 손을 뻗었다.

푸학!

찰나였다. 오크는 창을 내밀고 있는 상태 그대로 머리통이 날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버서커들의 살육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촤아아악! 푸욱 푸파파파팍!

어느새 진영 안까지 파고든 버서커들이 몬스터들을 마음껏 유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결코 전투가 아니었다. 날카로운 그들의 손톱에 순식간에 여러 토막이 나 잘려진 팔다리가 하늘로 치솟았고, 피분수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버서커들은 하나하나가 마치 하나의 태풍이었고, 몬스터들은 거기에 휩쓸리는 가옥같았다. 그렇게 일방적인 도살이 없었다.

“크하하하하! 죽어라 죽어!”

라윈이 광소와 함께 흑마기가 맺힌 손톱으로 몬스터들을 미친 듯이 베어대었다. 상대의 살을 긁으면서 느끼는 손톱 끝의 쾌감이란 버서커인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였다. 살아가면서 짊어지는 수많은 고뇌와 시련, 고통도 상대의 육체를 유린함으로서 얻는 이 쾌락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소리쳤다.

“전진! 놈들을 계속 뚫고 가라!”

그것은 분명 버서커들에게 한 말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잡음이 도사리고 있는 이곳에서 그 명령이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었다. 결국 라윈이 한 말은 그 자신에게 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크크크큭! 그나저나 서서히 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는군. 과연 블러드 러스트야. 어디 한번 시험해볼까?’

라윈은 자신의 앞에 서있는 트롤에게 다크 오러가 실린 손톱을 대각으로 그었다.

뎅겅!

트롤이 고깃덩어리가 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재생력이 강하다는 놈도 천하의 버서커 앞에선 일개 몬스터에 불과했던 것이다.

“키아아아!”

“쿠웨에엑!”

푸악 파파팍!

몬스터들에게 가하는 살육의 소리는 끝이 없었다. 닥치는 대로 죽이면서 진영을 휘젓고 있는 소수의 버서커들을 막아설 수 있는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오랜만이로군. 버서커들의 진정한 힘을 보는 건…….”

그 진풍경을 보고 있던 아이슬로너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황금색 자수가 놓여진 화려하고도 고풍스러운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은 캄에덴의 군주라는 사실을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아이슬로너는 버서커들이 한참 몬스터들을 찢어발기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2전단에게 아직까지 출진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지 않았다.

“괜히 아군끼리 상잔할 이유는 없겠지.”

일찍 보냈다간,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버서커들의 애꿎은 먹이가 될 뿐이었다. 물론 소수의 뱀파이어, 그것도 최강의 전사들을 몬스터들에게 던져놓고 방치하는 게 영 꺼림칙했지만 죽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블러드 오우거는 어디에 있는 거지? 놈과 싸우고 싶어 온 몸이 근질근질하군.’

버서커들을 보고 있던 아이슬로너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캄에덴의 이인자인 바크를 쓰러뜨린 상대가 바로 블러드 오우거였기 때문에 기대감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모름지기 뱀파이어는 강자를 환영하면 환영했지, 꺼리지는 않으니 말이다.

“로드. 어서 출진명령을 내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윽고, 2전단의 전단장 오르시스가 아이슬로너의 곁에 다가왔다. 그는 아이슬로너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다크 나이트들이 부담스러워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었는데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야겠지. 뭐하나? 어서 놈들을 쳐부수러 가지 않고.”

“알겠습니다!”

오르시스가 기쁜 목소리로 말을 마치곤 2전단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곧이어 1만에 달하는 기병대가 몬스터들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아이슬로너는 바라크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우리도 이제 슬슬 싸워볼까?”

“크흐흐.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바라크만이 게일 그레네이더를 쥔 채 미소를 지었다. 다크 나이트들은 사실상 뱀파이어 로드의 소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드가 가는 길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가게 돼 있었다.

“크와아앙!”

크로펫들이 우렁찬 고함성과 함께 언덕 밑으로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키이익?”

몬스터들은 일단의 뱀파이어 무리들이 자신들을 휩쓸고 간 뒤에 또다시 비슷한 수의 뱀파이어들이 내려오자 당황해했다. 그래도 아까전의 절차를 밟지는 않겠다는 듯 응전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그것도 부질없는 짓이었다.

“흑마탄 발사!”

파방!

오르시스의 서릿발같은 고함과 함께 2전단 병사들의 손에서 새까만 구체들이 쏟아져 나갔다.

파바바바방! 퍼버버벅!

몬스터들은 흑마탄에 맞아마자 앞줄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더러운 몬스터들을 처단하라!”

기선이 제압당한 몬스터들의 앞으로 다가온 아이슬로너가 몬스터의 목숨을 취하며 외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날고 기는 2전단이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은 추풍낙엽이 되어 죽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신호탄에 불과했다. 어느새 언덕위에서 수만에 달하는 인영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가자! 뱀파이어 로드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와아아아앗!”

그들은 바로 아이슬로너가 끌고 온 뱀파이어 전단으로,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무적의 군대였다. 지금 몬스터들을 휘젓고 있는 버서커나 2전단도 그들과 비교해 본다면 일종의 양념에 불과했다.

“크으으으! 저놈들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놈들이지?”

엄청난 수의 뱀파이어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있는 몬스터들을 보고 있던 블러드 오우거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인상을 구겼다.

처음에 쏟아진 날벼락을 시작으로 자신의 몬스터 군단은 끊임없는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오우거들이 시라미아 근처에 모여 있다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적들을 수효로 보아하니 배치가 잘 되어 있어도 이기긴 힘들어 보였다. 숫자는 자신들이 100배 정도 월등했지만 그들은 하나하나가 일당백의 전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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