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59화 (59/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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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캄에덴의 반격

"만나서 반갑다. 난 아이슬로너 바리스칸. 네 말대로 난 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뱀파이어 로드다."

"나 역시 반갑다."

짤막하게 한 마디 한 블러드 오우거는 광소를 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대지가 진동할 정도였다.

“크후후후. 쓰잘때기없는 인사는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근질근질해서 더는 못 참겠군!"

쿠쾅!

말을 마친 블러드 오우거가 쥐고 있던 두 자루의 스파이크 클럽으로 땅을 내려쳤다.

쿠쿠쿵!

마치 지진이 일어나기라도 하듯 바닥이 마구 흔들렸다. 얼마나 진동이 강했으면 주변에 있던 뱀파이어와 몬스터들이 싸우다말고 주저앉을 정도였다. 놈은

"대단하군."

간단한 평가를 내린 아이슬로너는 다리에 흑마기를 밀집시킨 뒤 점프를 했다. 그 덕에 블러드 오우거의 커다란 스파이크 클럽은 애꿎은 바닥만 움푹 패여들었다.

"맛있을 거다."

팡! 파방!

아이슬로너가 흑마탄을 날렸다. 바람을 가르며 블러드 오우거에게 날아간 배틀 마스터의 흑마탄은 3서클의 흑마술인 다크 스피어에 맞먹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쾅! 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블러드 오우거가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것을 정통으로 맞는다면 초급 배틀러도 한방에 쓰러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블러드 오우거는 고통스럽기는커녕, 오히려 히죽 웃고 있었다.

"크흐흐흐. 신선해. 너무나 신선하군! 아이슬로너라고 했나? 네놈은 내가 블러드 오우거로 태어나서 최초로 마음에 든 놈이다!"

"별로 기쁘진 않군."

담담한 어조로 한 마디 한 아이슬로너는 순식간에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면서 블러드 오우거의 턱을 쳤다.

퍼억!

강력한 맷집을 가진 블러드 오우거였지만 이번의 일격은 그의 정신을 나가게 할 정도로 충분한 파괴력이 있었다.

"이게 뭔지 아나?"

아이슬로너는 자신의 팔을 휘감은 금색의 다크 오러를 보여주었다. 아마 평범한 뱀파이어가 그것을 봤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크후후! 내가 알바 아니다."

그러나 블러드 오우거에겐 그저 흥밋거리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나보다. 잠시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도 둘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서로의 허점을 찾고 있었다. 아이슬로너는 일부러 허점을 드러내 보였다. 곧바로 블러드 오우거의 강력한 일격이 날아왔다.

쿠아앙!

예상했던 바이기에, 아이슬로너는 그 일격을 어렵지 않게 피했다. 방금 전 그가 있던 바닥이 움푹 패여 들었다. 아마 그것을 정면으로 맞는다면, 미스릴이든 아나만디움이든 상관없이 모조리 가루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저 힘만 쓸줄 알지, 싸우는 법은 모르는 놈이로군."

피식 웃으며 블러드 오우거를 조롱한 아이슬로너는 한 손에 약간의 다크 오러를 끌어 모은 채 블러드 오우거에게 뛰어들었다. 그리곤 놈이 두 손바닥으로 자신을 샌드위치로 만들기 전에 무언가를 뿌리듯 꾹 쥐고 있던 손을 폈다.

화아아악.

"크윽!"

그의 손에서 쏟아져 나온 무형의 기운이 눈에 들어가자 시야가 흐린해진 블러드 오우거가 고개를 흔들었다. 비단 눈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아이슬로너가 여유 만만한 얼굴로 한 마디 했다.

"다크 오러 번에 당한 기분이 어때?"

다크 오러 번은 손에 모으고 있던 다크 오러를 입자단위로 흩뿌리는 기술이었다. 제대로 적중만 되면 일정시간동안 상대의 시야는 물론이고 온몸을 마비시킬 수 있었다. 물론 블러드 오우거를 이 꼴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솜씨를 가진 인물은 아이슬로너뿐이었다.

"이제 한방을 먹일 차례군."

아이슬로너는 여유로운 얼굴로 자세를 잡았다. 뒤로 젖힌 오른팔에서는 영롱한 기운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것은 골든 다크 오러를 상징하는 흑금빛이 붉어져 기묘한 색깔을 지니고 있었는데 차츰 창의 형상으로 바뀌고 있었다.

'벨리우드의 지옥창. 이거라면 한방에 보낼 수 있겠지?'

일명 헬스피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그야말로 최강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량의 다크오러를 담보로 하는 대신, 웬만한 것은 닿기만 하면 다 쟤로 만들어버릴 정도니 말이다. 아무튼 아이슬로너는 블러드 오우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쿠르르르르―!

어느새 그의 손에서 생성된 불의 창이 아직도 몸이 마비되어 있는 블러드 오우거에게 쇄도했다.

“크아아아악!!”

놈의 비명성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아이슬로너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비록 제대로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는 블러드 오우거가 죽을 것을 의심치 않고 있었다.

"으응?"

아이슬로너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저 붉은 괴물의 육중한 몸뚱이가 바닥에 떨어질 것이라고 단언했건만, 놈은 아직도 버젓이 서 있었다.

‘생명체라면 당연히 죽어야 하잖아?’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급소에 구멍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살아 있다니? 놈은 뚫려 있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크흐흐흐. 나는 목이 잘리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블러드 오우거는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아이슬로너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빌어먹을.’

아이슬로너는 얼굴을 찡그렸다. 방금 전에 쓴 헬 스피어로 자신은 몸 안에 있던 다크 오러가 거의 다 소진되었다. 조금만 더 전투를 벌이고 있으면 바닥이 날 것이다. 오히려 피해를 입은 블러드 오우거보다 그가 더 위험한 것이다.

"크아앗!"

휘악―!

어느새 블러드 오우거의 우악스러운 팔이 날아왔다. 아이슬로너는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며 흑마탄을 쏘아가며 저항했다. 눈꼽만큼의 피해도 주지 못할 게 뻔했지만 다른 기술을 쓸만한 여유도 없었다.

펑! 펑!

"쥐새끼 같은 놈!"

블러드 오우거는 흥분한 표정으로 아이슬로너를 계속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따끔한 흑마탄이었다. 물론 그것도 부질없는 저항에 불과했다. 아이슬로너는 블러드 오우거에게 아무런 타격도 입힐 수 없었고, 일단 잡히면 끝장이었기 때문에 이미 이 싸움의 승리자는 예정되어 있었다.

퍽!

“으윽!”

블러드 오우거의 거대한 손에 튕겨나간 아이슬로너가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곧바로 그의 눈앞에 놈의 거대한 발이 떨어졌지만 몸을 굴려 간신히 쥐포신세를 면하게 되었다.

‘히든 브레이커를 부를까?’

아이슬로너는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히든 브레이커들이 자신이 고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서지 않는 것은 명령을 내리지 않아서이다. 뱀파이어에게 있어 1:1의 대결에서 끼어드는 것만큼 치욕적인 일은 없으니까.

‘일국의 군주인 내가 부하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니? 안돼.’

아이슬로너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저들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크흠. 네놈을 죽이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시간이 없군.”

주위를 둘러보던 블러드 오우거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슬로너는 그를 따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장은 어느새 캄에덴의 정예병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상당수의 병사들이 죽긴 했지만 몬스터들의 시체는 몇 백배는 더 많았다.

“그럼, 도망가겠단 말인가?”

아이슬로너가 가시가 돋친 어조로 물었다. 블러드 오우거가 당연하다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정신 나간 놈이군.”

저 많은 부하들을 놔두고 도망가겠다니, 아무리 몬스터라고 해도 지휘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놈이었다. 블러드 오우거는 광소를 하며 말했다.

“크하하! 마음대로 지껄여라. 여기 있는 놈들은 어차피 소모품이다. 셀리온에 가면 이만한 병력을 끌어 모으는 것쯤이야 시간문제지!”

블러드 오우거의 말은 사실이었다. 셀리온 평원은 추정되는 수만 1억에 달하는 몬스터들의 왕국이었다. 구심점인 그가 죽지 않는 한에야 몬스터들은 얼마든지 캄에덴을 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네놈을 곱게 보낼 수는 없겠군.”

아이슬로너는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제서야 히든 브레이커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라프가 와서 그를 부축했다.

“로드, 괜찮으십니까?”

아이슬로너는 카라프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나는 괜찮다. 그보다 어서 블러드 오우거를 죽여라. 놈이 도망치기 시작하면 따라잡을 수 있는 녀석들은 너희들밖에 없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블러드 오우거는 그 몸집만큼이나 속도가 빨랐다. 한번 뛰기 시작하면 배틀러조차도 추격하기 어려웠다. 아이슬로너 자신이야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고, 블러드 러스트에 걸린 버서커나 육중한 갑옷을 입은 다크 나이트로 몸을 추격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히든 브레이커는 달랐다. 그들은 캄에덴에서 가장 빠른 자들이다. 블러드 오우거를 쫓아가서 죽이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가증스러운 놈. 자기 힘으로 해결 못하니까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군.”

“마음껏 지껄여라. 그러는 것도 지금뿐일 테니까.”

아이슬로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블러드 오우거가 도망가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패색이 짙은 전투였는데 제 발로 도망갔다. 자존심도 지키고, 놈도 죽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하지만 블러드 오우거도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여유만만한 얼굴이었다.

“크흐흐흐흐! 과연 그럴까? 쿠르르아아!"

블러드 오우거가 난데없이 포효를 했다. 특수한 억양이 느껴지는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았다.

“뭐야?”

아이슬로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놈도 만신창이가 된 자신이 히든 브레이커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살을 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자살을 한답시고 포효를 하는 놈은 없었다.

‘혹시?’

대충 짚이는 데가 있었다. 블러드 오우거는 오우거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몬스터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소리는 오우거들을 부르는 소리일지도 몰랐다.

쿵쿵쿵!

예상대로였다.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존재들이 떼를 지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충성스러운 오우거들이여.”

블러드 오우거는 어느새 자신의 눈앞에 당도한 오우거들을 내려다보았다. 오우거들은 트윈 헤드 오우거까지 합해서 이백 여 마리에 달했다.

"그럼 의식을 시작해야겠군."

말을 마친 블러드 오우거는 자신의 손톱으로 팔을 베었다. 이윽고 붉은 괴물의 팔에서 붉은 피분수가 뿜어졌다. 그것을 본 오우거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피의 신이시여. 셀리온의 가련한 자식들에게 힘을!"

두 손을 뻗은 채로 중얼거리고 있는 블러드 오우거의 모습은 마치 마법사가 마법을 영창하는 듯했다.

“쿠우우우.”

어느새 오우거들의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일종의 블러드 러스트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군요.

아이슬로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카라프가 이를 악물었다. 분명히 지금 당장 공격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섣불리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히든 브레이커들도 마찬가지였다.

“크우우우.”

어느새 의식을 마친 듯 멍하니 서있던 오우거들이 히든 브레이커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카라프가 외쳤다.

“모두 전투태세로!”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든 히든 브레이커들이 일제히 흑마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은신의 로브는 지속시간이 무척 짧았기 때문에 모습이 훤히 드러난 지 오래였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다. 열심히 싸워봐라.”

블러드 오우거는 조소 어린 어조로 히든 브레이커들을 비웃으며 어디 론가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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