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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캄에덴의 반격
“젠장, 낭패로군.”
아이슬로너의 입에서 상소리가 튀어 나왔다. 이렇게 되면 블러드 오우거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이슬로너가 한참 앞으로 나아간 탓에 다크 나이트나 버서커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 그들에게 맡기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히든 브레이커들이 오우거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시하고 블러드 오우거들을 잡으러 가는 것도 힘들었다. 피의 의식이라는 것을 받은 놈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들을 쫓아올 테니깐 말이다.
“일단 이 놈들부터 처치하고 블러드 오우거를 쫓아야겠군요.”
“그래야겠군.”
카라프의 말에 아이슬로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통이 터졌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80여명의 히든 브레이커들과 삼백 여 마리의 오우거들이 잠시 동안 대치했다. 몸집으로나 숫자로나 오우거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히든 브레이커들은 개개인의 전투력 자체는 캄에덴 최고였다.
"쿠워어어억!!"
이윽고, 리더로 보이는 트윈 헤드 오우거가 먼저 뛰쳐나갔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뒤에 있던 오우거들이 일제히 히든 브레이커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카라프가 곧장 공격을 명했다.
"가자! 우리 히든 브레이커들의 힘을 보여주자!"
"하아압!"
"쿠워어억!!"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두 집단은 서로 동시에 충돌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가히 경천동지할만했다.
“하압!”
푸악!
제일먼저 한 오우거에게 날아든 히든 브레이커가 다크 오러를 머금은 손으로 가슴을 찔렀다.
“우어어어!”
오우거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무방비상태에 빠진 놈에게 서너명의 히든 브레이커가 달라붙어 똑같은 일격을 가했다.
쿠웅!
순식간에 오우거 한 마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실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쓰러진 동료를 보고 분노한 오우거들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스파이크 클럽을 휘둘렀지만 단 한명도 맞지 않았다.
“좋았어!”
카라프의 입가에 미소가 배였다. 애초의 우려와는 달리 히든 브레이커들은 단체로 모여서도 잘 싸우고 있는 것이다. 워낙 빠르고 강한 자들이다 보니 오우거들의 공격은 매번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쿠어어!”
또 다시 한 마리가 쓰러졌다. 이번에는 트윈 헤드 오우거였다. 비록 오우거보다 강해 애를 먹긴 했지만 대여섯 명의 히든 브레이커들이 동시에 달라붙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니 셀리온의 최강자라는 놈도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황이 히든 브레이커들에게 영 넘어간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발이 빠른 그들도 오우거들의 육중한 스파이크 클럽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퍼억!
“으억!”
한참 치열한 난전을 벌이고 있던 와중에, 한 히든 브레이커가 스파이크 클럽에 맞았다. 바닥에 나뒹굴기가 무섭게 그에게 또다시 그것이 날아왔다.
“위험해!”
쾅!
다행히도 그것을 보고 있던 동료가 미리 데리고 빠져나감으로서 그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태로 보아 제대로 전투를 치르기는 어려워 보였다.
“젠장.”
보고 있던 카라프가 인상을 찡그렸다. 5마리를 죽이긴 했지만 아직도 오우거들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벌써 한명이 전투불능이 되버리다니? 이렇게 되면 다 처치하고 블러드 오우거를 추격하기는커녕 전멸할지도 몰랐다.
“내가 나서야겠군.”
말을 마친 카라프는 풀 다크 오러를 끌어 올렸다. 그도 바크처럼 하이 배틀러이며, 캄에덴에서 가장 빠르다고 알려진 존재였다.
“쿠우우!”
트윈 헤드 오우거 한 마리가 그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카라프가 아니라 놈이 말이다.
“흥!”
코웃음을 친 카라프는 수도를 세운 채 곧장 놈의 어깨위로 날아들었다. 어찌나 점프력이 뛰어난 지 트윈 헤드 오우거가 아예 사라진 줄 알고 잠시 동안 두리번거릴 정도였다. 카라프는 손을 뻗었다.
푸아악!
금세 놈의 머리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카라프는 옆에 있는 목 하나를 더 잘랐다.
순식간에 머리 두개를 잃은 트윈 헤드 오우거가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려 했다. 카라프는 그전에 놈에게서 내려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는 혼자서 오우거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었다.
"이거나 먹어라!"
그렇게 외친 카라프는 양팔에 다크 오러를 끌어올렸다. 일정량이 양손에 모이자 그는 곧바로 오우거들에게 뻗었다.
파지지직.
강력한 다크 오러의 기운이 넓게 퍼져나가며 오우거들을 휩쓸었다. 놈들은 자신이 왜 고통스러워하는지도 모르고 온몸에 생체기가 나 피분수를 뿜어내며 죽어갔다.
스톰 오브 다크니스(Storm of Darkness)라고 명명된 이 기술은 두 팔에 집약된 다크 오러를 폭풍처럼 뿜어내어 상대를 찢어발기는 기술이었다. 다크 오러 번과 유사한 형태였지만, 파괴력 자체는 격이 달랐다.
어느새 카라프가 손을 내렸다. 한떼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십여 마리의 오우거들이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은 고전하고 있는 히든 브레이커들의 사기를 충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야!”
“역시 카라프님이야!”
“뭣들 해? 어서 놈들을 죽이자고!”
한번 기세를 얻은 히든 브레이커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오우거들의 스파이크 클럽을 피하기에만 급급했던 그들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오히려 공격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여섯 명이 한조가 되어 한 마리의 오우거를 집중공격하는 그들의 공격은 교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피의 의식에 사로잡힌 오우거들이 포효하며 스파이크 클럽을 휘둘러댔지만, 번번이 허탕만 칠뿐이었고, 그런 그들에게 날아오는 건 차가운 수도였다.
푸욱 푸푹! 쿵!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끝까지 저항하던 한 마리의 트윈 헤드 오우거가 카라프의 손에 목이 떨어짐으로서 블러드 오우거의 졸개들은 전멸 당했다.
"다 끝난 건가?"
바닥에 드러누운 삼백여구의 시체를 둘러보던 카라프가 턱을 어루만졌다. 자신의 활약으로 전투는 비교적 손쉽게 이겼다. 하지만 아군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후우. 8명이나 죽었다니……."
카라프가 모아둔 여덞구의 시신을 보고선 한숨을 쉬었다. 죽은 자들은 히든 브레이커중에서 가장 약했지만 그만큼 어렸기 때문에 앞날이 창창한 녀석들이었다. 자기 목숨을 관리하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건만.
“너희들은 이 셋의 시신을 영광의 무덤(Grave of Honor)에다 안치시킨 뒤 해산하라."
“알겠습니다.”
카라프의 지시에 히든 브레이커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영광의 무덤이란 혈왕성 근처에 위치한 무덤으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뱀파이어들이 묻히는 곳이다. 물론 일개 병사들은 묻힐 수 없었다. 오직 특수부대나 뱀파이어 전단의 천귀장 이상의 장교만 묻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블러드 오우거군.”
사망자 처리가 일단락되자 카라프가 한 방향에 시선을 옮겼다. 그곳은 바로 블러드 오우거가 도망간 곳이었다. 반드시 쫓아가서 목을 따야만 했다.
“하지만 이 상태로 놈을 쫓는다는 건 무리야.”히든 브레이커들을 둘러보던 카라프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오우거들과의 격전으로 녹초가 된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쫓아가는 데 성공하더라도 잡는 건 고사하고 되려 죽임을 당할지도 몰랐다.
“나 혼자 가야겠군.”
“마, 마스터!”
카라프의 말에 깜짝 놀란 히든 브레이커들이었다. 상대는 뱀파이어 로드도 쓰러뜨린 천하의 블러드 오우거였다. 물론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치명상을 입긴 했지만 카라프도 오우거들과 싸워 힘을 소진한 상황이 아닌가.
“난 괜찮다. 놈과 싸울 정도의 힘은 충분해. 그보다 너희들은 아군을 도와 몬스터들을 섬멸시키는 데 주력해라.”
“예.”
카라프의 명령에 응한 히든 브레이커들은 다시 전장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카라프는 이내 커다란 발자국이 줄줄이 찍힌 곳에 시선을 옮겼다.
“블러드 오우거. 반드시 널 죽이고야 말겠다.”
놈을 놓치면 캄에덴은 또다시 짓밟히고 말 것이다. 그것만큼은 사전에 막아야만 했다.
다다다다.
카라프는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른지 마치 사라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