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70화 (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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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형제

두 번째 경기가 크로뎀의 승리로 돌아간 직후, 바로 세 번째  경기가 열렸다. 출전자들이 모두 이름 있는 실력자라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냈지만, 스탐의 눈길을 그렇게 끌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 경기는 약간 흥미로웠다.

“다이어. 꼭 이겨라.”

“훗, 그런 소리 안 해도 이겨.”

스탐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회장에 올라가는 다이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다이어는 처음 만났을 때도 자신보다 강했다. 그럴진대 100여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강해져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하아, 다이어. 널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약속은 지켜야겠지?”

“물론이죠.”

다이어가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상대는 바로 그와 같은 다크 나이트인 피렌시스였다.

그들은 며칠 전에 바라크만에게서 한 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만약 자신들이 경기에서 만나게 된다면, 이기는 자가 서브 마스터의 자리에 오를 거라고. 가능성이 희박한 약속이었지만, 우연찮게도 제비뽑기의 구슬은 그들의 첫 대결에서 만나게 만들었다. 의지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오너라. 다이어! 하프 뱀파이어의 한계를 일깨워주마!”

“당신은 절 이길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은 다크 나이트 내에서 이인자를 다투는 라이벌관계였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의 탐색전도 없이 곧바로 전투를 치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화끈함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배틀러들과는 달리, 다크 나이트들끼리의 전투는 무기와 무기가 날아다녔다. 순수한 육체의 힘을 추구하는 뱀파이어에겐 그리 달갑진 않았지만, 자주 볼 수 있는 구경거리였기에 관객들의 열기는 다른 경기 못지않았다.

채앵! 창창!

“맛이 어떠냐!”

첫 접전에서 다이어의 기선을 제압한 피렌시스가 창을 뻗으며 소리쳤다. 트라이던트라 불리는 그의 삼지창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베일 것 같아 보일 정도로 날카로웠다.

“맛이 없군요.”

“…….”

“하지만 호적수로 인정하기엔 충분한 실력입니다.”

“뭐야? 이 놈이!”

서브 마스터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피렌시스는 곧잘 흥분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대의 서브 마스터가 은퇴한 직후 바라크만은 그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놨으니까. 명목상으로는 그 자리에 넣을 만한 인물이 없어서라고 했지만, 진정한 이유는 다이어와 피렌시스, 이 둘 사이에 우열을 가릴 수 없어서였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네놈을 쓰러뜨리겠다!’

피렌시스가 이를 앙 다물고 다이어에게 뛰어들었다. 다이어가 그의 호적수로 자리매김한지 20년이 지났다. 수백, 수천 번의 대련을 했지만 항상 전적은 비슷해 서브 마스터가 되는 건 요원한 일로 보였다. 하지만 이 전투가 종지부였다. 이제 끝장을 봐야만 했다.

챙챙! 차차창!

무려 수십 차례의 검격과 창격이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허공에서 격돌했다. 그럼에도 둘은 어느 하나 상처를 입지 않았다. 갑옷이 워낙 단단했기 때문이다. 아나만디움으로 코팅된 다크 나이트의 갑옷은 웬만한 충격이 아니면 절대 깨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뿐이었다.

‘갑옷을 뚫어 회생불능의 치명타를 입힌다.’

피렌시스는 이제 슬슬 끝내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긴 소모전 때문에 체내의 흑마기도 바닥을 달리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다이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차핫!”

트라이던트가 섬광을 가르며 다이어에게 날아들었다. 다이어는 갑옷을 입은 몸임에도 날렵하게 점프했다. 하지만 그것은 피렌시스가 노리던 바였다.

휘릭

트라이던트가 회전하면서 꼬리부분이 다이어에게 날아갔는데, 놀랍게도 거기엔 날카로운 창날이 박혀있었다. 방금 전의 일격은 꼬리부분으로 휘두른 것이다!

‘이걸로 마지막이다!’

피렌시스가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서브 마스터는 나다!

퍼억!

둔탁한 소음과 함께 다크 나이트 하나가 나가 떨어졌다. 타격을 입힌 상대 다크 나이트는 비릿한 미소로 나직하게 말했다.

“피렌시스님. 그런 수법은 저에게 통하지 않는답니다.”

“!”

놀랍게도 피해를 입힌 쪽은 다이어였다. 그는 피렌시스의 계획을 미리 간파했던 것이다.

‘휴, 아찔한 순간이었어.’

다이어는 순간적으로 방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무방비상태에서 날아온 트라이던트의 창날! 직방으로 맞았다면 바로 경기가 끝났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먼저 피렌시스의 가슴에 발차기를 먹인 게 천만다행이었다.

‘다크 나이트가 발을 쓸 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거다.’

바닥을 나뒹구는 피렌시스를 조롱한 다이어는 곧장 그에게 달려들었다. 양손에 쥔 그의 장검, 윈드 커터에서 새까만 검기가 치솟았다.

“이 자식!”

피렌시스가 다급히 트라이던트를 들었다. 하지만 늦었다. 현란한 움직임으로 품속을 파고든 다이어의 검은 언제부턴가 그의 갑옷을 꿰뚫고 있었다.

“끄어헉.”

피렌시스가 고통에 저린 얼굴로 다이어를 바라보았다. 다이어는 그를 향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한 마디 했다.

“오늘부터 제가 서브 마스터로군요.”

이미 승부는 결정지어졌다. 패자와 승자는 바뀔 수 없었고, 그 참담한 현실에 피렌시스가 울분을 터뜨렸다.

“젠장.”

“그럼, 편히 쉬십시오.”

말을 마친 다이어가 검을 빼내었다. 댐이 터져 나오는 폭포수처럼 피렌시스의 몸에서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몸이 축 늘어졌다.

다이어는 무거운 다크 나이트를 업은 채 선수석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회자가 소리쳤다.

“승자는 다이어입니다!”

“녀석, 대단한데?”

스탐이 감탄이 어린 얼굴로 다이어를 바라보았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경기의 승자가 다크 나이트의 서브 마스터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경기는 더 대단할 테니까 기대해.”

스탐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카이사르가 일어서 있었다. 그러고 보면 다음 경기에는 녀석이 나간다.

“그래? 정말 기대되는 걸?”

“훗.”

카이사르는 피식 웃으며 스탐을 바라볼 뿐이었다. 참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상대가 만만한 녀석은 아닌데…….’

스탐이 그의 상대에게 시선을 옮겼다. 검은 갑옷을 입은 그의 이름은 바록 피르티츠. 서열 22위로 다크 나이트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처억.

두 뱀파이어가 경기장 위로 올라가 마주섰다. 바록이 워낙 몸집이 큰 탓에 카이사르가 한 없이 왜소해 보였다. 벌써 승자를 예상했다는 듯 관중석에선 바록을 부르는 외침이 끝없이 들려왔다.

“경기 시작!”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외침이 울림과 동시에 카이사르가 바록에게 몸을 날리며 손을 뻗었다.

파바방!

금세 그의 손가락 끝에서 흑마탄 다섯 발이 쏟아져 나갔다. 그 검은 탄두들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바록에게로 날아왔다. 하지만 그에게 눈곱만큼의 피해도 입히지 못할 것이다. 흑마탄은 그만큼 약하니까.

펑펑!

“으윽.”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바록이 신음성을 터뜨리며 뒷걸음질을 한 것이다. 분명히 극강의 내구력을 자랑하는 다크 나이트의 갑옷이라면 흑마탄 따위는 아무리 강해도 흠집도 못낸다. 다만 그는 신체가 일부분 노출된 갑옷의 관절부위에 맞은 것이다.

‘제법 하는군!’

하지만 서열이 단순한 숫자는 아니었다. 바록은 금세 평정을 되찾으며 앙갚음을 하기 위해 자신의 중병기인 데들리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휘이이익!

터무니없이 거대한 중병기가 나뭇가지 마냥 가볍게 카이사르에게 날아왔다. 비록 바라크만의 게일 그레네이더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겠지만, 수위를 다투는 바록의 데들리 글레이브는 무언이듯 쪼개어 버릴 것만 같았다.

“!?”

순간 바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공격이 무언가에 의해 막혔기 때문이다. 그는 데들리 글레이브를 저지하고 있는 존재에 시선을 옮겼다.

“아니, 저것은!?”

놀라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지금 그의 중병기를 막고 있는 흑광(黑光)은 오래전에 사라진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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