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71화 (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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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형제

차창!

검의 형상을 한 두 자루의 흑광이 바록에게 반격을 가했다. 바록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형편없이 뒤로 밀려져 나갔지만, 한 가지 엄청난 사실 때문인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죠. 다크 웨폰은 제 스승님만이 쓰셨으니까.”

카이사르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다크 웨폰은 전대 뱀파이어 로드 게르모네츠가 창안한 흑마술로, 다크 오러를 체외로 배출시켜 형상화시키는 기술이다. 흑광을 뿜어내는 이 다크 웨폰은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형태가 바뀌기 때문에 다채로운 공격 패턴을 자랑한다. 게르모네츠가 이것 하나로 다른 하이 배틀러들을 쓰러뜨리고 뱀파이어 로드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만 생각해봐도 강력한 기술임에 틀림이 없었다.

“닥쳐라! 어쭙잖은 기술로 감히 그분의 이름을 사칭하다니!”

바록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는 아이슬로너보다 게르모네츠를 더 존경했다. 그래서 감히 그의 제자임을 자처한 눈앞의 뱀파이어를 용서할 수 없었다.

“믿기 힘들다면 직접 가르쳐 드리지요.”

어느새 카이사르의 입가에서 미소가 싹 달아났다. 그는 양손에 쥐고 있던 검을 붙였다. 그러자 두 자루의 검이 어느새 한 자루의 장검으로 변해 있었다.

카이사르는 바록이 검의 사정권 이내에 들어올 때까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곤 바록이 데들리 글레이브를 높게 치켜뜨는 순간, 섬광처럼 그를 훑고 지나갔다.

“크어헉!”

바록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릎을 뚫었다. 언제부턴가 그의 갑옷 옆구리부분은 일자로 부서져 있었는데, 그 안의 살갗은 마치 불로 지진 듯 새까맣게 타들어가 있었다.

털썩.

다크 나이트는 이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출혈은 없었지만 회생불능의 치명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이긴 건가? 훗, 이제 16강이로군.”

카이사르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다크 웨폰의 양 옆에 갖다댄 뒤 서서히 좁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흑색의 광검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토해내는 사회자의 외침을 들으며 대회장에서 내려왔다.

“대단하군요.”

바크가 탄성을 질렀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얼굴이었다. 하긴, 옛 군주의 다크 웨폰을 수백 년이 지난 오늘에야 다시 보게 되었으니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오대패자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아, 게르모네츠님께서 제자를 두시다니.”

“그분께서도 다크 웨폰같은 위대한 흑마술이 소실될 것을 원하진 않으셨을 테니까.”

카라프가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예전에 게르모네츠와 일전을 펼쳤던 일을 회상했다. 벌써 한참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했다. 그것은 당연할 것이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완벽한 패배를 안겨주었던 전투였으니까.

‘그런 그를 쓰러뜨리고 백년이상을 뱀파이어 로드로 군림하다니, 아이슬로너님도 참 대단한 인물이야.’

카라프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캄에덴의 유일무이한 배틀 마스터를 응시했다. 게르모네츠를 수차례의 도전 끝에 이긴 인물이 바로 아이슬로너다. 존경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로, 로드?”

순간 카라프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가득 찼다. 로드의 모습이 평소와는 달라보였기 때문이었다.

“으으으, 다크 웨폰이라…….”

아이슬로너는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카이사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항상 자신만만해하던 눈빛은 흡사 천적을 만난 짐승 마냥 파문이 일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하긴, 저 기술에 지독하게 당하셨으니…….’

카라프는 아이슬로너가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게르모네츠에게 패할 때는 항상 저 흑색의 광검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수차례의 전투에서 당해봤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은연중에 공포심이 생기는 것이다.

“진정하십시오. 로드.”

하지만 일국의 제왕이 저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순 없었다. 카라프가 급히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 내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군.”

그제서야 아이슬로너는 제정신을 차린 듯 본래의 위엄 어린 얼굴로 돌아갔다. 하지만 꾹 쥔 두 주먹은 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한숨을 쉰 카라프는 카이사르를 지켜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카이사르라, 어쩌면 큰일을 저지를 녀석일지도 모르겠어.”

“이야, 카이사르! 너 대단한데?”

“훗,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카이사르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태연히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서열20위권의 상대를 손쉽게 쓰러뜨리는 것은 몇 번을 생각해 보아도 엄청난 사실이다. 물론 그 점은 스탐도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네가 전대 뱀파이어 로드의 제자라니, 정말이야?”

“응.”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는 카이사르. 당연하다는 듯한 그 말은 스탐에겐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맙소사. 잠적한 그를 어떻게 찾아낸 거야?”

전대의 뱀파이어 로드는 대부분 찬탈전에서 패한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누구의 손길도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은거 하게 된다. 게르모네츠도 그랬었다.

“셀리온 평원에서 찾았어. 소문을 듣고 3년 동안 그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만나게 되었지.”

“미쳤구나, 너.”

“훗, 그런가봐.”

스탐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놈은 미친 게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몬스터들의 왕국에서 3년 동안 기웃거릴 생각을 했겠는가. 하지만 그 결과가 지금과 같다면 미쳤다고 볼 수는 없었다. 뱀파이어는 보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악마와의 계약도 서슴치 않을 종족이니까.

“나는 셀리온에서 100년 이상을 그의 제자로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웠지. 그 결과가 바로 이 힘이야.”

카이사르가 한 손을 폈다. 금세 그의 손아귀에서 긴 흑광이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분명히 게르모네츠의 비기인 다크 웨폰이었다.

‘녀석, 정말 강해졌구나.’

어느새 스탐의 카이사르에 대한 이미지는 작고 소심한 소년에서 한명의 강력한 뱀파이어로 바뀌었다.

게르모네츠는 뱀파이어 로드로 있을 때 그 누구에게도 다크 웨폰을 전수해주지 않았을 정도로 완고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카이사르에게 다크 웨폰을 전수해 주었다. 카이사르가 얼마나 끊임없는 집념과 의지력을 보내줬는지를 나타내는 대목이다.

“그나저나, 게르모네츠는 어떻게 됐어? 아직도 셀리온에서 은거하고 있는 거야?”

“아니, 8년 전에 죽었어.”

“그렇구나.”

스탐은 카이사르의 어조가 유난히 슬프게 들린 다는 것을 느꼈다. 하긴, 스승의 죽음을 달가워할 제자는 없을 것이다.

“뭐, 한참 지난 일이지. 난 그 분의 유지를 잇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싸울 거야.”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이사르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포부를 밝히고, 덧붙여 스탐에게 선언했다.

“내 목표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거야. 스탐. 만약 내가 너와 경기에서 붙게 된다면 절대 봐주지 않을 거다.”

“풋,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지.”

스탐은 피식 웃으며 손을 건넸다. 카이사르도 그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스탐에겐 또 한명의 라이벌이 생겼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옛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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