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86화 (8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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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데빌 핸드

“일단 카시안 놈을 이기기전에, 저 시답잖은 드워프 놈이나 때려잡아야겠군.”

“어떻게 때려잡을 건데? 갑자기 뛰어들어서 싸움을 걸려고? 대장님이 사고치지 말라고 했잖아.”

“나도 알아.”

크로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보고 있던 친구들마저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문제의 블런트 마스터는 어느 가게 안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무척이나 친한 사이 같았다.

“어이, 배고파 죽겠는데 먹을 것 좀 줘.”

그 가게 안으로 들어선 크로뎀이 거만한 태도로 소리쳤다. 주인과 블런트 마스터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미리 당부를 받았던 탓인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여기요.”

주인이 크로뎀이 손짓했던 먹을거리를 꺼내 주었다. 크로뎀은 그것들을 한입에 집어 삼켰다.

“퉷! 더럽게 맛없군.

당연히 맛없다. 피와에 어떤 것도 먹지 않는 뱀파이어가 다른 종족의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이것 봐요. 너무 심하잖아요.”

보고 있던 블런트 마스터가 못 참겠다는 듯 나섰다. 가뜩이나 식량이 부족한 데, 날로 먹어 놓고 뱉어내다니 부아가 미친 것이다.

“심하면 어쩔 건데. 어쭈, 치려고?”

크로뎀이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매우 무례한 짓이지만 미리 지시를 받았는지 그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크로뎀을 더욱 날뛰게 만들었다.

“음식을 버리다니, 너무 심하잖아요! 사과하세요!”

주인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하지만 애당초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쳤다. 크로뎀은 귀를 후벼 파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사과하라니까요!”

주인이 옷을 잡으며 크로뎀을 윽박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바라던 바였다.

“아, 정말 조그만 놈이 더럽게 설쳐대네!”

퍽.

둔탁한 소음과 함께 드워프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크로뎀은 미소를 띠며 블런트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분노가 폭발한 상태였다.

“이 미친놈들! 우리가 기껏 살려줬더니 고작 이 따위 짓거리나 벌이는 거냐?”

“화가 나지? 그래, 덤벼봐. 네 녀석이 얼마나 강한지 보자고.”

블런트 마스터는 그제서야 크로뎀의 의도를 알아챈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일부러 애꿎은 친구를 때린 것이다.

“용서할 수 없어! 흐아압!”

금세 배틀 엑스를 집어든 그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다리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지척까지 다가왔다. 크로뎀은 일단 실력을 확인해보기 위해 친구들을 보냈다.

“어디 한번 덤벼보시지!”

뱀파이어들이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그에게 덤벼들었다. 배틀러인 그들은 비록 크로뎀처럼 상급은 아니었지만 그 경지 내에서 수준급에 이르는 자들이었다. 아마 크로뎀이 나설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퍼억!

싸운 지 얼마나 지났을까. 금세 한명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말도 안돼.”

같이 싸우던 둘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였다. 오러 엑스(Aura axe)가 강렬한 파괴력을 지닌 채 다가왔다.

차아앙!

같이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둘이 뒤로 밀려나갔다. 블런트 마스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무방비상태에 빠진 한명을 공략했다.

퍽! 퍼벅!

“으어억!”

도끼자루에 복부를, 이마에 박치기를 맞은 뱀파이어는 어지러워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크로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블런트 마스터가 아무리 강해도 저 정도가 되려면 상당한 수준에 올라야만 했다.

“물러서 있어.”

“아, 알았어.”

크로뎀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지막 남은 한명이 누워 있는 둘을 부축하며 뒤로 물러섰다. 동료들이 멀찍이 떨어진 것을 확인한 크로뎀의 시선이 블런트 마스터에게로 옮겨졌다.

“너, 제법이구나.”

“쓰레기 같은 네놈들보다는 강하다.”

블런트 마스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크로뎀은 개의치 않았다. 애당초 도발은 자신이 먼저 했으니까.

“통성명이나 해볼까. 내 이름은 크로뎀이다.”

“난 크록이다.”

“그럼 어서 싸움을 즐겨보실까.”

말을 마친 크로뎀이 자세를 잡았다. 크록도 배틀 엑스를 고쳐 잡았다. 서로 높은 경지에 이른 실력자들인 만큼, 그들은 시간을 끄는 법이 없었다.

“간다아!”

“하압!”

고함 소리를 동반한 채, 크로뎀의 다크 오러와 크록의 오러 엑스가 맞붙었다.

“여기 앉게.”

“예.”

스탐은 왕이 건네준 의자에 앉았다. 드워프들의 의자라 작은 줄로만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었다. 손님을 위한 의자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과 하이 오크들의 상세한 병력과 소드 마스터의 전력을 말씀해 주십시오.”

자리에 앉아마자 스탐은 본론에 들어갔다. 그만큼 그는 아까 전에 겪었던 적의 전력에 놀라고 있었다.

“놈들의 전병력은 4000명이고, 소드 마스터는 51명이오.”“그러면 불의왕국군은?”

“정예부대인 붉은 도끼병이 200명, 그 안에 10명의 블런트 마스터가 있소. 전병력은 총 2000명이오.”

“맙소사.”

엄청난 격차에 스탐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놈들이 당장 쳐들어와도, 아니 진작 불의왕국이 멸망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전력이다. 그들은 왜 여태껏 쳐들어오지 않았을까?

“왜 저희들을 그토록 환대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스탐은 배틀러들의 수와 블런트 마스터들의 수를 더해 보았다. 적의 소드 마스터들과 얼추 비슷한 숫자가 나온다. 해볼만한 싸움이었다. 물론 수뇌들끼리의 싸움만 가정했을 뿐이다.

“후후후. 이 싸움이 끝난다면 우리는 오랜 숙원을 풀 수 있을 것이오.”

“무슨 숙원 말입니까?”

뜬금없는 소리에 스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왕은 한참동안 상념에 잠겨있더니, 이내 두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철의왕국의 멸망!”

“꿈같은 소리군요.”

스탐이 피식 웃었다. 철의왕국은 불의왕국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블런트 마스터도 두 배는 더 많았다. 한 마디로 어불성설인 것이다.

“때가 되면 그 꿈은 현실이 될 것이오. 당신의 로드가 약속해 주었으니.”

“뭐라고요?”

깜짝 놀란 스탐이 정색을 했다. 하지만 왕은 상상의 나래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스탐은 곰곰이 생각했다.

‘아이슬로너는 도대체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게 너한테 해가 되는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뭐, 때가 되면 알겠지.’

그때였다. 갑자기 밖에 소란스러워졌다. 고개를 갸웃거린 스탐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듯 드워프들이 모두 모이고 있었다.

“큰일 났습니다.”

그때 집무실의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키로프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뱀파이어와 드워프가 싸우고 있습니다!”

“뭐야?”

둘은 깜짝 놀랐다. 서로 사고를 치지 말라고 당부를 해두었기 때문이다.

“드워프는 누군가?”

“크록입니다.”

“크록? 그 녀석은 시비를 걸지 않으면 절대 싸우지 않을 텐데…….”

“시비를 걸만한 녀석이라.”

스탐이 염두를 짚었다. 그가 알기론 지원대 중에서 시비를 가장 잘 걸만한 인물은 단 한명뿐이었다. 미간이 점점 찌푸려졌다.

“크로뎀 이 자식을 그냥.”

“죽어랏!”

묵직한 기합성과 함께 크록의 배틀 엑스가 푸른 빛무리를 뿜어내며 크로뎀에게 쇄도했다. 크로뎀은 그 일격을 맞받아쳤다.

파아앙!

블런트 마스터와 배틀러의 힘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강력한 흑마기의 결집체와 엄청난 파괴력의 오러 엑스. 그 두 힘의 격돌은 실로 박빙이었다.

"으읍!

먼저 뒤로 밀려나간 건 크로뎀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대단한걸. 말로만 들었던 블런트 마스터가 이토록 강할 줄이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싸움의 승자는 나다.”

크로뎀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설득력은 없었다. 온 몸이 피투성이였기 때문이다. 그 점은 크록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벌써 한 시간이 넘게 싸우고 있었다. 강자들끼리의 대결은 오히려 빨리 끝난다고들 하는데, 둘의 싸움은 예외였다. 서로가 워낙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호적수였던 탓이다.

크록은 달려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손도끼하나를 크로뎀에게 던졌다.

휘릭 휘릭 퍼억!

포물선을 그리던 손도끼가 크로뎀의 가슴에 꽂혔다. 마나가 깃들어 있지 않아 큰 타격은 없었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지라 크로뎀은 무척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승자는 나다!”

신이 난 크록이 대번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건 큰 실수였다.

파방! 펑!

“으아앗.”

허공에서 흑마탄에 적중당한 크록이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금세 일어났다. 흑마탄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건 배틀러든, 블런트 마스터든 마찬가지였다.

“살다 살다 너처럼 끈질긴 놈은 처음이다.”

“내가 할 소리야!”

이쯤 되었으면 체력이 거덜 날 만도 하건만, 그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투혼이었다.

“저 녀석은 누구입니까?”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스탐이 크록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이 격파하긴 했지만 크로뎀도 순위권 안에 드는 상급 배틀러였다. 그런 그와 호각으로 싸우고 있는 자가 있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크록이지. 젊은데도 불구하고 우리 왕국 최강의 블런트 마스터야.”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스탐은 순간, 싸움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일었다. 지금은 언제 하이 오크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태평하게 자기편끼리 치고 박고 있을 순 없었다.

“야야. 어서 멈춰!”

스탐이 소리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워낙 관중들의 웅성거림이 많았고, 두 사내가 전투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결사가 나선 건 그때였다.

탕!

스탐의 바로 옆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둥그런 원을 그리며 모여 있던 구경꾼들은 물론이고, 두 사내들의 싸움을 멈추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거기까지.”

카시안의 한 마디가 좌중을 압도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단 한명에게 쏠려 있었다. 심지어는 크록과 크로뎀마저 멍청한 얼굴로 카시안만 쳐다보고 있었다.

스탐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선 건 그때였다. 아까 말이 씹힌 게 약간 부끄러웠지만 이럴 때는 당당히 나서야만 했다.

“적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같은 편끼리 상잔해서 어쩌자는 거냐?”

“미안해.”

“죄송합니다.”

둘은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스탐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련이 남아있는지 서로를 쏘아 보았다.

“그래도 싸움은 아직 안 끝났어.”

“누가 이겼는지 확정도 안됐는데…….”

“나 참.”

스탐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녀석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치고 박을 것 같아 보였다.

그때였다. 수도의 정문방향에서 한 드워프가 보였다. 아마 초소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인 것 같은데, 그의 몰골은 피투성이였다.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왕이 끝내 쓰러진 그 병사를 부축하며 물었다. 중상을 입은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하이오크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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