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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언데드들과의 사투
‘하지만 확실히 지금의 데스 나이트들은 장난이 아니다.’
카라프는 지금 상대하고 있는 데스 나이트를 바라보았다. 상대가 서열2위의 자신이다 보니 어느 정도 밀리고 있긴 해도 중상급의 배틀러와 충분히 평수를 이룰 수 있을만한 실력이었다. 그러나 바라크만의 상대는 그와 거의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이해가 안 가는군.’
이해가 간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물론 오랫동안 조용히 있다가 일시에 전병력을 동원해 여기까지 치고 들어오는 것 자체는 충분히 납득이 갔다. 그러나 지금 데스 나이트들은 드러난 전력 자체도 예상보다 더 많은데다, 질 또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물론 전체적인 전투에서는 아군 배틀러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뱀파이어 로드를 위시한 자신들 오대패자의 힘은 물론이고, 숫자도 반수가 더 많았기 때문에 데스 나이트들중 반수는 두 명의 배틀러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아.’
“적들이 더 옵니다!”
생각하기가 무섭게 그것은 현실로 다가왔다. 한 배틀러의 외침에 카라프가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일단의 데스 나이트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수는 무려 30명!
“역시.”
카라프는 이를 악물었다. 물론 30명만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진 않았지만, 더 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어서 이놈을 없애야겠군.’
카라프는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데스 나이트를 응시했다. 놈은 비교적 약했다. 딴생각을 하면서도 한껏 몰아붙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퍼어억! 콰콰쾅!
히든 브레이커의 마스터가 마음을 먹자 일개 데스 나이트가 작살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놈은 섬광같이 파고 들어온 비수 같은 수도를 막아내지 못하고 갑옷 안에서 터진 상대의 다크 오러에 의해 조각조각이 나 바닥에 흩뿌려졌다.
“뭐, 간단하군.”
한줌의 쇳덩어리가 된 데스 나이트를 보며 손을 털던 카라프가 다음 상대를 물색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그의 눈에는 바라크만과 그가 상대하고 있는 데스 나이트가 비춰지고 있었다.
“멍청이! 아직도 애먹고 있는 거냐?”
입가에 조소를 머금은 카라프가 비호같이 날아들었다. 뱀파이어의 싸움에 있어 제삼자가 끼어드는 것만큼 무례한 짓은 없었지만 상대가 앙숙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닥치고 꺼져, 이 자식아!”
원수 같은 뱀파이어가 자신의 상대에게 공격을 가하자 게일 그레네이더가 카라프에게 날아들었다. 비록 자신보다 서열이 한 단계 높긴 하지만 원수는 원수였다.
“흥분하지 말고 협공하는 게 어때? 어차피 네 실력만으로 놈을 완전히 잡아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게일 그레네이더를 여유롭게 피한 카라프가 바라크만을 설득했다.
“미친 놈!”
바라크만이 카라프를 쏘아보며 으르렁거렸지만 이내 애병의 날 끝을 데스 나이트에게 돌렸다. 그의 말대로 자신은 놈에게 지진 않겠지만 이길 수도 없다. 다크 나이트는 어디까지나 방어적인 성격이 짙은 특수부대였기 때문이다.
창! 차차창!
서로의 의견이 합의를 보자 두 뱀파이어들은 눈앞의 데스 나이트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캄에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둘이었기에 데스 나이트가 수세에 몰리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먹어라!”
바라크만의 외침과 함께 육중한 도끼창이 날아들었다. 데스 나이트는 주저 없이 그것을 피했다.
퍼버벅!
하지만 적은 하나가 아니었다. 데스 나이트는 어느새 날아온 무수한 주먹세례를 맞고는 비틀거리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아무래도 충격이 상당한 듯했다.
뒷걸음질을 치던 데스 나이트는 어디 론가로 내빼기 시작했다.
“거기 서!”
신이 난 바라크만이 게일 그레네이더를 빙빙 돌리며 쫓으려 했다. 그런 그를 카라프가 제지했다.
“뭐냐?”“그냥 놔두자. 우리 둘이서 저놈 쫓아봤자 우스운 꼴밖에 안돼.”
그러면서 카라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아마도 그것은 처음엔 협공을 내키지 않아 했으면서 이제는 좋다고 달려드는 상대에 대한 조롱일 것이다.
“개새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바라크만이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어마어마한 살기가 쏟아져왔지만 카라프는 태연하게 한 마디 했다.
“그럼 어서 다른 놈이나 물색하러 가보실까.”
전투는 치열했다. 막강한 무위의 뱀파이어들을 중심으로 양쪽에 하프 뱀파이어들이 위치한 캄에덴의 진형은 전술 없이 무작정 들이닥치는 적들을 수도 없이 찢어발기고 있었다. 물론 언데드들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듀라한을 중심으로 한 중급 언데드들이 몰려 있는 부근에서는 호각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곳곳에서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난무하고 있는 전장은 지금, 혼란의 소용돌이였다.
하지만 수십만이 넘어서는 그들의 대결도 전장의 중심에 위치한 소수의 전사들이 벌이는 전투에 비하면 그 비중이 한참 낮았다.
“이런 대규모의 전투는 100년만이로군.”
주위를 둘러보고 있던 아이슬로너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도 배틀러 이상의 실력자였기에 배틀러와 다크 나이트들이 벌이는 전투의 장에 발을 디디고 있는 상태였다.
휘이이익!
그때 아이슬로너의 등 뒤로 시커먼 검날이 다가왔다. 데스 블레이드임이 분명한 그것은 평범한 데스 나이트들의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렬했다.
“읏차.”
하지만 뱀파이어족의 군주는 그 일격을 단순한 몸동작만으로 간단히 피해냈다. 그리고선 주먹을 뻗어 상대의 복부, 아니 갑옷에 박아 넣었다.
파지직
천천히 뻗은 것 같은데 예상외로 어마어마한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데스 나이트는 한손으로 맞은 부위를 부여잡으며 다른 한손에 쥔 검을 치켜세웠다. 태연하게 서 있는 것을 보니 아이슬로너가 손속에 사정을 둔 듯했다. 아니면 그가 너무 강해서이거나.
“네놈이 바로 뱀파이어들의 우두머리인가보군.”
“그러는 너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아이슬로너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배틀 마스터는 상대가 아무리 힘을 감추어도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엄청난 감각을 지닌 경지인 것이다.
“내 이름은 듀리알이다.”
데스 나이트는 아이슬로너의 질문을 부정하지 않는 듯 바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나도 이름정도는 대답해 주는 게 예의겠지? 아이슬로너다. 그나저나, 한 가지 물어볼 수 있을까?”
“뭐지?”
“병력을 모으고 있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네 녀석들의 재간에는 솔직히 감탄했다. 하지만 지금 네놈들은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고 있다. 데스 나이트들과 나머지 언데드들의 양과 질 모두 말이다.”
조용히 듣고 있던 듀리알이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너희들이 강해진 이유가 뭐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모른다.”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슬로너도 듀리알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데스 나이트들이 배틀러와 동급에 해당하는 언데드의 핵심이기는 하나, 결국은 아크 리치의 하수인이었다. 중하급의 언데드들은 리치들의 명령을 받고, 데스 나이트들은 아크 리치의 명령을 받는 것이다.
“뭐, 굳이 알 수 없어도 상관없지. 여기서 네놈들을 모조리 작살내면 될 테니까!”
말을 마친 아이슬로너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배틀 마스터라는 어마어마한 경지의 소유자인지라 마치 파도와도 같은 위압감이 몰려오는 듯했다.
투다다다다!
전격과도 같은 수격이 듀리알에게 엄습해왔다. 하나같이 골든 다크 오러를 머금었기에 이 데스 나이트들의 마스터라는 존재도 반격할 생각을 못했다.
“이건 어떠냐?”
마치 산책을 나온 듯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아이슬로너가 무언가를 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금빛의 다크 오러가 모래알처럼 듀리알의 전신에 들러붙었다.
하지만 듀리알은 별다른 반응 없이 아이슬로너에게 검을 휘둘러 왔다. 다크 오러 번은 생명체의 신경과 마나를 잠깐 동안 마비시키는 기술이기 때문에 이미 죽은 자인 데스 나이트에겐 소용없었던 것이다.
“흐음, 효과는 없군.”
상대의 일검을 가볍게 피한 아이슬로너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마치 마법실험을 하는 마법사 같은 어조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어서 덤벼라.”
“그게 소원이라면 들어주지.”
순간 아이슬로너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데스 나이트들은 한때 인간의 기사였다. 그래서 유리하든 불리하든 항상 정정당당한 싸움을 원한다. 그러나 듀리알은 지금만큼은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투앙! 파바바바박!
단 한방의 강력한 속사포 같은 공격이 쏟아져 왔다. 아이슬로너에겐 단순한 손사례였지만 듀리알에겐 절대 그렇지 못했다. 하기야, 천하의 배틀 마스터를 혼자서 어찌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