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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제국전쟁
“뭐라고? 크로프란에 파견된 소드 마스터들이?”
“미, 믿기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한껏 노기를 띤 초로의 귀족 앞에서 기사는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사내는 자주 화내는 법이 없었지만, 일단 한번 화가 나면 온 몸이 떨릴 정도로 짙은 살기를 뿜어낸다.
“이보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크로프란은 언제 속국으로 삼아도 이상할 게 없는 나라야. 그런 나라에서 제국의 내로라하는 기사들이 다 죽고 한명만 남았다니, 그걸 나더러 믿으란 말인가!”
쾅!
격한 목소리와 함께 의자의 일부가 날아가 버렸다. 철로 만들어 내구력이 뛰어난 의자였지만, 그는 이런 것을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것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게르델피안 공작은 진노했다. 5년 전에 있었던 일도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에센 제국의 소드 마스터들 중 1할에 해당하는, 그것도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 약소국의 내란에서 죽어버린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처음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농담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극심한 화상을 입은 크라토르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이성을 잃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어떤 놈이!”
“커헉…, 고, 공작 각하…….”
크라토르가 어렵게나마 말문을 열었다. 무시무시한 화상에도 불구하고 할말이 있는 걸 보면 아주 중요한 것으로 보였다.
“오, 크라토르! 괘, 괜찮은가?”
괜찮을 리가 없지만 게르델피안 공작의 눈은 다른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크라토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그의 눈을 응시하면서 입을 우물거렸다.
“5년 전에…, 그놈… 그놈입니…….”
“역시 그랬었군.”
짧은 한 마디었지만 그것은 공작이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이 놈! 반드시 네놈을 찾아 뼈를 갈아 마실 테다!”
“하지만 이제 곧 전쟁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한 기사의 말에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력은 국경선에 집결되었고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들은 충분히 확보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에센군의 핵심인 자신이 빠질 수는 없었다.
“놈을 죽이는 것은 뒷날로 미루도록 하지. 일단은 찢어발겨도 시원찮을 차르니아와 루세리안을 박살내야겠군.”
말을 마친 공작은 천천히 검집에 손을 가져갔다. 소드 마스터를 아홉 명이나 잃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바로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자신이 있으니깐 말이다.
“어서오너라 이놈들! 이 세계를 정복하는 건 바로 우리 유에센이 될 것이다!”
“날씨가 한산한데?”
“그러게. 마치 축복을 받은 날 같아.”
세리아가 화사하게 웃고 있었지만, 스탐은 그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우습게도 자신은 그녀와는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상극의 종족이라 그런 건가?’
[아무래도.]
스탐은 카스턴의 대꾸를 들으며 거리를 둘러보았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크로프란의 수도는 활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전이 국왕파의 승리로 돌아간 후, 수백 년 동안 크로프란 내에 뿌리 내리고 있던 귀족의 세력은 대부분이 소탕되었다. 그에 따라 귀족들이 그렇게 신봉하던 아르티시앙교 역시 쇠퇴했다. 수많은 교회들이 파괴되었고,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쫓겨나게 되었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나라에서 그들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국왕파에 붙었던 세력들은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다. 귀족들은 보다 높은 작위와 함께 몰수한 귀족파의 영지를 하사받았다. 그리고 국왕파에 합세했던 스탐의 용병들은 큰 포상과 함께 정규군에 들어올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더불어 능력여하에 따라 기사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는데, 귀족파와의 전면전에서 소드 마스터로 활약한 케이튼은 곧바로 근위기사단의 부단장 직위를 얻게 되었다.
스탐이 납치했던 귀족파의 소드 마스터들은 모두 국왕파로 전향시켰다. 다른 귀족들처럼 처형하기엔 그들의 능력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세리아, 다친 데는 이제 다 나았어?”
“응. 다 나았어.”
세리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배를 툭툭 쳐 보였다. 지난 5년간 그녀는 륜드라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스탐은 용병단을 운영하면서도 그녀를 간호하는데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였을까, 지금은 그때의 상처를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완쾌된 상태였다.
“참 다행이야.”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하지만 스탐은 깜빡 잊고 있었다. 뱀파이어가 엘프를 걱정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를 말이다.
“행님~!”
그때였다. 어디선가 낯익은 사내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스탐은 뒤를 돌아보았다. 케이튼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케이튼이네. 무슨 일이야?”
“국왕 폐하께서 델고 오라시던데요.”
다이어가 많이 고쳐 주었지만 여전히 케이튼의 억양에는 사투리가 약간 배여 있었다. 저 억양으로 어떻게 기사 서임식을 치렀을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국왕폐하께서?”
“예.”
케이튼이 땀으로 흠뻑 젖은 이마를 손으로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탐은 흐뭇한 표정으로 케이튼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그는 지금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최고의 기사, 소드 마스터에게만 지급한다는 미스릴 코팅제 갑옷을 말이다. 항상 낡아 빠진 누더기만 걸치다가 이런 걸 입으니 사람이 달라보였다.
‘뭐, 얼굴은 여전히 삭아 보이지만.’
스탐은 케이튼의 나이가 자기 얼굴만한 수준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떤 외모를 가졌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좋아. 가지 뭐. 대신 넌 나 대신에 세리아와 데이트 좀 하고 있어.”
“지야 좋지요!”
케이튼이 실실 웃으며 세리아에게 손을 건넸다. 세리아도 중년의 얼굴을 한 청년이 싫지는 않은 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맞잡았다.
“후훗, 그럼 가실까요, 케이튼 경?”
“어서 달리지요. 레이디 세리아.”
“푸하핫, 그럼 잘들 놀고 있어라.”
둘의 우스꽝스런 모습이 스탐이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흔들었다. 케이튼이 다이어와 함께 처음 자신을 찾아왔을 때는 세리아와도 만났었다. 서로 구면이었지만 말 한마디 나눠본 적이 없어 서먹서먹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둘은 죽이 척척 맞아 한달이 지난 지금은 무척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 왕궁에 들어가 보실까?”
어느새 스탐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블리츠 경.”
성문에 들어서자마자 경비병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분명히 갑옷도 입지 않았건만, 그들의 대우는 깍듯했다.
바로 스탐이 크로프란의 근위기사단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귀족파의 소드 마스터들이 단장과 부단장을 모두 꿰차고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완전히 물갈이가 이루어진 셈이다. 물론 다른 소드 마스터들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힘의 논리는 엄격했다. 케이튼의 경우엔 부단장이 되기에 약간 무리가 있긴 했지만 스탐의 입김으로 그에 대한 반발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한 기사의 안내에 따라 스탐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겉모습은 태연했지만 실상 그의 머릿속은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드디어 전쟁이 벌어지는 건가?’
국왕이 자신을 부르는 이유라고 해봤자 다른 게 없었다. 애초에 그 이유로 이 땅에 온 게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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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늦었군요;;
다음 주가 시험이라 시간이 안나오네요;
아마도 다다음주 월요일까지는 정상적인 연재가 안될것 같군요.
아무튼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닷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