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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제국전쟁
“여기서 뭐하고 있나, 라트비츠?”
“보면 모르나? 기갑기 사냥하고 있지.”라트비츠는 뭘 새삼스럽게 묻냐는 듯 태평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 한심한 모습이 한숨을 쉰 알프레드가 한쪽으로 손을 치켜세웠다.
“지금 한가하게 그런 놈들 잡고 있을 땐가? 검성의 플레임 로드를 보라고!”
“뭐라고?”
깜짝 놀란 라트비츠가 포세이돈이 뻗은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불의 마갑기, 플레임 로드가 아군의 기갑기들을 무차별로 베어나가고 있었다.
불과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죽어나간 기갑기는 무려 다섯 기! 놈이 휘두르는 폭염의 검 앞에 기갑기들의 대열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아주, 평범한 수준의 마갑기가 기갑기를 다섯 기 이상 상대할 수 없다는 상식을 뒤엎는 광경이었다.
‘기갑기 몇 마리 잡고 놈을 상대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돼 버리다니?’
라트비츠가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으며 이를 악물었다. 검성은 자신의 행동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가자, 알프레드!”
라트비츠가 다급히 소리치며 적의 수뇌와도 같은 마갑기에게 자신의 윈드 워리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록 이해득실에 따라서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는 차르니아 최강의 기사이자 마갑기 파일럿이었던 알프레드였지만, 유에센의 막강함은 그런 생각이 절대 들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둘은 오랫동안 함께 마갑기를 타고 검성을 협공하는 연습을 해왔던 것이다.
“그 쯤 해두지 그래, 유에센의 더러운 우두머리!”
어느새 검에다 여섯 번째 기갑기 파일럿의 피를 묻히고 있는 플레임 로드에게 달려든 라트비츠의 마갑기가 쌍검을 들어 대각으로 베어 들었다. 스피드만큼은 윈드 워리어를 따라올 마갑기가 없었기에 기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중했다.
카캉!
갑옷에서 두 차례의 불꽃이 튀기는 것과 동시에 플레임 로드가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은 듯,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검을 고쳐 잡았다.
“호오, 이게 누구신가. 루세리안의 쟁쟁한 별이 아니던가.”
기습을 당했음에도 검성의 목소리에서는 깨알 같은 당황스러움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것이 라트비츠를 더욱 자극했다.
“닥쳐라 이놈! 바람의 절대자, 윈드 워리어의 비기나 먹어라! 버서크 윈드 스톰!”
“라트비츠! 혼자서 섣불리 공격하지 마라!”
알프레드의 우려 섞인 말은 이미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라트비츠의 외침과 동시에 갑옷에 새겨진 루세리안의 상징 삼안랑(三眼狼)의 문양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면서 윈드 워리어의 혼합 마법 시스템(Combinatin Masic System)이 발동된 것이다.
마법 폭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것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강철의 거인, 마갑기 중에서도 세 제국들처럼 뛰어난 마법기술력을 가진 나라만이 만들 수 있는 다중 마법 공격 체계였다. 두 개 이상의 마법을 일시에 구현해내 적에게 최대의 타격을 입힐 수 있었는 이것은 한 마디로 일종의 필살기였다.
지금 윈드 워리어가 시전한 버서크 윈드 스톰은 루세리안의 마법적 기술력이 고도로 밀집된, 현존하는 최강의 마법 폭참이었다.
휘아아아악 쿠쾅, 채래랭!
초타로 날아가는 윈드 토네이도를 필두로, 중타인 헤븐 스트라이크와 윈드 커터가 묵직한 타격과 사방에서 조여드는 바람의 칼날로 상대의 마갑기를 빈사상태에 만든다.
“마지막이다!”
윈드 워리어가 두 자루의 검을 양옆으로 치켜세웠다. 종타인 쌍풍검 크로스 어설트! 이것 한방이면 놈은 골로 갈 것이다. 마갑기를 통한 대련에서 한번도 실패하기 않았으니까.
카앙!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바람의 쌍검이 상대의 상부 장갑에 틀어 박혔다. 라트비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두 제국에 공포의 대명자로 자리 잡고 있던 검성을 자신의 힘으로 해치운 것이다. 그 비싼 마갑기와 함께!
하지만 그는 까맣게 잊은 사실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검성의 플레임 로드가 기갑기 45기 분의 자금을 투입한 초절정 재화 밀집성(한마디로 돈 처바른) 마갑기라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상대할 파트너인 포세이돈을 무시하고 무모하게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뼈저리게 나타났다.
퍼벅!
“크어억!”
윈드 워리어에 흡수된 강력한 타격에 라트비츠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며 눈앞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자신이 찌른 것은 검성의 마갑기가 아니었다. 바로 아군의 기갑기였던 것이다!
“무모함은 죽음을 부르는 법이라네, 라트비츠 경.”
당혹스러워하는 라트비츠 앞에 냉랭한 한마디가 그의 심장을 후벼 팠다. 급히 기갑기에 꽂힌 검들을 빼어내고 검성의 마갑기 쪽으로 시선을 옮긴 라트비츠는 이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문제의 플레임 로드는 멀쩡했다. 단지 윈드 커터에 의해 갑옷에 약간의 흠집만 났지 그 외에는 어떠한 물리적 타격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형편없이 박살이 나 형체를 잃고 나뒹굴고 있는 아군의 기갑기가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멍청한 자식! 우리가 합공 연습을 한 이유를 까맣게 잊은 거냐? 상대는 검성이란 말이다!”
“아무리 그렇게 입을 놀려 봐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네, 알프레드 경.”
검성이 비릿한 웃음소릴 흘리며 자신의 거검을 횡으로 그었다. 그러자 화염의 불사조가 강림한 듯 검에서 쏟아져 나온 한 떼의 폭염 덩어리가 윈드 워리어에게 날아들었다.
“워터 배리어!”
그 순간, 윈드 워리어의 바로 앞에서 거대한 물의 장막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직사각형의 형태로 형성된 그것은 흐물 거리는 액체임에도 고체와도 같은 단단함을 주고 있었다.
치이익
불과 물, 이 상극의 속성이 서로 접촉하자 자욱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워터 배리어는 사라졌다.
“호오, 동료애인가, 국적도 다른 자에 대한?”
시전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는 검성의 눈길이 포세이돈을 향했다.
“흥. 단지 네놈을 쓰러뜨리기 위해서일 뿐이다. 비록 우스운 꼴이 됐지만, 아무리 네놈이 천하의 검성이라도 우리 둘을 막아낼 순 없을 테니까!”
알프레드의 말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다. 물과 바람의 속성을 가진 둘의 합공이라면, 플레임 로드를 제외한 유에센의 두 마갑기는 손쉽게 처치할 수 있다는 이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크크크. 그대들은 아직 이 플레임 로드의 힘을 모르는군.”
광소를 하던 검성이 서서히 마갑기의 양손검을 적에게 뻗었다. 그러자 끝이 없을 것으로만 보이던 검신 전체가 불꽃으로 물들었다. 단순한 화염이 아닌, 마치 용암을 뒤집어 쓴 것과 같은 진염의 형태로 말이다.
꿀꺽
알프레드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눈앞에서 이글거리는 죽음의 불꽃은 멀리 있어도 열기가 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는 법! 그가 소리쳤다.
“가자, 라트비츠!”
“좋았어. 이번에야말로!”
패기로 가득 찬 두 절정의 기사들이 모는 마갑기들이 빠른 속도로 플레임 로드에게 짓쳐 들어갔다. 검성은 바람과 물이 솟구치는 둘의 검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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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연참인지 아닌지...
어중간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