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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칠흑의 원정대, 강림!
“다 죽여 버리겠다.”
이미 검성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70을 넘게 살아온 그의 생애 동안 이렇게 치욕스러울 때가 과연 있었던가? 그랜드 마스터의 자리에 오른 이후로 정신수양이 극에 달해 항상 여유롭던 그의 페이스에 균열이 오고 있었다.
“후후후. 어디 한번 죽여 보시지.”
익숙한 목소리의 도발이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푸른빛의 마갑기였으니, 검성의 머리는 활화산이 되어 용암을 분출하고 있었다.
화아아악
“흐아아아!”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새빨간 불꽃을 머금은 플레임 로드의 염검이 스탐의 프로즌 카이져를 향했다. 스탐은 가볍게 방패를 들어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퍼어억!
제국 연합의 양대산맥이라 불리던 두 마갑기도 피하기 급급했던 일격이었다. 그런데 문제의 마갑기는 어렵지 않게 막아내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검성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눈앞의 마갑기를 부숴 파일럿의 수급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 무렵, 요새를 가로질러 이동하던 유에센의 기갑기들이 하나 둘씩 문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갑부대의 이동이 수월하도록 만든 요새였기 때문에 성문 끝이 기갑기들의 전고에 부딪히는 등의 문제없이 오갈 수 있는 것이다.
“쳐라!”
아직 아군의 기갑기들이 다 빠져나오지 못했음에도 주저없이 명령을 내리는 검성이었다.
“후퇴!”
그에 맞서는 스탐의 대답도 간단명료했다. 하지만 그 명령은 결과적으론 휘하 파일럿들의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지금 유에센군은 요새의 성문을 통해 한기씩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각개격파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설령 제국 전쟁을 통해 그 악명이 드러난 플레임 로드가 있다고 할지라도 아군에게는 그에 버금가는 프로즌 카이져가 있지 않던가.
하지만 명령은 명령이었다. 잠시 후, 크로프란의 기사단들과 기갑부대는 각자 다른 길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공작 전하. 적들의 기갑부대와 기사단이 따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크라토르가 외쳤다. 검성도 그 광경을 빤히 보고 있음에도 따로란 말을 강조하며 말한 이유는 명백했다. 적이 매복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간단하군. 맨투맨으로 놈들을 추격한다!”
“맨투맨이라고 하심은……?”
크라토르가 말끝을 흐렸다. 맨투맨이라는 소리는 다름이 아니었다. 바로 적의 기갑부대는 아군의 기갑부대가, 적의 기사단은 아군의 기사단이 쫓는 것이다. 기갑부대가 기사단을 쫓았다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법인데, 검성은 아예 둘 다 전멸시킬 작정인 것이다.
평소의 평정심을 잃은 검성을 보며 크라토르는 한숨을 쉬었지만,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었기에 분부대로 했다.
“이제부터 기사단과 기갑부대를 나눈다! 아군 기갑부대는 적의 기갑부대를, 아군 기사단은 적의 기사단을 뒤쫓는다! 어서 움직여라!”
하나같이 정예인 그들이었기에, 움직임 자체는 매우 일사분란했다. 좁은 요새의 문을 빠져나와 진형이 흐트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그들은 적들이 후퇴한 두 길을 따라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엄청난 악몽의 시작이었다.
“자, 어서 서둘러라!”
스탐의 언성이 유난히 높아졌다. 그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아군 기갑기들의 이동현황을 살펴보았다.
‘너무 느려.’
과연 같은 기갑기라도 유에센과 크로프란은 그 차이가 났다. 아마 이대로라면 금방 적의 기갑부대에게 따라잡힐 것이다.
‘최대한 빨리 그곳까지 큰 피해 없이 움직여야 하는데… 난감하군.’
선두를 달리던 스탐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프로즌 카이져를 기갑부대의 후방으로 물렸다.
예상대로라면 적의 선두에 설 인물은 검성이다. 그의 플레임 로드를 상대할 마갑기는 자신의 프로즌 카이져밖에 없었다.
쿵쿵쿵!
생각하기가 무섭게 뒤에서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크기로 보아 기갑기는 절대 아니었다.
“드디어 왔군.”
스탐은 프로즌 카이져의 빙검을 고쳐 잡으며 전방을 응시했다. 자신이 물러선다면 생기는 것은 고철 덩어리가 된 아군의 기갑기 뿐이리라.
“이거나 먹어라, 이놈!”
어느새 눈앞에 자리 잡은 검성의 플레임 로드가 시뻘건 불꽃의 검을 날려 왔다. 스탐은 그것을 가볍게 피한 뒤, 이어지는 찌르기 공격을 방패로 막았다.
캉!
“호오, 참 대단하군.”
어느 정도 화가 가신 듯 검성의 목소리는 조금 온화했다. 그것은 아마 자신의 공격을 무리 없이 막아내는 상대 마갑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마갑기도 평범한 물건은 아니군.”
“후후후후. 흥미로운걸. 공격적인 마갑기의 대명사인 염의 마갑기와 방어적인 마갑기의 대명사인 빙의 마갑기라…….”
검성의 어조는 누가 들어도 들뜬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자신의 플레임 로드와 맞먹는 마갑기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는 검사다. 하지만 마갑기의 파일럿이기도 했다. 물론 강함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둘은 같았다.
아무튼 플레임 로드를 탄 그는 그동안 무적으로 군림해 왔었다. 제국 연합이 자랑하는 윈드 워리어와 포세이돈마저도 이 무적의 마갑기에게 무너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새로운 맞수가 나타난 것이다. 공격적인 자신의 마갑기와는 완전한 상극의 적이!
비록 지휘관의 지위에 올라있는 그였지만 한명의 파일럿으로서의 승부욕 또한 쉽사리 버릴 수 없었다.
“오너라, 이놈! 블레이즈!”
급기야 검성의 입에서 마법 폭참을 의미하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지옥에서 솟구쳐 오른 듯한 강렬한 폭염이 플레임 로드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 열기란 염령의 반지를 사용하면서 불에 대한 면역력이 어느 정도 강해진 스탐조차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는 주저 없이 마법을 발동시켰다.
“프로즌 실드!”
카가강!
순간 프로즌 카이져의 앞으로 엄청난 크기의 얼음 덩어리가 생성되었다. 그것은 플레임 로드의 주위에서 내뿜어대는 극염의 열기를 고스란히 막아내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스탐은 프로즌 카이져를 몰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미 아군의 기갑기는 한참 멀리 떨어진 뒤였다.
“거기 서라! 비겁하게 도망칠 셈이냐!”
상대 마갑기가 미련 없이 발을 빼자 마법 폭참을 초타로 끝난 검성이 인상을 바락바락 쓰며 뒤를 쫓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조리 한 가지.
자신의 숙적을 마법 폭참으로 끝장내겠다는 일념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녀석, 일국의 공작이라는 놈이 너무 흥분하는 거 아냐?”
[오히려 우리에겐 좋은 거지.]
“뭐, 그렇긴 하다만.”
카스턴의 대답 때문인지 스탐의 입가에는 어느새 짙은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 부로, 유에센의 기갑부대는 끝장이 나리라. 기사단도 마찬가지였다.??????
쫓고 쫓기는 자들 간의 추격은 계속되었다. 쫓는 자들은 유에센의 정예였고, 쫓기는 자들은 크로프란의 정예들이었다.
치열한 추격전은 거의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말이 30분이지, 기갑기의 최대 활동 시간이 단 두 시간임을 감안한다면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쿵쿵쿵
지축을 뒤흔드는 크로프란의 기갑부대는 어느새 협곡에 다다랐다. 까마득한 두개의 언덕 사이로 이어진 좁은 길목, 기갑기 두기가 간신히 운신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이곳은 소수의 병력이 다수의 병력을 상대하기엔 딱 좋은 지형이었다.
물론 매복도 빼놓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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