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148화 (148/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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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캄에덴, 대륙을 제패하다

“잘 타고 있군.”

스탐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타오르는 유에센의 수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저 안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비명에 죽었나가고 있을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 흑안흑발의 뱀파이어는 잔인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크로프란의 기갑부대와 기사단이 한참 유에센의 정예들을 유인하고 있을 무렵, 인간계원정군 부사령관인 바크 라시온을 필두로 한 캄에덴의 30만 대군이 수도 륜드라를 침공했다.

크로프란에서 자진해서 길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1전단과 3전단, 2만의 정예 뱀파이어 정규군을 선두로 내세운 어둠의 군단은 프레센 요새의 5만 병력을 준비운동 삼아 가볍게 전멸시킨 뒤, 곧바로 그레이트 엔트들의 공격으로 진이 빠진 륜드라에 들이닥친 것이었다.

가볍게 성벽 위를 올라타 보초들을 죽이고 성문을 따는 배틀러급 뱀파이어들을 시발점으로, 두개의 뱀파이어 전단과 28만의 하프 뱀파이어 정규군이 벌이는 살육의 향연은 시작되었다. 수도 내부의 제국군이 2배가 넘는 70만에 육박했음에도 상황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30기나 되는 기갑부대의 저항으로 상당수의 병사들이 죽어나가긴 했지만, 그들도 파죽지세로 몰아쳐오는 어둠의 물결을 막아내기는커녕, 황제를 비롯한 황족들을 호위하면서 빠져나가기에도 급급했다.

그리하여 제국군을 모조리 전멸시키고 나자, 이어진 것은 뱀파이어들의 천국, 피의 향연이었다. 2만의 뱀파이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닥치는 대로 인간을 잡아 캄에덴에서 그렇게도 갈구했었던 그들의 피를 보란 듯이 마셨다.

반면에 본래 이종족인 하프 뱀파이어들은 보통 점령지의 인간의 군대가 그러하듯 약탈, 방화, 윤간, 살인을 돌아가면서 해댔다.

수백만에 달하는 초강대국의 수도를 30만의 이종족들이 농락한 것이다!

“과연, 인간들은 이런 현실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절대 못했을 것이다. 꿈에서도. 제국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들이 이런 현실을 상상이라도 해 봤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스탐이었다. 한때 인간이었던 자신이 뱀파이어 군단의 우두머리가 되어 인간들을 죽이고 있다니?

갑자기 후회스러움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아니야! 난 이제 뱀파이어야. 나의 적들은 인간이고. 어차피 그들은 더 놔두었으면 우리 캄에덴에 더 큰 해만 입힐 뿐이야. 먼저 당할 바에야 선두를 치는 게 나은 법이지.”

그렇게 말해놓고도 스탐은 한숨을 쉴 뿐이었다. 궤변을 늘어놓긴 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유치한 소리였다.

“크크큭, 병신같이 뭐하고 있냐?”

이내 스탐의 귓가로 가시처럼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의 주인을 쏘아붙였다.

“너 같이 머리에 든 게 없는 멍청이가 내 속마음을 알 리가 없지.”

“멍청이한테 죽는 것만큼이나 더러운 경우는 없겠지.”

지온이 핏빛 손톱을 번뜩이며 다가왔다. 수많은 유에센의 기사들을 죽인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손톱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휴, 관두자.”

지온을 한참 바라보던 스탐은 이내 고개를 홱 돌렸다. 비록 분하지만 놈은 배틀 마스터였다. 캄에덴 내에서 아이슬로너 다음 가는 괴물인 것이다. 하이 배틀러일 때에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지금 와서는 이런 놈과 말다툼을 계속 해봐야 결국엔 자신이 손해였다.

“아, 너희들도 왔군 그래.”

스탐의 시선이 네 인영에게로 갔다. 그들은 모두 다채로운 종족 구성을 지니고 있었다.

“뱀파이어랑 인간 하나에, 하프 뱀파이어가 둘이라.”

“뭐, 어때? 이제 모두 다 같은 배를 탔는데.”

오대패자의 일원, 카이사르가 미소를 띠며 그렇게 말했다. 스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이어 아니, 이제는 쥬드라고 불러야 할 인물이게 시선을 돌렸다.

“나, 정말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네가 어릴 적의 쥬드였다는 사실 말이야.”

“그야 당연하겠지. 그 당시, 넌 내가 아이슬로너에게 숙주의 의식을 행하는 것을 보기도 전에 기절했었으니까.”

“그랬었군.”숙주의 의식은 이종족이 하프 뱀파이어가 되는 의식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뱀파이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손꼽히는 뱀파이어만이 이 의식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보통은 성교나 흡혈이 일반적인 하프 뱀파이어 탄생 루트였다.

만약 이름도 없는 저급 뱀파이어 따위가 의식을 행한다면 즉결처형이었다.

“그래서, 그 때의 외침이 유난히 컸던 거구나.”

“하핫, 그런가?”

쥬드가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스탐은 기갑부대와 함께 기사단끼리의 전투를 지켜보면서 쥬드의 포효를 다 들었던 것이다.

“이봐, 케이튼. 스승이 수백 년 전의 네 조상이었다는 사실이 어때?”

“뭐, 그저 기쁠 뿐입니다.”

케이튼은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기쁘다기보단, 약간 얼떨떨할 뿐이겠지.

“스승님.”

한참 쥬드를 주시하고 있던 케이튼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격정에 충만해 있었다.

“우리 비크바스틴 가문은 스승님이 실종되신 이후로 조금씩 몰락해 갔습니다. 그래서 저희 대에는 신분만 귀족일 뿐, 평민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영위해 나갔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겁니다. 당신 덕분에 저는 유에센의 기사단을 무찌른 영웅이 됐습니다. 더 이상의 시련은 없는 거죠.”

“하지만 저 녀석이 내 말을 따라주지 않았더라면 그것도 힘들었을 게다.”

쥬드가 지온을 가리키며 큭큭거렸다.

지온을 비롯한 버서커들이 유에센의 기사들에게 무력시위만 벌여주고 빠진 것은 순전히 쥬드의 부탁 때문이었다.

만약 그대로 싸웠다면 크로프란의 기사들이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피에 굶주린 캄에덴의 악마들이 이들마저 노렸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쾌거였다. 아군 기사단이 상당한 피해를 입긴 했지만, 적장인 듀레스를 죽임으로서 후퇴하던 유에센의 기사 대부분을 매복한 버서커들이 죽이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케이튼이 상급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도 뜻밖의 수확이었다.

“아무튼, 드디어 이 인간계가 캄에덴의 손아귀에 떨어졌군.”

스탐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륜드라로 시선을 옮겼다.

인간계는 발칵 뒤집혔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대형사건이 터진 것이다.

제국 연합을 비롯한 세 왕국은 점령당한 륜드라에서 빠져나온 유에센 인들이 전한 말에 경악했다.

뱀파이어라니? 성서에나 나올법한 존재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단 말인가?

하지만 머지않아 인간들은 그들의 비호를 받는 악의 조력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크로프란. 최약소국이라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개전 초기부터 제피스트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강국으로 발돋움한 그 변방의 왕국 국왕이 수도의 대광장에서 국민들에게 뱀파이어들과의 동맹 체결을 공표한 것이다.

이미 아르티시앙교를 믿는 주축인 귀족파의 세력이 나가떨어진 마당인데다 부국강병을 꾀할 수 있게 됐으니 크로프란 국민 대부분은 수긍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타국의 인간들은 달랐다. 독실한 아르티시앙교 신자인 기사들은 주군에게 당장 크로프란을 쳐 왕의 목을 베고 악의 무리 뱀파이어들도 심판하라는 소리를 하루에도 수백 번을 했다. 결국 그들의 요청은 현실이 되어 수십에 달하는 원정군이 크로프란을 향했다.

그리고 번번이 전멸 당했다.

“히이이익!”

한 인간 병사가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며 눈앞의 아비규환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흑색의 살인마와, 아군의 시체들뿐이었다. 칠흑 같은 밤에 나타난 이들은 원정군이 곯아떨어진 틈을 타 급습, 전멸시킨 것이다.

아니, 학살이 옳은 말이다. 무려 10만이나 되는 군사들이 불과 1만에 불과한 존재들에게 일방적으로 죽임을 당했으니 말이다.

“으윽!”

단말마의 신음성과 함께 마지막 병사가 비명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몸에 꽂은 손을 뽑아내 묻은 피를 핥던 뱀파이어 병사가 전단장에게 소리쳤다.

“전멸입니다.”

“후후, 좋아. 적당히 먹고 불태워라.”

1전단의 전단장, 바크가 잔인한 미소를 띠며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의 목덜미를 빨아먹었다.

“크아아아. 이,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그가 바락바락 소리쳤다. 적당히 피를 마신 바크는 입술을 핥으며 대답했다. 이미 인간의 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알았기에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었다.

“물론이지. 네놈은 프레미아 왕국의 원정군 총사령관이며, 최고의 기사인 상급 소드 마스터 아반 디에르가 아니더냐?”

“어떻게 네놈이!?”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대답에 인간의 목소리에 의아함이 배여 들었다. 설마하니 저 이종족이 자신의 정체를 알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크는 더 이상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닥치고 죽어라.”

“크허허헉.”

그리 하여, 캄에덴과 크로프란에 저항하는 세 왕국 중 하나인, 프레미아 왕국 최고의 기사는 출혈과다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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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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