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150화 (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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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캄에덴, 대륙을 제패하다

2전단을 필두로 한 스탐의 제국 연합 원정대는 단 두 자리 수의 사상자만 내고 110만의 제국 연합군을 육신 잃은 영혼으로 만들었다. 사상자라고 해봤자, 살육을 즐기는 가운데 저희들끼리 다투어서 죽거나 다친 경우였다.

인간 세계의 역사상 가장 전무후무하고도 지옥 같은 패전이었다.

주력병력이 괴멸 당하자 점령은 누워서 떡먹기였다. 캄에덴군이 진군하는 곳마다 적색바탕의 흑수기가 펄럭였다.

일종의 방패막이었던 차르니아의 수도가 캄에덴군에 점령당하자, 이제는 루세리안의 차례였다. 물론, 루세리안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쏟아지는 검은 군단의 물결 앞에는 마지막 남은 제국의 필사적인 저항조차 무의미했다.

그리 하여 캄에덴의 인간계 대원정은, 제국전쟁이 끝난 지 반년 만인, K.C 4424년 4월 26일에 루세리안의 수도를 점령하면서 대성공으로 끝났다. 아직까지 세 개의 왕국이 열심히 저항하고 있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인간계의 이러한 사태는 비단 그들만의 문제로 일단락되진 않았다. 인간이 가진 강력한 힘을 방패삼아 부귀를 누려왔던, 아케미아 산맥의 철의 왕국 드워프들도 무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그들에겐 뱀파이어들의 비호를 받는 철천지원수들이 있었으니까.

타탕!

“크억!”

난데없는 총성과 함께 일단의 드워프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드워프들은 미처 자신들이 쥔 무기를 휘두르기도 전에 눈앞의 강력한 병기에 무릎을 꿇었다.

“제, 제발 살려주시오!”

“목숨만은…….”

“시끄럽다.”

탕!

불의 왕국 드워프 총수는 잔인한 한 마디와 함께 철의 왕국 드워프를 저세상으로 보냈다. 그것은 다른 드워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철의 왕국의 본거지로 진군하고 있는 이들은 만나는 드워프들 마다 한 치의 인정도 없이 죽여 나가고 있었다.

“헤에, 너무 한거 아냐? 아무리 쫓겨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동족이잖아.”

“네가 우리 종족을 몰라서 그래. 우리들 드워프들은 순박하지만, 동족을 버린 원수들에겐 한 없이 잔인해지지.”

크로뎀의 핀잔에 크록이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들 둘은 바로 철의 왕국을 정복하기 위해 편성된 3만의 뱀파이어 드워프 혼성군의 지휘관들이었다.

물론 총사령관은, 불의 왕국의 왕, 키로프였다.

“자, 어서 진군하라! 어서 동족을 버린 저주 받을 족속들의 목을 베어라!”

“와아아아!”

수천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진군을 하고 있었다. 이제 원수들에게 진 빚을 갚을 일만 남았다.

“허어, 어찌 이런 일이…….”

철의 왕국의 왕, 크로토 2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까 낯선 무리들이 동족을 해치면서 이리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이곳의 무료한 생활이 심심했던 아이들이 재미 삼아 꺼낸 거짓말인줄로만 알았더니,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아니, 저들은 우리와 같은 드워프가 아니던가? 대부분은 전혀 다른 이종족으로 보이긴 한데…….”

왕은 적의 선두에서 오고 있는 종족의 구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적에게 잡힌 포로인가?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생소한 무장을 지니고 있었으며, 자신들을 향해 적의를 발산하고 있는데다 결정적으로 불의 문양이 수놓아진 깃발을 들고 있었다.

“서, 설마!”

그들의 깃발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왕이 두 눈을 부릅떴다.

수백여 년 전, 자신의 선조들과 의견 차이를 보여 반기를 들었다가 패배 쫓겨난 드워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는 그것이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쫓겨난 드워프들이 없다고 한다면, 적들 중 저 수천에 달하는 드워프들은 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일단 전사들을 끌고 나온 왕은 적들과 대치했다. 아군 전사들이 적들에 비해 두 배나 많았기 때문에 큰 위험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철의 왕국의 왕은 당장 내 앞에 나서라!”

그때였다. 정체불명의 무리들 선두에서 걸어 나온 한 드워프가 소리쳤다. 인상으로 보나, 복장으로 보나 저들의 우두머리 일거라 판단한 왕은 곧장 그의 말을 따랐다.

“내가 이 아케미아 산맥을 통솔하는 철의 왕국의 왕이오. 그런데 그대들은 도대체 어쩐 일로 이곳을 찾아온 거요? 똑같은 우리 대지의 자식들이 동족을 죽이다니…….”

“닥쳐라! 더러운 너희 철의 왕국 놈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가에 대해선 생각도 나지 않는가 보군.”

“무슨…….”

왕은 도대체 눈앞의 드워프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조들이 어떻게 저들을 내쫓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저들을 설득해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저 정체불명의 드워프들은 자신들에게 엄청난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당해줄 수만은 없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구려. 모두 공격!”

왕의 외침과 동시에 수만의 드워프들이 육중한 둔기를 부여잡고 달려 나갔다. 타고난 장인이면서도 전사이기도 했던 그들이었기에 그 위압감이란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위압감에도 수준이 있었다.

타타타탕!

“우어어억!”

무수한 비명소리와 함께 선두의 드워프들이 죽어 나가떨어졌다. 난생 처음 보는 우뇌 같은 천둥소리는 연이어 이어졌다. 한번, 두 번, 세 번…….

한 차례 총성이 일 때마다 나가떨어지는 쪽은 철의 왕국의 드워프 전사들이었다.

“후후후, 총수들과 마스터들만 데려오길 잘했군.”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원수들을 보며 키로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철의 왕국을 정복하기 위해 이끌고 온 혼성병력들 중 드워프들은 블런트 마스터들을 제외한 3000의 병력은 모두 라이플 건을 잘 다루는 총수들이었다.

물론 나머지는 모두, 캄에덴의 뱀파이어 정규군이었다.

“간다, 이 침략자 놈들아!”

소수의 드워프들이 선두에 섰다. 따라서 그들에게 라이플 건의 화력이 집중되었는데, 몇 차례의 파상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가떨어지기는커녕 별 다른 피해 없이 계속 돌격해 왔다.

“블런트 마스터들이로군.”

40명에 이르는 그 무적의 드워프 전사들을 바라보던 크로뎀이 중얼거렸다. 불의 왕국에선 10명 안팎에 지나지 않던 블런트 마스터가 철의 왕국에는 그 4배나 되는 것이다.

“총수들 모두 후퇴!”

왕이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자 라이플 건을 난사하던 드워프 총수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빈 자리를 캄에덴의 뱀파이어들이 메워 주었다.

“자, 축제를 벌일 시간이 왔다! 캄에덴의 전사들이여! 어서 저 냄새나는 대지의 쓰레기들을 몰살시켜라!”

크로뎀의 추상같은 명령과 함께 이만오천에 달하는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대부분이 육중한 도끼를 든 적 드워프들과는 달리 아무런 무기도 갖추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몸 자체가 흉기인 존재들이었다.

“겁도 없는 야만인들이 감히 우리들을 상대하려 들다니!”

하지만 철의 왕국의 드워프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비웃음 섞인 한 마디와 함께 뱀파이어들과 접전을 벌였다.

무지의 대가는 매우 컸다.

촤악! 푸콰콰콱!

“끄아아아!”

“죽어라!”

흑마기를 한 가득 머금은 뱀파이어들의 손앞에서 드워프들은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물론 드워프 전사들의 강력한 둔기술도 뱀파이어들에겐 상당히 치명적인 무기였고, 블런트 마스터들까지 있었지만 수천 년 동안 전투를 벗 삼아 살아온 벨리우드의 전사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츠파팟!

다크 오러를 입힌 수도가 드워프의 목을 베었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생기를 잃은 머리통이 피와 함께 대지에 버무려졌다. 크로뎀은 마치 아침운동을 나온 마냥 여유로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블런트 마스터가 어디 있지?”

“글쎄, 유난히 날뛰는 놈이 마스터지 않겠어?

옆에서 적 드워프 하나를 찍어 넘긴 크록이 대꾸했다. 크로뎀은 고개를 끄덕이며 뱀파이어의 눈으로 블런트 마스터를 찾았다.

전장에서 사기와 기세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는 철의 왕국의 블런트 마스터만 처치한다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물론 적에게도 그 점은 마찬가지였지만.

“찾았다.”

한참 전장을 살펴보면 크로뎀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두 동공 속에는 짙푸른 오러 웨폰을 입힌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는 드워프들이 투영돼 있었다.

소드 마스터보다 강한 파괴력을 지닌 블런트 마스터였지만, 상급 배틀러인 그에겐 맛있는 먹잇감 그 이상, 이하로도 보이지 않았다.

“죽어랏, 이놈!”

포효성과 함께 블런트 마스터의 도끼 끝이 다가선 크로뎀을 향했다. 벌써 수십의 뱀파이어들을 벤 오러 웨폰이었다.

챠앙!

“간단하군.”

푹!

물론 크로뎀의 다크 오러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단 몇 차례의 접전 끝에 복부에 손이 꿰인 블런트 마스터가 두 눈을 부릅뜨고 크로뎀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내 그는 생명의 끈을 놓아 바닥에 널려 있는 수많은 시체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발점으로 철의 왕국의 수많은 블런트 마스터들이 배틀러와 크록을 필두로 한 불의 왕국의 블런트 마스터들에게 줄줄이 목숨을 잃기 시작했다.

수적인 열세도 열세였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전투경험이었다. 배틀러들이야 싸우는 것을 빼면 시체들이니 그렇다 쳐도, 불의 왕국은 복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오랫동안 드워프 병사들을 훈련시켜 왔다. 그것은 블런트 마스터도 마찬가지였으니, 같은 경지라고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전투력의 격차가 생기는 것이다.

푹!

“크어어!”

“왕이 죽었다!”

일순간 철의 왕국군 진영이 웅성거렸다. 바로, 적의 블런트 마스터들을 다 처치하자마자 크록이 적진을 빠르게 파고들어가 철의 왕국 왕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와아아!”

“적들은 머리를 잃었다! 마저 쓸어버리도록!”

우렁찬 함성소리와 함께 뱀파이어들이 세찬 물결이 철의 왕국 드워프들을 덮어버렸다.

드워프족들은 왕의 힘이 크지 않기 때문에 죽는다고 한들 인간처럼 큰 타격을 입진 않는다. 하지만, 지휘체계가 붕괴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예상대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항복을 외치는 드워프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싸움에 죽고 사는 뱀파이어들과는 달리 전투가 주전공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오스베르 산맥에서 벌어진 전투는 발발한지 5시간 만에 혼성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이로서 불의 왕국은, 수백여년동안 빚져왔던 원수에 대한 앙갚음을 실현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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