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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캄에덴, 대륙을 제패하다
“황제 폐하, 어서 이쪽으로!”
“서두르십시오! 언제 놈들이 올지 모릅니다!”
“아아, 천년을 주름 잡던 나의 제국이…….”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 그들 중에서 가장 위치가 높아 보이는 인물이 탄식을 했다. 하지만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머지 인간들은 그를 보좌하며 미친 듯이 말을 몰았다.
황제 폐하라 불린 중년 사내. 그는 바로 루세리안 제국의 현 황제인 크로테프키였던 것이다.
‘저 간악한 뱀파이어들에 의해 이 나라가 정복당하다니!’
황제는 통탄을 금치 못하며 연기가 솟구치는 수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상상이야 했겠는가.
“폐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우선은 옥체를 보존하시는 것이 이 나라를 위한 길입니다. 아직 우리 루세리안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황제를 설득하며 열변을 토하는 기사가 있었다. 그는 바로 라트비츠. 루세리안 최강의 기사이자 최고의 마갑기 파일럿이었으나, 캄에덴군과의 기갑전에서 대패해 제국 연합의 두 수도를 멸망으로 이끈 인물이었다.
물론, 그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단지 적이 강했을 뿐이지.
“헌데, 어디로 가실 겁니까?”
한참 말을 몰고 질주하던 중, 한 기사가 물었다. 그러자 곰곰이 생각하던 라트비츠가 고민에 빠졌다.
뱀파이어의 군대에 의해 세 제국이 모두 짓밟힌 이후, 남아 있는 인간의 국가라고는 크로프란을 비롯한 네 왕국 뿐이었다. 그러나 크로프란은 뱀파이어들의 침략을 가능케 한 주동자였으니, 남은 것은 세 왕국뿐인 것이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전력이지만, 세 왕국의 힘을 빌려야겠지. 하지만 거기까진 너무 멀다. 아마 목적지까지 반도 가지 못하고 잡힐 것이다.”
라트비츠는 뱀파이어들의 힘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크나큰 경험의 아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놈들은 정말 괴물들이다. 진정한 괴물들이야.’
비록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곤 하나 두 배가 넘는, 백만 대군 이 아니던가. 그런 대군을 일방적으로 도살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였다.
아무튼 라트비츠는 왕국 행에는 반대 의사를 내비췄다.
“그러면 어디로 가는 게 좋겠습니까? 사방이 뱀파이어들의 점령지이니…….”
“딱 한 군데 있다네. 가장 가깝고, 적의 공격을 완벽하게 피하면서 우리의 목숨을 보장할 수 있는 곳이 말이네.”
“거기가 어딥니까?”
기사의 물음에 라트비츠가 북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빛의 숲.”
“아, 그렇군요!”
라트비츠의 묘안에 기사가 무너진 하늘에서 솟아난 구멍을 찾은 듯 환한 표정을 지었다.
엘프들의 거처, 빛의 숲이라면 제아무리 뱀파이어들이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엘프들은 이 종족이 빛의 숲에 올 경우 무조건 공격을 하기 마련이겠지만, 자신들은 예외였다.
“설마 수백 년 동안이나 교류를 하며 지내온 우방이 우릴 내치진 않겠지.”
“하지만 5년 전 그 사건이 마음에 걸립니다만…….”
말끝을 흐리는 기사를 보며 라트비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5년 전, 엘프들이 자신들의 부탁으로 유에센 제국을 염탐하다 꼬리가 밟혀 전원이 붙잡혀간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모두 죽지 않고 탈출했지만, 이일로 인해 엘프 측에서 다시는 인간사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루세리안과의 관계가 나빠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도 우방인 우리가 철천지원수인 뱀파이어들에게 당하는 걸 원하진 않을 거야. 뭐, 일단은 부딪혀봐야겠지.”
말을 마친 라트비츠는 말고삐를 쥔 손을 더욱 세게 잡아 당겼다. 친위기사들도 황제를 비롯한 황족들이 탄 마차와 함께 속력에 박차를 가했다. 아직 적들이 추격하고 있지는 않으니 아마 조금만 더 가면 안전해 지리라 여기면서.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벌써 그들의 행렬을 바라보는 눈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주 맛 들어져 보이는 먹잇감인걸.”
인간계 원정에 참가한 5전단의 천귀장, 크레이드는 입맛을 다시며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인마의 무리를 주시했다.
그가 이끄는 천귀대는 원정대 총사령관인 스탐에게서 루세리안의 머리를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이 황족을 다 죽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사실은 뇌에 돌이 박힐 정도로 싸움만 반복하면서 싸워온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자, 가자 나의 수족들이여! 반드시 인간들 우두머리의 머리통을 총사께 바치는 거다!”
나직한 명령과 함께 크레이드가 달려 나갔다. 그러자 그의 뒤를 이어 1000명의 뱀파이어들이 따라나섰다.
황제와 동행하는 루세리안의 친위대는 겨우 400명. 아무리 절정급의 기사가 한명 있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배, 뱀파이어들이다!”
한 기사의 다급한 외침이 정적을 깼다. 라트비츠는 곧장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인간보다 더 큰 체구를 갖춘 흑색의 괴물들이 말 그대로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끝장이군.”
라트비츠가 한숨을 쉬었다. 말을 타지 않았고, 무기도 없는 적들에 비해 자신들은 친위대인 만큼 전원이 말을 탄 정예들이다.
그런데도 쫓기는 신세라니?
하지만 일단은 싸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문제의 적들은 단순히 뛰는 것만으로 마차에 따라붙는 상식을 초월한 존재들이다.
스르렁!
“가자, 루세리안의 기사들이여! 저 더러운 놈들에게서 황제 폐하의 옥체를 보존해야 한다!”
“와아아!”
다그닥 다그닥
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뱀파이어들에게 달려들었다. 쌍방이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짓처들고 있었기에 머지않아 정면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통상적인 경우엔 말을 탄 기사들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적들은 뱀파이어다.
“사격!”
알 수 없는 뱀파이어의 말과 동시에 갑자기 달리는 것을 멈춘 뱀파이어들이 기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바바바방
곧이어 선두열의 뱀파이어들이 뻗은 손에서 새까만 탄두가 기사들에게로 쏟아져 나갔다.
퍼퍼퍽
“으아아악.”
무기도 없는 것들이 원거리공격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기사들 몇몇이 비명성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침착해라!”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날아드는 흑마탄을 없앤 라트비츠가 소리쳤다. 그는 이를 악물며 또 다시 그 흑마술을 쓰려는 뱀파이어의 목을 날렸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루세리안의 기사들과 일개 천귀대 규모의 뱀파이어들이 혈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싸워라! 대제국 루세리안의 영광을 위하여!”
“크아아압!”
챙챙챙! 콰캉!
짙푸른 검이 사방을 흩날렸고, 이에 맞서 시커먼 기운이 맺힌 손들이 허공을 메웠다. 정말 치열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전장이었다.
하지만 라트비츠는 머지않아 자신들이 밀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강력한 어둠의 족속들은 어찌나 싸우는 법이 노련한지, 기사들이 탄 말의 발목을 자르면서까지 집요한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덕분에 100명이나 되는 뱀파이어의 목을 베었지만, 친위대의 기사들도 그만큼 죽어나간 상태였다.
캉!
“으윽.”
“싸움에 집중해라! 네 놈의 상대는 나다!”
라트비츠는 신음성을 흘리며 눈앞의 뱀파이어를 바라보았다.
다른 뱀파이어들보다 월등히 강한 이 놈은 특유의 강력한 물리적 파괴력을 들이 부으며 자신을 압박하고 있었다. 물론 최상급 소드 마스터인 자신에 비하면 한참 밀리는 실력이었지만, 주변의 기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데다 지금 상대하는 놈 또한 몇몇의 뱀파이어들이 뒷받침 해주고 있으니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이 비겁한 놈들!”
“흥, 그런 건 죽고 나서 따지고 들지 그래?”
울분을 참지 못해 그렇게 소리쳤지만 오히려 화만 돋울 뿐이었다. 그래도 자신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황제가 탄 마차는 도망칠 수 있으니 라트비츠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가면 빛의 숲에 도착하지 않던가?
하지만 마차의 안위를 확인한 순간, 그는 혼이 빠져나갔다.
“맙소사!”
“크크크. 일단 마차부터 접수해야겠군.”
여유가 남아돌자 일부 뱀파이어들이 공명심에 마차를 뒤쫓은 것이다. 뱀파이어들과 싸운답시고 마차를 호위하는 기사는 단 셋뿐이었으니, 라트비츠는 서서히 절망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음을 느꼈다.
마차 안에는 황제 이하 제국의 미래를 이어갈 황족들이 모두 있었다. 만약 그들이 다 죽어버린다면 루세리안은 멸망이었다.
‘아, 이제 끝장인가?’
슈슈슉! 퍼퍼퍽!
라트비츠가 끓어오르는 절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마차 쪽으로 수십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뱀파이어를 향한 것이었다.
“끄아아악!”
화살이 몸에 꽂힌 뱀파이어들은 기괴한 비명성과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단 한발에 한명씩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뱀파이어는 일어설 줄을 몰랐다.
수십 발의 화살이 꽂히면서도 죽지 않던 놈들이 말이다!
‘서, 설마?’
라트비츠의 입가에 희망이 감돌았다. 주인이 보이지 않는 화살들은 어느새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분명히 기사들과 뱀파이어들이 섞여 어지럽게 난전을 펼치고 있었음에도, 화살은 정확히 뱀파이어들의 급소에 꽂혔다. 적으면 한발, 많으면 세발에 저 무적의 괴물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 빌어먹을 엘프 놈들! 감히 우리의 대업을 방해하다니!”
흥분한 크레이드가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엘프들은 입으로 해야될 대답을 화살로 표현할 뿐이었다.
푸푸푹!
“으헉……!”
크레이드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휘청거렸다. 어느새 그의 몸뚱이에는 세발의 화살이 정확히 복부를 뚫고 있었다.
평범한 화살이라면 분명 옷도 못 찢고 튕겨져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화살에는 하나같이 짙푸른 마나가 감돌고 있었다.
“죽어라!”
이틈을 놓칠 라트비츠가 아니었다. 그의 섬광 같은 검격은 단숨에 크레이드의 살 속을 뚫고, 뼈를 가른 뒤 빠져나왔다.
털썩.
머리통이 바닥을 뒹구는 것과 동시에, 루세리안의 마지막 희망을 제거하려던 뱀파이어들의 수괴가 허무하게 몸뚱이를 떨어뜨렸다.
“처, 천귀장님이 죽으셨다!”
“젠장, 어서 도망쳐!”
지휘관이 죽자 뱀파이어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노련한 전투경험을 가진 이들은 이미 이 전투를 이기기 힘들다는 사실을 진작에 깨달은 것이다.
“쳇, 한 놈도 못 죽였군.”
도망치는 뱀파이어들을 멀거니 보고 있던 라트비츠가 입맛을 다셨다. 자신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사들의 말이 상한 상태였기에 저들을 추격해 주살한다는 말은 꿈같은 소리였다.
사실,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빛의 신 아르티시앙에게 감사해야할 일이겠지만 말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숲의 종족들이시여.”
“우방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라츠비츠의 말에 엘븐 스나이퍼들의 마스터, 카리오스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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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연재가 더뎌지는군요;;
빨리 완결을 해야 하는데 ㅡㅡ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