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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빛의숲 대저격전
“뭐라고? 루세리안의 황족을 제거하러 간 5전단의 제4천귀대가?”
“예. 1000명 중 246명이 죽었고, 320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천귀장인 크레이드는 전사했습니다.”
“으음…….”
전령의 보고에 막 루세리안 황좌에 앉은 스탐은 염두를 짚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천귀장 아니, 배틀러급의 뱀파이어가 죽는 일은 말이다.
물론 황제를 호위하는 라트비츠는 최상급 소드 마스터. 초급 배틀러인 그가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쉽게 질 리도 없었다. 인간 소드 마스터들은 배틀러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없다는 메리트가 있을뿐더러, 받쳐주는 병사들도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엘프들 짓이로군.”
“음, 아무래도.”
옆에 기대어 있던 카이사르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사르는 현재 뱀파이어 로드가 스탐의 보좌관으로 임명해 보낸 상태였는데, 사실 그가 자진해서 온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이제 인간계도 거의 다 평정했고, 철의 왕국도 뒤엎었겠다,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군 그래.”
스탐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캄에덴군의 인간계 점령지는 크로프란 관할령을 제외해도 세 개 제국의 영토였다. 점령지 인간들의 저항이 빈번한 것이 아직까지 완전히 점령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그러는 반면, 철의 왕국의 경우엔 완전한 점령이 끝난 상태였다. 대부분의 전사들을 죽인 불의 왕국군이 그들의 거처를 강점한 채 노예처럼 부리기 시작했다.
철의 왕국 드워프들을 철천지원수처럼 여기는 불의 왕국 드워프들의 눈에 있어서 이들의 나라는 식민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다음 목표는 엘프다.”
스탐의 얼굴에는 결연함이 엿보였다.
“인간계는 네 계략이 적절히 먹혀들어서 성공할 수 있었지만, 엘프는 어떻게 상대할 거냐?”
“뭐, 그게 문제지.”
스탐은 머리를 긁적이며 히죽 웃었다. 카이사르의 말 대로였다.
엘프와 뱀파이어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상극이었다. 지향하는 색깔과 마법, 그리고 전투방식까지 말이다. 무기도 쓰지 않을 정도로 전면전을 지향하는 뱀파이어들과는 달리, 엘프들은 히트 앤 런. 치고 빠지는 전투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엘프 전사들은 활 하나 정도는 반드시 가지고 있으며, 검을 가지고 있어도 실전경험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엘프도 엘프지만, 빛의숲은 절대 이종족이 길을 찾아낼 수 없어. 엘프들의 협조 없이 모르고 들어갔다간 미아가 되어서 서서히 놈들이 쏘는 화살의 먹이가 되겠지.”
“숲에선 아무도 엘프들을 이길 수 없다, 이 말이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스탐의 표정은 절대 침울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알 수 없는 자신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그 사실에 의아해한 카이사르가 물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스탐은 그저 웃으며 긍정을 표할 뿐이었다. 그는 오히려 카이사르에게 반문했다.
“우리 캄에덴의 특수부대 중에서 엘프들에 대해 가장 잘 알면서도 인간들과의 전투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녀석들이 누굴까?”
“아…….”
그제서야 이해했다는 듯 카이사르가 환한 얼굴로 스탐을 바라보았다. 스탐은 손가락을 튕기며 흥미롭다는 미소를 띠었다.
“같은 저격의 길을 걷는 두 집단의 싸움이라……. 아주 볼만한 구경거리가 될 거야.”
크레이드가 이끄는 천귀대가 엘프들에게 당했다는 소식이 들어온 다음날, 스탐의 원정군은 빛의숲에 선전포고를 했다.
빛의숲이 얼마나 까다로운 곳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정복할 원정대는 소수 정예로 제한했다. 단 3만의 병력으로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원정군 총사령관 스탐을 비롯한 일부 수뇌부와, 특수부대 하나를 추려서 왔다는 사실을 감안해볼 때 절대 엘프들이 코웃음을 칠 정도는 아니었다.
“놈들, 선전포고를 하자마자 들어오는군.”
빛의숲의 아름다운 수풀들을 거칠게 베며 새까맣게 몰려오는 뱀파이어들의 물결을 바라보던 한 엘프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엘프가 이죽거렸다.
“어떻게 들어오든 간에 무덤을 파는 짓이지. 자, 어서 놈들을 괴롭힐 준비를 하자고.”
그들은 현재 뱀파이어들이 지나치고 있는 무성한 나무 위에 매복해 있었다. 수백 년을 자연과 벗 삼아 살아왔던 그들이기에, 아무리 전투감각이 예민한 뱀파이어들도 그들을 감지하진 못할 것이다.
“사격!”
지휘관으로 보이는 엘프의 외침과 함께, 고요하기만 하던 숲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슈슈슈슈슉! 퍼퍼퍽!
“으아악!”
“매복이다!”
“어서 산개대형으로!”
과연 정예답게 기습을 받았음에도 뱀파이어들의 움직임은 일사분란했다. 사격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그들은 날아오는 화살들을 대부분 튕겨내고 있었다.
“쳇, 과연 인간계를 정복한 놈들답군.”
지휘관 엘프가 이를 악물며 뱀파이어들을 내려다보았다. 겨우 첫 기습이긴 했지만 죽인 놈은 하나도 없었다. 겨우 몇십명만이 부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안되겠어. 일단 엘븐 스나이퍼들과 합공을 해야…….”
탕!
옆의 엘프가 조언을 끝마치기도 전에 총성과 함께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 그 광경에 일순간 모든 엘프들이 얼어붙었다.
“아악!”
“꺄아악!”
총성이 한번 울릴 때마다 한명의 엘프가 떨어졌다. 떨어지는 엘프마다 절명한 상태였으니, 그 정체불명의 천둥소리는 매복공격을 감행한 엘프들의 전투의욕을 바닥에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후, 후퇴!”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엘프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문의 저격수들은 끝까지 미지의 무기를 쏘아대며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멋지군.”
바닥에 떨어진 오백여구의 시체들을 바라본 스탐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흑마탄을 사격하는 것으로도 그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었지만, 그는 일부러 쉐도우 스나이퍼의 능력을 확인해 본 것이었다.
“한명 당 다섯 명을 잡은 셈이군.”
“난 아홉 명을 죽였다.”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데빌 핸드를 총집에 집어넣은 카시안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스탐이 피식 웃으며 중지를 치켜들었다.
“안 물어봤다.”
“빌어먹을 놈.”
카시안이 살기를 띠며 검집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꺼내들진 않았다. 스탐은 귀여운 놈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화제를 옮겼다.
“그런데 너 정말 엘프들이랑 싸울 거야?”
그것은 비단 카시안뿐만 아니라, 쉐도우 스나이퍼들 중 반수를 차지하는 엘프계 하프 뱀파이어 모두에게 건네는 질문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뱀파이어에 의해 캄에덴의 백성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육체는 엘프의 것이었다. 그럴진데 자 종족을 침공하는 데 앞장서는 게 내켜질까?
카시안이 말했다.
“엘프들은 어떤 경로로든 간에 이단이 된 엘프는 엘프로 인정하지 않는다. 종족보존의 최선책이라는 꼴같잖은 개소리지. 하프 뱀파이어가 된 상태에서 빛의숲으로 탈출해봤자 그들이 맞이해 주는 것은 죽음뿐이다.”
“그렇군. 그럴 바에야 너희가 앞장서서 동족과의 악연을 끊겠다는 소리란 말이지. 하지만 카시안, 너는 한때 엘븐 스나이퍼였잖아?”
“…….”
스탐의 말에 카시안은 침묵했다.
엘븐 스나이퍼는 엘프족 중에서 가장 정예들만·추려서 만든 저격수 집단이다. 단 한 자루의 활만으로 천보 밖의 궤적을 맞추는 그들의 저격술은 엘프족에 있어 긍지와 자존심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카시안이 동행하는 쉐도우 스나이퍼가 정면충돌하는 상대가 바로 그들이었다.
과연 그가 한때 자신의 소속이었던 엘븐 스나이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있을까?
“엘븐 스나이퍼따위…, 모른다. 난 단지 놈들을 죽일 뿐이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다.”
스탐은 보았다. 카시안의 두 눈에 서려 있는 복합적인 감정을. 슬픔뒤에는 증오, 그리고 분노가 감돌았다.
카시안은 분노하고 있었다.
‘아마도 녀석에겐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것 같군 그래. 뭐, 내가 알바는 아니겠지만…….’
생각을 마친 스탐은 병사들에게 이동을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카시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든 간에 엘븐 스나이퍼들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아마 그 전투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이 전쟁의 승패가 가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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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시작되는군요.
다크 슬레이어 저격계의 양대산맥이 충돌합니다.
저격전을 어떻게 써야 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군요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