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153화 (15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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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빛의숲 대저격전

“몇명인가?”

“총 514명의 엘프 전사들이 어머니 아르티시앙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수백 년을 사는 엘프들은 타종족처럼 동족들이 죽은 것을 죽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단지 신의 품에 안겼다고만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침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자매들이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뱀파이어들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더러운 뱀파이어 놈들!”

한 엘프 전사가 울분에 찬 목소리를 토해내었다. 하지만 카리오스는 달랐다. 그는 침착하게 적들에 대한 사항을 알아보았다.

“제아무리 뱀파이어들이라도 기습을 가한 아군이 이정도의 사상자를 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카리오스의 시선은 패장이 되어버린 엘프 지휘관을 향했다. 휘하의 전사들을 잃었다는 죄책감과, 카리오스의 위압감에 주눅이 든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뱀파이어들 중에서 요상한 무기를 쓰는 일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기습공격에서 전사들은 모두 그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요상한 무기?”

“예. 기다란 쇠막대기의 형태를 가진 무기였는데, 단순한 손동작만으로도 강력한 쇳덩이가 튀어 나와 단 한방에 나무 위의 전사들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들의 수는 대충 백여 명 가량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군.”

카리오스는 미간을 짚으며 뱀파이어들이 가진 비밀병기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더불어 그 비밀병기를 사용하는 인물들 또한 떠올려 보았다.

“뱀파이어 놈들, 준비를 단단히 했군 그래. 우리 엘븐 스나이퍼들을 베낀 부대를 만들다니…….”

“그렇지 않다면, 감히 이 성역을 침범할 엄두도 못 냈겠죠.”

부드러운 목소리가 카리오스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카리오스는 천천히 시선을 뒤로 옮겼다. 그곳에는 에메랄드 빛 머리카락을 지닌 미녀 엘프가 걸어오고 있었다.

모든 엘프들이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녀는 남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굳게 앙 다문 입술, 총기가 깃들어 있는 두 눈빛.

“네 말대로다, 에레인.”

카리오스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미소를 띠었다.

에레인, 그녀는 바로 빛의숲 최강의 전사집단, 엘븐 스나이퍼들의 홍일점이었다.

“하지만 베낀 건 베낀 것일 뿐이지요. 그들은 절대 우리를 이길 수 없을 겁니다.”

“물론이지.”

카리오스가 자신감 어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애궁에 손을 가져갔다. 엘븐 스나이퍼들은 5만에 달하는 엘프 전사들 중에서도 뛰어난 활솜씨를 가진 이들만 모아 구성한 부대였다. 이들은 빛의숲을 전전하면서 수백 년 동안 저격술만 연마해왔기에, 아무리 뱀파이어들이 강력한 병기를 대동한 부대를 이끌고 왔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 그럼 가볼까? 겁도 없이 성역에 침범한 무리들을 처단하러 말이야.”

“네.”

에레인이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카리오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에레인은 항상 밝게 웃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엘븐 스나이퍼들이 그녀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크으으윽.”

그때였다. 부상자 하나가 신음성을 흘리며 깨어났다. 첫 교전 당시, 수백의 엘프 전사들이 뱀파이어들의 괴상한 무기 한발에 죽어나갔지만 운 좋게도 그는 목숨을 건진 것이다.

“프레인. 정신이 드나요?”

에레인이 기뻐하며 부상당한 엘프에게 다가갔다. 그는 뭔가에 홀린 듯한 얼굴이었는데, 에레인은 단순히 고통에 의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으으으. 그가, 그가 왔어.”

“그가 오다니요? 충격이 심한 모양이군요. 어서 치료마법을…….”

에레인이 의아해하면서도 옆에 시립한 백마법사에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는 프레인이라 불린 부상병 엘프가 흘린 말에 온 몸이 경직되었다.

“카, 카시안…, 나는 봤어. 분명 카시안이야…….”

“뭐라고?”

가장 먼저 소리친 쪽은 카리오스였다. 항상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하던 그의 얼굴에 균열이 왔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에레인은 떨고 있었다. 매번 보여주던 화사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었고, 단지 새파래진 얼굴로 그의 대답을 촉구할 뿐이었다.

“무슨 소리에요? 카시안이라니요? 제가…, 제가 잘못 들은 거죠, 그렇죠?”

“정신 차려 에레인. 프레인 이 녀석. 충격이 큰 가봐. 벌써 죽은 지 100년이 넘은 놈의 이름을 찾다니 말이야…….”

카리오스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도 겉으로만 태연했지, 속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카리오스! 놈은 죽었어. 말도 안돼는 생각 하지 마!'

"에레인, 가자!“

“예.”

카리오스는 마지못해 에레인의 팔을 붙잡고 자신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엘븐 스나이퍼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끝내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짓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제발…, 그게 사실이 아니기만 을 빌 뿐이다.’

타타탕!

“으어어억.”

“좋았어.”

마치 사냥당하는 새들처럼 나무 위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엘프들을 보고 있던 스탐이 환호성을 질렀다.

빛의숲에 진입한지 하루가 지났다. 그 동안 스탐이 이끄는 3만의 뱀파이어 정예병들은 큰 피해 없이 엘프들의 수도 엘라시안을 향하고 있었다.

길을 모른다면 빛의 숲을 간다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였지만, 이미 뱀파이어들에게는 훌륭한 길잡이가 있었다.

“이 길이 맞긴 맞는 거지, 카시안?”

“물론이다. 너 따위 놈한테 거짓말을 할 정도로 난 한가한 놈이 아냐.”“아, 그러셔?”

카시안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스탐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그는 무엇엔가 홀린 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도대체 뭐 때문인지는 스탐조차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동족이었던 자들에 대한 복수를 행사하는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저 눈은 원수를 찾으러 가는 자들에게나 볼 수 있는 눈빛이다. 그것도 엘프 족 전체가 아닌 특정한 인물 하나에게만 주어지는…….’

[저런 냉혈한에게도 복수의 대상이 있을까?]

카스턴의 어조는 무척이나 흥미롭게 들렸다. 스탐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지. 내가 처음 만난 녀석은 엘프계 하프 뱀파이어인 카시안이었으니까. 엘프일 때의 카시안은 어쩌면 아주 쾌활한 녀석이었을 지도 몰라.’

스탐은 복수가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희망을 짓뭉개버린 특정인에 대한 힘의 행사. 그것이 실행되기 전까지 끓어오르는 증오심은 충분히 대상의 인성을 뒤바꿔 버릴 수 있었다.

그때였다.

쉐에엑! 푹!

“으어억!

화살에 몸뚱이를 적중당한 뱀파이어 병사의 입에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쉐쉐쉐쉐쉑!!

그것이 신호탄이었을까? 곳곳에서 화살들이 쏟아져 나왔다.

“흥, 또 잔챙이들인가.”

스탐이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껏 이동해 오면서 엘프들은 산발적인 매복공격만 반복해 왔다. 물론 근접전에선 상대가 되지 않을 게 분명한 그들로선 그것만이 최선책이겠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뱀파이어들은 극소수의 부상자만 생길 뿐이고, 기습을 가한 엘프들 중 대다수가 쉐도우 스나이퍼들의 총탄 아래에 죽어나간 것이다.

그러나 스탐은 머지 않아 알아챌 수 있었다.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이 화살이 지금껏 웃음거리로 여겨왔던 여타 엘프들의 화살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오러 애로우! 모두 피해!”

푸푸푸푹!

스탐의 외침은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었다. 그의 말이 채 마치기도 전에 수십 명의 뱀파이어들이 화살에 관통당해 바닥에 널브러진 것이다.

“이럴 수가.”

경악이라는 단어가 얼굴에 새겨진 스탐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화살을 맞은 뱀파이어들 중 살아남은 자는 극히 드물었다. 모두 급소에 맞아 즉사한 것이다.

타타타탕!

쉐도우 스나이퍼들의 대응은 약간 늦었다. 그들조차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기습이라 약간 마음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제길.”

마스터 윈델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쉐도우 스나이퍼들 중 반수가 라이플 건을 쏘았지만 맞은 놈은 하나도 없었다.

“엘븐 스나이퍼들이다.”

의문의 적들이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보던 카시안이 한 마디 했다. 스탐도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하긴, 그들 말고 이 정도의 실력을 보여줄 놈들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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