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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슬레이어-164화 (16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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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카시안의 슬픈 운명

그 날 이후로 카시안은 변했다. 개구쟁이 엘븐 스나이퍼에서 냉혹한 하프 뱀파이어 저격수로. 하루도 빠짐없이 끊임없는 저격과 검술 훈련을 거듭해 오던 그는 100여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때 지온과 했던 약속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빛의숲의 엘프들을 모두 죽여 그 피로 목욕을 하기 이전에, 너희 둘을 죽여 그때 진 빚을 갚아야 되겠다.”

무덤덤한 어조로 한 마디 한 카시안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냉정한 복수자의 칼끝은 한때 동료였던 자의 심장을 향해 맹렬히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크흣!”카리오스의 뺨에 긴 흉상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정도는 매우 양호한 수준이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죽음의 영역에 들어섰을 테니까.

“이제 그 잘난 아르티시앙의 품에 안길 준비나 해라!”

카시안은 흥분하고 있었다. 하프 뱀파이어가 된 이후 항상 철의 가면을 쓰고 다니던 그도 눈앞의 배신자 앞에서는 감정이 들끓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카리오스는 그의 일격을 피하거나 막을 생각이 없는 듯, 같이 스틸레토를 쥔 채 달려들었다. 날린 화살을 앞서갈 듯 스피드로는 정평이 난 두 실력자의 검이 서로를 향해 틀어박히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스슥

스틸레토의 날 끝이 닿는 순간, 카시안인줄로만 알았던 신형이 검은 연기를 흩어내며 사라졌다. 쉐도우 스나이퍼가 가진 비장의 카드, 쉐도우 디코이가 발동된 것이다!

진짜 카시안은 카리오스의 옆구리를 찔러오고 있었다.

“어림없다!”

놀랍게도 카리오스는 그 사실을 일찍이 간파하고 있었으니, 쉐도우 디코이를 찌르는 듯하다가 유연하게 몸을 회전시킨 그는 스틸레토로 맞공격을 감행했다.

푸푹!

똑같은 두 자루의 스틸레토가 동시에 상대 주인의 몸속을 파고 들었다. 두 검이 회수되는 순간 피분수가 쏟아져 내렸다.

“으으음.”

놀랍게도 먼저 쓰러진 건 카시안이었다. 카리오스는 옆구리가 약간 깊숙이 베인 정도였지만, 카시안은 배가 완전히 관통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살 속을 뚫고 들어온 날카로운 칼날 끝이 급소를 절단 내진 못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지만, 이 일합으로 전투는 완전히 종결되었다.

카시안의 완벽한 패배였다.

“오늘에서야 나의 복수극이 막을 내리게 되었군.”

“…….”

“어서 죽여라. 애초에 죽음을 갈망했던 나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너는 벨리우드의 나락 끝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과연 카리오스의 손에는 한 치의 인정도 없었다. 지금의 카시안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모습이었다.

목숨을 빼앗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냉혹한 전사! 그의 스틸레토는 서서히 피가 뿜어져 나오는 카시안의 몸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너로 인해 수많은 빛의 자매들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아르티시앙의 품으로 날아갔다. 지금 당장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야 말겠다!”

카시안과 마찬가지로 카리오스도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다. 이성에 금이 간 그의 팔 끝은 빠른 속도로 카시안의 심장을 헤집으려 쏘아지고 있었다.

“안돼!”

푹!

“!”

갖다대는 것만으로도 나뭇가지 정도는 그냥 베여버릴 스틸레토의 검 끝이 심장을 헤집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임무는 완수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가 찌른 상대는 에레인이었기 때문이다.

“에레인!” 풀썩

피가 뿜어져 나오는 에레인은, 미처 카리오스의 외침에 뭐라 할 새도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미 주변은 카시안과 카리오스가 흘린 피에, 그녀의 피까지 더해져서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다…, 나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더 이상 싸우지 말아요.”

“도대체, 도대체 왜 이런 무모한 짓을!”머리를 부여잡으며 절규하는 카리오스 앞에서도 에레인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카시안도 마음속이 혼잡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여서, 얼빠진 표정을 지은 채 카리오스와 에레인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만약 죽기 직전의 인물이 카리오스였다면, 카시안은 분명 에레인을 찌른 스틸레토를 뽑아서 그의 목을 베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대역은 달랐다. 무슨 이유로 자신 대신에 희생했단 말인가?

왜?

그러나 그런 의문도 잠시. 카시안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에레인을 조롱했다.

“제정신이 아니로군. 날 죽이려고까지 했던 주제에 이제 와서 이런 저열한 짓을 벌여?”

“저열한 짓?”

순간, 에레인을 붙잡고 있던 카리오스가 비호처럼 날아들어 카시안의 멱살을 붙잡아 들었다. 그리곤 주먹을 휘둘렀다.

“네가 진실을 알아? 에레인이 왜 널 구하려 했는지 말이다!”

퍼퍼퍽!

엘프가 때리는 주먹은 뱀파이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빨을 깨물며 정신을 또렷하게 차리고 있던 카시안은 조심스럽게 스틸레토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손잡이를 잡고 카리오스를 베려던 순간, 그가 한말에 카시안은 순간적으로 검을 놓아 버렸다.

“그녀에게 추격당하면서도 깨닫지 못했나? 마음만 먹었다면 너 따위는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랑? 풋, 가당찮은 소리 작작 하시지 그래? 한낱 공명심 때문에 종족을 버린 주제에…….”

“몰라서 물어? 너는 더 이상 엘프가 아니야. 우리의 철천지원수, 뱀파이어일 뿐이야. 숲 속에 들어온 숙적에게 사정을 봐줄 엘프는 아무도 없어!”

“이제 그만 죽어주는 게 어때?”

에레인은 스틸레토에 손을 가져가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도망치는 카시안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재빨리 그를 쫓아가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에레인은 카시안보다 발이 더욱 빨랐고, 저격술은 더욱 뛰어났다. 죽을 각오로 뛴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쏜 화살은 어김없이 카시안을 빗나갔다. 딱 한발이 몸뚱이를 꿰뚫었지만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아주 의도적인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빛의 숲 바깥이 가까워지자 에레인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곳에는 엘븐 스나이퍼의 마스터와 카리오스 이하 대다수의 엘븐 스나이퍼들이 포진해 있었다.

“분명히 끝냈겠지?”“카시안은 우리의 목숨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뱀파이어들의 피가 들어간 적입니다. 저는 엘븐 스나이퍼. 적에게 한 치의 용서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마스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에레인이 일전의 전투에서 단 한명의 뱀파이어밖에 죽이지 않았던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너와 카시안은 특히 돈독한 사이였다지? 그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구나.”

그렇게 대답한 마스터는 휘하의 엘븐 스나이퍼들을 시켜 확인처리를 하려고 했다.

그것을 막은 것은 카리오스였다.

“에레인의 말을 믿지 않으시는 겁니까? 비록 신입이라곤 하지만 에레인도 엄연한 엘븐 스나이퍼입니다. 그녀를 존중해 주십시오.”“흐음.”이인자나 다름없는 카리오스가 들고 나서자 마스터는 염두를 짚었다. 비록 같이 축복의 날에 태어나 똑같은 스틸레토를 만들었다곤 하지만, 카시안과는 냉담한 사이였다.

“네 말이 맞다. 에레인, 시체는 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마스터는 그 말을 끝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자 에레인과 카리오스, 카트리엘은 인사를 하고 나서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털썩

몇분을 걸었을까, 갑자기 에레인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카리오스와 카트리엘은 미리 예상했다는 듯, 서로 눈빛만 주고받았음에도 알아서 그녀 곁을 떠나갔다.

“카시안…, 미안해.”

에레인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얼굴을 부여잡은 두 손 사이로 투명한 물방울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던 그녀는 이내 두 손을 바닥에 짚었다. 상기된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상아색 피부는 슬픔의 파도에 휩싸여 붉어진지 오래였고, 눈물은 범벅이 되어 얼굴 곳곳에 묻어 있었다.

에레인은, 몇날 며칠을 슬픔으로 지새웠다. 눈물샘이 마르고 나서도.

“…….”

카리오스가 한 말을 들은 카시안은 머릿속이 텅 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백치로 태어났는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새하얀 백지만 떠오른다.

카시안은 멱살을 잡은 카리오스를 밀쳐낸 뒤, 에레인을 품에 안았다.

이미 그녀는 회생불능이었다. 이 상태라면 그 어떤 치명상도 치료할 수 있다는 백마법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의식의 끈은 놓지 않았는지 그녀는 카시안을 바라보며 한 마디 했다.

“손, 잡아줄래?”

“…….”

카시안은 말없이 에레인이 힘겹게 내미는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순간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그것은 예전에 자주 보여줬던 익숙한 미소였다.

“미안해, 카시안. 날 용서해줘.”

“넌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 있다면 나의 만용일 뿐.”

오래전의 기억이 떠오르자 카시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엘프이던 시절, 카시안은 항상 무슨 일이 있으면 에레인에게 사과를 했고 용서를 받았다. 바뀐 것이라곤 사과를 하는 쪽이 에레인이라는 점과, 카시안의 말투뿐이었다.

“고마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네 용서를 받기 위해 살아왔어.”

그 말을 끝으로 힘겹게 말을 있던 에레인의 고개가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카시안과 맞잡고 있던 손도 늘어졌다.

“뭐하는 거야, 에레인?”

카시안이 웃으며 에레인을 흔들었다. 예전부터 그녀는 죽은 척을 많이 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몇 번을 흔들어도 그녀는 깨지 않았다. 이상하다.

“장난치지 마…….”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된 몸뚱이의 체온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극도의 감각을 지닌 카시안의 몸이 먼저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단지 미친 듯이 흔들 뿐이었다.

“이렇게…, 이렇게 죽으면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급기야 두 눈에서 쏟아져 나온 물이 양 볼을 타고 내려갔다. 100여 년 동안 봉인되었던 슬픔의 결정이. 카시안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단지 똑같은 행위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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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두번 베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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