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165화 (16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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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운명, 그리고 만남

엘븐 스나이퍼와 쉐도우 스나이퍼. 그 두 세력이 맞붙은 결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양측 모두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예중의 정예였던 탓일까? 둘 다 피해는 비슷비슷했다.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쪽은 빛의숲을 침공한 뱀파이어 측이었다. 애초에 쉐도우 스나이퍼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엘븐 스나이퍼들을 제압해 엘라시안을 점령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계산이었는데, 그 계산이 틀어진 것이었다.

더군다나 믿고 있던 카시안은 치명상을 입고 돌아온 상황이었으니, 빛의숲 원정대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카시안의 상태는 어때?”

스탐이 카시안의 치료를 담당하는 수석 의사에게 물었다. 보통 뱀파이어들의 경우, 단순한 경상은 금방 낫고 치명상을 입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전쟁에 혈왕성의 의사를 투입하진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데려온 것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뭐, 주요부위를 찔리지 않았다곤 해도 관통상을 입었는데도 출혈과다로 죽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긴 합니다만…….”

“며칠이나 기다려야 하지?”

“적어도 한달은 요양해야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입니다.”

“휴, 한달이라.”

무투대회 당시, 지온에게 당했음에도 한 달 만에 멀쩡해져 불의 왕국 지원부대에 따라왔던 카시안이다. 일개 엘프에게 당한 상처가 지온에게 당한 것보다 더 클 거라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일 텐데 적어도 한 달, 그것도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라니?

“아무래도 카시안은 이 전투에서 뒷짐만 지고 있어야겠군.”

“음, 아마도.”

조용히 다가온 카이사르의 한 마디에 스탐이 고개를 끄덕였다. 뱀파이어 로드는 한 달 안에 빛의숲을 정복하라고 명했다. 하지만 카시안을 저 꼴로 만든, 엘븐 스나이퍼들의 수장 카리오스가 살아있다는 사실로 볼 때 그가 완쾌되더라도 승리는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답답한 건 엘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자랑인 엘븐 스나이퍼는 수백 년에 걸쳐 양성되는 정예 집단. 만약 쉐도우 스나이퍼들과 완전히 양패구상이 된다면 엘프들은 발톱은 있으되 이빨은 없는 사자가 될 것이다.

전쟁을 치르는 양쪽 모두 답답한 상황. 이 쯤 되면 나오는 게 하나 있다.

“휴전 협정.”

스탐과 카이사르가 동시에 말했다. 스탐은 웃으며 카이사르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사자로 온 엘프 하나가 서신을 가져왔어. 엘프어로 적혀 있더군.”

“놈들, 싸가지 없기는 없구만.”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스탐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추종하는 신이 완전히 원수지간인 두 종족이다. 당연히 뱀파이어의 말을 할 줄 아는 엘프가 있을 리 없다. 반면에 뱀파이어의 경우는 엘프계 하프 뱀파이어가 상당수 있기 때문에 엘프어로 된 문서가 있다고 하더라도 통역에 큰 문제는 없었다.

“어서 가져와봐.”

스탐이 한 말은 서신은 물론이고 통역병도 함께 데려오라는 소리였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카이사르는 알았다는 말과 함께 잠시 후, 문제의 서신과 엘프계 하프 뱀파이어 하나를 데려왔다.

“평화로운 땅. 빛의 신 아르티시앙과 대지의 축복이 가득한 풍요로운 성역, 빛의숲을 침범한 이 더럽고 파렴치한 벨리우드의 종자들이여…….”

눈치 없게도 이 통역병은 엘프어를 그대로 직역하고 있었다. 서문이 저렇게 기니, 다음 내용은 안 봐도 뻔할 텐데 말이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쓸데없는 헛소리만 들려오자 순간 짜증이 솟구친 스탐이 소리쳤다.

“중요한 것만 간추려서 지껄이는 게 어때? 나도 인내심에 한계가 있어서 말이지.”

“아, 알겠습니다.”

눈앞에 앉아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다시 확인한 통역병이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통역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엘프들은 말 자체를 잘 꾸미고 돌려 말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이런 엘프어로 적힌 글의 경우 전체 글을 1할 정도로 간추려야 평범한 분량이 되어버린다.

아무튼, 통역병이 뱀파이어의 언어로 제대로 통역하기 시작한 서신은, 과연 스탐과 카이사르의 예상대로였다. 역시 그들은 휴전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통역병이 총사령관 스탐이 반드시 와야 하며 휴전협정장소를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하자는 것과, 호위병을 10명 이하로 데려오라는 부분까지 언급했을 때, 그들은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 미친놈들! 아주 제멋대로구만. 지금 여기를 쳐들어 온 쪽이 자기들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야, 뭐야?!”

“하하하. 역시 쓰레기들이란 단어는 괜히 붙는 게 아니군.”

흥분하는 카이사르와는 반대로, 스탐은 크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든 카이사르가 물었다.

“스탐, 너 설마…….”

“인간 세계에서는 제국에 왔으면 제국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잖냐. 그리고 여기는 빛의숲이지.”

“맙소사. 너 제정신이냐? 그 속담이랑 지금 상황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카이사르는 필사적으로 스탐을 말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터무니  없는 요구는 몇 번 거절하다보면 저절로 조건이 좋아지기 마련이었다. 일종의 흥정인 것이다.

‘엘프 놈들. 속 보이는군!’

자기들이 정하는 장소에서 휴전 협정을 맺으면서 호위병을 10명 이하로 데려오라니? 몸속의 구조물들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뻔한 속셈이었다.

물론, 문제는 그걸 가겠다고 하는 스탐이었지만.

“호위병은 최소한 100명은 돼야 해! 아니, 넌 인간계 원정대의 총사령관이잖아? 총사령관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적진의 휴전 협상지에 10명의 호위병만 데리고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모두 배틀러로 꽉 채운다고 하더라도 놈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살아남기 힘들어!”

“이봐, 카이사르. 난 하이 배틀러야. 그깟 간지러운 화살 따위에 쓰러질 몸이 아니란 말씀이시지. 그리고 놈들도 명색이 엘픈데 설마 나를 암살하려는 비겁한 수를 쓰려고 하겠어?”

필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탐의 의사는 완고했다. 그 모습에 결국 카이사르는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휴, 어쩔 수 없군.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봐. 대신 호위병은 모두 가장 잘나가는 녀석들로 뽑아 두어야 돼.”

“그건 너한테 양보해주지.”

능글맞은 스탐의 말에 카이사르가 이를 악물었다.

잠시 후, 스탐이 길을 나섰다. 배틀러가 세 명에 천귀장급 뱀파이어가 일곱 명이었다. 너무도 수가 적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신으로 착각할 듯했다.

“저 고집불통 자식…….”

카이사르가 한숨을 쉬며 각 전단의 전단장을 불러들였다.

“3전단은 발이 빠른 병사 3000명과 쉐도우 스나이퍼들을 추려서 나와 함께 휴전 협정지로 뒤따라가고, 나머지는 대기하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전단장은 카이사르의 말을 철저하게 따랐다. 원정대의 부사령관은 둘째치더라도, 오대패자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복종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잠시 후, 3전단에서 따로 편성된 병사 3000명이 카이사르의 뒤를 따라 스탐들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헤에, 왠지 느낌이 좋은걸?”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스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은 주위에 있는 호위병들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보통 이럴 때에는 느낌이 안 좋다고 말하는 게 정상 아니냐?]

“글쎄. 느낌이 좋은 걸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참 이상한 녀석이군.]

“너만 하겠냐.”

호위병들은 스탐이 요상한 아티팩트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 챈 듯, 묵묵히 뒤를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머지않았어. 반드시 찾고 말거야.”

스탐은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며 목걸이를 꾹 잡았다. 그의 목에는 두개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하나는 헬 팬텀의 목걸이. 또 다른 하나는 아나만디움 재질이라는 사실을 빼면 볼품없는 반태극 모양의 목걸이.

스탐에게 있어서 후자의 목걸이는 자신이 살아온 삶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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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_- 세번 베기 성공;;;

이번 파트에도 운명이 들어가는군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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