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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운명, 그리고 만남
‘아, 네가 세현이었다니!’
솔직히 몇 번 의심은 품어봤다. 항상 그녀를 만날 때마다 마음의 안식을 느껴왔으니까. 하지만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을 뿐, 진정 그녀가 자신이 평생 동안 찾아 헤매던 여자라고 확신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때마다 루시리아와의 가슴 아픈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쉐쉐쉑!
“윽!”
“하지만 들끓는 고통이 스탐을 기쁨의 호수에서 고통의 나락으로 인도하였다.
[정신 차려라! 지금은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가느냐가 중요하다!]
“나도 알아.”
카스턴의 충고에 스탐이 이를 악물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렸다. 200여 년 동안 뱀파이어로 살아가다가 이제야 만나게 된 그녀다. 만나자마자 죽는 것을 기쁘게 여길 만큼 스탐은 멍청하지 않았다.
‘카스턴, 어서 방어 마법을!’
[알았어.]
곧이어 카스턴의 검신에서 퍼져 나온 짙푸른 색의 원, 프로즌 아머가 스탐을 감싸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오러 애로우도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깨질 것이다.
‘빌어먹을 놈들!’
스탐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저 망할 엘프들은 이제야 행복을 찾은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건가!
“구석으로 떨어져 있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세리아에게 소리쳤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는 살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정신이 퍼뜩 든 세리아는 곧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뒤로 물러섰다.
지지직
오러 애로우가 날아온 모양인지, 프로즌 아머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겼다. 평범한 화살은 흠집조차 못 낼 카스턴의 마법이었지만, 오러를 입힌 화살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이대로라면 끝장이다.’
스탐은 어떻게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봤다. 하지만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려 봐도 길은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면 당연히 화살세례가 쏟아질 테고, 그렇다고 오두막 자체를 파괴해 버리자니 그것은 죽음을 조금 더 앞당기는 것에 불과했다.
파아앙
유리벽 따위가 깨져 나오는 굉음, 그것은 바로 프로즌 아머가 파괴되는 소리였다. 카스턴에 내제된 마나를 최대한으로 뽑아 구축했음에도 불과 몇 분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으으으.”
스탐은 또 다시 맨몸으로 화살을 막아내야만 했다. 젖 먹던 힘을 다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의 몸 안에 들어 있는 흑마기는 바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화살을 맞는 횟수는 점점 더 늘어가고 있었다.
푹!
“크아악!”
화살촉이 옷가지를 찢고, 살 속을 뚫고 들어가 등 뒤로 빠져나왔다. 지옥 같은 고통이 스탐의 몸 전신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스탐!]
카스턴의 안타깝다는 목소리는 요동치는 고통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산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할 정도의 고통! 스탐은 지금 그 심연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죽어야만 하는 건가.’
순간 스탐의 두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뱀파이어인 그가 아파서 그럴 리는 없었다. 단지 억울해서 그랬다.
이제 만났는데. 이제 200년 동안의 이별 끝에 만나 상봉의 기쁨을 맞이해야만 하는데, 또 다시 헤어져야 한단 말인가!
‘아니, 난 죽을 수 없어….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이유가 뭔데!’
갑자기 한 가지 감정이 들끓어 올랐다.
분노.
절망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절대적인 증오!
그것이 스탐의 온몸을 요동쳤다. 그러자 그의 몸 깊숙한 곳에서 무엇인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분노라는 감정은 뱀파이어들이 가진 힘의 원천이었다. 또한 그것은 보다 더 높은 경지로 진입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아이슬로너도 분노를 일으켜 배틀 마스터가 되었고, 지온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스탐이 느끼는 분노는 자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가려는 절대 다수를 향한 폭발적인 분노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산천초목을 뒤집어엎을 정도의 함성이 빛의숲 곳곳에 메아리쳤다. 화살을 쏘던 엘프들은 그 어마어마한 다크 피어에 귀를 붙잡고 고통을 호소할 뿐이었다.
콰쾅!
그 순간, 스탐과 세리아가 안에 있던 오두막이 터져 나갔다. 마치 무시무시한 고폭탄을 설치해 놓은 듯, 안을 중심으로 뿜어져 나온 기운에 이 허름한 건물은 집채로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지…….”
카리오스가 당황한 어조로 방금 박살난 오두막 쪽을 바라보았다. 소드 마스터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허름하다곤 해도 저것 자체를 먼지더미로 만들어 버릴 정도면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라는 것을. 자신은 두 동강은 낼 수 있지, 저렇게는 하지 못한다.
오두막이 터져 나오면서 발생한 자욱한 연기가 시야를 가려, 카리오스는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폭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이 목표로 한 뱀파이어는 버젓이 땅을 디디고 서 있었다.
“말도 안돼!”
태연한 자태로 서 있는 스탐을 보고서, 카리오스는 지금의 현실을 부정했다. 분명히 엘븐 스나이퍼들과 추리고 추린 엘프 전사들을 총 동원해 화살을 쏟아 부었다.
이곳을 침공해온 뱀파이어의 수장이 엄청난 경지의 소유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엘븐 스나이퍼들의 지속적인 저격 앞에선 드래곤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저 뱀파이어는 어째서 버젓이 살아 있단 말인가!’
“다 덤벼. 살아 있는 놈들이라면 모조리 박살을 내 버릴 테니.”
이성을 잃은 스탐의 흉포한 눈빛은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생명의 기운을 가진 자.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자.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랑을 헤어지게 만들려는 자.
스탐의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들이 그렇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기절한 세리아는 안고 있었으니, 그가 얼마나 그녀에 대한 미칠 듯한 사랑을 쏟아 붓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쏴라! 놈을 당장 죽여라!”
당황한 카리오스가 손을 뻗었다.
그에게 서려 있는 눈빛은, 항상 냉철한 자세로 엘븐 스나이퍼들을 이끌어오던 마스터의 눈빛이 아니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생명체에 불과했다.
피피핑!
그의 심경과는 달리, 스탐에게 쏟아지는 화살의 발사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곧이어 한 떼의 소나기 같은 화살 세례가 뿜어져 왔다.
하지만 그 수백, 수천 발에 달하는 화살들은 모두 스탐을 피해가고 있었다. 하나 같이 빛의숲을 대표하는 활의 종족 엘프의 최고위 전사들임에도!
아니, 정확히 말해서 피해가고 있는 게 아니었다.
황금 빛 장막. 스탐의 몸 주위에 어른거리고 있는 황금빛의 장막이 쇄도하고 있는 모든 화살들을 튕겨내고 있는 것이다. 엘븐 스나이퍼들의 무시무시한 오러 애로우까지도!
“이런 미친 경우가…….”
카리오스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식이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근 300여 년 동안 쌓아왔던 상식의 탑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죽어.”
파방!
한 팔로 세리아를 안고 있던 스탐이 다른 팔을 뻗어 흑마탄을 한발 쏘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분노의 힘이 가미된 흑마탄이다. 아마 다른 뱀파이어가 보면 코웃음을 칠 만한 흑마술이었을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는 배틀 마스터의 경지에 자리를 잡았다.
콰콰콱!
“으어어억!”
단 한발이었을 뿐이건만, 무려 세 명의 엘프들이 죽어나갔다. 밀집된 상태에서 관통당한 탓도 있지만, 평범한 흑마탄이라면 한명만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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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_-;; 이제 겨우 일타 올리는군요.
오늘 실연 당한 친구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지금 저희집에서 뻗어 있는데...
귀엽다고 폰번호 딸땐 언제고 이제는 차갑게 차버리는 여자와
오빠동생 하자면서 술마시고 끝까지 붙잡는 남자...
참 엄청난 경험이 될 듯 -_-
이거 하나는 확실히 배웠습니다.
'여자는 요물이다'
ps. 아무튼 스탐이 배틀 마스터가 되긴 했군요.
그런데 어째 초사이언틱한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