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170화 (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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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캄에덴으로의 귀환

“자. 달려라, 달려!”

“꺄아아~!”

빛의숲의 무성한 나무들 사이를 지나치며 빠르게 달리는 유니콘 한 마리가 보였다.

머리에 뿔이 난 이 백색의 말은 엘프들마저 경외의 눈빛으로 보기 때문에 올라타는 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유니콘에 타고 있는 이들은 예외였다. 뱀파이어 한명과 엘프 한명. 두 종족의 시각으로 봤을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남녀는 뭐가 그리도 좋은 지 연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즐거워?”

“응.”

스탐의 질문에 세리아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보인 탓일까. 고개를 돌린 스탐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나 참, 왜 그래?”

세리아가 얼굴을 뒤로 젖히며 손으로 스탐의 얼굴을 밀어냈다. 하지만 싫지는 않은지 웃음을 머금은 얼굴에선 홍조가 가시지 않았다.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린 스탐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가 나지막이 한 마디 했다.

“역시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왜 네가 널 만날 때마다 항상 웃음이 떠나가지 않았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는 소리야.”

스탐은 세리아와 이 곳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즐거워했다.

후히히힝~

한참을 달리던 유니콘은 목적지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추었다. 스탐과 세리아는 벌써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주저하지 않고 내렸다.

“오셨습니까, 총사령관님!”곧이어 둘의 눈앞에 일단의 무리들이 무릎을 꿇은 채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두운 계통의 갑옷에 갖가지 병장기를 갖춘 회색 피부의 전사들.

그들은 바로 종전 협정의 볼모로 빛의숲에 오게 된 300의 하프 뱀파이어들이었다.

볼모라곤 하지만, 사실 그들도 이곳에서의 생활은 만족하고 있는 상태였다. 빛의숲의 아름다운 풍경이란 칙칙한 분위기의 캄에덴과는 또 다른 감탄사가 나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인물은 인간계를 평정한 원정군의 총사령관에다, 배틀 마스터라는 지고의 경지에 진입한 위인이 아니던가?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인사하고 있지 말고, 일어서.”

스탐은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축객령을 내렸다. 평소였다면 총사령관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하루하루를 행복의 나날로 보내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함께 팔짱을 끼고 있는 한명의 엘프 여인으로 인해서.

“스탐. 배고프지 않니?”“응. 뱃가죽이 들러붙은 것 같은데.”

스탐이 손으로 배를 잡아당기며 대답했다. 익살스러운 몸짓에 세리아가 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세리아가 정신을 차린 이후로, 그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전생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서로의 합의 아래에 지금의 이름만 부르기로 한 것이다.

괜히 전생의 이름을 불러대면 그때의 아픈 기억이 생각나 서로가 아플 뿐이라는 것을, 둘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둘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스탐은 종전협정을 맺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세리아에게 들었었다. 전생에서 자신이 죽은 이후로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은 그녀는 일주일 동안 집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충격의 후유증으로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병을 앓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스탐?”

스탐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자 고개를 갸웃거린 세리아가 그의 얼굴에 바짝 달라붙은 채 물었다. 너무도 요염한 그 표정과 몸짓, 목소리에 짙게 미소 짓던 스탐은 다짜고짜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깜짝 놀란 세리아가 뭐라고 말하려고 했다.

“스타… 흡.”

하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스탐이 자신의 입술을 막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입술로.

“…….”

잠시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세상이 너무도 고요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스탐과 세리아는 그렇게 느꼈다.

그림을 그린 듯 푸른 풀밭 위에서 나누는 황홀한 키스.

단순히 말을 하는 데 쓰이는 연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혀였지만 지금만큼은 둘의 심장을 옭아매기에 충분했다.

둘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사랑과 영혼을 느끼며 은연중에 이 시간이 멈추기만을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스탐은 세리아에게 붙이고 있던 입술을 떼어내며 천천히 일어섰다.

“처음이지?”

“으응. 그러는 너는?”

세리아의 반문에 스탐은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처음이야.”

일단은 거짓말이었다. 소년단 시절 루시리아와의 키스를 몇 번이나 해왔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의한 실수였다고 스탐은 생각하고 있었다.

루시리아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와 키스를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참 즐거워 보이는군.”

낯익은 음성의 둘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키스하는 광경을 들켜버렸다는 사실 때문인지 세리아는 깜짝 놀라고 있었지만, 스탐은 상관없다는 듯 씨익 웃으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를 맞이했다.

“왔냐, 카시안? 보아하니 상처는 다 나은 것 같은데…….”

“뭐, 대충.”

스탐에게 짧게 대꾸한 카시안은 세리아에게 다가가 손을 건네었다. 그의 얼굴에는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 대신에 밝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물론 카시안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들에겐 그게 그거였지만.

“오랜만이구나, 세리아.”

“으응.”

세리아는 얼떨결에 카시안이 내민 손을 붙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둘이 아는 사이야?”“알다마다. 엘프였을 때에는 무척 가까운 친구사이였는걸? 에레인만큼은 아니지만…….”

“그녀에 대해서 말하지 마.”

카시안의 냉담한 한 마디에 세리아는 입을 닫았다. 에레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미, 미안해. 카시안.”

“사과할 필요는 없어.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까.”

말을 마친 카시안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카시안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스탐은 직감적으로 표정관리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비단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늘어져 있는 그의 뒷모습에는 왠지 모를 고독함이 느껴졌다.

“우리 이럴 게 아니라, 마을 파티에 나가는 게 어때? 오늘 열린다던데 말이야.”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세리아가 입을 열어 정적을 깼다. 스탐도 맞장구를 치며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야, 카시안. 같이 가지 않을래? 볼모로 온 하프 뱀파이어 녀석들이랑 함께 말이야.”

하지만 카시안은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조바심이 난 스탐은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돌렸다.

“부탁이다. 이러고 있어봤자 남는 게 없잖아? 파티를 즐기면서 웃어보자고.”

“…그러지.”

“좋았어. 가는 거다.”

신이 난 스탐은 카시안에게 어깨동무를 걸었다. 카시안도 뿌리칠 생각은 없는지 천천히 손을 뻗어 스탐의 어깨에 얹었다.

“나도, 나도!”

세리아가 그렇게 소리치며 어린 아이처럼 뛰어와 스탐에게 어깨동무를 걸려고 했다. 하지만 키가 작은 그녀로선 무리였다.

결국 세리아만 팔짱을 낀 채, 셋은 발맞추어 지금쯤 파티 준비가 한창일 엘라시안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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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키스신!!!-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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