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171화 (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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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캄에덴으로의 귀환

스탐들이 엘라시안에 도착할 무렵, 파티는 시작되고 있었다. 고운 피리소리와 더불어 엘프들의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스탐으로 하여금 감탄의 늪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었다.

“자자, 모두 이리로 오세요.”

엘프들이 밝게 웃으며 하프 뱀파이어들을 자리로 인솔하고 있었다. 당사자가 아니라곤 해지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생사를 걸고 싸우던 사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스탐과 세리아, 카시안도 엘프들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

놀랍게도 그들의 바로 옆에는 빛의숲 엘프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장로들이 모두 앉아 있었으니, 종전 협정을 제안한 스탐에 대한 대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었다.

“꼴사납군.”

“너만 할까.”

팔짱을 낀 채 내뱉는 카리오스의 푸념에 카시안이 맞받았다. 그렇게 되자 둘은 어느새 시선을 주고받으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둘 다 그만 둬. 과거의 앙금은 모두 풀어버리라고. 오늘의 파티는 그러기 위해 열린 거니까.”

스탐이 말리자 둘은 금세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자존심이 콧대처럼 높다곤 하지만, 배틀 마스터가 웃으며 하는 말을 거스를 정도로 간이 크진 않았기 때문이다.

“자, 어서 받으시구려.”

“고맙소.”

스탐은 잔을 들어 장로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엘프들에게도 술이라는 것은 존재했다. 뭐, 간에 기별도 안 갈 정도로 약한 과실주에 불과했지만, 엘프들은 이것을 몇 잔만 마셔도 뻗어버릴 정도라고 한다.

물론 스탐에겐 일종의 음료에 불과했다. 과실주를 단숨에 들이킨 스탐은 장로에게서 술병을 받아 세리아의 잔에 따라주기 시작했다.

“어서 마셔, 세리아.”

“히잉. 너무 많이 따랐잖아…….”

잔에 가득히 찬 과실주를 바라보던 세리아가 볼을 부풀렸다. 그 앙증맞은 모습을 본 스탐은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서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내 잔이랑 나누자.”

“고마워.”

하지만 세리아는 스탐이 단순히 자신을 배려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잠시 후에서야 알았다.

“우리, 러브 샷하자.”

자신의 잔으로 세리아의 잔에 담긴 과일주를 반 나눈 스탐이 제안했다. 그러자 울상이 된 세리아가 물었다.

“이렇게 사람…, 아니 엘프들이 많은 곳에서?”

“뭐, 어때? 우리는 연인이잖아.”

스탐이 잔을 들이밀며 러브샷을 부추겼다. 세리아는 하는 수 없이 그의 제안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자, 그럼 간다.”

곧이어 스탐과 세리아가 서로를 껴안은 채, 잔을 든 팔이 서로를 휘감았다. 그 상태에서 둘은 코앞에 있는 과실주를 들이키며 열심히 목젖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음주방식에 엘프들과 하프 뱀파이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얼마나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는지, 개중에는 그것을 따라하는 연인들도 있었다.

“어때, 느낌이?”

러브샷을 끝낸 뒤, 팔을 풀어 낸 스탐이 능글맞은 얼굴로 물어왔다.

“우음, 좋아.”

세리아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모습이 취기가 돌기 시작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탐은 이 분위기를 더 유지시키기 위해 세리아에게 계속 잔을 권했다.

“후후후. 세리아! 오늘 마시다 죽어보는 거야.”

“흥, 죽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끔찍한 소리는 입밖에 꺼내지 마.”

세리아가 흥분한 어조로 소리쳤다. 어느새 농담 진담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취한 것이다.

“이제 그만 먹여라.”

옆에서 보고 있던 카시안이 스탐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스탐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평상시의 카시안이라면 세리아의 취해가는 모습만 구경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말린다고는 상상도 못했던 스탐이었다.

“으음. 그런데 늦은 것 같군.”

세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스탐이 중얼거렸다. 세리아는 어느새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잠들어 있었다.

“파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버리다니, 세리아도 참 센스가 없단 말이야.”

[네놈이 너무 많이 처먹여서 그런 거다.]

“쩝.”

카스턴의 면박에 스탐은 입맛을 다셨다. 아직도 세리아와 즐겨야 할 것이 많은데 벌서 저 꼴이 되어 버리다니. 그렇다고 그녀를 두고 파티를 계속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먼저 가보겠소.”

하는 수 없이 엘프들에게 양해를 구한 스탐은 세리아를 업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파티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그가 빠지자 엘프들은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파티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 들기 시작했다.

“세리아, 정신이 들어?”

“응.”

또렷한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제정신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스탐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사랑해.”

“얼씨구.”

세리아의 황당한 소리에 스탐이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은 잠을 청하기 알맞은 장소에 눕혀야 될 것 같았다.

뭐, 엘프들에게 있어선 빛의숲 전역이 침상이나 다름없었지만, 세리아는 스탐에게 있어 하나밖에 없는 여자였다. 최대한 그녀가 편하게 잘 수 있게 배려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여기가 알맞을 것 같군.”

마침내 적당한 장소를 발견한 스탐이 환하게 웃으며 세리아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엘프라 그런지 음료나 다름없는 과실주에도 완전히 뻗어버린 그녀는 연신 이해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나 참, 못 말리겠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탐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정작 취하게 만든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은 잊은 채.

뚜벅 뚜벅

미세한 발소리에 스탐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에는 카시안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너였냐?”스탐은 상대가 그 일줄은 몰랐다는 눈치였다. 하긴, 카시안은 상대에게 기척을 들키지 않고 다가오기로 유명한 녀석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배틀 마스터라도 세리아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면 충분히 기척을 감출 수 있었을 텐데,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충고를 하기 위해 왔다.”

특유의 무감정적인 목소리. 스탐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 대답을 재촉했다.

“충고라니?”

“네 즐거움을 위해서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마라.”

카시안의 말에는 세리아를 취하게 만든 스탐에 대한 질책이 섞여 있었다. 그 점에 대해선 달리 할말이 없었지만, 스탐은 오늘 유난히 카시안이 말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그 충고는 받아들이지. 근데 너무 신경 쓰는 것 같다? 평소의 너답지 않아.”

“너와 세리아를 보고 있으면 에레인이 떠올라서 그렇다.”

“아!”

스탐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카시안은 누워있는 세리아와, 스탐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다시 한 마디 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자기 손으로 죽인 남자가 하는 마지막 충고다. 절대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마라.”

“물론이지.”

스탐은 가슴을 탕탕 치며 카시안의 충고를 굳게 받아 들였다.

200여 년 동안 떨어져 있다가 이제야 만나게 된 그녀다. 세월이 흘러 죽게 된다면 모를까, 이번엔 절대 헤어질 수 없었다.

충고를 던진 카시안은 그 자리를 조용히 벗어났다. 그 뒷모습이 너무도 힘없어 보여 스탐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음과 동시에, 자신은 카시안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세리아, 그쪽으로 가면 안돼. 여기서 좀 얌전하게 자고 있어.”

어느새 스탐의 관심은 다시 세리아에게로 갔다. 술버릇인지 잠버릇인지, 세리아는 바닥을 뒹굴면서도 애인의 손길을 뿌리치며 앙탈을 부렸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스탐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요새 너무 즐거워 보이는군.]

‘너도 알잖냐.’

스탐은 카스턴이 자신과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면 이 세계에서 자신과 세리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존재는 그가 유일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모르는 나로선, 네가 그토록 그녀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뱀파이어의 어두운 감정만 드러내던 네가 이렇게 바뀌다니, 흥미로울 뿐이다.]

‘후후후, 앞으로 기대해라.’

카스턴에게 그렇게 대답한 스탐은 문득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보름달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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