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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슬레이어-172화 (17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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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캄에덴으로의 귀환

“스탐, 나 잡아봐라~!”

“거기 안서?”

“꺅! 그렇다고 이렇게 빨리 잡으면 어떡해?”

“네가 너무 약 올렸잖아.”

세리아의 어깨를 잡은 스탐이 툴툴거렸다. 하지만 세리아는 그가 방심한 틈을 타 팔을 꼬집었다.

“아야야!”

스탐이 아파서 팔을 놓자, 세리아는 그 틈을 타 멀찍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엘프여서 그런지 무척이나 빨랐다.

“야! 너 거기 안서?”

“메롱~.”

“어휴, 저걸 그냥.”

스탐이 얄밉다는 어조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웃음은 떠나가지 않았다.

빛의숲과 종전 협정을 맺은 지도 2달이 지났다. 그 동안 스탐은 평생 동안 누려보지 못한 행복을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

아마 뱀파이어의 수명이 다 되어 죽을 때 까지 이 행복이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스탐은 그렇게 생각했다.

“음?”

그때였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묵직한 발소리로 보아 세리아는 아니었다. 물론 엘프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무슨 일이지?”

한참 재미있던 분위기를 망치게 되자, 스탐은 눈앞에 있는 하프 뱀파이어를 향해 짐짓 화난 어조로 물었다.

“아, 저 그것이…, 혈왕성에서 서신이 와서…….”

일개 병사가 천하의 배틀 마스터와 대면한다는 거 자체가 공포 그 자체였기에, 하프 뱀파이어는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진 스탐이 그에게 물었다.

“서신?”

“예. 그것도 뱀파이어 로드께서 친필로 쓴 서신이라서…….”

“알았어. 어서 가지.”

자신과 세리아의 놀음을 방해해서 불쾌했지만, 상대가 뱀파이어 로드니 어쩔 수 없었다. 스탐은 별 생각 없이 하프 뱀파이어 병사들이 머물고 있는 처소를 향했다.

적어도 안부나 묻는 편지 따위로 생각했었다. 서신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하지만 뱀파이어 로드가 보낸 서신에 스탐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이게 지금 말이나 되는 소리야?!”

스탐이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서신에 적힌 내용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하지만 두 번을 보아도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직설적인 성격의 아이슬로너답게 어떠한 미사여구나 우회적인 표현도 나타나지 않은 서신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랬다.

이제 삼대제국의 치안도 완전히 안정되었고, 엘프들과도 별다른 문제가 없으니, 인간계를 완전히 정복해라고 한다.

현재 인간계는 3개의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스탐이 이끄는 캄에덴 원정군의 식민지. 그리고 혈맹인 크로프란. 마지막으로 끝까지 저항하고 있는 두개의 인간 왕국.

서신에는 인간계를 완전히 뱀파이어들의 것으로 만들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 말은 남은 두 왕국만 점령하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바로 혈맹인 크로프란을 쳐, 정복하라는 말이었다!

‘비록 그들의 배려로 삼대제국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지만, 인간은 간사한 종족이다. 언제 우리의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그 전에 우리가 먼저 놈들의 계획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혈왕성에 앉아 블러드 와인이나 홀짝이고 있는 주제에!”

스탐이 화가 난 것도 다름이 아니었다. 애초에 크로프란의 도움이 있었기에 무적의 마갑기 프로즌 카이져를 만들 수 있었고, 삼대제국을 정복하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인간이든, 뱀파이어든 은혜를 저버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 스탐의 지론이었다.

그런데 지금 아이슬로너는, 그 어떠한 물증도 없는 추측만을 내세우며 크로프란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인간이 간사하다고 치자.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그들을 배신한다면 그 간사한 인간들과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지금 당장 혈왕성으로 가봐야겠군. 로드에게 단단히 따져야겠어.”

스탐은 담담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엘프들에게 의해 죽기 직전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그때가 세리아를 지키기 위해 분출한 분노였다면, 이번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한 사람에 대한 분노였다.

하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자신이 화났을 때에는,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투지와 의지가 불꽃을 태운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 저희들이 모셔 드릴까요?”

하프 뱀파이어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탐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볼모다. 나와 카시안은 예외지만 너희들이 빛의숲을 나오면 종전 협정이 깨질지도 모른다.”

“잘 알겠습니다.”

그들은 미련 없이 발을 뺐다. 뭐, 사실 호위는 필요 없었다. 배틀 마스터에게 있어 300에 지나지 않는 하프 뱀파이어 병사란 있으나 마나한 병력이었으니까.

??

하프 뱀파이어들의 처소를 나온 스탐은, 엘프들에게 곧바로 혈왕성으로 귀환한다는 기별을 보냈다. 일단 종전 협정을 맺은 상대니 알려야 할 것은 확실히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스탐!”

빛의숲을 나갈 채비를 갖추고 있는 스탐에게, 세리아가 달려왔다. 그녀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정말 떠날 거야?”

“떠난다니. 금방 돌아올 거야.”

스탐은 걱정 말라는 듯 윙크를 보냈다. 그래도 세리아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워 보였다.

“빨리 돌아와야 해.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

“나도 그래.”

그렇게 대답한 스탐은 세리아와 가벼운 키스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길로 헤어졌다.

“빨리 돌아와!”

그녀는 스탐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스탐은 뱀파이어 로드와 담판만 짓고 바로 돌아오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혈왕성으로 갈 셈인가?”

뒤따라온 카시안이 물어왔다. 스탐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슬로너가 아무리 야망이 크다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했어. 반드시 그의 입에서 취소라는 단어가 나오게 만들 거야. 수틀리면 찬탈전도 마다 않겠어.”

스탐은 그렇게 말하면서 케이튼을 비롯한 크로프란의 인간들을 떠올렸다.

크로프란이 제국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강대국으로 부상했을 때, 그들이 얼마나 기뻐했었는가? 스탐은 아직도 순진한 케이튼이 기쁨에 젖어 감격의 울음소리를 터뜨렸을 때를 잊지 않았다.

“그럼 나도 따라 가야겠군.”

스탐의 말에서 만류할 수 없다는 의지를 느낀 듯, 카시안은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아니, 어쩌면 그로선 정말 스탐이 뱀파이어 로드와 찬탈전을 벌일 것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단 카시안 뿐만이 아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캄에덴의 모든 뱀파이어들이 스탐과 아이슬로너의 대결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온이 너무도 허무하게 패했기 때문에 그 기대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을 테지.

얼마나 한참을 걸었을까? 머지않아 눈앞에 빽빽이 자리 잡고 있던 무성한 고목들은 온데간데없고, 끝없는 푸른빛의 초원이 둘을 맞이하였다.

스탐은 일단 크로프란에 들렀다가 캄에덴으로 직행할 생각이었다. 세리아에게 너무 빠져 있었던 나머지, 그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아마 크로프란의 수도에 입성하면, 몇 발짝 걷기도 전에 케이튼이 달려 나올 것이다.

상급의 소드 마스터가 되어 자신의 후임으로 근위 기사단의 단장직을 맡고 있는 그였지만, 스탐이 보기엔 아직도 영락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녀석의 해맑은 웃음을 생각하고 있자니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스탐이었다.

“으음?”

그때였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스탐은 걸음을 멈추었다.

강력한 기운이 지척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익숙해, 한참을 서 있던 스탐이 웃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녀석이로군.”

스탐은 담담한 어조로 강력한 기운의 주인이 눈앞에 당도하기만을 기다렸다. 어차피 빛의숲을 빠져나오면 반드시 싸우리라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제 발로 찾아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저기 오는군. 싸움에 미친 발정난 멧돼지가.”

함께 걸음을 멈추었던 카시안이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거구의 사내 하나가 연기를 자욱이 뿌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지나온 곳은 움푹 패여 들어 발자국이 생성될 정도였다.

척!

“왔냐?”

어느새 상대가 눈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스탐은, 오랫동안 사귀어왔던 친우를 만난다는 듯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였다.

“크크큭, 네놈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즐거울 줄은 꿈에도 몰랐군.”

과연 카시안의 말 대로였다. 싸움에 미친 발정난 멧돼지. 지온은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흉흉한 붉은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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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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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연참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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