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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캄에덴으로의 귀환
“용건은?”
스탐은 눈앞의 흉폭한 뱀파이어가 뿜어내는 기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한 마디 던질 뿐이었다.
“너를 짓밟기 위해서다.”
알면서 던지는 질문에, 알면서 하는 대답이었다. 캄에덴의 새로운 배틀 마스터인 둘은 서로가 만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내가 짓밟히기 전에 너를 깔아뭉개야겠군.”
“크크큭, 할 수 있다면 해보든지!”
말을 마친 지온이 비호처럼 달려들었다.
더 이상의 잡담은 없었다. 오로지 실력만이 결과를 말해줄 뿐이었다.
카시안은 멀찍이 물러선 채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 희대의 대결을 구경했다. 로드와의 대결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따라왔는데 뜻밖의 수확을 거둔 셈이다.
콰콰쾅!
막강한 두 힘이 정면으로 격돌했다. 거기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굉음이란 소리만으로도 나는 새를 떨어뜨릴 정도였다.
스탐과 지온은 애당초 탐색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싸워봤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읍!”
빠른 몸놀림으로 지온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스탐이 옅은 기합성과 함께 손을 뻗어 무언가를 날렸다. 빠르게 회전하는 금색의 기탄이 지온에게 쇄도했다.
그것은 견제를 위해 으레 사용하는 흑마탄과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크크큭, 이 따위 것쯤이야.”
지온은 골든 다크 오러를 입힌 두 팔을 세워 너무도 가뿐히 막아내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어느새 지온의 가슴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 스탐이 말아 쥔 주먹으로 그의 복부를 찔렀기 때문이다.
퍼어벅!
“우욱!”
지온은 웬만해서는 고통에 관계된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런 그가 신음성을 낼 정도로 스탐의 일격은 무시무시했다.
“쥐새끼 같은 놈!”
지온의 손에 달린 다섯 개의 손톱이 짓처들었다.
골든 다크 오러를 동반한 강력한 손톱!
그것은 뱀파이어 로드조차도 피할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스탐은 무슨 일에서인지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 손을 뻗어 원을 그리며 바람을 만드는 데, 그 의도를 알 길이 없었다.
물론 지온에겐 상관없었다. 그로선 어서 이 멍청한 뱀파이어가 자신의 손아래 쓰러지기만을 기다렸다.
“아니?!”
하지만 그의 바램은 경악할만한 사태로 인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허공을 가르며 스탐을 향해 떨어지던 그의 손톱이 무언가에 의해 막힌 것이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떠한 장막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은 요지부동.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퍽!
지온이 당황한 틈을 타 스탐의 날랜 발차기가 턱을 날려버렸다.
“크어헉!”
“맛이 어떠냐.”
바닥을 나뒹구는 지온을 보던 스탐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방금 전에 시전한 수법을 떠올렸다.
윈드 배리어. 절대 바람의 마법 이름이 아니었다. 히든 브레이커 마스터인 카라프에게 전수받은 기술인 이것은 순간적으로 일으킨 바람에 다크 오러를 퍼뜨려 일시적이면서도 튼튼한 바람의 막을 만든다. 밀집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방어력이 강해지는데, 지금처럼 골든 다크 오러를 불어넣게 되면 그 어떤 공격도 막을 수 있게 된다.
“크크크, 꽤나 꾀를 부리는구나.”
금방 일어선 지온이 오히려 더 재밌어진다는 듯, 자욱한 미소를 띠우며 천천히 다가왔다. 하지만 아주 절제된 동작이 오히려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철옹성 같았다.
“웃기는군. 난 네 성격을 다 알고 있는데 말이다.”
스탐은 코웃음 치면서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면서 다량의 흑마탄을 지온에게 쏟아 붓기 시작했다.
파방! 파바바바바방!
의도적인 듯 흑마탄은 지온의 얼굴만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안 그래도 보일까말까한 그의 인내심을 완전히 바닥에 내팽겨치기에 충분했다.
“크으으, 이노옴!”
결국 참지 못한 지온이 갑자기 뛰어들었다. 가히 숨통이 멎을 정도의 엄청난 기세였다.
하지만 스탐은 예상하고 있었기에,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기계와 같은 절제된 동작으로 계속해서 휘둘러대는 지온의 공세를 손쉽게 막아내었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약간씩 당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덕분에, 지온은 만족하면서 자신이 가진 최후의 절기를 준비하였다.
“크크큭, 이걸로 끝이다!”
상대를 쉴 새 없이 몰아붙인 지온이 팔을 교차시키며 X자를 그렸다.
블러드 크로스 업! 뿜어지는 피가 교차될 정도로 잔혹한 기술이기에 붙어진 이 필살의 한수는 지금껏 수많은 적들을 쓰러뜨려왔다. 시전하기 전에 약간의 딜레이가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막대한 파괴력은 그 단점을 덮고도 남았다.
하지만 스탐에게마저 덮을 수는 없었다.
퍼버억!
좌우로 교차시킨 열개의 손톱을 막 휘두르기 전이었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지온의 신형이 뒤로 비틀거렸다.
“이럴 수가!”
뱀파이어 로드를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실패한 적이 없었던 기술이기에 그 충격은 더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되면 지금의 상황은 지온이 자초한 결과였다.
배틀 마스터이면서 히든 브레이커이기까지 한 스탐을 상대로 약점이 뻔히 보이는 기술을 쓰다니? 비록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결론은 한 가지였다.
“잘 가자.”
짤막하게 한 마디 한 스탐은 지온이 채 정신을 추스릴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달려들어 돌려 차기를 먹였다.
퍽!
묵직한 일격이었지만 지온은 쓰러질 수 없다는 듯, 돌려진 고개를 다시 세웠다. 그러나 지금 스탐의 공격은 연쇄적이었다.
지온의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돌려 차기는 수차례나 계속 되었다.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연환공격인데다가 골든 다크 오러가 서려 있는 막강한 파괴력.
그 위력이랑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크으으으.”
얼마나 맞았을까. 끊임없는 타격으로 인해 이미 지온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육체의 힘이 무식할 정도로 엄청났기 때문에 서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서도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반격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스탐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압!”
짧은 기합성과 함께 뻗어 나온 한 차례의 권격! 분명히 지온의 몸에 닿지 않는 거리였다. 허공을 갈랐을 뿐이다.
그런데도 어느새 지온의 신형은 한참이나 붕 떠서 바닥에 널브러지고 있었다.
털썩.
지온은 그렇게 쓰러졌다. 의식은 남아 있는 듯 계속해서 몸을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상대가 입힌 절대적인 타격 앞에선 천하의 지온조차 어쩔 수 없었다.
쿵
한참을 일어서려던 지온의 얼굴이 어느 순간엔가 바닥에 처박혔다. 의식을 잃은 것이다.
“끝난 건가?”
아무런 미동조차 하고 있지 않은 지온을 보며, 스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그와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에는 약간 불리하다고 생각했었다. 자신은 아직 배틀 마스터의 힘에 제대로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는 5년의 시간 동안 충분히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런데 결과는, 자신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것이다.
짝짝짝
“깨끗한 승리군.”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카시안이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스탐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연신 두 손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내가 그렇게 강한 건가?”“결과를 보자면.”
“그렇다면, 어쩌면…, 뱀파이어 로드도 이길 수 있을까?”
순간 스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솔직히 지온과 싸우기 전에는 아이슬로너와 찬탈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찬탈전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도 그의 야욕을 말리려는 의지로 해본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이 생겼다.
아이슬로너가 가볍게 쓰러뜨린 지온을 자신도 손쉽게 이겼다. 더 이상 뱀파이어 로드의 자리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속단하긴 힘들지.”
카시안도 아이슬로너와의 찬탈전 승리 여부에 대해선 확실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만큼 그는 위대하고 강력한 군주였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하던 스탐이 씨익 웃으며 한 마디 했다.
“한 가지는 확실하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는 것 말이야.”
“…….”
카시안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스탐을 바라보았다.
스탐 베르크. 향년 221세의 이 젊은 뱀파이어는 지금 뱀파이어 로드의 자리에 오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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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1시간만에 썼답니다.
엄청난 속력-_-
간만에 삼연참이군요...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