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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드러나는 음모
“결국…, 진건가?”
경기장을 한참 주시하고 있던 카이사르가 한숨을 쉬었다.
무시무시한 대격전의 결과, 아이슬로너는 서 있었고, 스탐은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끝났나?”
“역시 로드가 이겼구나.”
“하기야 같은 배틀 마스터라도 로드와 스탐은 하늘과 땅 차이지.”
웅성거리는 좌중을 뒤로 한 채 카이사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관중석 밖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경기장을 향하고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
지온에 이어, 카라프와 바크마저도 가볍게 쓰러뜨린 스탐마저도 저 절대군주의 아성을 깨뜨리진 못했다.
물론 스탐이 아이슬로너와 호각으로 싸운 것 자체는 대단한 성과였다. 마지막에 썼던 그의 혼신의 일격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었지 않은가?
적어도, 5년이 지나 다시 찬탈전을 벌이기 전까진 아이슬로너의 독주체제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슬로너. 넌 스탐에만 신경 쓰면 큰 코 다칠 것이야.’
카이사르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한참동안 아이슬로너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돌려 썰물처럼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뱀파이어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으으으.”
옅은 신음소리와 함께 경기장 한복판에 쓰러져 있던 뱀파이어가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달은 사라졌고 해가 중천에 떠서 캄에덴 전역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뱀파이어가 극성으로 싫어하는 태양. 하지만 이 문제의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피부로 느껴지는 따가움은 마음속에 깊숙이 박힌 절망의 비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건가…, 내가?”
상체를 일으킨 스탐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신을 잃기 전만해도 수많은 뱀파이어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던 경기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스탐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설마하고 있던 자신의 예감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제기랄. 말도 안돼…….”
스탐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지금의 현실을 부정했다.
뱀파이어로 태어나서 수차례에 걸친 전투를 벌이는 동안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일국의 군주가 될지도 모르는 이번에는 정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비기를 다 퍼부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지금의 결과가 믿기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카스턴.”
[말해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설마 사실은 아니겠지?”
[…….]
카스턴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침묵만으로도 긍정이 인정되고 있었다.
“그래. 내가 진 거구나. 휴우.”
스탐은 염두를 짚으며 자신이 의식을 잃기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포칼립스가 정통으로 작렬했음에도 아이슬로너는 버젓이 서 있었다. 그 모습은 자신이 이겼다고 단정한 스탐의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다크 오러를 들이붓는 모습은 스탐을 절망시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결국 패배의 원인은, 정신력의 차이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시 아이슬로너의 상태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뱀파이어 로드의 자리를 고수하고자 하는 아이슬로너의 의지가 초인적인 힘을 내면서 긴장이 풀린 자신을 쓰러뜨린 것이다.
물론 자신의 공격을 피한 것은, 다리에 힘이 빠져서 운 좋게 피한 것이었다. 만약 그것을 맞았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다. 자신은 졌고, 아이슬로너는 이겼다.
“깨끗이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건가.”
스탐이 그렇게 푸념할 무렵이었다. 무심코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한 인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뱀파이어 답지 않은 야윈 몸뚱이에 칠흑 같은 옷을 입은 사나이.
“카라프.”
“잘 싸웠다.”
카라프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스탐은 주저 없이 그의 손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카라프가 도발을 건 이유가 뱀파이어 로드의 명령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스탐으로선 앙금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절 찾아온 이유가 단지 위로를 위해서 온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스탐은 말끝을 흐리며 카라프의 두 눈을 응시했다. 직감대로였다. 다른 뱀파이어도 오지 않는데 냉담하기로 이름난 카라프가 그냥 올 리가 없잖은가.
“뱀파이어 로드가 그러더군. 네가 정신을 갖추는 대로 혈왕성으로 오라는 지시를 내리라고.”
“그렇군요.”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던 대답이었기에, 스탐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과의 대결은 비록 이겼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찬탈의 위협을 주기에 충분했으니까.
잠시 후, 스탐은 혈왕성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이미 스탐의 걸음은 찬탈전을 벌이기 전의 당당한 걸음이 아니었다. 패배자의 힘없는 발걸음이었다.
“왔는가.”
“네, 로드……!”
인사를 하면서 아이슬로너에게로 시선을 옮긴 스탐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은 지금 찬탈전의 결과로 피투성이의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다.
그래도 걸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슬로너의 모습은 정말 처절했다. 온몸을 휘감은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는 걷기는커녕 서있기도 힘든 듯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패배한 내가 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 승리했으면서 저 꼴이라니!’
과연, 정신력의 승리인 것이다. 아이슬로너는. 아마 스탐이 조금만 그의 강인한 의지력에 밀리지 않았다면 오늘 뱀파이어 로드 자리가 갈아 치워졌을지도 모른다.
“부, 부르셨습니까, 로드?”
한참 로드만 바라보고 있던 스탐은 이내, 침묵을 깨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아이슬로너가 웃으며 말했다.
“패배한 소감이 어떤가, 젊은 도전자여.”
“믿기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스탐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꾸만 아쉬움이 생겼다. 그 모습이 아이슬로너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후후후후. 참 패기가 넘치는군. 젊음의 패기가. 그 패기 계속 유지하도록 하게.”
그의 자신만만한 소리가 그렇게 주눅 들게 만들 수 없었다. 스탐은 고개를 푹 숙이며 딜레마에 빠졌다.
아이슬로너는 수차례의 찬탈전 끝에 뱀파이어 로드가 됬다고 했다. 패배할 때마다 투지가 샘솟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최연소 배틀러까지 시작해서 배틀 마스터의 자리까지 급성장했기에, 아이슬로너와는 반대로 지면 질수록 투지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나저나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이십니까?”
자신을 조롱하는듯한 말을 듣기 싫어, 스탐은 화제를 바꿨다.
“그냥 이런 저런 얘기나 나누자고 불렀네…… 라고 하면 믿지 않겠지?”
“물론입니다.”스탐과 아이슬로너는 말이 마치자마자 서로 크게 웃었다. 그리고 나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스탐.”
“예.”
“비록 나에게 지긴 했지만, 자네는 명실상부한 캄에덴의 이인자야. 뱀파이어 로드의 자리를 제외하고는 이루지 못할 꿈이 없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스탐은 도무지 아이슬로너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 스탐의 의문만 자아내고 있던 뱀파이어 로드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셀리온의 몬스터들이 재침공을 준비하고 있다.”
“예?!”
깜짝 놀란 스탐이 물어왔다.
그 악몽 같기만 하던 몬스터들이 다시 쳐들어온다니? 물론 배틀 마스터가 셋이나 포진한 지금이야 100여 년 전의 그때보다는 막기가 수월하겠지만 상당한 피해를 입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몬스터들의 첫 침공루트인 플로센 지방은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놈들이 또다시 활개 친다면 그곳은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미소를 띠는 아이슬로너의 모습에 놀란 얼굴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렸다. 매번 만나봐서 알았다.
지금 그의 눈빛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고 판이 박혀 있는 계책을 가진 자의 눈빛이었다.
“방법이 있는 겁니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스탐을 보면서, 아이슬로너는 나직이 한 마디 했다.
“블러드 오우거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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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시험 시즌이라 올리기 힘드네요-ㅅ-;;
그럼 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