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슬레이어-186화 (18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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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운명의 캄에덴

“윽!”

가벼운 타격음과 함께 카이사르가 뒤로 나뒹굴었다. 필살의 한수인 기요틴을 쓰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제길, 실패인가?”

카이사르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으로 닦으며 아이슬로너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언제 자신이 위기에 처했었냐는 듯 태연하게 서 있었다.

“실패라기 보단,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되지. 게르모네츠의 후계자여. 참 뻔히 보이는 수를 썼구나.”

조소를 보내는 아이슬로너를 보고 나서야 카이사르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배틀 마스터와 하이 배틀러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그러나 직접 싸워봐야지 만이 그 정도를 체감할 수 있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가진 다크 웨폰의 비기만 먹히면 뱀파이어 로드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아이슬로너는 100년 이상을 배틀 마스터로 군림한 절대강자다. 거기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방심하지 않았다. 방심했다고 생각한 것은 카이사르의 착각이었으며, 아이슬로너의 연기가 한데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곧 끝나겠군.”

스탐은 벌써부터 그렇게 단정 지었다. 그나마 카이사르의 힘을 잘 알고 있던 그가 그런 결론을 내려버렸으니 다른 뱀파이어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모두들 이 싸움을 누가 이기느냐로 판가름 짓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아이슬로너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느냐에 관심이 모여 있을 뿐이었다.

“제길!”

파바방!

카이사르가 이를 악문 채 흑마탄으로 아이슬로너를 견제하며 몸을 뺐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가 얼마나 쫓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승리자나 다름없는 아이슬로너는 느긋하게 발을 놀리며 카이사르에게 한걸음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으으으.”

“후후후.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도망만 치고 있을 거지, 게르모네츠의 후계자여.”

아이슬로너가 광기 어린 웃음소리를 내며 카이사르를 조롱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 싸움은 그에게 있어 일종의 유희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뱀파이어의 왕좌를 받아내긴 했지만 자신에게 수없이 많은 패배의 치욕을 안겨주었던 게르모네츠, 그의 후계자를 유린하면서 조금이라도 화풀이를 하려는 것이다.

“하아, 하아.”

‘역시 무린가.’

가쁘게 숨을 내쉬던 카이사르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일방적일 줄은 몰랐다. 상대는 맹수가 되어 자신을 뒤쫓고 있었고, 자신은 가련한 초식동물이 된 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이대로 질 수는 없단 말이다.’

한참 도망치던 카이사르는 역공을 감행하기로 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격이 됐다는 사실이 서글펐지만 지금으로선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하압!”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두 자루의 다크 웨폰이 아이슬로너의 심장을 노렸다.

몸을 사리던 와중에 날린 기습적인 맹공! 카이사르는 이것이 성공할 것이라 믿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그것이 실낱같은 희망이었으니까.

“큭, 이따위 것!”

화아악

아이슬로너는 코웃음을 치며 손을 휘둘렀다. 금세 금빛을 머금은 다크 오러가 허공에 수놓아지더니 카이사르의 다크 웨폰을 두 동강 내버렸다. 웬만한 공격에는 흠집도 나지 않는 다크 오러의 결정체가 단숨에 부러진 것이다!

“!”

“네놈의 저항은 무의미하다. 크후후후.”

카이사르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지금 들리는 아이슬로너의 웃음소리가 지온의 것보다 몇 배는 더 소름 끼친다는 것을 말이다.

퍽, 퍼벅, 퍼어어억!

섬광 같은 주먹들이 카이사르의 전신을 가격했다. 하나하나가 몸을 뒤덮고 있는 풀 다크 오러의 막을 우습게 깨부수고 들어와 육체를 가루로 만들어버릴 만한 위력이 담겨 있었다.

털썩.

불과 10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만에 카이사르는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믿을 수 없어.’

정신을 잃은 듯한 고통이 계속 되는 와중에서도 카이사르는 방금 전 아이슬로너와 싸웠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마치 독심술을 부려 자신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처럼!

“벌써 끝난건가?”“그래도 오래 버텼잖아?”

“하긴, 천하의 뱀파이어 로드를 상대로 10분 이상 싸운 게 대단하다면 대단한거지.”

웅성 웅성

귓가로 관중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랬다. 자신은 잘 싸웠다. 오히려 보통의 뱀파이어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선전했다. 그러니 지금 눈을 감는다고 한들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긴 싫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는 뱀파이어로서의 본능과, 한때 최고의 군주였던 게르모네츠의 후계자라는 자긍심이 의식을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창안하고 후계자인 네가 보완시킨 다크 웨폰은 캄에덴 최고의 투술이다. 이 강력한 힘 앞에선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

셀리온에서 수련을 하던 중 늘 자신 있게 소리치던 게르모네츠의 말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카이사르는 두 눈을 살짝 뜬 채 회상에 젖었다.

“너라면 가능하다. 너라면 아이슬로너를 쓰러뜨리고 캄에덴의 제왕이 될 수 있다.”

“제가 말입니까? 에이, 설마요.”

“이 세상에 불가능한 건 없다. 설령 정말 이룰 수 없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더라도 가능하다고 믿어야만 한다. 그게 바로 자신감이다.”

“…….”

“지금의 네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자신감이다.”

이렇게 말을 마친 게르모네츠는 항상 어려운 일을 시키곤 했다. 이제 갓 배틀러가 된 상태였던 자신더러 한손으로 오우거를 쓰러뜨리라는 것에서부터, 상급의 배틀러가 되었을 때는 하루에 트윈 헤드 오우거의 목 10개를 가져오라는 무리한 주문까지.

하지만 카이사르는 그가 내린 말을 단 한번도 거스른 적이 없었다. 그 어떤 어려운 주문이 떨어져도 묵묵히 해결해 오곤 했다. 그것만이 자신이 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카이사르는 평상시처럼 그가 내린 과제를 해결한 채 거처로 돌아왔다. 오늘도 그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수고했다는 한 마디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언제 여기 살고 있었냐는 듯이. 100여 년 동안 같이 살아오면서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카이사르는 한동안 방황하다가 오랜 수련으로 닦인 오감 중 후각을 이용해 그가 움직인 방향을 따라갔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흐른 후에야 찾을 수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의 처절한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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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ㅡㅡ

요새 정말 간신히 올립니다;;

어느 분은 하루에도 연참공세를 펼치시는데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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