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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운명의 캄에덴
털썩.
“스승님!”
깜짝 놀라 카이사르가 황급히 달려와 쓰러진 게르모네츠를 부축했다. 하지만 그의 전신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자신을 이토록 강하게 만들어준 스승은 이미 살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카이사르, 잘 들어라… 쿨럭.”
게르모네츠는 고통스러운 와중에서도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말씀하지 마십시오. 어서 상처를 치료해야 합니다.”
“아니다. 너도 잘 알잖느냐? 지금의 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그의 말에는 틀린 점이 없었기에 카이사르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그가 하는 말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드래곤의 음모를 막아야 한다. 이 세계에서 또 다시 한번 사천왕의 강림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카이사르는 슬픈 와중에서도 머릿속에서는 의문이 도사렸다. 그가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슬로너는 제왕의 재질은 갖추었으나 패왕의 재질은 갖추지 못했다. 드래곤 앞에서는 감히 대항할 엄두를 못 낼 것이다. 반드시 네가 나서야만 한다… 쿨럭!”
“스승님, 스승님!”
“잘 있거라 카이사르. 그 동안 널 만나서 기뻤다.”
그 말을 끝으로 게르모네츠의 고개를 힘없이 떨어졌다. 카이사르는 한동안 그의 시신을 붙잡고 미친 듯이 오열했다.
‘스승님의 말 대로야.’
그 당시에는 그의 말이 무슨 소린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드래곤들의 음모, 사천왕의 강림. 그리고 현상을 유지하려는 아이슬로너의 그릇.
이 세 가지 요소를 종합해볼 때 나오는 결론은 딱 하나였다. 아이슬로너를 이겨 뱀파이어 로드가 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무모하다는 것을 가장 잘 알면서도 저 절대군주에게 대항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부수기란 불가능했다.
‘단정 짓지는 않겠다. 여기서 물러서면 모든 것이 끝장일 테니까.’
온 몸이 바늘처럼 고통스러우면서도 카이사르는 일어섰다. 그것은 사명이요, 의무였다. 그는 이 싸움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칠 각오조차 되어 있었다.
“뭐지, 저 무시무시한 의지는?”
아이슬로너는 놀라워하는 한편, 의아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카이사르를 응시했다.
보통의 뱀파이어라면 진작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다. 아무리 지기 싫어한다고 해도 힘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카이사르라는 저 뱀파이어는 정신이 나간 모양인지 어느새 일어나 다크 웨폰을 뽑아 들고 있었다.
“흠. 그 투지는 잊지 않겠다.”
아이슬로너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아무리 자신에 비해 실력이 처지더라도 이렇게 마음을 굳게 집어먹은 상대한테는 진지하게 싸워줘야 한다.
“타핫!”
포효하는 듯한 고함성과 함께 아이슬로너의 금빛 다크 오러들이 쏟아져 나왔다.카이사르는 천천히 자세를 잡더니 그 무시무시한 것들을 하나하나씩 막아내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쿵 콰쾅!
대지를 울리는 소리가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수많은 관중들이 경악하며 시선을 다른 곳에 두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빈사상태나 다름없는 카이사르가 여전히 건재한 아이슬로너의 파상공세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맞서고 있었다. 물론 일방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기세만큼은 그가 압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큭, 이 녀석!”
당황한 것은 아이슬로너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의 카이사르는 최대한으로 잡더라도 10합 이내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에서인지 눈앞의 풋내기는 이상했다.
상대적으로 강한 적수의 공격을 막고 있는 상황이라면 시간이 갈수록 밀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정반대였다. 처음에는 심하게 밀려나가던 카이사르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공격을 능숙하게 막더니 지금은 오히려 반격의 실마리를 잡고 있지 않은가?
휘이익! 캉!
“아니!?”
장내는 또 다시 경악으로 물들었다. 카이사르가 역공을 가한 것이다. 아이슬로너가 피했다면 그렇게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아이슬로너의 몸엔 다크 웨폰을 베인 흔적이 서려 있었다.
“말도 안돼.”
아이슬로너는 고개를 저으며 상처가 난 가슴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골든 다크 오러로 막을 쳐 놓은 상태였다. 전투 양상에서는 조금 밀릴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하이 배틀러가 배틀 마스터에게 상처를 입는 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만.’
아이슬로너는 조용히 카이사르의 다크 웨폰에 시선을 두었다. 순간 그의 동공에 의혹이 짙어갔다.
‘다크 웨폰은 오로지 검은 색이 아니었던가?’
아니었던게 아니라 사실이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카이사르는 내내 순흑색의 다크 웨폰을 구사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그가 쥔 다크 웨폰에는 은빛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골든 다크 오러를 부릴 때 흑색 바탕에 금빛이 감돌던 것처럼!
“실버 다크 오러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스탐이 흥분한 어조로 소리쳤다.
배틀 마스터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금빛의 다크 오러를 다루는 자와 은빛의 다크 오러를 다루는 자.
캄에덴의 역사상 배틀 마스터는 거의 다 금빛의 다크 오러를 가진 자였다. 은빛의 소유자는 단 한명, 캄에덴의 19대 군주였던 에드락 드레니카뿐이었다.
“카이사르 놈, 이런 때에 배틀 마스터가 되었다니?!”
스탐은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아까 일어섰을 때, 카이사르는 무아지경이었다. 의식은 있으되 생각은 할 수 없는 상태. 뱀파이어가 그런 상태에 걸릴 수 있는 경우는 단 한 가지, 그 어떤 한 가지에 모든 생각이 집중 되어 있을 때였다. 물론 뱀파이어는 항상 싸움을 생각한다. 아마 그렇게 따지면 뱀파이어는 항상 무아지경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뱀파이어 로드를 쓰러뜨린다는 생각에 모든 정신을 집약시켰다. 정말 목숨을 담보로 할 각오를 가졌던 것이다.
물론 그런 상태에서 싸우면서 배틀 마스터가 될 줄이야 본인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푸욱!
다크 웨폰이 옆구리를 비집고 등 뒤로 빠져나왔다. 아이슬로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서서히 뒤로 쓰러졌다.
금빛의 배틀 마스터와 은빛의 배틀 마스터는 완전히 상극의 존재라고 한다. 금빛의 배틀 마스터는 패도적인 힘을 일시에 쏟아 부어 상대를 단숨에 박살내는 공격형이라면, 은빛의 배틀 마스터는 안정되고 정교한 힘을 뿜어내면서도 마나 대 공력 효율이 극도로 높다.
더군다나 반격에도 능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오죽하면 에드락 드레니카가 반격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을까?
아무튼 바닥에 드러누운 아이슬로너는 이를 악물며 일어섰다. 그리곤 한참 카이사르를 응시했다. 의혹이 서린 눈빛. 거기에 맞서 카이사르는 시종일관 싸늘한 눈빛을 뿌렸다.
“크크크큭.”
무엇을 깨달아서였을까? 돌연 아이슬로너가 광소하기 시작했다. 의미를 모를 웃음에 뱀파이어들은 불안해했다.
그리고 그 불안함은 현실로 다가왔다.
“내가 졌다, 카이사르. 오늘부터 네가 캄에덴의 뱀파이어 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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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예정대로 카이사르가 뱀파이어 로드가 되버렸습니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기대반 걱정반입니다 ㅡㅡ;
카이사르가 너무 두각을 보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서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