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15화 (15/200)

# 15

재활 –3-

철컥.

꼭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전생에서 기계 팔과 기계 다리를 장착하던 때의 감각.

"잘 됐어?"

"아마도."

왼손에 힘을 주었다.

끼기긱.

껄끄러운 소리와 함께 손가락 다섯 개가 구부러진다. 녹슨 경칩마냥 삐걱거리긴 했으나 어쨌든 주먹을 쥐는데 성공했다.

다시 손을 폈다가 쥐었다를 반복. 이번에는 팔을 쭉 뻗어본다. 허리를 구부려 대장간에 굴러다니던 먼지 하나를 잡은 다음, 입 바로 앞으로 가져와 후 불었다.

"제대로 움직이네요!"

이세희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김애경도 마찬가지. 다만 오른팔을 보더니 한 마디를 했다.

"너 운동 좀 해야겠다. 팔 두께가 너무 차이 나."

사실 그렇다. 의수의 두께가 오른팔에 비교하여 거의 두 배 이상 두꺼웠다. 앙상한 대벌레가 통통한 번데기 시체를 들고 다니는 듯하다고 할까.

"허허, 이것 참."

일련의 과정을 다 지켜본 한철군이 헛웃음을 지었다. 의수를 눈여겨보더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한 번 만져 봐도 되나?"

"그러시죠."

한철군이 의수를 더듬었다. 두 눈에 호기심이 선연했다.

"나는 이런 걸 못 만들겠지? 초능력이 필요한 것 같은데."

"뭐, 지금은 그렇겠죠."

"지금은?"

"혹시 압니까. 아저씨도 나중에 초능력자로 각성하실지. 그렇게 되면 아저씨는 이런 투박한 의수가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처럼 하늘도 날고 레이저도 쏘는 첨단 갑옷을 만들지도 몰라요."

"뭐? 하하하. 그렇게 되면 소원이 없겠고만. 지금은 호미나 만들고 건설용 정이나 다듬는 신세지만, 사실 내 꿈은 그런 거였거든."

김현이 굳이 이런 말을 해주는 이유가 있다. 별의 관찰로 보이는 한철군의 성향 때문이다.

[성향] 기갑, 염옥

다시 말해 한철군은 철과 기계, 불과 용암을 다룰 잠재력이 있다는 뜻.

미래 군수 담당관으로서 기대해봐도 좋겠다. 그래서 김현이 은근슬쩍 떡밥을 던지는 중이었다.

"앞으로도 대장간이 필요하면 말만 하게! 언제든 대여해줄 테니까. 가격도 팍팍 할인해 주지."

"공짜는 안 됩니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그래도 오늘 귀한 것을 보여줬으니 다음 한 번은 그냥 쓰게 해주지."

"다음에도 귀한 걸 보여드리면 되겠네요."

"그럼 좋고."

대장간에서 즉석 성능 시험을 거쳤다.

우선 악력.

아무 철봉이나 쥔 다음 힘을 주자 단번에 찌그러진다. 속이 빈 놈도 아니고 꽉 찬 것이라 김애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기는 힘도 무시무시했다. 쇠 집게에 철근을 물려놓고 당기니 철근이 똑 끊어진다. 사람한테 했다간 사지도 가뿐히 뜯어내지 싶었다.

'타격 시험을 해봐야 하는데......'

그러나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곁가지에 불과하다. 1성 등급 의수도 가능한 일이었으니.

"월롱산에 올라가서 시험해보면 어때?"

"그게 좋겠네."

월롱산은 낮은 산이라 접근하기 쉬웠다. 등산로에서 벗어난 다음 적당한 곳을 찾았다. 제법 두툼한 나무를 겨냥하고 의수에 힘을 주었다.

혼력 12. 사실 3성 각성자치고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의수를 작동시키는 건 가능했다.

우웅우웅.

거무튀튀한 의수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표면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겹겹이 떠오른다. 스스로 진동하면서 기이한 소음을 대기에 뿌렸다.

"합!"

그대로 허공에다가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공기가 찢어졌다.

충격파가 세상을 덮쳤다. 순간적으로 세상이 일그러져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워낙 거대한 충격에 흙먼지가 우스스 비산했다. 자연히 시야가 온통 뿌옇게 가려진다.

"웩, 켁켁!"

"야! 이럴 거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먼지를 뒤집어쓴 김애경과 이세희가 항의를 한다. 하지만 김현은 눈을 부릅뜨고 흙먼지 속만 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먼지가 가라앉고 충격파가 남겨놓은 참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걸 본 김애경과 이세희가 말을 잃고 만다.

"허허허......"

한철군 또한 헛웃음을 흘릴 뿐.

저 앞을 보라.

나무들이 우스스 쓰러져 있다. 그 중에는 두 동강이 난 것도 많다. 어떻게 버틴 나무도 껍질이 온통 까지고 가지와 잎사귀를 온통 떨어뜨린 다음이다.

더구나 폭심지는 아예 커다랗게 구덩이가 파였다. 그을음이 묻어 새까만 구덩이다. 마치 폭탄이 터진 듯한 광경이었다.

"후읍."

김현은 얕게 숨을 들이쉬었다. 효과는 좋았으나 부담도 컸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혼력은 처치하고서라도 전신의 관절이 뒤틀린 듯 비명을 질렀던 것.

"이, 이거 뭐야? 뭐가 이렇게 세?"

"이거 재료가 서리쇠랑 화룡금이잖아. 화룡금에 힘을 주입해서 서리쇠랑 반발시키는 거야. 간단해."

"말이 쉽지."

"누나는 누나 초능력만 잘 발휘해도 이 정도 위력은 쉽게 내는데?"

"뭐? 진짜? 저 정도까진 아닌 것 같은데......"

"아직 안 익숙해서 그렇지."

실은 능력치가 부족해서 그렇다. 현재 김애경의 혼력 능력치는 15. 처음 13이었던 것에서 2가 상승했으나 아직 부족하다. 3성 성혼이 제 위력을 발휘하려면 혼력 능력치와 다른 능력치가 30은 되어야 한다는 게 정설이었으니.

"초능력자는 다 이런가? 어마어마하고만. 앞으로 세희 너한테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되겠는 걸."

"전 보조 쪽이라서 안 저래요."

"그래? 초능력자도 여러 종류가 있는 모양이지?"

"당연하죠. 저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네요."

"허허, 그것 참. 어쨌든 내가 더 도와줄 건 없나? 굳이 이런 의수를 만드는 걸 보면 뭐든 필요하지 싶은데."

촉이 좋다.

하지만 예정 시간이 닷새 밖에 안 남았다는 게 문제. 더는 뭘 만들 재료도 없고 대장간에서 수작업으로 만들 장비 수준으론 아무 도움도 안 된다.

"그럼 혹시, 방탄복이랑 헬멧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음? 그건 왜?"

"쓸 일이 있어서요. 총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힘들 것 같고 군인들 완전군장 수준으로 3세트 구했으면 합니다. 돈은 제가 지불하지요."

"어흠......"

한철군의 시선이 무거워진다. 이세희와 김현을 한 번씩 보더니 침중한 태도로 묻는다.

"어디 전쟁하러 가는 건 아니지?"

"비슷합니다. 건국대학교에 갈 거여서요."

한철군의 눈이 커졌다. 본인도 듣는 게 있으니 건국대가 어떤 상황인지는 잘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세희와 관련해서 한 가지 사실도 함께.

"맞아, 세희가 신촌 병원에 근무하고 있었지......"

굳이 말로 하진 않았으나 사건의 전말이 대충 짐작되는 모양.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서?"

"경찰이든 정부든 현재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괜히 여기저기 끌려만 다니다가 시간 낭비하기 십상입니다."

"그거야......"

한철군은 여전히 고심하는 기색이다. 채근하지 않고 얼마간 기다려 주었다.

십여 분이 흐르고, 한철군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군장만 아니라, 원한다면 권총과 산탄총 몇 정은 구해줄 수 있네."

"삼촌, 정말이에요?"

"음, 알고 지내는 브로커가 몇 명 있거든. 무리하면 소총이랑 수류탄도 가능하겠네만 그건 부담이 너무 커서......"

"거기까진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산탄총으로 안 되면 소총으로도 안 되니까. 무리가지 않는 선에서, 서너 정 정도만 부탁합니다."

빙의귀의 사례에서 보듯이 최하급 괴물들에게는 일반적인 물리적 타격도 충분히 유효하다. 이때 산탄총 한 자루만 들고 있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애경이 입맛을 다셨다.

"총기 소지는 불법인데."

"누나? 농담이지? 건국대는 신촌 병원이랑 달라. 신촌 병원은 막 침식이 시작되어서 괴물이 몇 마리 없었지만 건국대에는 우글우글 거린다고. 괴물도 훨씬 더 셀 걸?"

"알아. 그냥 해본 말이야."

"어휴, 누가 공무원 아니랄까 봐."

"공무원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오냐?"

조금은 아쉽다.

총은 만병의 왕. 알음알음 몇 정 몇 발 가져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한데......

'그놈의 총포법.'

미국 같았으면 쉬웠을 일을.

잠깐만.

김현의 눈이 번뜩였다. 언뜻 어떤 영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까닭이다.

"누나, 그러고 보니까 누나 친구 중에 기자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 한성일보 다닌다는."

"응? 은서 말이야? 있지. 왜?"

"우리도 홍보는 해야 할 거 아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연락해볼게."

"고마워."

어쨌든 출발은 5일 후, 5월 14일 아침으로 결정했다. 당연히 한철군도 5월 13일까지는 필요한 물건을 배달해주기로.

김현은 둘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때까지 최대한 초능력 갈고 닦으세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많이 쓰고 다양하게 쓰면 초능력이 상승해요."

"그거면 돼요?"

"네. 사실 여러 훈련 방법이 있는데 지금 우리 처지에서는 쓰기가 어려워서......"

그래도 기초적인 방법은 가르쳤다.

김애경의 경우 육체를 단련하면서 성혼을 쓰는 방법이 유효하다. 가령 서리거인 상태로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스쿼트를 하면 된다고 할까.

이세희는 평정심과 섬세함을 기르면 좋았다.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면 요리하면서 재료마다 일일이 축복을 걸고, 책을 읽으며 인상 깊은 글귀에 축복을 거는 정도. 축복의 대상은 생명체에게만 한정되지 않으니.

"그렇게만 하면 돼?"

"응. 대신 열심히 해야 돼. 나도 열심히 할 거야."

"그래도 5일은 너무 짧지 않아요?"

"저한테는 안 짧아요."

대장간에서 볼 일은 다 봤다. 김애경의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단, 중간에 들른 곳이 있었다.

대형 마트.

정육 코너의 돼지고기를 싹쓸이했다. 거의 20kg 가까이 사자 김애경이 기함을 했다.

"야, 이거 다 누구 먹으라고 사?"

"내가 다 먹을 건데?"

"어떻게? 1년 동안?"

"그냥 보기나 해."

집에 돌아와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고기 냄새에 김애경도 한 몫 거들었다. 묵은지를 같이 구워서 쌈을 싸먹는다.

김현은 달랐다. 오로지 돼지고기만 입에 넣었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면서 기린의 생명을 최대한으로 가동한다.

우드득, 우드득.

"이게 무슨 소리야?"

김현의 몸에서 콩 볶는 소리가 났다. 김애경이 놀라 김현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김현의 앙상한 뺨에서도 톡톡 근육이 튀는 걸 보고 말을 잊었다.

지금 김현이 벌이는 일은 간단했다. 신체의 재구성이라고 할까. 곤충이 변태하듯 몸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효율이 영 별로네.'

전생에서는 개조된 소화기를 가지고 있어서 하루 내에 완전한 변화가 가능했다. 지금은 영 힘들다. 인간의 소화기는 그런 급격한 소화 흡수가 가능하게 진화하지 않았으니까.

먹고 또 먹었다.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김애경이 식사를 마치고 질린 듯 쳐다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몇 번이나 왕복했는지 모른다. 한 번은 꽉 막혀 버려서 김애경이 두 팔을 걷어붙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밤이 늦어도 자지 않고 고기를 먹는 걸 반복했다.

"너, 너!"

다음날 일어난 김애경이 기함을 했다. 당연히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할 김현이, 화장실에서 막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

"짧은 시간이 아니라고 했지?"

"성공했구나!"

김애경이 왈칵 눈물을 쏟는다.

"아직 아냐. 최소한 내가 직접 뛸 정도는 되어야지."

어제 하루 먹은 고기만 자그마치 10kg.

영양소 대부분은 소화하지 못하고 화장실에 흘려보냈지만 이것만 해도 대단했다.

김현은 자기 배를 쓰다듬었다.

'불균형이 심각하네.'

갑작스런 회복은 반드시 문제를 초래한다.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장애인 상태로 침식 세계에 들어가는 건 자살 행위니까.

오늘 하루도 고기 먹방에 온종일을 썼다. 이세희도 놀러왔다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혼자서 그렇게 먹어대는 것에, 먹을 때마다 몸이 회복한다는 것에.

"끄어억, 잘 먹었다."

"너 어떻게 그걸 다 먹냐?"

"대단하세요."

"너, 화장실 세 번이나 막힌 건 알아?"

"에이, 조금 봐주라. 동생이 이제 걸어 다니는데 화장실 청소 좀 한 게 대수야."

"쳇."

김애경이 고개를 홱 돌린다. 그러면서도 입가에 흐릿한 호선이 맺혀 있는 게 실은 자기도 좋은 모양. 아침에 울고 짜고 했던 게 부끄러워서 괜히 틱틱거린 것 같다.

남은 시간 동안은 고기 대신 야채와 곡류를 먹었다. 조금씩만, 꼭꼭 씹어서. 아울러 기린의 생명을 계속해서 활용하며 운동을 하자 삐걱대던 몸이 조금씩 유연하게 움직인다.

[끼아아악!]

때때로 귀신이 자기 존재를 알리듯 괴성을 질렀다.

"넌 조용히 해."

칼날을 두들겨 주고는 스스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능력>

[이름] 김현 [성별] 남성 [나이] 27

[진영] 지구 [종족] 인간 [상태] 정상

[근력] 8 [체력] 8 [민첩] 9 [감각] 10

[혼력] 14 [의지] 12 [통찰] 11 [위엄] 9

[성향] 요정, 환수

[성혼] 별의 관찰(요정, 3★), 기린의 생명(환수, 3★)

[보물] 붕괴의 손(3★), 유령 깃든 단검(2★)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멀었다. 특히 육체적인 면에서.

시간이 더 있으면 좋겠으나 어느새 14일, 건국대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김현은 커다란 보스턴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무거워? 내가 들까?"

"이 정도는 괜찮아. 가자."

하은이는 진작 부모님에게 맡겨두었다. 왜 이렇게 됐느냐고 부모님이 노발대발하는 걸 겨우 진정시켰더랬지.

그때 김애경이 하은이에게 속삭이던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하은아, 사랑해. 엄마가 꼭 구해줄게."

슬슬 저 멀리 은빛 돔이 보였다.

근처에서 이세희와 합류.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건국대학교 인근 카페로 향했다.

김애경이 섭외한 한성일보 기자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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