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16화 (16/200)

# 16

입성

"안녕하세요."

기자는 세련된 외모를 한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김애경의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으니 당연한 일.

"그래서 우리 서기관님, 뭐 좋은 기사거리라도 있어? 이렇게 아침부터 보자고 하게?"

기자는 제법 살가운 태도로 물었다.

김애경이 김현 쪽을 본다. 김현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서야, 잘 봐."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기자, 신은서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힘을 집중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서리거인 성혼이 펼쳐지면서 새파란 빛이 피어올랐다.

"뭐, 뭐야? 그거!"

놀랐는지 말을 더듬는다.

김애경은 자기 앞에 놓인 커피 잔에 손가락을 찔렀다. 모락모락 김을 내던 커피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커피 잔을 들고 뒤집었으나, 얼어버린 까닭에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신은서가 경직되어서 김애경을 본다. 옆에 앉아 있던 이세희가 별안간 짓궂은 표정을 짓더니 신은서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 손에서 황금빛 광채가 비눗방울처럼 퐁퐁 쏟아졌다.

성스러운 축복이 신은서를 적셨다. 덕택에 황홀한 기분을 맛보며 정신을 차렸다.

"할 말 있다더니, 그게 이거였어?"

"아니, 이건 프롤로그야."

"대체 뭔데?"

"지금부터는 내 동생이 설명할 거야."

공이 김현에게 넘어왔다. 탐색하는 시선이 이쪽을 찌른다.

여태 탁자 아래에 숨겨두었던 왼팔을 들었다. 옷으로 가려 놓았지만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다는 건 확실한 상태.

텅!

탁자에 올리자 둔탁한 소리가 났다.

장갑을 벗어 금속 의수를 보여주었다. 자연히 신은서의 시선이 매섭게 변했다.

"반갑습니다. 요정 및 환수 성향 각성자 김현입니다."

"어...... 그러니까, 뭐라고요?"

"다른 게 아니고, 저 돔 때문에 뵙자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하, 뭐 알고 계시는 게 있나 봐요?"

신은서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가식적인 태도. 눈동자 깊은 곳에는 시큰둥한 빛이 감돌았다.

사실 지난 며칠 생존자들의 인터뷰가 짜 하니 퍼진 까닭이다. 여기 있는 셋처럼 핵심까진 접근하지 못했어도 유명계에 대한 내용은 알려졌으니까. 외국에서 나온 내용도 있고.

"예. 많은 분들이 예측하신 것처럼 저기 있는 돔은 일종의 결계입니다. 성혼이 폭주하면서 공간을 침식하고, 침식된 공간이 현실 차원에서 유리되면서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차원의 균열이 생기는데, 그게 빛나는 돔의 형태로 나타나는 거지요."

"어, 잠깐만요. 그거 확실한 증거가 있는 거예요? 성혼은 또 뭐고요? 적당히 소설 쓰시는 거면 곤란한데요."

"소설 아냐. 듣기나 해."

김애경이 거들었으나 믿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까.

현 시점에서 침식 세계와 그 탈출 방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했고, 탈출 즉시 각국 정부에서 데려갔으니까. 김현 일행은 5백 명 가까이 생존해서 경찰이고 정부고 정신이 없는 사이 치료 문제로 시야에서 멀어진 경우고.

"신촌 병원 사건, 들으셨죠?"

"당연히 알죠."

"저희들이 당시 사건을 해결한 당사자입니다."

"뭐라고요?"

신은서의 눈이 커진다.

"다른 지역에서는 생존자가 많아 봐야 서너 명이던데, 왜 신촌 병원에서만 생존자가 5백 명도 넘게 나왔겠습니까? 저희 셋이서 신속정확하게 움직인 까닭이지요."

"증거, 증거 있나요?"

"이거 인증샷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네요. 사건 벌어지기 전에 찍은 사진이라도 보여드릴까요?"

김현은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한 장 찾아 보여주었다. 5월 4일 저녁, 하은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장난치듯 찍은 사진이었다.

그곳에는 김현과 김애경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어서 이세희도 플라스틱 카드를 한 장 꺼낸다. 뭔가 해서 보니 사원증. 신촌 병원의 간호사임을 입증하는 물건이었다.

"뭐, 좋아요. 여러분이 병원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금방 알아낼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해결하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방금 전 말씀드린 것처럼 세계의 침식은 성혼의 폭주로 일어납니다. 폭주한 성혼을 한 단어로 명명하자면 핵, 이라고 하면 되겠지요. 그 핵을 제거했습니다."

"그 성혼이라는 게 대체 뭔데요?"

"자세히 설명하자면 복잡합니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초능력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다만 사람이 각성한 상태의 초능력만 얘기하는 건 아니고, 자연 상태의 초능력...... 무협 소설의 영약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런 것도 포함하는 개념이지요."

"알았어요. 핵을 제거했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간단합니다. 핵은 필연적으로 강력한 지킴이를 생성하는데 그 괴물을 죽이면 핵이 같이 제거됩니다. 어떻게든 지킴이를 죽이기만 하면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죠. 신촌 병원이나 해운대처럼."

상세하게 당시 일을 기술했다.

덮쳐오는 빙의귀. 이세희의 합류. 기계실과 방사선실에서의 성혼 수거......

정신없이 노트북을 두드리던 신은서가 왼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잠시만요. 그 침식된 세계에서 초능력을 얻었다고요?"

"예. 맞습니다."

"어...... 그런데 이상하네요. 말씀하시는 게 꼭 처음부터 어디에 초능력이 있었는지 안 것처럼 들리는데요."

"알았죠. 그러니까 기계실로 바로 간 거 아닙니까."

"어떻게 아셨는데요?"

김현은 대답 대신 자기 눈을 톡톡 두드렸다. 신은서가 침을 꼴깍 삼켰다.

"설마, 예지?"

"예. 불완전한 예지입니다만, 당시에는 이걸 믿어야 했죠."

신은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태도. 김현을 뚫어져라 보다가 김애경에게 시선을 돌린다.

"사실이야. 그리고 정확도도 꽤 높아. 병원에서는 거의 초 단위로 미래를 완벽하게 예지했거든."

"맙소사...... 그럼, 이번 주 로또 번호도 알 수 있어요?"

"불완전하다고 했잖습니까. 그건 몰라요. 그래도 한 가지 사실은 알죠."

아직까지 둘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용.

서서히 고개를 돌려 여기 있는 세 명과 차례대로 눈을 맞췄다. 그리고 예언하듯 입을 열었다.

"내일 밤 9시 32분, 세종시 청사가 침식되어 은색의 돔이 생깁니다."

"뭐? 정말?"

"말도 안 돼!"

"그거, 확실한 정보에요?"

셋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야, 우리한테 먼저 알려줬어야지."

공무원, 흔히 말하는 입법고시 출신의 4급 서기관인 김애경이 항의를 했다.

"알려주면, 대피라도 시키게?"

"당연하지."

"누나 힘으로 가능해? 내 생각에는 누나 지인들만 퇴근하는 게 한계일 것 같은데. 그 정도로는 대세에 영향이 없어."

김애경의 말문이 막혔다.

국회에 근무 중이라 세종시에는 영향력이 별로 없다. 4급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전국 단위로 보면 또 그게 아니고.

"신 기자님."

"네? 아, 네. 말씀하세요."

"저희는 지금부터 저 돔에 들어가서 건국대학교를 원상복귀시킬 겁니다. 정확히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12시간 안에는 가능할 것 같고요."

"12시간...... 밤 10시 정도네요."

"예. 그러니까 기자님께서 이번 일을 최대한 공론화시켜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있을 정부청사 침식 사태도요."

김현의 구상은 간단했다.

이번 일이 성공하면 세계 최초로 침식 공간을 복구했다고 할 만하다. 몇 명씩 생존한 자들이야 있지만, 의도하고 들어가는 건 처음이니까.

간단히 설명하면 던전 클리어. 당연히 장안의 화제로 떠오를 것이고 예언에도 힘이 실리겠지.

다른 곳도 아닌 정부 청사다. 야근과 당직이 아니라면 사람이 남을 까닭이 없다. 정부에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밤 8시 반에 아무도 없게 하는 것쯤 간단하다.

"그런데 저기 안에 들어가는 게 가능하기나 하나요? 지금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걸로 아는데요."

세계 각지에 은색 돔이 출현하고 벌써 열흘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심지어 초능력자들, 즉 각성자들마저도.

"제가 방법을 압니다. 원하신다면 들어가는 장면을 촬영하셔도 좋습니다."

"저도 들어가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각성자, 즉 초능력자만 진입이 가능하거든요."

각성자.

신은서가 그 단어를 혀끝으로 굴려본다. 이어 부리나케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제 가는 거야?"

"응. 슬슬 시작해야지. 너무 늦게 끝나면 내일이 힘들어져."

"내일은 바로 들어가게?"

"정부에서 우리 경고를 받아줬으면 좋겠는데,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고 모든 침식 세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져."

보스턴 가방을 들고 일어나자 신은서가 급히 소리친다.

"잠깐만요!"

"왜 그러시는지?"

"그 침식됐다는 세계 내부, 찍어 오실 수 없으세요? 사례는 톡톡히 할게요!"

기자로서의 본능이 발동한 듯.

내부 공개라......

김현은 싱긋 웃었다.

그럴 줄 알고 준비를 해온 게 있지.

미리 주머니에 빼놓았던 작고 네모난 물건을 꺼내 흔들었다.

"이게 필요하십니까?"

"어! 그거!"

액션캠.

여행자에게도 각성자에게도 유용한 물건이다. 원 역사에서도 각성자들이 내부 정보 획득 및 성혼 분배를 목적으로 차고 들어가곤 했으니.

신은서의 눈에 은은한 탐욕의 빛이 감돌았다. 김현이 다시 주머니에다가 액션캠을 넣자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묻는다.

"영상 찍으시면 저희 신문사가 독점으로 거래할 수 있을까요?"

"신문사가 영상 구입하셔서 뭐하시게요?"

"그야 여러 가질 할 수 있죠. 저희 그룹에 종편 방송사도 하나 있는 걸요."

제일 중요한 건 중계권.

김현의 영상에 대해 알려지면 전 세계에서 돈을 싸들고 찾아올 것이다. 그것만 팔아도 엄청나지. 신은서가 재차 침을 삼켰다.

이걸 간단히 수락하면 멍청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독점은 안 됩니다. 저희가 먼저 편집을 하고 적정한 순에서 공개하지요. 뭐, 몇 개 정도는 하루 이틀 빨리 전해드릴 생각은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죠. 혹시 제가 뭐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글쎄요. 제가 말씀드린 것만 잘 해주세요. 최대한 화제가 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나중에 섭섭하지 않게 챙겨드리죠."

"기대할게요."

신은서의 눈이 반짝거렸다.

옆에서 김애경이 손으로 허리를 쿡 찌른다. 왜 그러나 싶어서 돌아보니 김애경의 시선이 김현의 주머니를 향하고 있었다.

걱정이 되나 보다. 편집을 한다고는 해도 총기 사용 등 불법적인 행동이 노출될 수 있으니까.

가볍게 눈으로 웃어 주었다.

괜찮다고.

사실 그것 또한 김현의 노림수.

앞으로 외계종들과 대적하려면 각성자들은 자유롭게 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외계종들은 국경만 따라서 침입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서는 총포법을 손 댈 필요가 있고, 김현이 앞으로 공개할 영상이 그 단초가 될 것이다.

"슬슬 갈까요?"

카페에서 건국대학교를 봉쇄한 은빛 돔까지는 가깝다. 경찰들이 지키고는 있으나 완전히 봉쇄하진 않은 상태. 그러기에는 돔이 너무 넓었고 인력이 부족했으니까.

차를 타고 인근 도로를 따라 건국대학교로 향했다. 원래 같았으면 학생들로 북적거렸어야 했을 곳이 한가했다. 그저 몇 명만 길을 따라 오락가락 걸어 다닐 뿐.

은빛 돔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뜻밖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경찰이 없는 곳이라 어린 학생들이 와서는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

웃음이 나온다. 참 겁도 없지 싶어서.

"누나, 선생님. 이쪽으로 오세요."

보스턴 가방에 넣어두었던 군장을 꺼낸다.

헬멧, 군화, 방탄복, 무릎 보호대와 팔꿈치 보호대, 구급대와 수통, 대검 등 필요한 건 전부 다.

김애경이 보스턴 가방 세 개를 또 꺼내 왔다. 무거운지 낑낑거린다. 이세희와 신은서가 돕겠다고 나섰다가 육중한 무게에 질겁하고는 물러났다.

당연한 일.

완전 군장 3세트다. 전투식량 및 반합과 모포, 침낭이나 우의, 방독면과 제독 키트 등 어지간한 장비는 다 들어 있다.

이런 걸 가지고 가서 뭐하냐고?

공략을 다 알아도 12시간이 걸린다. 중간중간 밥도 먹고 새우잠이라도 자서 체력을 보충해야 된다. 병원에서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때처럼 했다간 어떻게 죽는 줄도 모르게 훅 간다.

장구를 착용하자 주위에서 사진을 찍던 대학생들이 묘한 눈으로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저 사람들 뭐야?"

"몰라. 밀덕인가 봐."

"예비군 아닐까?"

"여자도 있으니까 아닐 걸."

그러거나 말거나 은빛 돔으로 다가가 선다. 신은서가 커다란 사진기를 들이대고 수십 방을 연거푸 찍었다. 이어서 마이크를 들이댔다.

"기분이 어떠세요?"

"조금 두근거리네요. 그래도 오늘 일이 첫 반격이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네?"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도 모를 말.

김현은 씩 웃어주고는 밧줄을 꺼냈다. 김애경과 이세희, 자신의 허리에다가 밧줄을 묶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진입을 해도 세계 곳곳에 무작위로 떨어져 버리니까.

"누나. 초능력 쓰고 있어. 대충 손 하나로 뿌리면 돼."

"이렇게?"

김애경이 푸른 광채를 뿜었다. 자연스럽게 주위 기온이 내려가며 싸늘한 기운이 맴돈다.

"선생님도 초능력 쓰고 계세요. 어느 부위든 괜찮아요."

"알았어요."

이어서 축복을 뿌리는 이세희. 지금 미리 걸어두자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세희만 아니라 여기 있는 세 명 모두 전신이 옅은 금빛으로 물들었다.

김현도 지금까지 숨겨뒀던 의수를 꺼냈다. 장갑을 벗고 후드티 소매까지 걷은 다음 강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히 빛과 철의 향연. 셋의 정체를 눈치 챈 학생들이 소란을 피웠다.

"초능력자다!"

"뭐? 진짜? 진짜?"

"기깔 난다, 쩔어!"

자연히 스마트폰 수십 개가 이쪽을 향했다.

그들 앞에서 조용히 단검 하나를 꺼냈다.

과도, 귀신 깃든 단검.

그걸 은빛 돔에다가 꽂는다. 귀곡성이 김현의 뇌리를, 아니 김현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의 두뇌를 강타했다.

[끼아아악!]

변화가 일어난 것은 이때.

단검을 꽂은 부위에서 옅은 파장이 발생했다. 아주 작은 물결이 일 듯 주변을 향해 천천히 밀려간다.

물결은 곧 폭풍이 되었다. 빛이 쏟아졌다. 아울러 흡입력이 발생하며 셋을 천천히 끌어당긴다.

김현은 김애경부터 밀어주었다.

단 몇 초 만에 김애경이 자취를 감춘다.

"어, 어?"

"저 사람들 봐!"

"안으로 들어가고 있어!"

어느새 이세희까지 은빛 돔 안으로 사라졌다. 남은 것이라고는 김현 하나가 전부.

뒤를 돌아본다.

멍한 표정을 한 신은서와 눈이 마주쳤다. 그 와중에도 사진기 셔터를 바쁘게 눌러대는 게 재미있었다.

그 장면이 마지막.

파랗던 하늘이 시야 저 편으로 넘어갔다.

대신하여 금빛 별무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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