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22화 (22/200)

# 22

세계에 알리다 –1-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10시 경, 자신을 초능력자라고 주장하는 남녀 세 명이 건국대학교로 들어갔습니다.]

"저, 저런."

"하여간에 하지 말라면 하지 말지."

"쯧, 저런 놈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국밥집, TV를 보던 이들에게서 성토가 쏟아진다. 돼지국밥에 소줏잔을 기울이던 서영도 또한 우울한 얼굴로 선반 위에 설치된 TV를 올려다보았다.

어느 한 단어가 귀에 탁 틀어박혀서.

'건국대......'

뉴스가 이어졌다.

[당시 남녀 셋이 건국대학교로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화면이 전환된다.

괴상한 사람들이 화면에 잡혔다.

선두에 선 남자는 두툼한 강철 팔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더 눈길을 끄는 건 그 뒤에 선 두 여자. 저마다 청색과 금색의 빛을 뿜어내는 중이었으니까.

"거, 뭐시냐, 컴퓨터 그래픽 아녀?"

"설마 뉴스에 그런 걸 내보내려고."

"요즘엔 하도 가짜 뉴스가 판을 치잖어."

그러나 모두들 곧 합죽이가 된다.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그것도 스마트폰을 쓴 게 명백해 보이는 서로 다른 영상이 여러 번 재생되었으니까.

방송국 측에서 조작이 아니라고 확실히 못을 박은 셈.

은색 장막이 갈라지고 셋이 그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나오자 다들 입을 떡 벌렸다.

"저기 들어가는 게 돼?"

"안 된다던데...... 우리 손주들도 들어가려고 몇 번을 해봤는데 못 들어갔어."

"초능력자만 되는 거 아녀?"

"우리 사돈의 사촌의 막내 손자가 초능력자인데 못 들어갔다고 하더라고."

이어 타 방송국의 뉴스가 인용된다.

30대 초반의 여성 기자. 마이크를 쥔 채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세 초능력자는 건국대학교에 진입하여 자기들의 말을 증명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건국대학교가 복구되는 일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경고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일, 2018년 5월 15일 저녁 9시 32분! 세종시의 정부청사가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정부는 속히 세 초능력자의 경고를 받아들여 정부청사의 인원을 대피시켜야 합니다!]

초능력자들의 경고.

찜찜하긴 했으나 귀담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뉴스도 이미 다음 꼭지로 넘어갔다. 지금까지는, 14일 저녁 9시 무렵까지는 김현의 예언이 그저 가십거리에 불과했던 것.

그러나 어떤 속보 때문에 상황이 180도로 뒤바뀌게 된다.

혹여나 더 뉴스가 나올까 봐 귀를 쫑긋 세웠던 서영도가 국밥과 소주를 거의 비웠을 때였다. TV 아래쪽에 붉은 글자로 속보가 떴다.

[속보 : 건국대학교 복구]

"뭣이라?"

와장창!

급하게 몸을 일으키자 탁자가 쓰러지며 난리가 난다.

"아이코, 이게 무슨 짓이여!"

주인 아주머니가 타박을 주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오로지 선반 위 TV에 모든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다.

앵커와 아나운서가 프롬프트를 읽는지 눈동자를 우에서 좌로 움직인다. 그러다가 남자 앵커가 다소 놀란 얼굴로 입술을 뗐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약 3분 전, 저녁 9시 15분경에 은색 돔이 사라지면서 건국대학교가 복구되었다고 합니다. 현장에 이석현 기자가 나가 있습니다. 이석현 기자?"

[예, 이석현입니다!]

화면이 전환되며 어떤 건물들이 주르륵 나타난다.

서영도는 헉하고 헛바람을 들이켰다.

눈에 익었다.

아들이 입학식을 할 때 갔던 곳이고, 최근에 몇 번이나 찾아갔던 장소였다.

달라진 점은 은빛 돔이 사라졌다는 것.

그 씹어먹을 정도로 증오스러웠던 그것이......

[보시다시피 건국대학교는 예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요 열흘 동안, 건국대학교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생존자는 없습니까?"

[경찰들이 통제 중이어서 안으로 들어가기가 힘듭니다. 다만 망원 렌즈로 살펴본 결과, 학교 곳곳에 시체가 방치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시체라고요?"

[예. 신촌 병원이나 해운대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시체!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넘어지려는 걸 겨우 중심을 잡고 지탱했다.

그때, 화면이 급박하게 이동하며 한 곳을 비추었다.

건국대학교의 정문으로 이어지는 대로.

네 명이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화면이 그들에게 고정되더니 천천히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내 그들 넷이 화면 전체에 꽉 찬다.

끝내 주저앉고 마는 서영도.

짐승 같은 울음이 터져 나온다.

"이놈, 경태야!"

살이 쪽 빠졌지만, 얼굴이 다 타서 시커멓게 변했지만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우리 아들이니까.

아내를 떠나보내고도 금쪽같이 키운 내 아들이니까.

"경태? 경태라고?"

"서 씨 아들? 건국대 다닌다던?"

요 며칠 발도장을 찍었다고 얼굴을 익힌 주인 아주머니와 종업원들이 웅성거린다.

주인 아주머니가 서영도를 잡아끌었다.

"뭐해요, 여기 앉아서?"

"그, 그럼?"

"얼른 가봐요, 얼른!"

이제야 난장 쳐 놓은 아수라장이 눈에 들어온다. 잠깐 멈칫했으나 주인 아주머니의 채근에 얼른 몸을 돌렸다.

어째서일까.

두 뺨 가득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축하허요!"

"조상님들께서 돌보신 게야!"

"얼른 가소! 아들네미가 살아왔다는데 빨리 가봐야지!"

사방에서 격려가 쏟아진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그들.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 한 채 뛰쳐나간다.

한달음에 달려갔다.

아들이 기다리는 곳, 건국대학교를 향해서.

***

펑! 펑펑!

거리가 가까워지니 플래시 세례가 내렸다.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셋이 얼굴을 찌푸린다. 김현은 기자들에겐 들리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자, 다들 웃어요. 손도 흔들어 주고."

김현 혼자 여유로웠다. 의도적으로 왼팔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자연히 금속 의수가 빛을 반사하며 화려하게 빛났다. 카메라들이 더욱 집중되었다.

"으, 눈이 너무 부신데요."

"혼력을 눈에다 보내봐요. 그럼 덜할 겁니다."

"어떻게요? 어어...... 전혀 안 되는데요."

"평소에 연습해야 하는 겁니다. 저기 봐요. 우리 누나랑 이 선생님은 벌써 익숙해졌잖아요?"

아닌 게 아니라 김애경의 눈은 파랗게, 이세희의 눈은 금색으로 반짝이고 있다. 서경태가 둘을 보다가 김현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형님은 변화가 없는데요?"

"제 성혼이 원래 그래요."

별의 관찰이 있어서 그렇고, 혼력의 제어 능력이 차원을 달라서도 그렇고.

정면에는 경찰 저지선이 설치되어 있다. 넷이 가까워짐에 따라 경찰 몇 명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뭔가 말을 붙이려고 할 때였다.

"이놈, 경태야!"

경찰 저지선 바깥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그러나 피를 토하는 듯하여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목소리.

서경태가 놀라 그쪽을 보았다.

"아버지?"

이내, 서경태 또한 짐승 같이 고함을 지른다.

"아버지!"

어둠으로 변하는 서경태.

일직선으로 질주한다.

천상계에서 그랬었지. 자신의 한계는 50미터라고. 모든 힘을 다 쥐어짜도 거기까지가 한계라고.

서경태 본인도 그런 줄 알았으니까.

실상은 달랐다.

약 100미터를 단숨에 주파해 버린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땀에 푹 젖은 채 모습을 드러낸다. 서영도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서경태를 주시하더니, 울음을 터뜨리며 끌어안았다.

"이놈, 경태야!"

"아버지!"

서경태도 눈물이 터졌다.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다.

억센 팔을 더듬는다. 손끝에 덥수룩한 수염이 스친다. 그 가운데, 옅게 술 냄새가 풍겼다.

항상 싫었던, 그러나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토록 그리웠던 것들. 서영도를 껴안은 팔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아버지, 엉엉, 아버지!"

"그래, 경태야, 나 여기 있다. 여기 있어!"

아이처럼 울었다.

아버지도 아들도,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도록 울고 또 울었다.

주위를 감싼 시민들의 눈시울도 붉어진다.

누군가 훌쩍거리며 콧물을 훔친다. 가만히 뒤로 돌아 눈가를 닦아내는 이도 있었다.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둘이 진정했다.

서경태가 서영도를 끌어당겼다.

"아버지, 소개해드릴 분들이 있어요."

경찰이 저지할 새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저지선을 넘어가 안쪽으로 들어간다.

이미 김현을 비롯한 셋이 가까이 와 있는 상황.

서경태가 눈물을 쓱 닦고는 서영도에게 셋을 소개했다.

"절 살려주신 분들이에요. 여기 형님 누님들 아니었으면 전 저기 안에서 괴물들한테 죽었어요."

"고맙습니다!"

서영도가 무릎을 꿇는다.

"왜, 왜 이러세요."

김애경과 이세희가 당황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숫제 머리까지 조아렸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만약에, 만약에 정말로 우리 경태가 죽었으면 저는......"

도저히 말을 잇지 못하는 서영도.

아버지뻘인 서영도가 그러고 있으니 김현 또한 마음이 불편했다. 얼른 같이 꿇어앉아 두 팔을 잡고 일으킨다.

"그러지 마세요, 아버님. 저희 아닌 다른 누가 경태 씨를 발견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 그래도......"

"그나저나 대단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저희가 들어가기 전까지 경태 씨 혼자 열흘 가까이 생존했는데, 그게 보통 사람이라면 가능했겠습니까? 다 아버님이 잘 가르치신 덕분이지요."

서영도가 이제야 고개를 들었다.

지금도 눈물범벅이지만, 두 눈 가득 고마움과 자랑스러움이 고여 있었다.

억센 손을 들어 김현의 오른손을 꽉 잡더니 맹세하듯 소리친다.

"정말로, 정말로 고맙습니다! 내 죽는 날까지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고개를 숙이는 서영도. 덩달아 목례하는 김현. 그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나머지 세 명.

펑펑펑펑!

난사하듯 빛이 터진다. 특종을 직감한 기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 것.

경찰들이 난감한 얼굴을 했다.

"여기까지 들어오시면 곤란합니다."

"거기 기자분들! 라인 밖으로 나가요!"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개중 계급이 높아 보이는 경찰이 다가왔다.

무궁화 하나, 즉 경위.

밤이라 그런지 더 고위 경찰들은 이미 퇴근했나 보다.

"그러시죠."

"그럼 이쪽으로......"

"잠시만.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어서요. 잠깐 얘기만 하고 가겠습니다."

아까부터 신은서가 맹렬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자기는 할 일을 다 했으니 약속을 지키라는 것.

그쪽으로 이동하자 경위가 슥 다가와 앞을 막는다. 김현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시간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어째서요?"

"무분별한 정보가 풀려서 국민들이 동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협조해 주십시오. 정부 방침입니다."

"시국이라......"

김현은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 경찰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납득한다.

하지만 듣고 있노라니 배알이 꼴린다.

앞으로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알기 때문에. 특히 지금 눈앞에 있는 경위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 탓에 더 그랬다.

정경식 경위.

김현이 이름을 기억하는 인물 중 하나.

조금은 우스웠다.

원 역사에서도 처음 침식 세계를 복구하고 나오던 김애경의 앞을 막았던 자가 이번 역사에서도 똑같이 행동하고 있으니.

톡 쏘아붙였다.

"책임질 수 있습니까?"

"네?"

"저는 예지 능력자입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 불변하는 미래를 예지했지요. 내일 저녁 9시 32분, 세종시의 정부청사가 사라집니다. 그걸 복구할 수 있는 건 저희뿐이고요. 그런데 여기서, 저희를 억류하느라 때를 놓치면 어떡하실 겁니까?"

"무슨 과대망상을......"

"과대망상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희가 오늘 여기서 알아낸 사실을 밝히지 못하면 침식된 세계로 진입하는 방법은 1달 뒤에나 알려집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겠지요. 거의 천만 명은 넘게 죽습니다. 묻겠습니다. 정윤식 경위."

이름을 부르자 정윤식 경위가 침을 꿀꺽 삼킨다.

"그 천만 명, 죽일 겁니까?"

"궤변 늘어놓지 마십쇼! 제가 죽이는 겁니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요. 당신네들의 드높은 자존심 때문에, 복지부동하는 멍청함 때문에. 축하합니다. 훗날 역사가 정윤식 경위, 당신을 머저리의 전형으로 기록할 테니."

"이익!"

화가 났는지 정윤식 경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꼼짝도 하지 않고 노려본다. 두 눈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그 서슬에 정윤식 경위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돌렸다.

기세라는 게 있다. 김현은 저항군 총사령관으로서 온갖 무시무시한 괴물과 싸웠던 자. 이제 막 임용된 햇병아리 경위가 맞상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언제 그렇게 화를 냈냐는 듯 허락을 하고 만다.

"잠깐만입니다."

"감사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김현. 그러나 화살처럼 꽂히는 정윤식 경위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두고 보자. 인류팔이 새끼야.'

정윤식 경무관.

김애경 암살에 관련된 8인 중 하나.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경술팔적(庚戌八賊)이라고 불렸다지.

김애경이 다가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경찰도 자기 일 하는 건데 너무 몰아붙이지 마."

"저 사람은 그래도 싸."

"그래도 싼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 게 있어."

김애경이 설마 하는 얼굴로 김현을 본다. 얼버무리는 어투에서 한 가지 추측을 한 것.

미래에 무슨 일을 벌이는구나, 하는.

어느새 경찰 저지선에 이르렀다.

기자들이 아우성을 치며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댄다.

즉석에서 기자 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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